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감옥입니다.
- 내게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구요.
- 하나님은 선생님이 들어가 고생할 때 가장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 가장 심각하고 힘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 1991.6.2(일) 섭리사의 중요한 끈과 원점. 미국.
217-266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훈련시켰는지 알아요? 내게는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구요. 세상 장사치 같은 마음을 가졌으면 도망간 지 벌써 수천 년은 됐을 것입니다. 뜻 같은 것은 생각지도 않고 하나님이 찾아올까 봐 멀리멀리 도망갔을 거라구요.
하나님은 선생님이 들어가 고생할 때 가장 많이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가 보면 "아, 하나님이 날 사랑하는구나" 하고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싫지가 않아요.
감옥에서는 귀로 듣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멍하니 있어도 하나님이 "야, 내일이면 누가 면회 오는데 이건 이럴 것이다" 듣기를 원치 않아도 들려온다구요.
그래, 한마디하게 되면 그대로 되기 때문에 감옥에서 선생님이 문제의 인물이 된 것입니다. 내일모레 비 온다면 비 오고 여기서 누구 죽는다면 죽고 말이에요. "아이고 오늘 밥은 동탯국인데 3분지 2는 썩은 동탯국이니 먹지 마라"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국을 안 먹습니다. 너무나 먹고 싶지만 레버런 문이 먹지 말라고 하면 안 먹는다구요. 이상하지 않아요? 그게 나한테 정상인데 그들에게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지요.
*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는 감옥입니다. 가장 심각하고 힘든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은 사탄 세계가 자유롭게 연결될 수 없습니다. 그곳에는 경계선과 한계선이 사탄에게 있고 하나님께는 경계선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연결하실 수 있다구요. 그곳은 가장 은밀한 곳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모릅니다.
2. 나는 하나님을 보고 "나에게 협조하지 말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협조한 것입니다.
▣ 1973.5.25(금) 환경을 살펴 가자. 벨베디아.
067-107 내가 감옥에 있을 때 그런 어려운 자리에서도 나는 하나님을 보고 "나에게 협조하지 말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나에게 협조한 것입니다.
3. 단 한 가지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 1972.11.13(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 대구 교육회관.
제4차 세계순회 환송 집회.
065-089 생명을 거는 놀음을 했지만 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에요. 여러분의 동정도 필요치 않다구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구요. 왜? 천지의 대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기 때문에 아무리 고문에 피를 흘리고 몸이 찢기고 힘줄이 끊어지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이런 자리에 내세운 당신의 심정은 그 이상 더 애달픈 길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늘을 붙들고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나라를 찾겠다고 허덕이고 있으니 아무리 고문이 심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에요.
엇갈린 십자가의 길이 가로놓이더라도 그 십자가의 길이 나를 패배의 어려움과 절망의 환경으로 몰아넣더라도 나는 거기에서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가겠다고 결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핍박의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죽음의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한 가지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만 알 수 있다 할진대는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버려 두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을 시키더라도 그 자식이 최고 행복의 길을 가게 하려니 형제들, 누구도 참소하지 못하게끔 하여 자연적인 순응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공인을 받게 하려니 남이 가지 못하는 수난길을 가게 하고, 남이 받지 못하는 핍박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배고플 때에 저 하늘에서 보기가 딱하면 먹을 것을 갖다 주는 거라구요.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시켜서 먹을 것을 갖다 줬지만 나에게는 사람을 시켰다구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비몽사몽간에 나타나 가지고 "너는 아무개가 감방에 있으니 그에게 먹을 것을 갖다 줘라!" 하는 거라구요.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나는 밥도 떡도 많이 얻어먹고 물건도 많이 얻어 쓴 사람이에요.
또 혼자 외로운 길을 가는 데 있어서의 석양길에서 먹지도 못하고 갈 곳도 없는 길을 더듬어서 고개를 넘으면 하늘은 벌써 한 사람을 시켜 흰옷을 입고 길가에서 기다리게 하여 나를 맞이 들이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알겠어요? 하루 한나절을 떡을 하고 준비하게 하여 "만약 그 지나가는 귀한 손님을 박대하면 이 동네가 망한다"라고 하며 대접하게 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구요
* 열왕기상 17장
1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2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4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5 그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6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냇물을 마셨으나
7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4. 심정
1) 심정을 품고 신랑 신부의 자리를 거쳐 효자 효녀의 자리, 충신 충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됩니다.
▣ 1960.4.24(일) 하나님의 축복의 최대의 소망은 무엇이냐. 전본부교회.
009-117 심정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냥 그대로 영존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명의 근본입니다.
우리는 이 심정을 품고 신랑 신부의 자리를 거쳐 효자 효녀의 자리, 충신 충녀의 자리까지 나아가야만 됩니다. 그러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 천상천하 어디를 가든지 그 사람은 굶어 죽는 법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한 푼 없이 살고 있지만 밥 굶어 본 적이 없습니다. 물려서 옥중에 들어가 있을 때에도 어떤 사람을 시켜서라도 밥을 갖다 주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2) "이놈아, 내가 있으니 낙망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 1960.9.25(일) 참된 터전을 찾아서. 전본부교회.
