心身 善惡 행 불행

양심이란 무엇인가?-9가지.

true2020 2020. 10. 8. 12:07

1) 하나님과 인간의 공동목적,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이 양심이다.

 

▣ 1972.5.14(일) 하나님과 우리 인간. 구리시 교문동 통일동산.

- 야외예배.

 

056-137 우리 인간에게는 부정하려야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란 것이 있습니다. 양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들은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만일 하나님이 있다는 입장에서 보게 될 때 그 하나님은 창조주요 그 하나님이 지은 인간은 피조물인데 그런 피조물과 창조주가 합할 수 있는, 하나의 공동목적을 제시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었다면 그 지어진 인간이 하나님이 바라는 창조의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그 점에 도달할 수 있는 어떤 힘의 작용체를 만들지 않고는 인간을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니 절대자인 하나님과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합할 수 있는 제1의 기반, 접촉할 수 있는 제1의 터전이 반드시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대해서 그 목적하는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끔 우리 인간 가운데 작용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존속시켜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다면 하나님이 바라는 제3의 목적 기준 앞에 도달해서 하나님도 기쁘고 인간도 좋아할 수 있는 자리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절대자인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지을 때 인간을 창조하던 창조목적의 기준과 지음 받은 우리 인간으로서 가야 할 목적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될 수 있는 데에서 하나님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요 인간도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될 때 인간 가운데 절대적인 하나님을 대신해서 그것을 찾아 올라갈 수 있는 무슨 작용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이 없게 되면 도달할 수 없으니 그것을 바라는 힘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끌고 나를 자극시켜 가지고 끌어내어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됩니다. 그 힘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이 부정할 수 없는 양심이라는 것입니다.

 

양심이 작용하는 데는 반드시 어떻게 작용하느냐 하면 높아지기를 바라고 작용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지금 현재의 자기보다 나아져라 나아져라 하고 재촉하는 것입니다. 이 작용만은 부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그냥 그대로 대신 이어받은 것이 양심이다.

 

▣ 1998.3.11(수) 세계화 시대를 이루자. 한남동.

291-183 양심이 뭐냐? 3대 주체사상이라고 그랬지요? 양심이 뭐냐? 하나님의 모든 사랑의 본질을 그냥 그대로 대신 이어받은 것이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부모지요? 하나님은 영원한 참부모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은 스승입니다. 절대적인 선한 스승입니다. 하나님은 주인이에요. 절대적인 주인이에요.

 

그러한 주체 되는 하나님이 대상 되는 인간 앞에 하나님의 주인 될 수 있는 부모 자격, 부모 대신한 것을 나에게 꽂아 준 것이 양심이고 또 최고의 선생을 대신해서 꽂아 준 것이고 천년만년 주인을 대신해서 꽂아 준 것이 양심입니다.

 

3대 주인을 보따리에 넣어 가지고 하나님 자신의 뭐라고 할까 하나의 열매과 같이 심어 준 것이 양심입니다.

 

 

3)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다.

 

▣ 1993.12.29(수) 사명을 자각하라. 국제연수원.

- 일본 교회 책임자. 일본어.

 

252-151 여러분들은 어때요? 정지냐 성장이냐, 어느 쪽이에요? 여러분들 양심에게 물어봐요. 자기 상황은 아무에게도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에요. 자기에 있어서의 모든 일체는 양심이 알고 있다구요. 양심이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거예요. 양심은 하나님 보다도 자기에 대해서 잘 압니다. 하나님조차도 그 양심에게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의 상대적인 전권을 다 주었기 때문에 양심은 누구보다도 자신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辨明이 필요 없어요. 이런 말을 한다고 불평하기보다 자기 양심에게 부끄럽지 않나 물어보라구요. 양심은 여러분을 잘 알고 있지요? 무엇 하나도 숨길 수 없습니다. 잘 알고 있다구요.

