謙遜한 자세는 하늘과 가까이하기 위한 必須 要件이다.

true2020 2023. 2. 2. 00:51

▶ 겸손: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원리강론 100  ->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이 교만이다. 

* 타락성본성 4가지 

ㄱ. 하나님과 같은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

ㄴ. 자기의 위치를 떠나는 것

ㄷ. 주관성을 전도하는 것.

ㄹ. 범죄행위를 번식하는 것. 

 

▶ 원리강론 "겸손"  - 1회 등장. 

제3장 인류역사종말론

제5절 말세와 새 말씀과 우리의 자세

1. 말새와 새 진리

2. 말세에 처한 우리들이 취할 자세

 

147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눅 5:38

148 말세에 처한 현세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를 통하여 신령한 것을 감득하도록 힘써야 한다. 

149 인습적인 관념에 집착되지 말고 우리의 몸을 신령에 호응하게함으로써 새 시대의 섭리에 이끌어 줄 수 있는 새 진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된다.  

 

▶ 불교의 절

- "나는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내려갑니다" 그 말이라구요. 

- 자기주장하는 여자, 자기주장하는 남편들은 싸우는 세계가, 투쟁의 역사가 따라온다. 

 

▣ 1997.4.17(목) 제주 국제연수원. 세계 평균화 축복 시대.

- 160가정 축복 완료자 초청 특별집회. 

 

284-182 본래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으려면 자기의식이 있어서는 안 돼요. 100만큼 의식이 있으면 절대 사랑이 100만큼 제해 버리니 100만큼 결여된 사랑이니 절대적이 못 된다 이거예요. 문제가 크다구요. 그래서 온유 겸손해랴, 겸손해라 이거예요.

 

겸손하기를 언제나 영원히 겸손해라 그거예요. 한 시간이 아닙니다. 희생하라고 할 때 한 시간이 아니라 둘이 영원히 해라 이거예요. 그래야 된다구요, 그건 영원히 無입니다. 깊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하나님의 뿌리 사랑까지 몽땅 이동해 온다는 것입니다. 채워 준다는 것입니다. 

 

* 불교에 가게 되면 절을 많이 하지요? "나는 없습니다. 천 번 만 번 내려갑니다" 그 말이라구요. 무의 개념을, 무의 세계에 들어가야 된다 이거예요. 그거 맞는 말입니다. 거기서부터 절대 개념이 지상 위에 현현한다는 것입니다.

 

"나, 그렇게 살았다"는 여자 한번 손들어 보라구요. 못 살았어요? 왜 못 살았어요? 그거 몰라서 못 살았어요, 알면서도 못 살았어요?  

 

284-196 절대 사랑은 절대 위하는 데 있습니다. 곁길로 위하는 것은 돌아가야 됩니다. 절대 무가 되는 데 있어서 절대 사랑이 와서 깃들 수 있지 자기의 소성, 자기의 개념이, 관념이 있는 데는 그걸 제해 놓지 않고는 절대 사랑이 자기에게 미칠 수 없다는 걸을 알지어다! 자기주장하는 여자, 자기주장하는 남편들은 싸우는 세계가, 투쟁의 역사가 따라온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세계경전 903

 * 謙遜한 자세는 하늘과 가까이하기 위한 必須 要件이다.

* 지위, 부 등에 의한 자만심은 구도자의 길을 가로막는 장해물일 뿐이다.

* 진정한 겸손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 謙遜은 진실과 정직을 요구한다.

* 선과 악의 관계는 겸손과 교만의 관계와 같다. 

* 겸손은 에덴동산의 생활원칙이다.  

* 사탄이 기뻐하는 반대의 입장.

 

1. 아벨이 될 수 있는 위치는 온유 겸손한 자리입니다. 

 

▣ 1970.9.13(일) 통일교인의 자세. 수원교회.

034-273 종교인은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이 온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아벨이 될 수 있는 위치는 온유 겸손한 자리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빼앗겼어도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벨이 가는 길입니다. 알겠어요?

 

성경을 보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지요? 이 말씀을 이해해야 됩니다. 왜 원수를 사랑해야 되느냐?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사탄이가 이러자면 이러고 저러자면 저러는데 대관절 어떤 이유에서 그러시느냐?

 

 1970.8.29(토) 부인 전도대원의 책임. 전본부교회.

- 1970.70.20.~8.29. 하계 40일 전도 활동 후.

