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면회 온 어머니한테
1) "내 앞에서 눈물을 떨어뜨리지 마시오."
▣ 1987.11.15(일) 승리자가 될 것이냐, 패자가 될 것이냐. 본부교회.
- 목회자, 국제승공연합 지부장, 남북통일운동국민연합 간부 집회.
170-206 흥남 감옥에 있을 때도 자식이나 안 찾아올 수 있겠어요? 정성껏 한 달에 한 번씩 미숫가루니 뭐니 해 가지고 이고 오는 거예요.
* 나 그거 못 한다 이거예요. 아, 어머니는 자기 새끼니까 당신 아들만 먹으라고 하는 겁니다. 춥다고 명주 바지를 해 줘도 관복만 입고 있으니 말이에요. 그것도 다 찢어져 가지고 넓적다리가 다 보이는 걸 입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러니 목이 메어 통곡을 하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한테 야박스럽게 공격을 하던 것이 잊혀지지를 않습니다. "여기 있는 자식이 김 아무개 당신의 아들이 아니오. 대한민국의 아들이요, 세계의 아들이요, 하늘의 아들입니다. 밥 짜박지, 미숫가루 짜박지 가지고 온 것이 장한 게 아닙니다. 내 앞에서 눈물을 떨어뜨리지 마시오"라고 한 거예요. 그러니 나를 무서워했어요. 부모가 나를 무서워했습니다. 내 갈 길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170-207 내가 감옥에 와 있는 것은 사람이 못 돼 가지고 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북한 땅을 걸기 위해서, 저 밑창을 갈고리로 걸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간에 거는 것이 아닙니다. 밑창에 내려가야 되는 거예요. 대한민국의 감옥 밑창에 내려가서 걸어야 되는 거예요. 미국에 있어서도 밑창에 내려가 갈고리로 걸어야 됩니다. 그런 주의예요. 그래도 나는 망하지 않았습니다.
2) "나 아무개 아들은 아무개 아들의 그런 아들이 아니야!"
- 내가 네 에미다."
▣ 1992.5.31(일) 통일그룹은 한 길을 가라. 국제연수원.
231-100 감옥에 찾아온 어머니가 눈물 흘릴 때 "나 아무개 아들은 아무개 아들의 그런 아들이 아니야!" 그랬다구요. 천 리 길을 찾아온 어머니를 면전에 놓고 북한 땅의 철창 안에서 서릿발 같은 호령을 할 때 부끄러움으로 "내가 네 에미다." 하며 그저 입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을 손으로 씻고 돌아서는 어머니를 내가 잊지 못해요.
▣ 1989.6.18(일) 한국은 인류의 조국 1. 본부교회.
190-071 그러면서 내가 이북 감옥에 있을 때 어머니가 와서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내 아들 고생한다고 생각하고 말이에요, 미숫가루를 차입해 주면 그 눈앞에서 다 나눠주는 겁니다. 나는 에미 애비가 있어 가지고 매달 방문하지만 그렇지 못한 동족이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눠준 겁니다. 그걸 눈앞에서 나눠주니 얼마나 기가 막힐 거예요? 그럴 아들인 줄 알지요.
거 명주 바지저고리 좋은 것을 차입해 줬는데 입고 있는 것은 감옥에서 주는 관복이에요. 안팎으로 다 째져 바람에 풀렁풀렁해 가지고 추운데도 내복 조각만 한나 걸쳤거든. 그걸 바라보는 어머니 아버지는 피가 뛸 거예요. 눈물을 줄줄줄 흘리면서 이거 이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때 어머니를 대해 얘기하는 거예요. "나는 김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오. 김 아무개의 아들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아들이요, 대한민국의 아들이기 전에 세계의 아들이요, 하늘땅의 아들이요. 그들을 사랑하고 나서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어머니를 사랑해야 할 도리를 압니다. 그런 졸장부의 아들이 아닌 것을 알고 그 아들다운 어머니의 행세를 해 주시오. 이게 뭐요?" 하고 공격을 했어요.
2. 평안북도 정주에서 함흥이 어디예요?
3. 통행증,
- 군 인민회에 가고 면 인민회에 가서 통행증을 데어 가지고 사인을 받아야 돼요.
4. 미숫가루.
▣ 1987.5.19(화) 국제승공연합. 북한 해방과 남북통일.
