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

선생님의 성격 - 동네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밤잠을 못 잤다구요.

true2020 2019. 3. 11. 14:34

1974.5.5(일) 전본부교회.

동네에 굶는 사람이 있으면 밤잠을 못 잤다구요. 어떻게 하든지, 동냥을 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한테 떼거지를 써 가지고 쌀을 갖다 주고서 밥 먹는다는 소문을 듣고서야 잠을 잤어요. 

  

1972.6.6(화) 중앙수련원. 서울, 경기, 강원, 충청 식구 합동집회

058-082 옛날에는 동네에서 우리 집이 잘 살았다구요. 동네의 못 먹고 못 사는 친구들이 도시락으로 조밥이나 보리밥을 싸 가지고 와서 먹으면 그걸 보고 내 밥을 그냥 못 먹습니다. 바꿔 가지고 먹으면 먹었지···. 

 

* 또 친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파 가지고, 병원에 갈 돈이 없을 때는 선생님이 어머니 아버지한테 가서 눈물을 흘리면서 아무개 집 우리 동무 어머니 아버지가 병원에 가게 돈을 내라고 합니다. "낼 거예요, 안 낼 거예요?" 해 가지고 내지 않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한테 "나 돈 쓸 데가 있어 어떤 어떤 물건을 갖다 팔 테니 그런 줄 아십시오."라고 선포하는 겁니다. 그게 잊혀지지 않아요. 그때 나이가 11살쯤 됐으니 지금 효진이만 할 때입니다. 

 

* 그때 쌀 大斗(열 되들이 말) 한 말을 팔아서 누구를 도와주겠다고 아버지한테 선포를 했습니다. 아버지 몰래 쌀을 한 말 짊어지고 20리 길을 걸어가던 생각이 지금도 납니다. 그걸 들고 가는 데 새끼나 무슨 땃줄이 있어야지, 그냥 지고 가는데 이것이 말예요, 마음이 벌렁벌렁 하는데, 가슴이 얼마나 뛰는지 수없이 "헉헉"합디다. 그것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일생 동안 잊혀지지 않을 거예요. 그 모든 것이 뜻을 위해 갈 수 있는 입장에 선 거예요.

 

* 그렇게 동네에 어려운 친구들이 있으면 도와준 것입니다. 또 동네에서 돈이나 좀 있는 사람이 어려운 사람을 업신여기면, 내가 대가리가 두 쪽이 나도 싸워 주는 거예요. 그래서 싸움도 도매 싸움을 많이 했습니다. 누가 맞서질 않아요. 그걸 보면 내가 악착같다면 악착같다는 거예요. 그건 나쁜 의미에서 악착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 내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그걸 보면 하나님이 참 지혜로운 분이에요. "어쩌면 그렇게 잘 택했느냐"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은 한번 한다고 했으면, 열 번에 안 되더라도 해 내고야 맙니다. 죽기 전에는 절대 손을 놓지 않아요. 그런 성미라구요. 내가 한번 한다고 맹세하고 난 후에는, 깨깨 망하고 찌그러져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건 하는 거예요. 그런 성미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오늘날 이 복귀 역사를 책임졌다고 보는 거예요. 싫어도 하는 거예요. 좋으면 더 좋아하고, 싫어도 하는 거라구요. 이래 가지고 지금까지 끈질기게 나온 거예요. 하여간 선생님의 가죽이 질기다구.

 

* 또 성격으로 말하면 불같은 성격이 있습니다. 뭘 잘못하게 되면, 그걸 보고, 일 분도 못 참습니다. 당장에 해결 짓지 않고는 못 견디는 성미입니다. 그렇지만 통일교회 선생이 되는 바람에 그 성질 다 삭여 낸다구요. 내가 모듬매를 맞는 자리에 들어가도, 눈만 껌뻑껌뻑하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의 주먹은 작지만, 한 대 치면 굴러 떨어져 나갑니다. 알겠어요? 그런 비상한 재간도 있습니다. 내가 운동도 못하는 운동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에요.

 

1972.5.10(수) 중앙수련원.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 여러분들이 전도하는 데에 있어서 골라 가지고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선생님은 천성이 그래서도 그랬겠지만, 겨울에 떨고 지나가는 거지를 보고 들어 와서는 밥을 못 먹고, 잠을 못 잤습니다. 그런 성격이 있어요. 엄마 아빠한테 그 거지를 안방에 데려다가 잘 먹여 보내자고…, 그런 바탕이 하늘이 사랑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니겠느냐?