 

하나님이 아담 해와가 타락했을 때 타락한 것을 알았다구요.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나무 밑에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이 "너희들 이런 짓해서 숨어 있지?" 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아! 아담아!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은 거예요. 양심은 하나님이 알기 전에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재창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전권을 전수받은 조건 기반입니다.

 

* 그러니까 각자가 개성진리체로서 자기 자신의 양심을 중심으로 제2의 하나님의 입장에 서는 거예요. 제1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상대적인 자리에 있어서 제2의 하나님이지만 자기에 대해서는 제1의 하나님이라구요. 그러니까 따로 기도를 한다든지 할 필요가 없이 자기 양심과 상담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고 인간이 참사랑에 의해서 하나되었다면 양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면 하나님도, 아무것도 상대하지 않아도 좋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상대인 아담, 하나님이 주체요 아담이 상대이기 때문에 주체 상대가 하나되면 다 되는 거예요.

 

종횡이 하나된 경우에는 아담 자체가 하나님과 하나되어 있기 때문에 물어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사랑은 일체권을 이루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주체와 상대가 하나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상대인 아담의 마음이 일치하도록 되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해와는 아담이 플러스, 주체이기 때문에 아담과 하나되면 해와도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1994.3.13(일) 본부교회. 참사랑은 신인 세계 완성의 꽃.

256-201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에요.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 봤어요? 양심을 교육하겠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 양심이 누구냐 하면 내 주인입니다. 스승입니다. 양심은 주인이 되는 겁니다. 양심은 부모로부터 계대를 이은 제2의 부모입니다. 양심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은 부모의 명령을 지킨 이상으로 통과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부모의 부모의 부모보다 앞서는 거예요. 양심은 스승의 가르침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아는 것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렇다면 양심이 자기에 대해서 먼저 알겠어요, 하나님이 자기가 하는 일을 먼저 알겠어요? 양심이 먼저 아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러냐? 하나님의 상대예요. 또 다른 인격이에요.

 

하나님이 먼저 안다고 하게 되면 양심이 하나의 속성이 되기 때문에 부속품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양심은 또 다른 하나님이 될 수 있는 거예요.

 

남자 하나님 앞에 여자 격 하나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인 하나님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대적인 하나님을 완결시킬 수 있는 것이 양심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양심은 하나님의 상대이기 때문에 주체 성격과 다른 겁니다.

 

* 그렇기 때문에 타락하지 않았으면 절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필요 없어요. 하나님은 내 안에 다 있어요. 양심이 다 가려 가지고 명령한다는 거예요.

 

여러분, 신비스러운 경지에 들어가 가지고 영계를 통하게 된다면 마음이 말을 해요. "하나님, 어디 있소?" 하면 "야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배 속에서 얘기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배 속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중심 곳에서 말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의 밭을 개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거예요. 마음이 수직이 서 가지고 수평으로 운동할 수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지의 모든 것을 측정할 수 있는 표준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표준자가 되어야 된다구요. 그러니 모르는 것이 없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이 이러한 모든 미지의 세계를 발견한 것은 그러한 기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벌써 틀리면 찌그러진다구요. 돌려보면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돌려보면 걸린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창조원리에서는 하나님의 95% 창조에 또 다른 5%를 보탬으로 말미암아, 협조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같이 공동 창조주의 자리에 선다는 말이 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우리 일상생활에 양심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인 동시에 나에게 있어서는 제1의 하나님보다도 더 가까운 절대적인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심을 모실 줄 아는 사람은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종교가 필요 없다는, 무종교의 필요성을 이러한 원칙에서 논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도 더 잘알고 나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양심을 갖고 있는데, 하나님 대신 존재인데 종교를 무엇 때문에 믿어요? 양심이 하자는 대로 하면 종교 완성자가 되기 때문에 무사통과입니다.

 

256-203 그래서 양심의 명령에 절대복종할 수 있는 일일 생활을 강구하라 이거예요. 그래, 어때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사기꾼들입니다. 망하는 거라구요.

 

* 양심이 누구냐? 살아 있는 하나님이에요.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사지백체를 중심 삼아 가지고 오관으로 나를 凝視응시하고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 하나님이 완성의 자리에 못 나가서 행차를 못할 뿐이라구요.

