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란? - 10가지.

true2020 2019. 9. 26. 12:32

1. 미소는 마음의 꽃이다.

 

1969.11.25(수) 전본부교회. 가정생활의 중요성.

- 밤 예배 후에 하신 말씀.

 

027-085 그리고 언제나 미소를 지어라. 미소는 마음의 꽃이다. 언제나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겨라.

 

2. 선악의 分岐點.

- 마주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다.

 

1972.4.23(일) 동경교회. 메시아와 우리들.

055-046 에덴동산에서 천사장은 아담 해와에게 피해를 주었다. 피해를 먼저 끼친 사람이 악인 것이다. 피해를 입힌 것인 선인가, 악인가? 

 

사람을 보는 데도, 미소를 지으며, 기분 좋은 모습을 하는 그런 모습은 모두가 바라본다. 기분 나쁜 인상을 하면 악이다.

 

그러므로 마주칠 때는 반드시 미소를 지으면서 머리를 숙여야 한다. 이것이 무서운 전법이다. 이것이 선악의 분기점이다.

 

1971.9.26(일) 전본부교회. 경주장에 선 현재의 위치.

048-275 선한 사람이라는 그 기준은 무엇을 가지고 말하느냐 하는 문제를 두고 볼 때, 그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반드시 눈물이 가해져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대할 때에는 웃은 얼굴로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울타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울타리는 울타리인데 무슨 울타리가 되느냐 하면, 구속의 울타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울타리가 되는 것입니다. 

 

* 사람들은 우는 사람보다 웃는 사람을 좋아하고, 성난 사람보다도 웃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것은 전부 다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에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선한 사람이란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에 있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에 있느냐 할 때,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3. 미소짓는 얼굴은 모두 미인 얼굴.

 

1994.3.16(수) 참자신을 찾아라. 중앙수련원.

- 일본 여성 수련.  일본어 번역. 

 

257-258 사랑은 아름다운 꽃 같다구요. 꽃은 아름답다구요. 꽃은 향기롭다구요. 향기로운 꽃은 미래에 대한 씨앗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구요. 상대가 없으면 그 꽃은 지상에 나타날 수 없다구요. 꽃이 혼자 피나요?

 

남녀 모두 청춘기라고 하면 꽃이 막 필 때라구요. 그것은 아름답다구요. 모두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미소 지으니까 모두 미인 얼굴로 보이는군요. 웃는 것은 미인의 얼굴로 만들고 싶어서라구요.

 

웃는 얼굴은 공격할 수 없습니다. 칠 수 없다구요. 특히 어린아이 같은 얼굴…, 어린아이의 아무런 욕망도 없는 순수한 그런 웃는 얼굴에 대해 침을 뱉는 어른은 없다구요.

 

4. 하나님은 웃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1981.5.1(금) 본부교회. 협회 창립 제27주년 

113-105 자,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딸을 품고 노래하고, 그다음에는 뭐요? 춤추고, 웃고, 그다음엔 뭐예요? 노래하고 춤추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웃는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웃을 때도 박자를 맞춰 웃어야지 밤낮없이 웃으면 안 되지요. 그다음에는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노래도 박자를 맞춰야지요. 밤낮없이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노래 좋아하는 사람은 춤을 좋아하고 웃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는 사람은 노래 좋아하고 그래요.

 

5. 무한히 웃음은 공적인 것이다.

 

1970.11.22(일) 전본부교회  전진과 후퇴.

036-108 여러분은 웃을 때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울 때는 사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웃을 때에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6. 자기를 놓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1970.11.22(일) 전본부교회. 전진과 후퇴

036-112 자기 자신을 놓고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눈물 흘릴 줄 모르는 사람이요, 자기를 놓고 웃을 줄 모르는 사람은 상대를 위해서도 웃을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웃었다고 해도 그 웃음은 순수한 웃음이 아니요, 만민에게 필요한 웃음이 아닙니다. 그것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 웃는 웃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7. 슬픔과 기쁨.

-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슬픔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970.11.22(일) 전본부교회  전진과 후퇴.

036-108 울음에는 기쁨으로서 충만될 수 있는 인연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또 기쁨을 느끼면 그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 아니라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슬픔도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항상 기쁨만을 자극시켜 주면 나중에는 기쁨을 못 느끼게 됩니다. 기쁨이 있는 반면 그 기쁨을 자극시킬 수 있는 슬픈 일면도 내재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 빛이 있으면 어두움이 있고 높은 곳이 있으면 낮은 곳이 있는 거와 마찬가지입니다. 기쁨만을 느낄 수 있는 경지는 기쁜 경지가 아닙니다. 그런 경지가 방향을 바꿔 가지고 반대의 현상이 될 때에는 슬픔을 느끼는 것입니다.

 