 

* 동네에서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만 들리면 못 들었으면 몰라도 듣기만 하면, 밤잠을 못 잔다구요. 어떻게 도와줄까. 그래서 어머니한테 얘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머니 아버지도 "너는 뭐 동네 사람까지 전부 다 먹여 살릴래?" 그런다구요. 그럴 때에는 내가 어머니 아버지 몰래 쌀독에서 쌀을 퍼다가도 주었어요. 이것이 나쁜 일이에요, 좋은 일이에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나쁘냐? 어머니가 나쁘다는 거예요.

 

* 또 내가 떡을 좋아했습니다. 떡을 자꾸 해 달라고 하니까, 어머니는 뭐라고 하느냐 하면, 농사도 지어야 되고, 아들딸 시집 장가도 보내려면 옷감도 만들어야 되고 하니, 바쁘다고 하는 거예요. 쉴 새 없이 바쁜 어머니예요. 그런데 자꾸 먹을 것을 해달라고 하니까, 쉬운 것, 팥 범벅 떡, 시루떡을 합니다. 이 떡은 겨울에는 없다구요. 큰 시루에다 떡을 해 놓게 되면, 그것이 사흘이 못 가요. 전부 다 나누어 준다구요. 이런 마음….

 

* 동네에 걱정이 있으면 잠을 못 자는 거예요. 그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되면 하늘이 그러한 심정을 지도하지 않았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70년까지 협회 본부에서는누구든지 지나가다 배고픈 사람은 밥 먹고 가라고 한 것입니다. 밥 먹는 사람을 쳐다보고 "너 왜 밥 먹어"라고 하는 사람이 안 되려고 하면서, 지금까지 나온 사람입니다.

 

*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은 인간의 도리입니다. 쌀독에 쌀을 두고 있으면서도, 지나가는 배고픈 사람이 밥을 얻어먹는다고 해서 打撲하면 그 집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 선조로부터 그런 교육을 받아 온 거예요. 절대 문전에서 먹는 것 때문에 怨望하고 돌아서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랬습니다. 거지들이 오면, 자기 밥상을 그냥 갖다 주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랬어요. 많은 손님을 대접했습니다.

 

* 20리 안팎에서 지나가던 사람이 동네 사람들에게 하룻밤 자자고 하면, "저 아무 곳에 가면 문 아무개 집이 있으니, 거기에 가서 자소" 하는 것입니다. 팔도강산의 많은 사람들에게 밥을 먹여 주었어요. 더욱이 전라남북도 사람들은 우리 집에서 밥을 많이 얻어먹고 갔습니다.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할 것 없이, 만주로 피난 갈 때는 다 그랬습니다.  

 

▣ 1987.5.1 (금). 본부교회.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 협회 창립 33주년.

 

163-157 자라면서 그랬다구요. 동네에서 못 먹고 사는 사람이 있으면 선포하는 겁니다. 시골에 가면 떡을 잘하지요? 궁금하면(출출하여 무엇이 먹고 싶다.) 떡을 합니다. 그것도 먹을 것이 있어야 떡을 하지 떡이나 해 먹어요? 죽도 못 쑤어 먹는 판국인데.

 

그렇기 때문에 떡만 하는 날에는 3분의 1일 나 줘요 하는 거예요. 미리 어머니에게 떡하는 날에는 절반 이상 없어질 줄 알아요 하고 통고를 하는 겁니다. "어디에 갖다 숨겨 놓든디 들추어 가지고 절반 이상 내가 먹을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먹든 나쁜 일을 하지 않을 테니 설명 그만두라구요." 하면서 가지고 나옵니다.

 

시골 가게 되면 등나무가 있습니다. 거기에 떡을 갖다 놓으면 고양이가 올라가 전부 먹으니까 겨울 같은 때는 시루떡을 갖다가 거기에 척 재워 놓고 주위에 있는 동네 아이들을 전부 나누어 줍니다. 그런 놀음을 했다구요.

 

누가 못살아 밥을 굶는다면 못 견딥니다. 뭐 생겨나기를 그렇게 생겨났으니까 할 수 없어요. 어디서 밥을 못 먹었다면 밤잠을 못 자는 거예요. 이웃 동네에 그런 소문만 돌아도···.

 

그렇기 때문에 이런 놀음을 하는 거예요. 밤잠을 못 자고 어떻게 하든지 쇠로 잠근 곳간을 열고라도 전부 다 밤에 날라다 주는 겁니다. 이미 통고한 겁니다. "쌀이 없어졌거든 내가 가져간 줄 아세요." 이미 통고한 거예요. 뭐 이러고저러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때 가서 "이 망나니 같은 망할 자식, 이 망할 자식! 그러지 말고 쌀이 없어졌으면 내가 알아서 했으니까 ···. 나쁜 일은 하지 않소." 하고 통고하고 가져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