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10.3(일) 천주에 선 예수님. 동경교회.
015-101 우리는 이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로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이 계실진대 그분은 어떤 목적을 갖지 않으실 수 없다.
* 하나님은 사랑의 목적을 가지고 만물을 창조하셨다 제6일째에 이 우주의 중심으로서 목적을 완성할 중심인물로서, 희망의 실체로서, 나날의 생활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할 새활의 개척자로서 그 심정의 기준을 잡아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책임자로서 세우신 것이 우리 선조인 아담 해와라고 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선조를 창조하시고부터 나날의 생활권을 통하여 나의 목적인 희망의 날은 언제인가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으셨다. 그런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목적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을 띠고 있었다.
그리하여 아담을 볼 때에 "아담을 믿고 싶다. 아담에 대해서 무한한 희망을 가지고 싶다. 무한한 애정을 쏟고 싶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입장이었음을 말할 것도 없다.
어린 아담이 성장함에 따라서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그 기준과 희망과 애정은 함께 성장해 가야 할 입장이었고, 이 천주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최고의 목적을 완수하여 하나님의 사랑만을 중심으로 하고 이루어져야 했다.
하나님은 영광의 우주가 되어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하나님이 느끼시는 대로 온 만물이 느낄 수 있는, 나누려고 하여도나눌 수 없는 일치화된 세계를 실현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하루를 맞이하여 아담 해와는 타락하였던 것이다.
타락의 하루를 맞이한 하나님에게는 믿을 수 있는 기대가 없어지고 희망의 기준이 없어지고 사랑할 수 있는 실체가 없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창조 목적은 미완성된 채로 남아지고 말았던 것이다.
타락한 결과 그 자손인 우리 선조 이후 지금까지의 인류는 계속 날이 경과함에 따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하나님이 희망하시는 목적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나님의 희망에 거역하여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기대에 거역하여 하나님이 사랑하실 수 있는 입장으로부터 도망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러니 그대로 나두면 안 된다.
이렇게 된 동기는 물론 사람에게 있지만 최대의 동기는 사람을 유혹한 사탄에게 있다. 때문에 여기에서 하나님은 원수인 사탄을 물리치고 본연의 목적을 복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복귀 과정에 있어서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하나님은 그 간격을 메우기 위해 거기에 비례하는 수고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희생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한 수고를 사람 자신이 하는 입장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015-121 여러분은 최초로 어디에서 증명서를 받아올 것인가. "나는 이렇게 되었다. 이런 일을 했다. 이것이 승리의 증명서이다"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증명서 말이다. 그런 증명서를 자기 자신이 쓸 수는 없다. 그럼 누가 쓰느냐? 처음에는 사탄이 쓴다. 하나님은 쓸 수가 없다. 사탄으로 부터 그 승리의 증명서를 써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래서 3년 공생애 노정의 출발 때에 40일간 사탄을 불러내서 증명서를 써 받는 싸움을 하셨다. 그것이 3대 시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먼저 사탄에게 증명서를 써 받고 나서 예수님의 증명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에 하나님의 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이 세 가지의 증명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 예배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싸움하는 때다. 단독 결판하는 때인 것이다. 그런데 잠을 자? 그런 자가 있으면 흔들어 깨워라. "사탄이 물러가라" 하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하셨듯이 옆구리에 한방 때려 넣어라.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선생님은 예배 때 자는 자가 있으면 그냥 두지 않는다.
015-124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여러분의 얼굴보다도 여러분이 가는 길이다. 여러분의 가는 길이 그리운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워하셨던 것은 예수님 자체보다도 ㅇ예수님이 가시는 길이었다.
* 기독교는 십자가를 통한 것이 아니고 부활을 통한 것이다. 십자가는 슬픔의 조건이다. 만약 부활이 없었더라면 기독교의 시작은 있을 수 없다.
선생님은 세계를 일주할 때에 많은 십자가를 보면서 내 사명은 그 모든 십자가를 없애 버리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재확인하였다. 자식을 통하여서라도 없애 버릴 것이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도리가 아니로 부활의 도리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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