010-177 나는 개인이 아닙니다. 내가 죽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영원히 개인이로되 살아 있는 생명의 주권과 더불어 있을 때는 개인이 아닙니다. 몰리는 자리, 불쌍한 자리에 처하고 쇠사슬에 묶여 영어의 몸이 되더라도 그 마음의 세계에 있어서는 홀로가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적인 실증을 통하여 생활을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싸움터에서 쓰러져서 발길로 차이더라도 "이놈아, 내가 있으니 낙망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거늘 내일도 그럴 것이라는 심정적인 발판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가는 길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과 인연 맺은 사람이라면 옥중에 가도 무지한 백성들이 먹을 것을 가져다줍니다. 몰리어 처마 밑에서 잠자는 신세가 될지라도 그 부락에 양심적이고 천륜을 따라가는 사람이 있다면 밤잠을 안 자고 찾아 헤맬 것이요, 아침해가 떠오르기 전에 찾아 줄 것입니다.
이렇게 전후 좌우 상하로 하늘과 관계되어 있는 한 시대적인 핍박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가다가 거꾸러지면 일어나고 또 가고 열 번을 거꾸러져도 또 일어나 가고, 만약에 생명이 다하여 쓰러지게 되면 영적으로라도 가야 합니다. 가야 할 곳을 다 가지 못한 한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에수님도 부활하신 것입니다.
* 눈앞에 바라보이는 곡절과 만상을 보고 낙망할 것이 아니라 이것을 넘어서 나를 안타까이 보고 싶어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슬픔이 문제가 아닙니다. 나는 개인의 생애 노정을 가면 그만이지만 역사적인 섭리를 품고 나오시는 아버지께서는 내 생애를 지나 미래까지 허덕이셔야 하고 내가 가고자 하는 마음보다 몇백 배, 몇천 배 더 간절히 나를 기다리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할진대 그 누가 어떻게 안 가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위로해 드립시다.
3)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며 차라리 송구스러워했습니다.
▣ 1964.3.15(일) 복귀의 길. 전본부교회.
013-204 선생님은 옥중에서 매를 맞아 쓰러지면서도 피를 흘리는 한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위로해 드리며 차라리 송구스러워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먼저 아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호소도 원망도 할 수가 없었어요. 오로지 갈 길을 바라보며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갈 뿐이었습니다.
5. 하나님과 중심 존재와 나, 이렇게 3점의 연결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 비둘기가 운반해 줘서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 1964.7.17(금) 우리의 사명은 크다. 전본부교회.
- 서울 지구 합동속회.
014-135 하늘은 연결 역사를 합니다. 하나님과 중심 존재와 나, 이렇게 3점의 연결 역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3점을 잘 맞추어야만 복귀 역사가 실현됩니다. 그렇게 되어 있어요.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하늘은 당신의 명령을 따라 나오는 사람과 반드시 같이 하십니다.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 옛날에 까마귀가 물어다 먹인다는 말이 있지요? 선생님은 옥중에 있을 때에도 비둘기가 운반해 줘서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알고 여러분들, 걱정하지 마십시오. 성경에서도 제일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했으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고 그랬지요? 우리의 인생길에서 제일 바쁜 것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6. "596번에게 미숫가루를 갖다 드려라"
▣ 1971.8.28(토) 우리 가정의 갈 길. 청평.
- 제2차 교회장 수련회.
047-190 말하지 않는 가운데서, 내 말이라면 생명을 걸고 탈옥하자면 탈옥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지사판에서 예수님의 12제자가 도망간 것을 복구해야지요. 자동적으로 복귀해야 된다는 거라구요. 내가 입을 열지 않으면 영계가 동원되어 가지고 전도해 주었던 거라구요.
선생님 수인번호가 596번. 오구육 번이었다구요. 어떻게 보면 억울한 번호라구요. 어떤 사람에게는 꿈에 조상이 나타나서 "몇 호실에 596번, 이러이러한 양반이 있는데 네가 받은 미숫가루를 하나도 손대지 말고 그분한테 갖다 드려라" 하고 명령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허황스러운 꿈같은 거 뭐" 이러면서 한 번 해서 안 들으니까 두 번 세 번 하다가 나중에는 목을 조르면서 "이놈아! 할래, 안 할래?" 하니까 "예, 하겠습니다." 이렇게 된 거라구요.
감옥에서 미숫가루는 생명보다 더 귀한 거라구요. 그래서 그 사람이 미숫가루를 거꾸로 들고 터벅터벅 와서는 "여기 596번 있어요? 누구예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누구야. 여기 나타난 사나이지. 여러분의 선생되는 사나이라구요. 이렇게 영계에서 동원되어 가지고 다 먹여 주는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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