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 人生 愛

생과 사에 대한 이해.

true2020 2012. 2. 8. 12:59

▣ 생과 사에 대한 이해.  

- 1998.12.19 워싱턴, D.C. 워싱턴 타임스 빌딩.

- 1998 세계평화종교연합 대회.

 

480 우리는 이 지상에서 살고 있지만 이 세계는 지상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영계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틀림없이 영계는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지상과 영계는 전혀 다른 두 세계가 아니고 하나의 세계로써 연결돼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어차피 영계로부터 태어났기 때문에 다시 영계로 돌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말에서는 재미있는 표현으로 "죽는다"는 것을 "돌아간다"라고 표현합니다. 어디로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이는 단지 공동묘지로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래 인생이 출발하였던 본래의 처소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멀고 먼 역사의 기원을 넘어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 우리 인류 조상의 근원이 되는 그 세계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즉 창조주가 계신다면 그 창조주가 계시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거기서 출발했으니 거기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우주도 순환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산에 쌓여 있던 눈이 녹게 되면 그 물이 조그만 계곡을 통해서 흐르게 되고 더 나아가서는 여러 강을 통해서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갑니다. 큰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된 그 물은 수증기가 되어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순환운동을 통해서보다 높을 수 있는 곳으로 보다 더 좋을 수 있는 곳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우리는 지상계에서 육신생활을 하고 있지만 마음만은 영원한 세계를 향해서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게 되면 10대 20대 30대 그리고 중년과 장년 노년시대를 거치게 됩니다. 이처럼 청춘시대를 지나 장년 시대를 거쳐서 노년 고개를 넘어가면서 지는 해와 같이 일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영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지상에서 육신을 쓰고 사는 일생은 잠깐이고 죽은 다음에 우리가 맞이해야 될 세계는 영원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에서의 일생 기간이라는 것은 영원한 세계를 준비하기 위한 준비 기간인 것입니다. 

 

학생을 예로 들어 보면 학생이 한 학기 혹은 한 학년을 마치면서 학교가 제정한 모든 학과의 학점을 따야만 하는 학점의 기준이 있는 것입니다. 그 최고의 기준을 100점으로 하여 볼 때 그 기준에 그 학생의 학점이 얼마만큼 도달하였느냐 하는 비준에 의하여 학교에서 인정받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 이와 같이 모든 일은 어떤 표준을 중심 삼고 그 가치를 측정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일생 동안 육신세계에서 사는 것도 마치 학생이 학교에서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준비하는 기간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일생 전체를 걸고 학점을 따는 준비의 기간이라는 말이 됩니다.

 

482 여러분, 우리는 어차피 모두 언젠가는 모두 영계에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알고 보면 그 영계는 한 나라입니다. 지상세계에서처럼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계에서 생활하는 내용은 무엇이겠습니까? 예를 들면 고기는 물을 떠나면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기에게는 물이 절대적인 생명의 조건이 됩니다. 그렇다고 고기도 한 곳에서만 사는 것은 아닙니다. 고기들 중에는 산란을 위해 담수를 떠나 해수와 접하는 계기를 만들어서 새끼를 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두 세계를 통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도 이처럼 서로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언제 죽을지를 모르고 삽니다. 언제 교통사고가 나서 죽을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죽고 난 다음에야 "아이구, 레버런 문의 말이 맞았구나!"라고 후회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대단히 심각한 삶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영원한 세계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 촌음도 아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운명 길에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483 일반적으로 영계에 가는 사람에도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자기의 타고 난 명대로 다 살고 가는 사람과 자기의 명대로 다 못 갈고 가는 사람의 두 종류입니다.

 