웃는 모양은 우는 모양과 비슷합니다. 여러분 웃는 모양과 우는 모양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생각해 보세요. 어떤 사람은 웃는 모양이 꼭 우는 것 같습니다. 얼굴 변화를 보면 웃을 때도 눈이 작아지고 얼굴에 주름살이 잡히고 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웃을 때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요, 울 때는 사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웃을 때에는 공적인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옛말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웃는 사람에게 나쁘게 하면 벌받는다는 말이요, 웃음을 반대하는 사람은 용서를 못 받는다는 뜻입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것은 바로 그런 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는 것은 무한히 공적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웃고 계실 것이냐 울고 계실 것이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공적인 분이기 때문에 울고 계셔서는 안 됩니다. 웃고 계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나 입을 벌리고 웃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충만한 웃음을 웃고 계셔야 하는데 까딱 잘못하면 폭소가 벌어질 것이요, 까딱하면 폭소의 반대되는 폭비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슬픈 면을 알게 되면 그 슬픔 앞에서는 내 슬픔은 사라지기 때문에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슬픔이 지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은혜의 자리도 그러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할 때는 눈물 콧물을 흘리고 창자가 끊어지고 숨이 끊어지는 듯한 경지까지 들어가야 됩니다. 이렇게 한바탕 울고 나면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기쁨에 충만해 계시는 반면 무한한 슬픔이 폭발되어 나올 수 있는 안팎으로 두루 충만함을 갖춘 분입니다. 그래서 그 슬픈 일면을 찾아 들어가 끝에 가게 되면 기쁨으로 화하는 것입니다. 또 기쁜 일면을 찾아 들어가게 되면 슬픔의 경계선이 점차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차되어 하나를 이루고 만족을 느낄 때 폭발적인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렇잖아요? 여러분,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부딪치게 되면 어떻습니까? 폭발되지요? 그렇지요? 그러나 뜨거운 것끼리 부딪치면 폭발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조화를 이루며 형성되어 있는 절대적인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은 친구를 원할 때 눈물이 있는 친구를 원합니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울고 찔찔 짜는 그런 친구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물이 있는 반면 웃음이 충만한 사람을 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언제나 찡그린 얼굴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넘치는 희열을 발견할 수 있어야만 되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남이 울 때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복받는 사람입니다. 그런 거예요. 복이라는 것은 영원히 떠나고 싶지 않은 자리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8. 진짜 웃음과 가짜 웃음.

 

1970.12.23(수) 전본부교회. 복귀의 한계점.

037-131 사람이 웃는 데도 가짜 웃음이 있고, 진짜 웃음이 있습니다. 있어요, 없어요?

 

* 말하는 데도 진짜 말 가짜 말이 있어요, 없어요? 행동하는 데도 진짜 행동 가짜 행동이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어떤 것이 진짜고 어떤 것이 가짜냐? 그것을 무엇으로 재느냐?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됩니다. 자기는 손해 보더라도 남을 위주로 하고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진짜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037-133 자기는 손해보더라도 남을 위해서 하는 말은 진짜 말이고 자기는 손해보더라도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하는 행동은 진짜 행동입니다. 나를 희생시키더라도 전체를 위해서 말하는 것은 진짜인 것입니다. 그렇지요? 반대로 나를 위주로 하고 전체를 부정하면서도 나를 위해서 말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진짜와 가짜는 여기에서 구별되는 것입니다.

 

9.  하나님 앞에 플러스되는 웃음과 마이너스되는 웃음이 있다.

 

1971.2.7(일) 전본부교회. 체휼 신앙의 중요성.

040-285 여러분이 방 안에서 웃으면서 이야기를 해도 벌써 느낌이 다 들어옵니다. 이 웃음이 어떤 웃음이냐? 하나님 앞에 플러스되는 웃음이냐, 마이너스되는 웃음이냐? 느낌이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습관화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를 중심 삼고 되어지는 주위의 모든 요건들은 무의미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나를 개발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하나의 교재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활 태도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혼자 있다고 해도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활태도를 중심 삼고 살게 되면 처음 보는 사람이든 안면이 있는 사람이든 누구든지 소홀히 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아무렇게나 대하면 되지 이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든 심정적인 기준을 중심 삼아 체휼적인 환경을 개발하는 놀음을 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사사건건에 있어 틀림없이 효과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기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은 관념적인 신앙이 아니라 실질적인 신앙생활이요,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사는 신앙생활입니다. 

 

이러한 생활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길을 가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만일에 죽음 길을 간다 하더라도 이 죽임이 뜻 앞에 합당한 죽음이냐 아니냐 하는 것을 벌써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는 것도 하나님이 나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마이너스시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냐 하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괴로운 길을 가더라도 그것이 모든 체휼적인 감정에 접해서 가는 길이라면 왠지 든든하고 희망이 솟구치는 것입니다.  

 

2)  하나님 것과 사탄 것으로 전부 갈라야 한다.

 

▣ 1968.6.4(화) 전쟁의 시점. 전본부교회.

- 제21회 전국 전도사 수련회 폐회식.

 

020-153 여러분들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척 보더라도 그것을 하나님 것과 사탄 것으로 전부 갈라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더라도 사탄 편을 통해서 가느냐 하늘 편을 통해서 가느냐, 또 사탄의 일을 남기기 위해 가느냐 하늘의 일을 남기기 위해 가느냐? 어느 한 때, 어느 한 시간이라도, 한 음식을 통해서라도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 플러스될 수 있는 자리에서 분별해야 되겠습니다.  

 

1973.12.30(일) 오늘은 이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벨베디아.

069-259 고생을 했더라도 결과가 하나님 앞에 플러스를 가져와야지 마이너스를 가져오면 암만 고생해도 그건 쓸데없는 거라구요.

 

10. 웃을 때 하늘을 올려보는 것은 "좋은 건 나 혼자 좋지 말고 하나님도 같이 좋읍시다!"

 

1977.6.5(일) 벨베디아. 우리의 자랑.  

093-228 그러면 하나님이 웃는 것은 어떨까요? 어떻게 웃으실까요? 웃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세상 사람들 웃을 때를 보게 되면 세상 사람들이 "하하하하" 하고 웃을 때를 보면 얼굴을 하늘로 울려 본다구요. 그거 왜 그럴까요? "좋은 건 나 혼자 좋지 말고 하나님도 같이 좋읍시다!" 그 말이라는 거라구요. 그건 동양 사람이나 서양 사람이나 마찬가지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