165-022 그때에 참 잊을 수 없는 게 있습니다. 숙소에 전부 다 면회들을 오거든요. 면회는 한 달에 한 번씩 받아 줘요. 방은 대개 한 방이 얼마만하냐 (얼마만하다. 북한어.)하면 요기서 요만할 거예요. 요만한 곳에 한 30명이 누우면 어깨와 다리가 딱딱 부딪치고 전부 다 살을 비벼대는 거예요. 요만한 방에 30명에서 35명이 들어가거든요.
165-024 여름 같은 때에는 문이라는 것이 국제승공연합 문 요거 있잖아요. 요것의 3분의 1도 못 돼요. 그것도 넓다구요. 몸의 길이로 하자면 4분의 1이 안 돼요. 그런 문 하나가 있어요. 그다음에 구멍이라는 것은 밥 들어오는 구멍밖에 없습니다.
삼복더위에 그곳에 집어넣으면 말이에요, 그건 무르는 거예요. 무른다구요. 이거 전부 다 살을 이렇게 하면 물이 나온다구요. 그런 곳에서 지내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면회를 오거든요. 그런데 한 방에 서른여섯 명이 있으니까 매일 평균 한 사람은 온다 이겁니다. 그러니 뭐라고 할까, 배가 고파서 환장할 지경이에요. 환장할 지경이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면회를 오게 되면 미숫가루를 가져옵니다. 그런데 그것을 전부 다 자기 혼자 먹을 수 없으니까 바리때(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 그릇. 나무나 놋쇠 따위로 대접처럼 만들어 안팎에 칠을 한다. )에 쌓아 놓는 거예요. 바리때는 밥 먹는 것인데 거기에 쌓아 놓고 사람들 나간 다음에 들어와 가지고 얼른 한 바가지 갖다 놓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밥 바리때를 엎어 가지고 밥은 ···.
이렇게 쌓아 놓은 바리때에서 한 숟갈씩 주는데 숟갈이 어디 있나요? 종이 숟갈이지요. 종이를 요만하게 잘라 가지고 주는 거예요. 전부 남의 신세를 졌으니, 얻어먹었으니 안 줄 수 없다구요. 암만 죽을 지경이라도 줄 수밖에 없어요.
면회 오게 되면 면회 와서 자기 부모들이 무엇을 가져오면 받아 주거든요. 그걸 받게 되면 가지고 들어가 가지고 나눠주는 거예요. 어떤 사람들을 보게 되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은 뭐 미숫가루를 해 올 수가 있나요? 그러니까 보리가루, 강냉이가루, 뭐 생밀가루도 가져오고 그래요.
거기에서는 질이 문제가 아니라 양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한번 배가 불러 보느냐 하는 게 문제라구요. 그런 판국인데 종이 숟가락으로 하나씩 나누어주게 되면 말이에요, 그게 얼마나 돼요? 한 숟가락도 안 되는 거지요. 그렇게 하루에 한 번씩 쭉 면회 왔으면 나눠준다 이거예요. 그것이 감옥에 있는 사람들의 전체 희망입니다. 오늘 면회 몇이 왔으면 "야, 면회 몇 사람 왔다." 해 가지고 들어오자마자 "누구누구 몇 시에 왔다." 이래요.
그런데 어떤 날은 double 되어 가지고 서너 명이 오기도 하거든요. 그렇게 되면 잔칫날과 마찬가지예요. 거기에서 종이 숟가락으로 한 숟가락 떠 주는 것은 세상에서 소 한 마리하고 바꾸자 해도 안 바꾼다구요. 안 바꿉니다. 그렇게 귀한 거예요. 그러니까 몇 사람이 오게 되면 조금씩이라도 더 받게 되니까 그날은 잔칫날 같아요.
자, 이러한 환경에서 전부 다 그 배고픔은 말할 수 없다구요. 그러니까 미숫가루 같은 거 받아 가지고 그냥 두면 전부 찾아 먹는 거예요. 그냥 전부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지 않고 앉아 가지고 지키고 있고 그래요. 그런 판국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같은 사람이 그걸 어떻게 먹겠다고 그런 짓을 해요? 다 퍼 주는 거예요.