 

034-086 가인도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왜 가인이 아벨을 때려죽이려고 했겠습니까? 괜히 때려죽였겠습니까? 한번 생각해 봅시다. 동생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정성 들여 제물을 드렸는데 아벨의 제물만 받았으면 그만이지 뭐가 그렇게도 분하고 원통했겠습니까?

 

가인이 분해하고 원통해했다는 것은 가인도 그만큼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벨에 못지않은 정성을 들였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가인이 하나님을 몰랐느냐? 하나님이 귀한 분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인이 일 년 동안 정성 들여서 가꾼 곡식을 제물로 드린 것이나 아벨이 정성 들여서 양을 잡아 제물로 드린 것은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만 받았을 때 아벨은 자신의 제물을 받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여 형에게 "형님, 죄송합니다." 했으면 형이 때려죽였겠습니까?

 

* 아벨은 우쭐해 가지고 "형님보다 내가 낫지." 하고 자랑했을 것입니다. "형은 뭐냐? 하나님이 형 제물은 안 받고 내 제물만 받았어." 이러니 가인이 왈칵 분한 마음이 났겠어요, 안 났겠어요? 거기에서 "이놈의 자식, 뭐라고 하는 거야?" 이렇게 했겠어요, 안 했겠어요?

 

만일 아벨이 온유 겸손하고 순종 굴복할 수 있는 마음을 가졌더라면 그때 복귀가 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아벨이 책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가인을 사랑하는 마음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가인을 동정하고 위로해 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자기의 제물만 받으셨다고 좋아했을 것입니다.

 

만일 아벨이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안 받은 것을 긍휼히 여기고 눈물을 흘리며 동정하고 "내가 상속받은 것은 다 형을 위해서 받은 것이니 대신 받으십시오" 하였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자기의 귀한 사랑을, 하나밖에 없는 귀한 선물을 가인에게 다 줬더라면 그것은 천사장을 누구보다도 사랑했다는 입장에 서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복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못한 것이 한입니다.

 

2. 겸손한 자에게 지혜가 있다.

 

▣ 잠언서 11장

2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When pride cometh, then cometh shame: but with the lowly is wisdom.

 

1) 자기를 낮추는 사람.

 

▣ 1970.8.16(일) 전본부교회. 해방과 우리의 책임.

033-263 그러니 여기서부터는 자기를 잘 알아야 됩니다. 자기를 알지 못하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나는 어떠한 자리에 있느냐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심부름할 사람인지 공적으로 쓰일 사람인지 주위의 어떠한 자리에 서야 될 것인지를 잘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이 벌어집니다. 그것도 모르고 날뛰다가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맨 밑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모든 영광을 갖다 주더라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당신이 나보다 더 갖고 싶어하시니 당신이 받으소서. 나는 당신이 그것을 받으시고 나 이상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서 기뻐해야 되기 않겠습니까?" 해야 된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2) 눈을 감고 생각하고 조용한 사람이 이기게 마련.

 

▣ 1979.9.16(일) 벨베디아. 사정을 말해 보자.

105-035 자, 대체적으로 이렇게 볼 때 말 많이 하는 사람은 지게 마련이고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은 남게 마련인 것입니다. "말 많은 사람은 지나가게 마련이고 말없는 사람은 남게 마련이다" 이런 결론이 나온다구요.

 

그것이 사실 얘기예요 레버런 문이 적당히 하는 얘기예요? 이것을 하나의 원칙으로 삼아 가지고 역사적 과정을 비추어 볼 때에 역사를 누가 지배했느냐? 말 많은 패들이 지배해 나왔느냐 말없는 패들이 지배해 나왔느냐?

 

대체로 볼 때에 말없이 장래를 생각하고 말하는 대신 넓게 깊게 높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지배해 나온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눈을 떠 가지고 귀를 이렇게 하고 두리번거리는 바쁜 사람하고 눈을 감고 생각하는 사람하고 누가 이기느냐? 눈을 감고 생각하고 조용한 사람이 이기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냐? 두 번째 사람입니다.

 

105-037 이렇게 볼 때에 오늘날 종교인하고 비종교인하고 다른 것이 뭐냐? 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많이 많은 사람들이요 종교인들은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요 안 그래요?

 

성경을 봐도 전부 다 참고 견디라고 했지 싸워 가지고 처치하라고 안 했다 이거예요. 원수가 있더라도 다 하나님 앞에 맡기고 너는 잊어버려라 했어요. 툭툭 털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거 그럴 수 있어요?

