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자의 10가지 길과 5가지 주의점.

true2020 2012. 4. 7. 19:43

1. 차분한 사람은 개척정신이 없습니다.

 

▣ 1968.6.4(화) 전쟁의 시점. 전본부교회.

- 제21회 협회 수련회 폐회식.

 

020-157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개척정신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결의를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차분한 사람은 개척정신이 없습니다. 의분에 불타는 사람, 자기의 생명이 아까운 줄 모르고 원수를 갚기 위해서 결의한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역사해 주시는 겁니다.

 

모세는 얼마나 혈기가 드세었습니까? 반석을 두 번이나 들이쳐서, 석판을 깨트렸잖아요? 내가 하늘을 대신해서 사탄을 공격하고 치는 그 힘 자체는 약하지만 결의한 그 입장 앞에는 어느 누구도 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해서도 그 누구를 대해도 내 앞을 막을 수 없다는 마음을 가지고 밀고 나갈 때 거기에서 승리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2. 4대 성현의 개척의 길.

 

▣ 1972.2.8(화) 하나의 하나님과 하나의 세계 종교.  필라델피아 쉐라톤 호텔. 

- 미국 7대 도시 순회 공개 강연. 

  

그럼 4대 성현을 한번 살펴봅시다. 이들은 전부 다 그 나라, 그 국가권 내에서 핍박받은 사람들입니다. 공자도 그랬고 예수도 그랬던 것입니다. 불교의 석가모니도 부정하는 자리에 서서 자기의 궁중을 버리고 수도의 길을 떠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호메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기 국민 앞에 환영받았던 사람이 없어요.

 

그러나 국민이 반대하지만 세계를 구하기 위해서 생명을 던져 가지고 그 길을 개척해 왔기 때문에 오늘에 와서 성인의 이름을 남긴 것을 알고 있습니다.

 

3.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라.

 

▣ 1971.7.11(일) 개척자. 전본부교회.

045-302 개척자는 현실에 국한된 그런 가치를 다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초월하여 미래의 가치를 다짐할 수 있는 신념과 우주관과 인생관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045-304 그러므로 세계적인 개척자가 되고 역사 앞에 새로운 개척자가 되겠다고 다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수난길을 자기의 당연한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비참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것을 자기의 타고난 팔자로 생각하고 그것을 못하게 될 때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 불평할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045-313 그러면 보다 가치 있는 개척자는 어떤 사람이냐? 현실에서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서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현실보다 미래에 무한한 가치를 두고 거기에 전심을 쏟고 거기에 생명을 걸어 놓고 무한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길이 있어도 그것을 응당한 일로서 받아들이기를 결의한 사람들만이 개척자로서 역사의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자격자입니다.

 

4. 개척의 길은 소모전과 같은 싸움이다.

 

▣ 1970.3.17(화) 개척자.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2회 협회 간부 수련회.

 

030-093 개척자는 어떤 목적을 항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데에는 고역 속에서 신앙과 목숨까지 걸어야 할 투쟁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척자가 가는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해서 모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목적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개척자의 명분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030-094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적인 면으로 극복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척자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척자의 사명을 완수한 입장에서 안내자의 길을 가야만 올바른 안내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030-096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여건을 타개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개척 운동이 반드시 이 지구상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개척자의 사명을 갖고 올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을 위주로 하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이상을 위주로 한 세계적인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내용을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천주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현실 역사 세계의 편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세계의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오늘날의 인간 세계에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견해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 이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사명을 할 분이 오게 되면 그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바라는 목적 세계를 이루기 위한 개척자, 역사상에 없었던 최고의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영육계를 중심한 개척자와 육계를 중심 삼은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030-098 모험을 하며 투쟁하고 개척하며 이루어 나온 모든 결과는 소모시킨 힘에 비례하여 나타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비례하여 나타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100을 소모시켰으면 반드시 100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열을 혹은 하나를 혹은 하나의 소득도 가져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개척자의 생활은 소모전과 같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소모전으로써 개척자의 길이 타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적의 한 기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모되는 시간의 연속이요 소모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모시킨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는 사람은 개척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030-108 이제는 행동만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이 있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5. 개척자가 가는 길은 극복과 인내만이 있을 뿐이다.

6. 여러분들은 심정 세계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 1970.4.12(일) 개척자의 길. 전본부교회. 

 

▶ 기도 가운데.

 

031-025 아들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아들을 잃어버린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이요, 딸을 잃어버린 서러움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딸을 잃어버린 부모의 서러움을 헤아릴 수 없는 것입니다.

 

* 오늘날 이 땅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믿는다는 사람이 많사옵고 아버지를 모신다는 종교는 많사오나 그 아버지와 더불어 살기를 바라고 아버지와 고통을 같이하기를 바라는 자는 없사옵니다.