그랬다고 우리 어머니가 갔다 와서 네 활개를 척 펼치고 앉아 가지고 "이놈의 자식, 에미가 그렇게 고생을 해서 갖다 주니까 즉석에서 전부 다 퍼서 나눠주고 ···. " 이랬다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말이지요. 기가 찬 말이지요.
집에서야 한 번 가려면 평안북도 정주에서 함흥이 어디예요? 또 미숫가루를 만들려면 말이에요, 그거 만들기가 쉬운가요? 혼자 만들어 가지고 있는 정성껏 ···.
또 가려면 통행증을 떼야 된다구요. 군 인민회에 가고 면 인민회에 가서 통행증을 데어 가지고 사인을 받아야 돼요. 그 사인이 없으면 가지를 못해요. 그러니 어머니가 반대하고 했다는데 그게 다 옳은 말이라구요.
또 옷 같은 거 갖다 주면 내가 그걸 입나요? 옷도 전부 다 나눠주는 거예요. 일 년이 되고 몇 년이 돼도 면회 못 오는 사람이 있다구요. 그러니 참 비참한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옷도 있으면 전부 다 그런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나는 언제든지 관복을 입고 있는 거예요. 관복도 구멍이 뚫어진 걸 입고 바람에 펄럭이고 있으니 명주 바지를 해다 주질 않나 뭐 솜바지 저고리를 해다 주지 않나. 그랬는데도 남 다 주고 그러고 있으니 부모야 그저 환장하지요. 환경이 그렇다는 거예요. 환경이.
▣ 1991.11.17(일) 본부교회. 여성 승리의 날을 위한 전진.
223-311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요. 여러분의 어머니 아버지는 당하지 못해요. 그러니 그 어머니 아버지를 내가 사랑함에 있어서 세상 누구보다도 더 사랑해야 되고 누구보다도 효자여야 돼요. 그거 알아요?
그러나 효도해 가지고는 그 어머니 아버지를 구하지 못해요. 불효입니다. 죽을 때까지 통곡을 하고 갔을 것입니다. "저놈의 자식, 어머니 아버지한테 불효했다"고 말이에요. 왜? 어머니 아버지가 가지 말라는 길을 가니까 불효지요. 그 어머니 아버지가 가지 말라는 길이 하나님과 인류가 원하는 구원의 도리입니다. 몰라서 반대했지요. 자기 아들이 그럴 줄 몰랐지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 그 천 몇 백 리 되는 흥남까지 와 가지고, 평안도에서부터 서울까지 와 가지고 흥남까지 가니까 1300리, 1500리 길 되거든. 면회 한 번 오기 위해서는 18 내지 19개의 증명서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공산당이 이웃 동네에 못 가게 하기 위해서 첩첩이 만들어 놓은 그 경비선을 뚫고 나가야 된다구요.
그렇게 겨우 와 가지고 아들이라고 해서 옷이든 먹을 것이든 차입해 주면 그 자리에서 전부 다 나눠주네. 어머니는 자기 아들 살리러 왔지 감옥 살리러 온 거예요? 그러나 난 그거 못 해요.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미숫가루를 주면 그걸 전부 다 차입 못 받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속이 상하겠어요!
집에도 없는 쌀을 빌리고 별의별 짓을 다 해 가지고 왔는데도 불구하고 자식 놈이 그 저리에서 나누어주니 눈이 뒤집어지기도 하겠지요. 그렇지만 난 그렇게 못 산다구요.
그리고 결혼할 때 싸 왔던 솜바지 저고리를 갖다가 입으라고 했는데···. 흥남이 참 추워요. 바람이 불 때는 자갈돌이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면회를 하기 위해 아침에 다섯 시에 일어나 오면 간수는 여덟 시에 출근하거든. 그러니 세 시간 동안 밖에서 기다려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천리 길을 온 사람이 그 추운 데서 덜덜 떠는 것이 저 뭐냐? 절간에서 몇 백 명이 불경 외우는 소리가 나는 것과 같은 그런 판국이었다구요.
그 판국에서 어머니가 갖다 준 솜바지를 입고 나와야 되는데 낡은 관복을 그대로 입고 나오니 얼마나 죽고 싶겠어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어머니에게 기합을 주던 생각이 납니다. 나 김 아무개의 아들이 아니라고, 이런 꼴 보이기 위해서는 나타나지 말라고 말이에요. 그걸 알아야 돼요.