 

3. 겸손해야 하는 이유. 

 

1)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 1993.5.9(일) 참사랑의 통일권과 나. 이스트가든.

- 브리지포트 대학생. 일본어.

 

247-237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좋으냐? 자기는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구요. 우주가 평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높은 데 있는 것은 낮은 데 관심을 가지고 찾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그것은 자연적인 현상입니다.

 

▣ 1974.9.17(화) 뉴욕 월 돌프아스토리아 호텔. 위하여 존재한다.

- 희망의 날 뉴욕 뱅퀴트.

 

073-187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고 나는 보고 있습니다. 내가 뉴욕에 와 가지고 러시아워 되는 5시를 넘어 가지고 어떤 한때에 쭉- 오고 가는 사람을 보았더니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래서 마음으로 "아, 뉴욕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요. (박수) 감사합니다.

 

2) 완전히 겸손하면 완전히 받을 수 있다. 

 

▣ 1977.2.13(일) 벨베디아. 주체와 대상으로 인한 이상 세계.

091-193 사랑은 상대가 없으면 안 됩니다.  상대가 없으면 사랑도 없고 다 없어진다구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희망과 이상과 사랑과 행복은 나에게서 온다! 이게 아니라구요. 그것은 나에게서부터 있다, 그게 아니라구요. 그것은 상대로부터 있고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걸 받으려면 내가 겸손해야 된다 이거예요. 그거 왜 그러냐? 그렇게 함으로 모든 것이 완전히 올 수 있다는 거예요. 완전히 겸손하면 완전히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3)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리기 어려운 때가 많을 것입니다.

- 그때는 겸손하고 교만한 자가 되지 말며 욕심을 갖지 말고 공평하고 참된 자리에서 수고하라

 

▣ 1974.9.8(일) 한 때를 지키자. 벨베디아 성지.

073-183 여러분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가리기 어려운 때가 많을 것입니다. 어떤 것을 가려 갈 것이냐? 가려 가기 어려운 때가 많을 거라구요. 그때는 겸손하고 교만한 자가 되지 말며 욕심을 갖지 말고 공평하고 참된 자리에서 수고하라 이겁니다. 희생해야 된다구요. 그리고 자기의 목적을 생각하며 염려하면서 하늘 앞에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4) 혈기를 부리면 있는 것까지 다 팔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혈기를 참으면 없던 것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1971.1.9(토) 강릉교회. 뜻이 가야 할 길.

039-026 종교인들은 온유 겸손해야 합니다. 요즘 표현으로 말하면 "못난이가 돼라"는 것입니다. 성서에는 "바른 빰을 맞으면 외편 뺨까지 내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요즘의 젊은 사람들 같으면 해 먹겠어요? 속에서 불이 나서 못해 먹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르치느냐? 알고 보니 그렇게 가르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선생님의 성격도 대단히 극단적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와 싸워 가지고 항복을 받아 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매를 맞고 살지 않았습니다.

 

옛날 학생시절에는 누구하고 싸움이 붙으면 항복을 꼭 받아야만 직성이 풀렸지 절대로 못난이 취급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씨름에 대해서는 내가 전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나를 누가 마음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던 내가 통일교회의 선생님이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의 도를 닦도록 천도의 길을 알고 보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그렇게 되도록 노력을 한 것입니다.

 

천도의 길을 가려면 온유 겸손해야 되는 것입니다. 주먹질과 血氣를 부리는 것하고 溫柔謙遜하는 것하고 어느 것이 편하냐 하면 온유 겸손한 것이 편합니다. 혈기를 부리면 있는 것까지 다 팔아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혈기를 참으면 없던 것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5) 겸손한 자가 복을 받아야 됩니다. 왜? 물은 낮은 데로 흐릅니다.

- 축복은 물과 같이 흘러요. 

 

▣ 1997.4.15(화) 제주 국제연수원. 심신통일.

- 문씨 한씨 종친회 간부 특별수련회 개회식.

 

284-029 겸손한 자가 복을 받아야 됩니다. 왜? 물은 낮은 데로 흐릅니다. 축복은 물과 같이 흘러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가요 저기압이 고기압을 찾아가요? 고기압이 저기압을 찾아오는 거예요.

 

6) 겸손하게 내려가겠다고 하면 천운이 나를 끌어올린다.