 

1994.2.13(일) 벨베디아. 나는 누구였던가.

254-238 그러면 양심은 도대체 뭐냐? 타락할 무렵 양심의 주체는 하나님이었습니다. 플러스가 하나님이었다 이거예요. 사람은 뭐예요? 객체입니다. 마이너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사랑을 중심 삼고 완전히 하나되는 것입니다. 누구같이? 하나님의 몸 마음같이. 이래 가지고 대상적으로 합하면 여기서 하나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은 뭐냐? 이걸 알아야 돼요. 제2의 하나님입니다. 제1하나님이 플러스고 이것은 마이너스로 제2하나님입니다. 제2하나님. 그런 개념을 가져야 됩니다. 마음이 뭐라구요? (제2의 하나님입니다.)

 

제2하나님이 항상 나와 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양심 깊은 곳에, 사랑 생명 혈통 깊은 곳에서 나와 관계 맺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수습하고 다 제거해서 나를 자꾸 높은 자리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연의 양심이 자꾸 올라가는 거라구요. 그 힘이 육신을 주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플러스 마이너스 하나되어 자동적으로 통일되고 완성되는 것입니다.

 

나의 양심은 제2의 하나님이요, 강력한 힘이 언제나 하나의 중심으로 다 주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라는 존재는 왜 이렇게 지어졌느냐? 내가 도대체 무엇이냐? 내가 누구냐 이거예요 내가 누구였던가 하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짝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사랑의 짝이 있어야 사랑을 완성하지 사랑의 짝이 없으면 미완성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남자를 플러스라 하면 여자는 상대인데 남자를 완성시키는 것은 여자입니다. 남자는 참사랑을 중심 삼고 여자가 나와야 완성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주체가 유명한 사람이라도 대상이 없으면 완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구요.

 

그래서 제1하나님, 플러스를 완성시킬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점령하고 하나님의 사랑까지 점령하려는 욕심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점령하면 하나님의 참사랑까지 점령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책임분담 완성입니다. 이게 얼마나 신나는 거예요? 얼마나 놀랍고 자랑스러운지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까 여러분의 마음은, 욕망은 누구나 다 완성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세상에서는 욕심을 다 이루지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인간의 욕심과 욕망은 누구나 다 완성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4) 양심의 하나님의 집이다.

 

▣ 1962.12.10(월) 전본부교회.  양심을 스승 삼고 나가서 싸우라.

- 제14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수료식.

 

012-97 함부로 믿을 수도 없고 배울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잘못 배우면 큰일 납니다. 마음놓고 살 수도 없습니다. 빨갱이와 살다가는 큰일나지 않습니까? 싸움도 잘못 싸웠다가는 큰일납니다. 함부로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의 길은 모든 것을 버리며 가는 길이며 양심을 찾아 나아가는 길입니다. 양심이 무엇을 요구하고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지 이것을 알면 됩니다. 과거에는 양심에 반대되는 것과는 싸울 용기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양심은 무엇이뇨? 하나님께서 믿으실 수 있는 집이요, 하나님께서 같이 사실 수 있는 집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을 수 있는 인간을 기다리십니다.

 

* 오히려 싸우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도 모릅니다. 잘못하면 사탄이 집어가고 맙니다.

 

* 양심적인 사람은 이 세상에는 고충밖에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양심은 선을 찾아가라고 뒤에서 명령하고 있습니다.

 

012-098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은 무엇이냐? 만사를 해결하는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는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대의 중심인 그분과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이요, 마음은 아버지요, 몸은 아들로서 부자가 동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은 아버지 대신, 몸은 아들의 대신이라는 입장에서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령을 받는다 할진대 천하의 누구도 이것을 빼앗지 못합니다.

 

양심의 명령을 받는 것은 아버지로부터 명령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의 소원은 아버지의 소원인 동시에 나의 소원이요, 몸의 소원이요, 만물의 소원인 것입니다. 그러한 양심은 내 몸도, 천지 만물도 모두 좋아합니다.