▣ 1990.7.11(수) 위하는 삶을 통한 종족적 메시아 사명 완수. 국제연수원.
- 전국 목회자 집회.
204-254 내가 흥남 감방에 있을 때 어머니가 오게 되면 말이에요, 거기에 오려면 서울로 돌아가야 돼요. 길이 그것밖에 없거든요. 함흥으로 가는 길이 여기 용산으로 돌아가는 경원선밖에 없잖아요? 그러니 경의선을 타고 서울로 와 가지고 경원선으로 갈아타고 가려니 얼마나 오래 걸려요. 한 20시간 차 타고 와야 된다구요.
그래도 아들이라고 그걸 잊지 못해서 공산당 치하, 그 못사는 이북에서 미숫가루를 만드느라고 사돈의 팔촌네까지 가서 쌀 한 줌씩 빌려다가 아들 살려 주겠다고 열심히 해 가지고 오게 되면 그 자리에서 다 퍼 가지고 나누어주는 거예요. 면회하는데 말이에요. 그러니 얼마나 기가 차겠어요.
그리고 춥겠다고, 흥남이 춥거든요. 명주 바지저고리 사다 주면 그것은 한 번도 입고 나오지 않고 겨울에도 언제나 구멍 뚫어진 푸른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거 얼마나 기가 막혀요. 세상 같으면 타고 앉아 가지고 멱을 따고 싶을 거라구요, 사랑하니까.
매번 그 옷 입고 추워서 벌벌 떨며 다니고 생긴 것은 그 자리에서 다 퍼먹이고 그러니 그거 얼마나 기가 찰 거예요. 그러니까 "이놈의 자식, 부모 앞에 불효한다" 하면서 어머니가 욕을 하고 그랬다구요.
"나 아무개는 그런 졸장부 여편네의 아들이 아니야. 내가 어머니를 이러 이렇게 보는데, 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세계 형제애를 중심 삼아 가지고 나가려고 하는데 그런 자식을 낳은 내 어머니 아버지는 이래야 된다고 훈계하면 그저 말도 못하고 혓발이 늘어지도록 통곡하던 그 모습을 내가 잊지를 못합니다.
5. "어머니, 나는 당신의 아무개 아들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를 위하는 이상 나는 옥중의 사람들을 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오"
▣ 1988.5.3(화) 통일 천국을 편성하는 길. 한남동.
176-128 어머니 아버지에게 효도 못한 사람입니다. 불효한 사람입니다. 흥남 형무소에 있을 때 자식이라고 천 리 길을 멀다 않고, 그때 뭐 북한에 먹을 것이 있어요? 찹쌀을 구해서 가루로 내 가지고 옵니다. 그것을 그 즉석에서 풀어헤쳐 나눠주는 거예요. 어머니 눈앞에서···.
어머니가 자기 아들 주기 위해서 가져왔지 거기 재소자들을 위해서 가져온 것이 아니거든요. 떡 풀어헤치기를 한 번 와서 봐도 그렇고 매번 그러니 가서는 네활개를 해 가지고는 "이놈의 자식, 벼락 맞을 자식, 다시는 안 간다! 내가 형무소에 있는 개 같은 녀석들 나눠주라고 해 갔나, 우리 아들딸 전부 굶겨 가면서···." 그랬어요.
그런 어머니에게 "어머니, 나는 당신의 아무개 아들이 아닙니다. 당신이 나를 위하는 이상 나는 옥중의 사람들을 위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오"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걸 모릅니다. 문중의 아무개 이름을 가진 한 사람의 아들로 살아 주기를 바라지만 못 한다고 했습니다. 시퍼런 눈을 뜨고··.
나쁜 자식입니다. 불효자식··. 뼛골을 짜내는 눈물을 흘리게 한 사람이 불효자식이라구요. 그러나 내가 늙어서 죽기 전에 어머니가 나를 놓고 찬양할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 1976.3.3(수) 춘천교회.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
085-213 나는 어머니한테 신 한 켤레 못 사 줬다고요. 손수건 하나 안 사 줬어요. 그렇지만 통일교회 교인들을 위해서는 양복을 수천 벌도 사 줬고 신발도 수만 켤레 사 주고 집도 사 주고 다 해 줬다구요. 그렇다고 내가 천벌을 받는다고는 꿈에도 생각 안 해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우리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한다고···. 우리 어머니는 나 때문에 참 고생을 많이 했어요. 면회와 가지고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아들이라고···. 내 그때 어머니에게 욕을 해서 쫓아버린 거예요. "나, 이 사람은 당신 일개의 여성의 아들이 아니오. 내가 여기 감옥에 들어온 것을 내가 잘못해서 들어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에요.
