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야흐로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가 열리게 됐다.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지난달 29일 재외국민들의 투표권을 허용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오는 2012년부터 단기체류자는 물론 영주권자까지 포함한 모든 재외국민 유권자들은 비례대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또 국내에 주민등록이 있는 단기체류자들에게는 현지 공관에서 국회의원 지역구 선거의 부재자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
다만 국회 정개특위가 자신들의 사활이 걸린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주권자를 포함한 국외이주자들에게 투표권을 배제하면서 '반쪽짜리 참정권'이라는 비판과 함께 위헌 논란이 제기되는 파열음을 낳고 있다.
또 '땅 덩어리'가 큰 미국에서 우편투표나 인터넷 투표를 도입하지 않기로 한 것도 시간적, 경제적 부담 속에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세금과 병역의 의무를 지지 않는 해외동포들의 참정권 행사에 곱지 않은 시선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재외국민 유권자의 절반이 넘는 130130만 명이 거주하는 미주 한인사회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할 경우 자축행사를 갖기로 하는 등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새삼스럽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는 정말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역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재외국민은 대략3백여 만 명이다.영주권자를 포함한 국외이주자145만 명,단기체류자 155155만 명으로 이 가운데 19세 이상 유권자는 전체의 80%인240만~2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해외동포의 표심이 주요 선거의 당락을 좌우하는 엄청난 파괴력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 15대와 16대 대선에서 각각 39만표와 5757만 표로 승부가 갈린 점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재외국민 참정권 시대가 열린다고 해서 과연 한인 동포사회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가져다줄 것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여야 간정쟁이 그치지 않는 '갈등의 정치문화'가 유입되는 데 따른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당장 한나라당의 미주본부라고 할 수 있는 'US 한나라포럼'이 지난달 23일 미국 LA에서 11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결성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US 한나라포럼'은 당초 한나라당 중앙위원회 해외동포 분과위 산하의 '한나라당 해외동포 미주본부'라는 이름으로 발족할 계획이었지만 미국 내에서 외국 정당의 정치활동이 위법이라는 지적에 따라 명칭을 변경했다.
민주당도 '교민청' 신설을 추진하면서 조만간 미주본부 성격의 단체를 결성할 예정으로 있는 등 각 정당의 해외지부와 각종 정치인 후원회가 미국 전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국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LA는 앞으로 한국 정치인들의 발길이 줄을 잇는 '정치 1번지'가 될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보수 성향이 짙은 미주 한인들의 표심에 기대를 거는 눈치다. 반면 민주당은60만 명이 '전략지역'으로 삼고 있다. 재외동포 참정권 허용에 따른 각 당의 정치적 셈법은 선거를 앞두고 동포사회를 겨냥한 '선심정책'으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둘째는 한인동포 사회의 분열 가능성이다. 미국의 경우 5050개 주마다 한인회가 난립해 캘리포니아주에는 16개, 뉴욕주 1515개 등 모두 158개의 한인회가 결성돼 있다. 설립 취지야 한인 커뮤니티의 단합과 권익보호 등이지만 그동안 한인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각종 부정선거 시비와 잡음이 끊이지 않는 등 한인 사회 내부의 분열상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정치바람'이 불어 닥칠 경우 지지 정당에 따라, 또 개인의 정치성향에 따라, 심지어 지역감정까지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공식 등록된 미주 각 지역의 한인회뿐만 아니라 지역 여론을 이끄는 향우회, 동문회, 재향군인회 등 각종 단체들의 '정치성'이 뚜렷해지면서 한인 단체장들의 정치권 줄대기 현상도 걱정스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셋째는 주류사회 진입을 위한 한인사회의 결집 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단기체류자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해외 영주권자들은 현지에 정착해 주류사회에 진입하는 것이 '고국 정치'에 참여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
오바마 행정부에 몇몇 한인들이 등용될 때마다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다. 소수 민족의 한계를 극복한 '승리'로 묘사하기도 한다. 실제로 '5'5백억 원 바지소송'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소수 민족에 대한 냉대는 엄연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초 개원한 미국 연방 의회에서는 베트남 난민 출신의 안 조지프 카오(공화당) 변호사가 최초의 베트남계 연방 하원의원으로 등장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는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시에서 9선의 흑인 정치인을 제치고 승리하면서 2008년 미국 총선의 최대 이변을 연출한 장본인이다.
백인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미국에서 흑인 오바마 대통령 시대가 열린 만큼 김창준 전 의원 이후 10년째 한국계 연방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미주 한인사회는 '고국 정치'에 눈을 돌리기에 앞서 카오 의원의 성공담에 주목해야 한다. 소수 민족의 연방 의회 진출은 어쩌면 그들의 결속과 단합의 결과물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정부도 해외 동포들의 현지 정착과 주류사회 진출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끝으로 바람이 있다면 그동안 참정권 회복을 갈망했던 재외국민들의 열망에 비춰 이 같은 걱정과 우려들이 모두 기우(杞憂)로 끝났으면 싶다. 여야 대립과 경제 위기, 북핵 문제, 용산참사와 연쇄살인 등 온통 어둡고 답답한 고국 소식들만이 들려오고 있지만 이제 재외국민들에게는 보수와 진보를 벗어난 객관적이고 넓은 시야로 한국 정치를 판단할 수 있는 역량과 성숙한 의식이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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