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乃木 希典 노기 마레스케

true2020 2019. 12. 25. 16:44

▶ 乃木 希典 のぎ まれすけ 1849.12.25~1912.9.13

 

- 러일전쟁(1904.7.30~1905.1.2 ) 때 극동의 난공불락 여순 203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乃木 希典(노기 마레스케) 대장이 최후의 승리를 위해 막대한 희생 (일본제국 9만 명 사상, 러시아 제국 3만 1306명 사상)을 치렀다. 그 신념.

- 자기의 아들을 둘인가? 셋인가?를 다 죽였다.

- 미령산 (203고지의 별칭)

- 메이지 천황이 죽을 때 아내의 목을 자르고, 자기도 할복해 죽었다는 장군이 있다.  

 

* 여순항은 러시아 태평양 함대, 유일한 극동의 부동항

청일전쟁(1894.7.25. 첫 전투 1894. 8.1~1895.4.17)) 때는 단 하루 만에

 

* 일본 제3군 공병대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 폭약을 장착, 보루를 기초 부분부터 파괴하는 전술. 러시아군 항복  

155일간 전투. 13만 명 온전히 살아남은 이가 고작 10명.

 

 

* 長府藩士(山口)

* 幼名無人(なきと)で、その後、源三と改め

* 아들 셋.

 

* 乃木が日本を発つ直前の5月27日、長男の勝典が南山の戦いにおいて戦死した。乃木は、広島で勝典の訃報を聞き、これを東京にいる妻・静子に電報で知らせた。電報には、名誉の戦死を喜べと記載されていたといわれる

 

* 乃木が率いる第3軍は、旅順要塞の攻略であった

 

* 大正元年(1912年)9月13日、乃木は明治天皇大葬が行われた日の午後8時ころ、妻・静子とともに自刃して亡くなった。享年64(満62歳)没。

 

 南山の戦い

* 遼東半島の南山及びその近郊の金州城で行われた、ロシア陸軍日本陸海軍の戦い。

 

* ロシア軍は機関銃などを装備し、南山はある程度要塞化されていたため、半ば塹壕戦、攻城戦となった。日本陸軍第二軍は敵に倍する兵士を擁していたにもかかわらず総兵力の10%を超える兵員を失ってしまった。

 

* 1904年 11月30日、第3回総攻撃に参加していた次男・保典が戦死した。6か月前の5月27日の長男・勝典の戦死直後、保典が所属していた第1師団長の伏見宮貞愛親王は、乃木の息子を二人戦死させては気の毒だろうと考え、保典を師団の衛兵長に抜擢した。乃木父子は困って辞退したが、親王は「予の部下をどのように使おうと自由であり司令官の容喙は受けない」と言い張った。保典の戦死を知った乃木は、「よく戦死してくれた。これで世間に申し訳が立つ」と述べたという

 

* 長男と次男を相次いで亡くした乃木に日本国民は大変同情し、戦後に「一人息子と泣いてはすまぬ、二人なくした人もある」という俗謡が流行するほどだった。なお、乃木は出征前に「父子3人が戦争に行くのだから、誰が先に死んでも棺桶が3つ揃うまでは葬式は出さないように」と夫人の静に言葉を残していた

 

* 明治38年(1905年)1月1日、要塞正面が突破され、予備兵力も無くなり、抵抗は不可能になった旅順要塞司令官アナトーリイ・ステッセリ(ステッセルとも表記されるAnatolii Mikhailovich Stoessel)は、乃木に対し、降伏書を送付した。これを受けて1月2日、戦闘が停止され、旅順要塞は陥落した

 

▶ 203高地

 

* 中国北東部の遼東半島南端に位置する旅順(現在の大連市旅順口区)にある丘陵である。

* 1904 - 1905年日露戦争ではロシア海軍の基地のあった旅順港を巡る日露の争奪戦による激戦地となった場所。

* 海抜203メートル

* 日露戦争において、旅順攻略は必要不可欠になり、日本陸軍第3軍を編成し旅順要塞および旅順艦隊を攻撃した。

 

▣ 1974.5.7(화) 동경 제국호텔. 위하여 존재하는 세계

- 한, 일, 중 저명인사 1700명. 희망의 날 만찬회.

 

072-016 또 나라를 중심 삼고 위하여 존재한다고 하는 원칙을 적용한다면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애국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질문을 받는다면 즉시 답이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일본 역사에 있어서 일본이 제일 칭찬할 수 있는 자는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질문한다면 근세에 있어서는  乃木 大將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는 明治 天皇을 위해서 목숨을 바쳤으며 일본이 일대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자기 생명은 물론 모든 생애를 일본을 위해 바쳤기 때문에 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애국자인 것입니다.

 

 1982.10.3(일) 사탄기지 격파와 천국건설. 본부교회.  

120-054 日露전쟁 때 旅順 203高地라는 곳을  乃木 大將이 점령하기 위해서 막대한 군대, 몇 연대를 희생시켜 나갔다구요. 우군의 사체를 넘고 넘어 가지고 최후의 승리를 표방하기 위해 전 일본 군대에 피해를 입히며 지도하는 입장에 선 乃木 大將의 신념···. 점령하고 마는 거예요. 군사가 없거든 나 혼자라도 점령할 수 있는 길을···. 가다가 죽더라도 비굴하게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 乃木 大將의 지휘 밑에서 극동에 있어서의 難攻不落의 203高地도 킥, 擊破됐다는 거예요. 자기 아들을 둘인가 셋을 다 죽이지 않았어요? 거기서. 

 

 1994.3.17(목) 탕감의 고개를 넘자.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특별수련. 일본어.

 

258-200 일본의 乃木 大將도 그렇지요,  明治天皇 당시 미령산 (203고지의 별칭)이라는 여순의 러시아 군 지하에 터널을 뚫어 폭탄으로 고지를 점령했지만 많은 사람이 죽었어요.

 

그때 乃木 大將도 아들 2명을 잃었는데 천황이 죽을 때 자기 아내의 목을 자르고 자기도 할복해 죽어 갔다는 그러한 장군도 있는데 말이에요, 어때요? 

 

선생님 앞에 해와의 사명을 받았으면 선생님이 여러분의 목을 자르고 할복하겠다면 그것에 찬성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런 각오로 이곳까지 왔습니다. 목숨을 걸고 왔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