* 만약에 저나라, 영계에 우리 부모가 가게 될 때는 하나님이 이름을 덧붙여 가지고 위대한 아들을 낳은 어머니라고 해 가지고 지옥 가겠더라도 천국으로 끌어갈 것을 내가 알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나온 여러분들도 그런 거예요.
* 내가 인간들에 대해서 모르는 게 아니에요. 부모보다도 나라 살리는 길을 떠나려고 한 것이 "나"입니다. 죄가 있다면 나에게 죄가 있어요. 그 아들딸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라가 망한 후에 부모가 있으면 무얼 하고 가정이 있으면 무얼 해요? 잘못하게 되면 부모가 공산당에 끌려가 가지고 학살당하고 피를 뿌리고 죽게 되고 거기에는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공산당을 막기 위해서 부모를 일시는 모른다 하는 자리에 서더라도 부모의 금후의 살 길을 방어하기 위해서 생명을 걸고 나서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아들딸이 잘못했다고 하는 부모는 벌 받아야 돼요.
▣ 1970.7.19(일) 개척자의 사명. 전본부교회.
- 낮 예배 후 하계 전도를 위한 말씀.
032-268 나는 내 부모 형제들을 다 버렸습니다. 내가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어머니도 버렸습니다. 감옥에 찾아와 눈물짓는 어머니를 쫓아 보냈습니다. "나는 김 아무개 여인의 바를 통해 가지고 그 품에 품어 기른 그 아들이 아니니 함부로 나타나지 말라"고 하며 쫓아 보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불효자이지만 천적인 법을 중심 삼아 가지고 보면 부모에게도 처자에게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통일교회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 1972.6.5(월) 중앙수련원. 섭리적 현시점.
- 3차 세계 순회를 마치고 귀국 집회.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식구 집회.
057-345 나는 감옥 문전에 면회 온 어머니를 쫓아 버린 불효자라면 그 이상의 불효자가 없을 정도의 사나이입니다. 어머니가 누군지 모른다는 겁니다. 내가 아무리 감옥에 있어도 공산당 앞에 어머니의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은 사나이입니다.
내가 못할 일을 하고 감옥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구요. "이 돼먹지 않은 여자"라며 그저 벽력 같은 호령을 해 가지고 쫓아 버린 겁니다. 지극히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죽더라도 원수 앞에 조롱거리를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것이 불효예요, 효예요? "하늘의 위신을 두고 볼 때는 나라는 사나이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어머니는 이래야 될 것이 아니요, 죽을 사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아들에게 천륜을 어기지 말라고 권고해 가지고 거기에 박자를 가할 수 있는,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듯이 힘차게 싸우라고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것이 뭐냐"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어려운 입장에 있으면 눈물이 먼저 나오지요? 선생님은 그런 사나이라구요. 여편네를 대해서도 그렇고 자식을 대해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 역사를 지닌 선생님인 것을 알아야 됩니다. 뜻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걸 알아야 되겠어요. 사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6. 더 좋은 것을 해 왔으면 내가 입었을 거예요. 그러면 됐다는 겁니다.
▣ 1988.4.6(수) 한남동. 2세 수습과 고향 복귀.
175-042 처음에 감옥에 올 때는 정성 들여 가지고 좋은 명주 바지저고리 별의별 것 다해 오기에 2차 3차 좀 보자고 생각했어요. 어머니를 시험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옷들을 전부 다 감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줬어요.
나는 펄렁펄렁하니 구멍이 다 뚫어진 옷을 입고 다닌 거예요. 면회 왔을 때도 그 옷을 입고 나갔어요. 그랬더니 "너, 그 옷 어떻게 했니?' 이래요. "나보다 불쌍한 사람 나누어줬소." 이랬더니 돌아가서 울고불고했다는 거예요. 그런 소식을 용기가 와서 알려 주더구만.