 

자기의 모든 고통을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고통으로부터 해방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이런 철없는 마음을 갖고 종교를 믿고 있는 무리가 많은 것을 저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와 같은 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의 상한 마음을 붙들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아버지를 위로할 수 있는 아들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러한 딸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 저희들은 부모의 심정을 지니고 종의 몸을 쓰고 피와 땀과 눈물, 모든 것을 인류와 천주, 하늘땅을 위해서 이 길을 가겠다고 통일교회에 들어온 몸들이오니 어떠한 기점에서 출발하였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맺어야 하는가를 여기서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 남아진 그날까지 저희들이 온갖 정성과 충성을 다 바쳐 당신의 뜻을 이룰 수 있게 하시옵소서.

 

031-037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개척자보다도 복귀섭리역사에서 개척자의 사명을 거듭하셨다는 사실은 오늘 인간 세계에서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영계에 가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031-039 개척자는 인내심 없이는 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늘이라는 이 시점 자체가 모험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은 전부 다 생소한 것들이요 전부 다 새로운 손길을 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이 땅에 역사 시대의 한 문화권을 형성하는 데에도 그러하거든 하물며 하늘세계를 창건하기 위해 인류 구도의 노정을 개척하시는 하나님의 노정은 얼마나 엄청나겠습니까? 그 길을 개척하기 위한 하나님의 입장은 말할 수 없는 인내를 가지고 고난을 극복하지 않고는 이 길을 갈 수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참아야 하는 길이냐? 죽음의 고비가 연이어 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을 참고 극복해야 할 길이 하나님께서 걸으신 길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원수가 없으면 모르거니와 원수가 있어 가지고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 어느 때 원수의 습격을 받아 지금까지의 천년 공사가 일시에 파탄을 당할지 모르는 길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초조한 심정을 지니고 수난의 길을 극복해 나오는 이 순간에도 원수들은 칼을 들고 화살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은 기진맥진한 자리에서 흑백을 가릴 수 있는 소망의 한 때를 바라보면서 나오고 있는 때까지도 원수들은 하나님을 향해 총칼을 겨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칠 수 있는 자리요 쉬고 싶은 자리에서도 원수를 맞아 가지고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할 입장이니 어느 한날 마음 놓고 안심할 때가 있었겠느냐? 그러기에 하나님이 불쌍하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내와 극복이 그분의 생활의 전부요 희생이 그분의 생활의 전부가 아니겠느냐. 그 투쟁은 습관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되풀이되는 투쟁이 아니라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더욱더 복잡다단하고 광범위한 투쟁이 사방에서 가해져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시대를 거쳐오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힘드시겠는가를 여러분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031-046 여러분이 일생 동안에 편안한 날을 갖기를 원합니까? 그것은 꿈에 지나지 않는 거예요. 나는 일생 동안 행복할 것이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공연한 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가 행복했다가는 행복한 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채찍을 맞을 수 있고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는 동기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되다, 즉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다고 하는 거예요.

 

* 그럼 왜 희생하는 자리가 복 받는 자리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희생해 나오셨기 때문이요, 그 자리가 하나님 편에 설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비참한 개척자의 행로를 걸어오셨습니다.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 앞에 당당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기도 가운데 부르는 "아버지"라는 말은 제일 부르기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아버지라는 말 가운데는 역사의 사연이 깃들어 있고 역사의 슬픔이 깃들어 있고 역사상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 모든 수난을 극복해 온 곡절이 서려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 앞에 기도할 때 그런 마음을 어떻게 체휼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031-050 지상에 천국이 오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천국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새로운 개척자가 되어 이 땅을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도 이 땅에 개척자가 내세우려 하시는데 어떤 개척자를 세우느냐? 하나님 앞에 짐을 지우는 그런 자는 쓸데없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짐은 물론 하나님의 짐까지 맡아질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 여러분에게 얘기했는지 모르지만 내가 감옥에 들어가서 매를 맞아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자리에서도 나를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것보다 몇백 배의 수난을 당하며 나오신 하나님이시기에 그 하나님 앞에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미래의 수난길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현재 고난을 당한다고 해서 얼굴을 들고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응당 맞아야지요! 응당 몰려야지요! 응당 죽어야지요!"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자기의 십자가는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마 16:24)"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동정을 안 해 주십니다.

 

* 여기에서 통일교회가 보는 관은 다르다는 거예요. 내가 기도해 가지고 내 자신이 복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짐을 덜어 주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복을 돌려 드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어려움을 내가 책임지기 위해서 기도하자는 겁니다.

