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의 일편단심 - 不動 不屈 不變

true2020 2023. 7. 26. 15:14

1) 유언

 

 1977.10.1 (토) 사랑의 승리자. 미국 파사데나 공관.

- 지도자 회의 때.

 

선생님은 눈물의 사람이라구요. 아직까지도 흘려야 할 눈물이 많은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거라구요. 아직까지 인류를 위해서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눈물을 흘릴 방도를 택하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 때문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와서 협조한다는 거예요. 틀림없이 와서 협조할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하늘이 전도를 해 준다구요.

 

* 만약 선생님이 죽을 때 유언할 것이 있으면, 누군가 당신의 아들딸에게 무슨 유언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흘릴 눈물을 못 다 흘리고 가는 것이 애석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유언할 것이 그거예요. 내가 인류를 위해서 흘릴 눈물을 못 다 흘리고 가고 인류를 위해서 할 일을 못 다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더불어 일하는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러니 입을 다무는 거예요. 불평을 안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변명했어요? 하나님 자신이 구원 섭리를 다 성사시켜 놓고 설명하고 나서 변명하려고 하지 그전에는 안 할 것입니다.

 

2) 남은 것은 일편단심

- "그대가 울 때 내가 올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뿐입니다.

 

▣ 1960.4.10(일)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시려는 복귀 역사. 전본부교회.

009-070 여기에 몰려온 여러분,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은 자식의 손목을 잡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며 한 번도 심정적으로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남의 손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어디 갈 때 따라가겠다고 해도 "안 돼!" 합니다. 삼자의 입장에서 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총결산하여 하늘 앞에 공인받을 수 있기 전에는 자식이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처자나 형제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진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하다는 사람과도 맞설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가는 것은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단 말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기에 27억이 우는 사자와 같이 떠들어도 일신을 투신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왜? 하늘이 몰아치는 그 길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았기에 "친구여, 가거라. 사랑하는 부모여, 가거라. 처자여, 가거라. 내 몸뚱이여 가거라. 다 가거라. 다 가거라" 하며 남은 것은 일편단심 "그대가 울 때 내가 올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이런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 하고 울부짖는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심판의 불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이 천지에서 누굴 믿습니까? 부모가 영원한 부모가 아닌 것을 알았고 처자도 영원한 처자가 아닌 것을 알았고 형제도 영원한 형제가 아닌 것을 알았고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영원한 세계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부모를 모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형제를 모실 수 있는 그날은 통곡하겠습니다. 그날은 벅찬 날입니다. 그 벅찬 마음은 1년으로도 그칠 수 없고 10년으로도 그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을 주어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인간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알았기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아니라 하는 길, 몰림 받는 길을 왜 걸어왔습니까? 여러분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지면 원망할 것이로되 소망이 있고 새날에 대한 목적이 뚜렷하여 생명적인 절개를 노래할 수 있고 심정적으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어도 승리자입니다.

 

3) 일도 그 일이요, 노는 것도 그 일입니다. 뜻 일을 하는 것을 노는 것 以上 고맙게 생각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 1994.10.4(화) 한남동. 참부모와 양심의 가치.

- 귀국 환영 집회.

 

263-209 一片丹心이라는 말이 있지요? 어떠한 것이 일편단심이에요? 언제든지 하나여야 됩니다. 丹心. 붉어야 됩니다. 딴생각이 없다구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뜻길도 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그 일이요, 노는 것도 그 일입니다. 뜻 일을 하는 것을 노는 것 以上 고맙게 생각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4)  오고 가는 전부, 생각하는 전부, 느끼는 감정 전부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 1966.7.31(일) 통일교회는 탕감 교회다. 전본부교회.

- 서울 제1, 2, 3교회 합동예배.

 

016-308 그렇다면 이제 길은 둘밖에 없습니다. 전진이냐, 후퇴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앞으로 나갈 것이냐, 가만히 있을 것이냐? 아니면 후퇴할 것이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있으면 떨어지게 됩니다. 섭리는 민족적인 시대에서 세계적인 시대로 자꾸 발전하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어떠한 세계적인 탕감 복귀를 해 나가더라도 하나님을 중심 삼고 나가야 됩니다. 일편단심 하나님과 더불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길을 가더라도 길을 가는 그 기준이 하나님의 목표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생각을 해야 하며, 잠도 그 목적을 위해서 자야 됩니다. 오고 가는 전부, 생각하는 전부, 느끼는 감정 전부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5)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 1976.2.8(일) 축복. 전본부교회.

083-185 여러분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저기 아줌마들,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하늘을 향한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일편단심이라는 것이 뭐예요? 일편단심.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일편단심이라는 것이 뭐예요? 왜 일편단심인가요?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인데 붉은 마음이 어떤 거예요? 불이 왔다 갔다 하면서 타면 붉어져요? 한 곳에서 타야 된다구요. 바람이 불면 꺼지면 꺼졌지 옮겨질 수 없습니다.

 

충신의 마음은 절개가 본바탕이에요.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이러한 크나큰 이 뜻을 중심 삼아 세계가 요동하고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요동하지 않았다구요. 내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搖動하지 않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가는 길은 망할 것 같지만 흥하는 거예요.

 

왜? 그건 문 선생이 요술을 부려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누가 보우하사? 하나님이 보우하사 흥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모가지가 떨어지더라도 실천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 자, 요동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은 알아야 된다구요. 간신奸臣이 어디서 나오느냐? 요동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거예요.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간신이요. 천사장이 되는 거예요.  사탄이 되는 거예요. 간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 하나의 충신이 어디에 있느냐? 아무리 태풍이 불어와도 움직이지 않는 곳에 충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천리 원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