6월에 두 번의 민족 재앙이 있었다.
외세 침략과 동족상잔이 빚은 최악의 전란이다.
임진년 초여름 새벽 부산 앞바다에 왜선 수백 척이 몰려왔다.
겁먹은 조선 병사들은 줄행랑치기 바빴다.
1950년 6월25일 새벽 북한 남침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병력과 실탄이 부족했던 국군은 패주를 거듭했다.
비운의 두 역사 사이엔 300여 년의 간극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쟁 양상은 영락없는 판박이다.
닮은꼴 참화가 이 땅에서 재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철학자 헤겔은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그의 경구를 역사 속으로 보내려면 뼈아픈 자각이 필요하다.
과거의 실패를 복기해 거울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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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연국세경제부장 |
* 조선의 안보는 병약했다. 임란이 터지자 수도 한양은 왜군에 속절없이 짓밟혔다. 왜군이 상륙한 부산 앞바다엔 조선 병사도, 전함도 없었다. 장수는 배와 화포를 버리고 도망쳤다. ‘무비유환(無備有患)’의 실상 그대로였다. 정부는 대비에 서툴렀고 백성은 불만만 가득했다. 성을 수리하고 무기를 준비하라는 지시에 민심이 들끓었다. “왜 백성들을 못살게 구느냐?”는 상소가 빗발쳤다.
6·25의 암호명은 ‘폭풍’이었다.
북녘의 바람 앞에 서울은 사흘 만에 무너졌다.
숱한 위기 경고에 귀 막은 무능 정부의 참담한 귀결이었다.
전쟁 전날 육군 지휘부는 회식으로 술에 절어 있었다.
비상경계령마저 풀려 병사들은 달콤한 휴가를 즐겼다.
북한군이 개성을 점령한 일촉즉발의 순간, 대통령 이승만은 근처 궁궐에서 낚시 중이었다.
남침 사실을 안 것은 6시간이 지나서였다.
경무대에 도착한 신성모 국방장관은 “각하의 심기를 어지럽혀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고 굽실거렸다. 나라 안위보다 통치자의 심기가 먼저였다.
채병덕 육군참모총장은 “의정부에서 적을 격퇴하고 있으니 사흘 내 평양을 점령하겠다”고 허세를 부렸다.
* 조선 왕 선조는 비겁했다. 신립 장군의 패전 소식이 전해지자 피란 보따리부터 챙겼다. 왕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경복궁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일하던 한 농부가 울부짖었다. “나라님이 우리를 버리고 가시면 누굴 믿고 살아야 합니까?” 왕은 길을 재촉했다. 평양으로 몸을 숨긴 뒤에도 국토 끝자락까지 달아났다. 압록강에 배까지 대놓고 명나라에 망명을 구걸했다.
반공주의자 이승만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전쟁 이틀 후 대통령은 “유엔군이 참전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국민이 라디오방송에 가슴 졸인 그때, 대통령은 서울에 없었다.
특별열차를 타고 이미 남으로 피신한 뒤였다.
정부 발표를 믿은 국민들만 북한군의 총칼에 최후를 맞거나 공포에 떨어야 했다.
무능 정부는 임시수도를 네 번이나 옮겼고, 급기야 미국 조야에서 해외 망명정부가 거론되는 지경에 몰렸다.
* 두 개의 비극은 모두 국제전이었다. 외세 도움으로 국난을 넘긴 부끄러운 역사다. 임란 때 명나라는 대규모 병력을 조선에 지원했다. 마카오에 주둔한 포르투갈 수병과 인도, 태국, 티베트, 몽골 병사까지 파병에 가담했다. 다국적 군대인 셈이다. 6·25 때도 우리를 도운 나라는 63개국을 헤아린다. 이들은 먼 이국으로 아낌없이 병력과 물자를 보냈다. 유엔이 신속히 결의안을 채택하고 파병을 결정한 덕분이었다. 북한 우방인 소련이 파병을 막지 않은 일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다. 우리에겐 천우신조나 다름없다.
영의정 유성룡은 그의 ‘징비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마침내 나라를 회복하게 되었으니 진실로 하느님이 도우신 것이요,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조선 왕을 뒤쫓던 왜군이 평양성에서 돌연 멈춘 불가사의를 평한 말이다. 그 사이 조선은 국력을 수습하고 명나라의 군사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세 번의 기적은 없다. 스스로 돕지 않는 민족은 하늘도 어쩔 수 없는 법이다. 언제까지 하늘의 요행만 바랄 것인가. 안보불감증 대한민국이 역사 앞에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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