 

또한 수난을 당하더라도 그 수난이 내게 과중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적어 하나님 앞에 부끄럽다고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당신은 저를 염려하기보다도 먼저 나라를 위해 짊어진 십자가를 벗어야 할 입장이 아닙니까? 저는 죽더라도 이 나라 이 민족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세계를 위해 짊어진 십자가를 벗어야 될 당신의 입장이 아니겠습니까?" 할 수 있어야 됩니다.

 

031-052 여러분, 하나님이 언제 기뻐해 보셨습니까? 오늘날 신령한 사람들이 기도해 보고는 선생님이 불쌍하다고들 하지요? 그렇지만 선생님은 불쌍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불쌍하십니다. 나보다 몇천만 배 더 불쌍한 분이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나는 불쌍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여러분의 동정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동정보다는 민족의 동정을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031-054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심정 세계의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개척자가 가는 길은 극복과 인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생활철학입니다. 그런 자리는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들고 고달픈 자리예요. 기진맥진할 정도로 고달플 때가 많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저 개인 하나 쓰러지는 것은 좋지만 *아버지여, 이 땅 위에 저와 같은 사람이라도 없다면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시겠습니까? 제가 제1의 소망이 되지 못할 때 제2 제3의 소망이 될 수 있는 그러한 아들딸이 없는 것을 느끼면 느낄수록 당신은 얼마나 불쌍하신 분인가를 알게 되옵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7. 개척자가 가야 할 길은 언제나 冒險입니다.

8. 努力과 鬪爭밖에 없습니다.

9. 실패를 해 보는 것도 開拓.

 

 1971.7.11(일) 개척자. 전본부교회.

045-309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가 가야 할 길은 언제나 모험입니다. 언제나 수난길이 같이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여기에서 단 하나의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재간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노력과 투쟁밖에 없습니다.

노력과 투쟁을 해 가지고 그다음에 비판의 기준을 세우는 것입니다.

 

045-311 과거와는 달라야 됩니다. 이래야 된다는 그 자체가 모험인 것입니다. 열 백 천의 동지들이 있다고 할 때 그 동지들이 맨 처음에는 자기들과 같지 않다고 규탄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같아 가지고는 내일의 터전을 개척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달라야 된다는 것입니다. 같아 가지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거기서는 새로운 분야가 개척될 수 없습니다.

 

달라야 한다면 어떻게 달라야 하느냐? 비슷하게 달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야 하는 것입니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차원을 달리한 입장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면 다를수록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름에 비해서 비교할 수 없는 시련이 따른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모험이 언제나 같이하는 것입니다. 자기 입술이 하나 잘못하게 되면 전부가 깨져 나가는 것입니다.

 

045-316 따라가는 사람은 개척자가 아닙니다. 개척자라는 것은 선두에 선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 개척자는 역사가 없는 것입니다. 방향을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체가 역사요 방향입니다.

 

045-318 여러분은 개척자입니다.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는 거예요. 밥을 먹어도 다른 것입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밥을 빨리 먹어? 하겠지만 그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거예요. 개척자는 언제든지 바쁩니다.

 

* 그러면 통일교회의 교인들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개척자가 되어야 합니다.

 

*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개척자가 가는 길은 모험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인내로써 극복을 해야 될 뿐만 아니라 투쟁을 해야 됩니다. 거기에는 어떤 참고 자료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숱한 극복의 환경을 거쳐 가지고 틀림없는 결과가 나올 때 그러한 것을 재료로 삼아야 역사적인 결과가 남아지는 것입니다.

 

045-329 실패도 많이 해 봐야 됩니다. 실패를 해 보는 것도 개척입니다. 실패해 가지고 맨 나중에는 올 데 갈 데도 없는 벌거숭이가 되어 진진도 할 수 없고 후퇴도 할 수 없어서 앉아서 웃지도 못하고 울지도 못하고···. 그것도 개척이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서 죽지는 않을 것입니다.

 

045-333 이러한 인연은 언제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일생이 지나가게 되면 천년만년 억천만 년을 기다려도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인 것입니다. 한 고비 한 고개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서 넘어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시대권 내에서 같이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통일교회 문 선생은 개척자입니다. 종교에 대해 개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10.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3번 물은 것은 개척자의 길을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 1970.12.27(일) 뜻과 나. 전본부교회.

037-258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기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이렇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이 물은 것은 베드로가 개척자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길을 감사하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길을 갔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가 비로소 이 세상에 복음의 자리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 요한복음 21장.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2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요한과 야고보)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날 밤에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4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5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6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7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내리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내 양을 먹이라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는 것들보다


16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개척자의 주의점.

 

1)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 1965.1.27(수) 민족적인 시련을 넘어가자. 전본부교회.