 

▣ 1992.11.13(금) 참사랑의 세계. 한남동.

- 참어머님 베를린 대회 때 2세 및 젊은 목회자.

 

237-114 낮은 자리, 낮은 골짜기를 깊이 내려가는 것은 곧 제일 높은 곳을 올라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성현들이 애기한 고진감래라는 말도 고통이 지나면 희망의 길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이치가 그래요, 순환 운동입니다. 그래서 교만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교만해서 자기가 올라가겠다고 하면 우주는 내리민다는 것입니다. 천운이 들이 제낀다(제친다의 비표준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내려가겠다고 하면 천운이 나를 끌어올린다는 거예요.

 

7)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은.

 

ㄱ) 온유와 겸손, 순종과 굴복, 희생과 봉사. 

 

 1957.10.27(일) 예수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전본부교회.

003-187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입니다. 이런 성질로 세상 사람을 대하는 사탄이었으니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 사탄은 자기를 중심 삼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뒤를 쫓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인간들이 자기를 믿고, 자기에게 순종하여 하늘을 따르도록 가르치신 것입니다.  

 

003-189 자기를 중심 삼은 血氣와 驕慢으로 사는 사람이 아직도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루빨리 그런 입장에서 벗어나야 하겠고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놓은 기준, 사탄을 굴복시키기 위한 최후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준인 온유와 겸손, 순종과 굴복, 희생과 봉사의 자체로 혈기에 의해 하늘을 핍박하는 자들을 향해 싸워나가겠다는 내적 覺悟를 다져야 하겠습니다.

 

뜻에 대립하여 뜻을 반역하는 입장에 선 것이 사탄이요, 이런 것이 사탄의 생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뜻에 反撥하려고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스스로의 마음이 아니라 사탄의 勢力이 環境에 꽉 차 있고 그 環境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사탄의 勢力이 자기를 중심 삼고 나타나는 것입니다.  

 

003-191 2천 년 전에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서 "온유 겸손하라, 순종 굴복하라, 희생 봉사하라"고 인간들에게 가르쳐 주셨으나 땅 위에 있는 인간들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온유 겸손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순종 굴복하면서 감사할 수 있고 희생 봉사하면서 감사할 수 있는 생활환경을 갖지 못하고 있는 연고로 자기도 모르게 순종의 마음이 변하여 혈기와 교만, 대립과 반박을 하게 되고 봉사와 희생이 변하여 이용과 착취를 일삼게 됩니다.

 

ㄴ) 사탄의 본질과 대결하기 위하여 나타난 예수님은 사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했다. 

- 온유와 겸손을 들고 나서게 되면 사탄 세계도 자연 굴복하는 것이다.

 

 1957.10.2(일) 예수의 섭리적 생애와 그의 승리적 목적. 전본부교회. 

003-187 그러면 사탄의 본질과 대결하기 위하여 나타난 예수님은 그의 생활권 내에 있어서 먼저 무엇을 표시하고 나타났던가. 사탄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그의 생활권 내에서 실천적인 행동을 제시한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복음인 것입니다.

 

말씀도 그렇거니와 그의 마음도 그렇고 그의 생활도 그렇고 그의 생애도 그렇고 그의 죽음까지도 사탄이 하지 못하는 조건을 찾아 세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 천리 법도가 엄연히 있는 연고로, 다시 말하면 법도를 중심 삼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게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는 이 천리 법도에 의해 사탄을 분립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본질은 교만과 혈기입니다. 이런 성질로 세상 사람을 대하는 사탄이었으나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 사람들 앞에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나서 온유 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도 최고로 높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었으나 예수님은 이것을 다 버리고 온류 겸손한 입장에 서신 것입니다.

 

사탄이 이런 예수 그리스도와 대결하여 싸우려 했으나 사탄에게는 하나님 앞에 굴복해야 할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끝까지 온유 겸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본질인 교만과 혈기에 반대되는 온유 겸손을 갖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 엄연히 천리 법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탄이기 때문에 끝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말하자면 온유와 겸손을 들고 나서게 되면 사탄 세계도 자연 굴복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을 아시는 예수님은 사탄이 하지 못한, 사탄이 할 수 없는 온유 겸손의 입장을 취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온유 겸손한 입장에 서야 중심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께로 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무엇을 보여 주셨는가 하면 순종과 복종입니다. 순종은 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명령에 따르는 것이고 복종은 응할 수 없는 환경에서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불신하는 인간들에게 이런 순종과 복종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 역시 사탄의 본질, 사탄의 생활적인 요소를 가로막기 위한 것입니다. 