 

* 소원은 하나의 인연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소원과 내 소원, 즉 양심의 소원, 몸의 소원과 만물의 소원이 하나의 인연 속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내 양심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의 소원도, 몸의 소원도, 만물의 소원도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 영원히 남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소원과 하나님의 사정과 하나님의 심정이요, 내가 남겨 놓아야 할 것도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입니다. 이것이 3대 요건입니다.

 

* 때문에 제일 귀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을 알아 이루어 드리는 사람입니다.

 

* 인간이 하나님의 소원과 사정과 심정과 일치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타락의 원인입니다.

 

* 그렇게 못 되어 있는 것을 되도록 하려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은 복귀요, 복귀는 돌이키는 것입니다. 그것은 처음보다 배 이상 힘이 드는 것입니다.

 

아무렇게나 사는 것은 쉽지만 양심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배 이상 힘이 듭니다. 하물며 천지를 위하여 사시는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힘이 드시겠습니까? 법도대로 하시기에 힘이 드시는 것입니다.

 

5) 종적인 나.

 

▣ 1993.1.1(금) 일본 축복가정의 사명. 국제연수원.

- 일본 간부 및 회원. 일본어.

 

243-027 하나님은 참된 사랑을 중심으로 한 종적인 부모이고 참아버지는 횡적인 부모입니다. 종적인 하나님과 90각도로 일체된 횡적인 아버지입니다.

 

종적인 아버지의 혈통을 계승한 것이 종적인 양심입니다. 양심은 도대체 뭐냐? 종적인 나입니다. 그러면 육신은 뭐냐? 횡적인 나입니다.

 

이것이 창조주인 종적 부모와 사랑의 상대가 되어서 창조이상을 이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체 아담과 해와입니다.

 

실체 아담과 해와가 성숙해 가지고 일체된 결혼식을 하는 것은 아담 속에 있던 하나님이 이성성상의 플러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숙한 해와 속에 하나님의 성상과 형상이 들어가서 하나님과 함께 결혼하는 거예요. 그것이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누구 결혼식이라구요? 하나님의 결혼식입니다.  

 

▣ 1999.9.10(금) 중앙수련원. 삼십절 선포식.

304-114 양심과 육신이 수직과 수평의 관계가 돼 있습니다. 양심은 종적입니다. 그리고 육신은 횡적입니다.

 

6) 종적 부모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혈통적 상속 기준이다.

 

▣ 1989.6.18(일) 한국은 인류의 조국. 본부교회.

190-128 사람에 있어서 양심이 뭐냐? 왜 양심이 있어요? 양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 삼고 종적 부모를 이어받을 수 있는 혈통적 상속 기준이요, 몸뚱이는 뭐냐 하면 90각도가 돼 가지고 그 종적인 참부모 앞에 횡적인 참부모와 사랑으로 일체화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이 두 기준에 보조 맞추기 위한 몸과 마음이 있어요. 몸은 그렇기 때문에 종적인 나 앞에 절대적인 횡적인 수평선을 그릴 수 있는 이 기준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횡적인 나요, 양심은 뭐라구요? 종적이에요.

 

7)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

 

▣ 1991.8.28(수) 세계 평화로 가는 길. 리틀엔젤스 예술회관.

- 세계평화연합 창설대회.

 

219-118 인간의 양심은 하나님을 대표하는 마음입니다. 양심은 나를 위해 존재하지 아니 합니다. 하늘의 의를 위해 존재합니다.

 

양심은 항상 선을 향해 달리려 합니다. 여기에 몸은 반항을 합니다. 몸은 자기만 편하려 하고 이기적이며 본능적 요구에 따라 육욕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양심은 이 몸을 叱責질책하여 마음에 순응케 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항상 피나는 갈등과 투쟁이 한몸 안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고로 역사를 두고 모든 종교는 내 몸을 치는 길을 가르쳤습니다. 종교는 육욕을 제어하고 몸을 마음에 굴복시키는 도장입니다. 종교는 인간을 창조본연의 인간으로 이끌어 가는 道場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 들이지 않고서는 내 몸을 정복할 자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참사랑과 진리의 힘을 중심 삼고 주체되는 마음은 대상되는 몸을 거느리고 하나님과 일체 이상을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종교가 말하는 완성한 인간입니다.