014-327 남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는 남다른 고통을 겪어야 한다. 그런고로 여러분이 가는 길에는 설움과 고통이 따른다.

 

2) 개척자는

- 누구보다도 강해야 된다.

- 개척자의 생활은 소모전과 같다. 목적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서 환경을 극복해야 한다.

 

1970.3.17(화) 개척자. 구리시 수택리 통일산업.

- 제2회 협회 간부 수련회.

 

030-093 개척자는 어떤 목적을 향하는 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찾아가는 데에는 고역 속에서 신앙과 목숨까지 걸어야 할 투쟁이 동반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들은 개척자가 가는 길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반드시 거기에 비례해서 모험이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므로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지를 향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어려움을 타개해 가는 책임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승리자가 되지 않고는 개척자의 명분을 갖출 수 없는 것입니다.

 

* 개척자의 사명을 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입장이 아닌 비정상적인 입장에 서더라도 불리하게 밀어닥치는 환경 앞에서 밀려날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타가하며 자기가 주도적인 입장에 서서 새로운 행로를 찾아 나갈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목적을 성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일치시켜야겠다는 입장에 서지 않고는 개척자의 사명을 할 수 없습니다.

 

030-094 개척자는 새로운 목적을 추구해 가는 과정에 있어서 환경적으로 닥쳐오는 모든 어려운 여건을 주체적인 입장에서 다각적인 면으로 극복해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개척자가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030-096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여건을 타개하고 인류에게 희망을 제시할 수 있는 개척 운동이 반드시 이 지구상에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만일 개척자의 사명을 갖고 올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인간을 위주로 하는 내용이 아닌 새로운 이상을 위주로 한 세계적인 내용을 갖고 오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위대한 내용을 갖고 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은 천주적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현실 역사 세계의 편면적인 인간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선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 세계의 내용을 갖추지 않고는 오늘날의 인간 세계에 새로운 목적관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상식적인 견해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 이 세계를 대신하여 그런 사명을 할 분이 오게 되면 그는 먼저 무엇을 해야 하느냐? 바라는 목적 세계를 이루기 위한 개척자, 역사상에 없었던 최고의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영육계를 중심한 개척자와 육계를 중심 삼은 개척자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030-098 이처럼 개척자의 생활은 消耗戰과 같은 싸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소모전으로써 개척자의 길이 타개되는 것은 아닙니다. 목적의 한 기점에 도달할 때까지는 소모되는 시간의 연속이요, 소모되는 생활의 연속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소모시킨 노력의 대가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낙망하는 사람은 개척자의 대열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030-108 이제는 행동만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이면 개인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이 있는 것이요 가정이면 가정으로서 해야 할 행동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3)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

 

▣ 1970.12.6(일) 시기와 사명. 전본부교회.

036-234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골짜기를 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 골짜기에서 승리가 다져지지 않고서는 정상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036-235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조심하면서도 심각하게 걸어가야 하는 길입니다. 개척자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핍박을 받고 몰림을 당하고 자기의 운명이 죽음길로 내몰리는 자리에 있다 하더라도 절대 경거망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심각한 길을 조심조심 하나님과 더불어 헤쳐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4) 신앙길 개척에서의 주의점.

- 불평불만을 하지 말라.  

 

 1971.5.23(일) 인내와 극복. 전본부교회

044-262 불평불만은 사탄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사지에 가더라도, 쇠고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되어 옥살이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하면 절대 남아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선생님이 신앙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가졌던 본질적인 생각입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데는 누구를 중심 삼고 극복하느냐? 자기를 중심 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 삼고 극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극복하고 난 뒤에 어디에 남아지기를 하나님이 바라실 것이냐? 비판을 받는 자리가 아니라 동정을 받는 자리,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며 맞아 줄 수 있고 "내 아들아!" 하며 품어 줄 수 있는 자리에 남아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는 극복하고 나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참는 자리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5) 개척자는 미련하고 무식한 곰 같아야 됩니다.

 

▣ 1970.1.11(일) 세계에 봉화를 들자. 전본부교회.  

- 3년 전도의 필요성과 그 의의.

 

028-211 여러분은 봉화를 들고나가서 싸우고 돌아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 있어야 됩니다. 걱정만 해 가지고는 세계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은 세계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척자는 미련하고 무식한 곰 같아야 됩니다. 곰의 사촌이 다 되어야 합니다. 곰은 나무에 올라갔다 떨어지면 아프더라도 또 올라갑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여전히 나무 밑인데 말입니다.

 

내가 곰은 못 되어 봤으나 말은 들었습니다. 곰처럼 미련한 끈기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에게는 미흡한 면이 많습니다. 선생님도 미흡한 대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