 

사탄은 자기를 중심 삼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사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뒤를 쫓으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 또 예수님은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들고 나타났습니다. 기실 하늘의 영광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독생자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만민과 만물 사탄까지도 주관하고 그들의 희생과 봉사를 받아야 할 입장이었으나 그 반대의 입장에 서셨던 것입니다. 

 

사탄이 당신 앞에 순종하고 봉사하고 희생하도록 만들기 위해 즉 이런 사탄의 모든 세력을 굴복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무한한 희생과 봉사의 제물을 드리는 노정을 걸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사탄 세계는 사람을 대하든지 혹은 피조물을 대하든지 무한히 이용하고 착취하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그 반대 입장을 취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하지 못하는 생활을 예수님이 대표적으로 하셨기 때문에 즉 온유 겸손하고 순종하고 복종하며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사탄도 그러한 면에서는 굴복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예수님이 가르치신 온유와 겸손 순종과 복종 희생과 봉사에 비추어 보고 그의 가르침을 자신의 생활권 내에서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아직까지 사탄의 종족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003-189 오늘 우리가 처한 끝날에는  길은 두 갈래의 길이 남아 있으니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사탄이 가는 길과 하늘이 가는 길은 다릅니다. 하늘이 가는 길은 사탄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을 대하여 순종 복종하고 듯을 온유 겸손하게 실천하고 섭리의 뜻 앞에서 전 인류를 대신하여 희생 봉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온류 겸손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요, 순종과 복종함에 있어서 왕 중의 왕이며 희생 봉사하는 데 있어서 왕 중의 왕이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 사탄은 하나님의 심정을 알면서도 인간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려 하는 길을 가로막고 도리어 자기에게로 이끌어가는 존재입니다. 스스로 높아지고자 하고 스스로 대항하려고 하며 스스로 인간들을 이용하려 합니다. 

 

이런 사탄이지만 하나님과 예수님께 나아가면 감히 머리를 둘래야 들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조건이 예수님의 생활권 내에서 세워졌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에게서 사탄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이런 역사적인 출발을 이룩한 생애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준을 예수님은 어떻게 세우셨는가?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나는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기준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이 영생하면 나도 영생하고 하나님이 불변하시면 나도 불변하고 하나님이 무한 자비하시면 나도 무한 자비하겠다는 마음을 지니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내적 심정을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잘 느끼고 하나될 수 있었기에 사탄 대한 싸움의 노정에서 승리의 기준을 세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003-191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심정을 체휼할 수 없습니다. 또 순종과 굴복, 희생과 봉사의 생활을 하지 않으면 예수님 앞으로 가까이 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003-195 우리가 또 사탄을 굴복시키려면 사탄이 갖지 못한 말씀, 사탄이 갖지 못한 인격, 사탄이 갖지 못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땅 위의 인간들에게 나타내지 못한 애달프고 간절한 심정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私は柔和で心のへりくだった者だから、私の軛(くびき)を負い、私に学びなさい。そうすれば、あなたがたの魂に安らぎが得られる。
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4.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라. 

 

▣ 1976.9.20(월) 벨베디아. 세계 복귀를 위해 책임자가 가야 할 길. 

- 세계간부회의.

 

088-268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라 이거예요. 자기의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전도하면 할수록 10년이 되고 20년이 되더라도 배울 것은 겸손의 도리입니다. 더 깊은 겸손의 맛을 배우는 거예요. 더 깊은 심정의 맛을 배우는 거라고요. 그럼으로 말미암아 내가 발전하는 거예요.

 

5. 여자는 겸손해야 돼요. 땅에 45도 이상을 수그리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한 것입니다.

 

▣ 1994.3.16(수) 참자신을 찾아라.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 수련. 일본어 번역.

 

257-264 그래서 사람은 겸손하고 상냥하고 순종해야 한다구요. 상냥하고 순종한다는 것은 수평을 말한다구요. 조용해진 수평을 말하는 것이라구요 .

 

* 그래서 여자는 순종, 겸손하면서 조용해야 한다구요.

 

1994.4.11(월) 중앙수련원. 참부모의 날과 천지인애 완성의 날.

- 제43회 참부모의 날.

 

260-022 여자는 겸손해야 돼요. 땅에 45도 이상을 수그리고 다녀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