자기의 명대로 다 못 살고 가는 사람들 중에는 벌을 받아서 빨리 죽는 사람과 민족이나 세계의 죄를 탕감하기 위해 대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 인간들 가운데는 소망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고 소망을 갖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소망은 인간을 중심 삼은 소망과 하늘을 중심 삼은 소망의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태어난 그날부터 어머니의 품속이 그 무엇보다도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자라지만 얼마만큼 자란 후에는 어머니의 품을 떠나게 됩니다. 우리는 또 자라면서 친구들을 사귀어 친구들이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으로 알고 지내지만 언젠가는 그 친구들과도 헤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은 성장하면서 사랑하는 부모도 사랑하는 부부도 사랑하는 형제도 더 나아가서는 사랑하는 자녀도 자기 소망의 전체가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484 우리는 오늘도 살기를 발고 내일도 살기를 바라며 새로운 소망을 찾아 헤매고 있지만 죽음에 부딪히게 될 때는 그 모든 소망을 뒤로하고 절망하면서 최후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를 중심 삼고 볼 때는 소망을 가진 것 같지만 죽음의 고개를 넘을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 규범으로 삼고 죽음까지도 비웃고 넘어설 수 있는 하나의 소망을 찾아야 하는 것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살고 있는 인간들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여러분! 세상만사는 다 지나 버리고 맙니다. 가정도 지나가고 국가도 지나가고 더 나아가서는 세계 혹은 어떤 주의나 사상도 다 지나가고 마는데 최후까지 남아져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죽음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인생의 패배자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죽음에 대해 점점 심각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도 이 자리에 서 있는 레버런 문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이처럼 죽음이라는 것은 운명의 관문입니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485 우리가 죽은 후에는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죽음이라는 낱말을 쓴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삶의 뜻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삶의 가치는 누가 잘 압니까?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람은 모릅니다. 죽을 경지에 들어가 생사의 기로에서 하늘을 붙들고 삶의 가치를 타진해 본 사람이 아니고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그 목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왜 죽느냐 왜 태어났느냐 하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 여러분,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로 태어나는 것인데 인간 세계에서는 "아이구 죽는다." 하고 아우성입니다. 그것을 보는 하나님께서는 껄껄 웃겠습니까 아니면 아 하고 놀라서 슬퍼하겠습니까? 기뻐하고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제한된 지상의 사랑권에서 무제한의 사랑권으로 돌입할 수 있는 기쁨을 맞는 순간이 육신이 죽는 순간 즉 제2의 출생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육신세계에 태어난 날을 더 기뻐하겠습니까 아니면 제2의 무한 확대 세계의 사랑을 위해 육신을 벗고 죽음을 통해 새로운 아들딸로 태어나는 그 시간을 더 기뻐하겠습니까?  물론 후자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이 죽음의 공포에서 해탈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되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직접 참여하면서 좋아하시는 것입니다.

 

486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과 함께 이 지구성에 살고 있다가 저편으로 날아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아이구,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한다면 "이놈, 너 누구야?"라고 하면서 하나니께서 우리를 떼어 버리시겠습니까 아니면 함께 데리고 가시겠습니까?

 

물론 데려가고 싶어하십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려갈 수가 없으니 너는 조금 더 크고 조금 더 완성한 후에 데리고 가겠다."라고 할 때 인간은 "우리도 지금은 못 가지만 언젠가는 갈 때가 오겠구나." 라면서 기다리는 것입니다.

 

* 하나님과 인간은 함께 영원히 날 수 있는 날을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날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날, 그런 몸으로 태어나는 날, 그날이 바로 육신을 벗는 죽음의 날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죽음을 환영해야 되겠습니까 아니면 슬퍼해야 되겠습니까? 물론 환영해야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죽는 데는 무엇을 위해 죽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참사랑 즉 위하는 사랑을 위해서 죽겠다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을 벗는다는 것은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활동권에 우리가 동참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사랑의 세계를 위해서라는 결론입니다. 

 

487 사람은 또 3단게의 세계 소생 시대 장성 시대 완성 시대를 거칩니다. 즉 어머니의 복중에서 물 시대를 거쳐 지상에 태어나서 육신을 쓰고 100년 동안 땅의 시대를 거치게 되며 최종적으로는 날아가는 공중 시대로 3 시대를 거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488 여러분, 사람은 맨 처음 태어날 때 제일 깊은 물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복중 시대는 수중 시대입니다. 아기가 어머니의 태 안에 있을 때는 물 가운데 둥둥 떠 있습니다. 얼른 생각하면 어머니의 배 속 시대에는 숨이 막혀서 살기 힘들 것처럼 느껴집니다.

 

* 복중의 어린애는 영양분을 어디를 통해서 공급받습니까? 배꼽을 통해서 받습니다. 배꼽은 복중의 어린애에게는 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배꼽을 천대하면 안 됩니다.

 

"배꼽아, 너 옛날에 수고했다" 하며 만져 주라는 것입니다. 배꼽을 많이 두드려 주면 건강해집니다. 웃을 얘기가 아닙니다. 그렇게 운동을 하라는 말입니다. 배꼽 운동을 통해서 건강해지라는 것입니다. 그 예로 아무리 추운 방에서 자더라도 배꼽만 잘 감싸고 자면 설사가 나지 않습니다.

 

* 마찬가지의 원리로 이 지구성에서 공기로 호흡을 하고 사는 육신에 붙어 있는 우리의 영인체는 어머니 복중의 태아처럼 육신을 빨아먹다가 육신이 다 늙으면 차 버리고 나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489 그런데 그때 육신이 "아이구 안 죽겠다. 안 죽어!" 하고 비명을 지른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어떻게 보시겠습니까? 

 

*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어머니의 복중을 뛰쳐나온 어린애가 성장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육신의 비명을 뒤로하고 새로이 영적 아버지인 영원한 하나님의 상대로서 다시 태어나야 하는 것이 원리적인 결론입니다. 

