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

"하나님은 어찌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50평생 이렇게 고생만 시키느냐"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동정해야 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true2020 2022. 1. 21. 09:36

▣ 1971.4.18(일) 시련과 성장.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부활절 기념 서울지구 합동 야외예배. 예배후 식목행사.

 

043-054 나는 하나님을 모시고 나오는 데에 있어서 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면서 50평생 이렇게 고생만 시키느냐"고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동정해야 할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대문 경찰서에 끌려가는 마당에서도 영어의 신세 철창에 갇히는 신세의 자리에서도 그랬습니다. 뜻길을 가기 위한 그 첫걸음에서부터 "이렇게 생명이 남아 있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로해 드렸습니다.

 

오늘날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을 지녀 온 역사적 탕감 기준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 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이것은 그 어느 누가 침범하려고 해도 침범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외에는 침범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성진이가 대학을 나올 때까지 내가 성진이 아버지로서 아버지 노릇 한번 못해 봤습니다. 이것은 비참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녀석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말하기 전에 나를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틀렸거든 총칼을 들고 아버지에게 대항하라. 나는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뜻 앞에 어긋나지 않는 한 선 앞에 악은 자연 굴복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하늘 앞에 책임을 다하고 하늘을 공경하는 환경을 걸어왔기 때문에 여기에 아무리 불평불만의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또 과거에 잊을 수 없는 한을 엮은 소원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자식을 붙들고 소원해 보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우리 가정을 사랑하십니다. 이건 틀림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르지만 나는 반드시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