 

8) 양심은 타락한 세상의 땅끝에 선 초소.

 

1968.7.14(일) 전본부교회. 보다 중요한 것.

020-316 여러분의 몸이 사탄의 것이라 할지라도 마음은 하나님을 중심 삼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제일선 초소는 양심이 되는 것이요, 사탄의 제일선은 인간의 몸뚱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哨所(ばんごや 番小屋 checkpoint, guard post, sentry post)하고 사탄의 일선하고 싸우면 번번이 양심이 졌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타락한 세상의 땅끝에 선 초소와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는 사탄 세계의 일선입니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양심이 몸뚱이한테 번번이 졌습니다. 그렇지만 종교의 이념을 중심 삼고 승리의 기반을 넓혀 왔습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세계는 몸뚱이를 위주로 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런 사회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이념이 있어야 합니다. 세계가 달라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1969.1.1(수) 전본부교회. 전면적인 진격을 계속하자.

- 참하나님의 날

 

021-344 양심은 언제나 인간이 나쁜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참소합니다. 또 양심은 나쁜 것을 制止하는 역할을 합니다. 양심은 누구에게나 다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심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미지수입니다. 이 양심은 "나쁜 것은 나쁘고 좋은 것은 좋다"는 두 가지밖에 모릅니다. 잘하면 기뻐하고 못하면 슬퍼하는 것입니다. 양심은 자연 작용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있어서 서로 작용하지 않으면 힘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힘은 혼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힘은 반드시 주체와 대상이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대상이라 할 때, 내가 마음에 나쁘다고 느껴져도 주체가 있어야 되고 좋다고 느껴져도 좋다고 할 수 있는 주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우리 통일교회의 원리에 이성성상이라는 말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노래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춤을 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인생길 또한 무엇을 찾아 나가는 길이냐 하면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 하나님은 현실적인 하나님입니다.

 

9) 하나님의 말.

 

1993.1.5(화) 제주 국제연수원. 참된 나를 찾아서.

252-321 양심은 언제나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여러분의 몸뚱이가 나쁜 일을 할 때 양심이 경고해요, 안 해요? "이놈아, 그런 건 하지 마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하는 말이라는 거예요. 이것이 완성하지 않은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완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사탄을 대해서 명령할 수 있는 자리를 취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사탄이 이걸 위협해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요것을 막아 치워야 됩니다.

 

그러면 도대체 양심은 뭐냐? 양심은 뭐냐 하면 제2의 하나님입니다. 왜 두 번째예요? 하나님이 주체라면 양심은 대상관계에 있습니다. 두 번째는 종적인 것이 아니라 횡적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체와 대등한 가치, 같은 수준에 설 수 있는 자격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체라면 양심은 마이너스입니다. 이 둘이 하나되어야 돼요.

 

1969.1.5(일) 전본부교회. 귀향객.

022-033 먼저 가르쳐 주지 않고 가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그는 원수다. 하나님은 각자의 양심을 통하여 누구에게나 가르쳐 주신다. 우리들은 그 양심을 얼마나 잘 모시고 있는가?

 

양심은 인간이 걸을 때나 먹을 때나 선한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 양심을 벗삼고 주인으로 삼고 그 말을 들어야 한다.

 

양심은 깊은 땅속에서도 작용한다. 하나님도 그렇게 작용하신다.

 

양심은 몸과 결연하지 못하고 고독단신으로 살다가 간다. 양심이 소원성취하여 춤을 추다가 가야겠는데 엉엉 울다가 원귀가 되어 가는 것과 같다.

 

* 주인인 양심을 푸대접하지 말라.

 

* 양심에 가책받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