 

그러면 영계는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영계에 들어가면 머리 위에 있는 숨구멍과 세포로 호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서의 공기는 지상의 공기가 아니고 사랑입니다. 호흡을 통해서 사랑의 요소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 지상에서 사는 동안의 우리 모습은 제2의 우리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기간 해야 할 일은 새로운 사랑의 인격을 형성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490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 부부의 사랑 형제의 사랑 자녀의 사랑 등 이 모든 사랑을 중심 삼고 우리의 내적 구조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 때에만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복중에서 정상적인 아기로 자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서도 잘 성장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계를 살펴보면 하찮은 곤충들, 열매 속의 씨 그리고 새도 날 수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날 수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민들레 씨를 보십시오. 바람이 불면 자연히 날게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새도 날고 곤충도 날고 식물도 나는 것을 보면 인간도 분명히 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그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됩니까? 그때에 가서 그 세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를 훈련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부부끼리 사랑하고 자식을 사랑하면서 이 지상세계에서 훈련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때가 되면 영원한 세계로 들어가 영원히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언젠가는 이 육신을 벗고 죽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491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인간은 어차피 죽게 됩니다. 우리는 선한 자아를 영원한 세계에 제2의 나로 세우기 위해서 고생을 각오해야 됩니다. 어머니의 복중에서 태교를 잘 받아야 건강하고 선한 아기로 태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지상세계에서의 생활도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고 하나님의 심정을 본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신성을 본받으며 자라야 됩니다. 자라서는 또 생명을 걸고 넘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무서운 폭풍우가 치더라도 우리는 최후의 고개를 넘어야 합니다. 잘 나가다가 경계선 앞에서 쓰러지면 안 됩니다.  

 

493 이제 여러분은 앞으로 어느 한 날에 죽음을 당하게 되고 죽음을 앞에 놓고 지난날을 회고해 보게 될 텐데 그때 어떠한 한마디의 말을 남기고 갈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죽음의 길은 친구도 없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형제도 없는 길이요 사랑하는 부부나 자녀도 없는 길입니다. 오로지 혼자 가야 하는 길입니다. 

 

다시 가볼 수도 없고 갔다가 올 수도 없는 길, 한번 가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인데 이 길을 갈 때 인간은 어떠한 마음을 갖고 갈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인간이 죽음에 봉착하는 그 순간에 그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소망이 없다 할 때는 거기서 마지막입니다.

 

494 인생의 승패는 몇십 년의 기간을 두고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일순간에 결정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생을 두고 보더라도 여러분이 태어나는 그 순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물론 태어나기 전까지의 복중의 시기가 있지만 그 복중의 10개월이라는 기간은 출생하는 한순간을 위한 준비기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10개월 동안 아무리 잘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한순간을 잘 넘기지 못하면 태어나는 그 아기는 비운의 운명을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 위에 왔다가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최후의 자리에서 과거를 뉘우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에는 과거의 모든 사실들이 영상으로 지나갈 것입니다. 

 

그 가운데 "참이 있었다. 내 생명보다도 귀한 그 무엇을 남겼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비록 이 땅에 왔다가 가더라도 보람 있는 한 때를 즐기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든 과거의 사연을 회상해 볼 때 머리를 흔들며 회상하고 싶지 않은 과거를 가졌으면 그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495 과거를 회상하는 순간이 공포의 순간이 아니고 다른 그 무엇을 남긴다면 그의 과거는 죽지 않은 것이요 현실도 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 과거의 생활이 남을 위해 주는 생활이었으면 죽음 길에도 공포가 없을 것입니다. 남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주었고 남을 위해 희생했으며 참에 가까운 생활을 하면서 눈물도 남을 위하여 흘렸고 내 생명도 남을 위하여 투입했고 내 소원도 남을 위한 것이라면 그 과거는 빛나는 과거가 될 것입니다.     

 

496 인간은 영계에 입적할 때 지상 생활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가지고 가야 합니다. "나는 이렇게 살았다. 이런 일을 했다."라고 할 수 있는 생애의 증명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명서는 자기 자신이 쓸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사탄이 씁니다. 먼저 사탄에게서 증명서를 받고 나서 예수님의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증명서를 받아야 합니다. 이 세 가지의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영계에 가 보면 방대한 3단계로 되어 있습니다. 누가 제일 높은 데 올라가느냐 하면 보다 남을 위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위해 살아온 사람은 반대의 자리에 서게 됩니다.  

 

* 자기를 위해 산 사람은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남을 위해 산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두 세계가 죽음에서 갈라집니다. 그러므로 전체를 위하고 보다 큰 것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하고 인류 해방을 위해 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서로가 위하겠다고 하는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497 죽을 때 가지고 가야 할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고 본질적인 나를 세우기 위해 수고하고 나와 상대의 부부 사랑과 가정의 사랑을 중심 삼고 그 사랑을 세계에 확대하기 위해 노력한 것입니다. 인류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최후에 남아 저나라의 소유권 결정의 기준이 됩니다.

 

영계에 가면 전도한 사람의 수에 의해 여러분의 소유권이 결정되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영계에 가서 자랑할 것이 무엇이냐 하면 얼마만큼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았느냐는 것입니다. 저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세계보다도 자기 나라보다도 자기 아내보다도 자기 아들딸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한 것입니다.

 

498 무엇이 제일 귀한 길이냐 하면 하늘을 위해서 지상에서 얼마나 고통받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저나라의 어디든지 통과하는 티켓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