"그래, 틀림없이 어머니가 다음에는 무명 바지 해 가지고 오겠지." 하면 점점 나쁜 거 해 와요. 자꾸 다른 사람 주니까 이게 틀렸다는 겁니다. 더 좋은 것을 해 왔으면 내가 입었을 거예요. 그러면 됐다는 겁니다.
7. 차입을 해 주면서 나 혼자 먹으라고 그래요. 나는 굶을지언정 옥중의 사람들을 전부 먹이고 입혔다 이거예요.
▣ 1994.6.9 (목) 참만물의 날. 중앙수련원
261-185 나 매정한 사람입니다. 통곡하는 어머니를 벼락같이 호령한 사나이입니다. "나 문 아무개의 어머니는 이래야 될 것인데 지금 나타난 이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아니오"라고 한 것입니다. 닭똥 같은 눈물이 벼락같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동정하지 않고 "돌아가소!"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이거예요. 옥중에 면회와 가지고 차입을 해 주면서 나 혼자 먹으라고 그래요. 나는 굶을지언정 옥중의 사람들을 전부 먹이고 입혔다 이거예요. 뭐가 나빠? 탕감 복귀를 위해서 가인을 자기 몸보다 사랑할 수 있고 위하고 위하고 전부 다 하늘땅을 위하고 세계를 품어야 할 부모의 자리에 있으면 그 일을 해야 되는데 그게 뭐냐 나쁘냐 이거예요.
그랬기 때문에 옥중에서 하늘이 나를 보호한 거라구요. 사지에서 하늘이 조상들을 시켜서 전도해 가지고 수많은 제자가 있었다구요. 그 사람들의 보호를 거쳐 가지고 악당의 소굴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어요. 하나님이 보호했기 때문에 옥중의 성자라는 이름이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알겠어요? 피살을 에는 그 자리를 극복한 거예요.
8. 거기에 동조하고 후원하고 칭찬하는 부모가 못됐다는 것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 1991.10.13(일) 당당하게 가라. 본부교회.
-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이냐" 말씀 후.
220-035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하고픈 대로 다 해도 문제없었어요. 아버지가 소 팔아 놓은 돈이 그때 돈으로 70원인가. 그때만 해도 백 원 하게 되면 대단했다구요. 어머니 아버지는 그랬어요.
우리 어머니 만해도 내가 흥남 감옥에 있을 때 한 달 동안에 천신만고해 가지고···. 그곳이 1800리 길입니다. 그 길을 경계지대를 넘어 가지고 오려니까 얼마나 검문이 많아요.
어머니가 울고 다니니까 나중에는 동정받아 가지고 잘 오게 됐지만 아들을 위해서 이렇게 살아가는 살아가는 부모 없다. 우리 어머니도 저랬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빨갱이들도 후원한 것입니다. 그 어머니가 와 가지고는 언제나 옛날같이···.
내가 부모님 하라는 것 요만큼도 안 했습니다. "그게 뭐요?" 하고 나무란 것입니다. 어머니는 "너는 내 아들 되지 동네 아들 되지 말아라. 부모가 너를 천신만고 키웠으면 아들로서 부모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 왜 동네가 좋아하고 나라가 좋아하는 걸 하느냐? 그건 나중이다" 이거예요.
나는 그게 틀렸다는 것입니다. 면회 와 가지고 내가 결혼할 때 입던 명주 바지 같은 것 전부 입으라고 갖다 주면 그거 다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 해져 가지고 다리 살이 다 보이는 관복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내복 같은 것도 다 그랬습니다. 그러니 부모의 눈에서 피눈물이 나지요.
그래, 내가 얘기한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동지들은 10년이 되도록 한 번도 면회 온 사람이 없소. 관복도 없어서 꿰매 입고 있소. 빌어 입고 있고. 그 사람들 앞에 명주 바지 입고 편안하게 살면 내 양심이 편하지 않기 때문에 양심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나 그렇게 못하오! 그런 아들이 되기를 바란다면 이 문씨네 가문, 김 씨 후손은 망국 지종이 되는 거요!" 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머니가 썸벅썸벅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목을 놓고 말을 못 했다구요.
그런 어머니를 보고 "야, 내가 불효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그렇지만 내가 불효하지 않았습니다. 가문을 빛내고 더 나아가서는 민족을 빛낼 수 있는 기반을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동조하고 후원하고 칭찬하는 부모가 못됐다는 것이 섭섭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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