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남평 문씨 - 조상의 유언이 뭐냐? "팔도 사람을 먹이고도 부족하다고 하면 그 이상의 축복이 머무는 것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true2020 2019. 3. 6. 12:14

▣ 1974.2.9(토) 우리들의 움직임과 영적 진로. 중앙수련원.

070-166 그러므로 자기를 찾아온 사람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하나 도와주려고 하고 점심이라도 먹여 보내려고 하고 무엇이라도 하나 줘 보내려는 마음을 가져야 큰 집이 될 것입니다. 그래 선생님이 통일교회 들어와서 밥을 달라면 절대 밥을 먹여 주고 식당에서 한 15년 동안 누구든지 와 밥 먹고 가라, 이렇게 했다구요. 거지도 와서 밥 먹고 가라고 했다구요.

 

우리 선조로부터 교훈이 그거라구요. "팔도강산 사람을 밥 먹여 주면 팔도강산 축복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게 우리 증조부 때부터의 유언인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팔도강산 사람들을 밥을 참 많이 해 먹였다구요. 만주로 이민 가는 사람들 전부 다 우리 집에 와서···. 사랑채 한 방에는 언제나 7, 8명은 들어와서 우글거린다구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그걸 볼 때 전라도하고 경상도에 통일교회가 잘될 것이다 보는 게 선생님의 관이라구요. 왜? 우리 밥을 많이 얻어먹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그렇게 생각한다구요. 그 팔도강산의 복을 받는 데는 사실이 그렇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 후손은 망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그래, 선생님도 그러한 전통 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냐. 그렇잖아요?

 

 1978.10.22(일) 가정교회 활동에 대하여. 중앙수련원.

- 777가정 축복 8주년 총회.

 

100-299 선생님의 집안에는 하나의 유언이 있다구요. 자고로 내려오는 격언이 있다구요. 그건 뭐냐 하면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절대 배고프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알기로 할아버지 때도 추운 겨울에 거지가 와서 "동냥 왔습니다. 아침밥 얻어먹으러 왔습니다." 할 때 벌써 세 마디만 들먹이게 된다면 우리 할아버지한테 큰일나는 겁니다. 당장에 자기 상부터 갖다 줘요.

 

평안도 가면 말이에요, 상이 놋 쟁반으로 돼 있다구요. 놋쟁반 알아요? 놋그릇으로 만든 상이 있다구요. 먹다 말고 그걸 몽땅 들고 나와 가지고 대번에 내다 주는 거예요. 이래 가지고 들어와서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싸우는 걸 내가 많이 봤다구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여러분이 거지돼 보라구요. 추운 겨울 남의 문전에 가서 밥 달라는 말하기가 쉬워요? 밥 한 그릇 몇 푼 하느냐 이겁니다. 그 몇천 배 어려운 길을 다 가는 것은 생명에 속하기 때문에 하늘 앞에 불효, 천벌 지은 인간이 하늘 아래서 불충을 남기고 죽을 수가 없으니 그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인간이 알아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싸움하는 것을 많이 봤다구요. 밥 더디게 갖다 준다고···. 이래 놓으면 할머니가 기분 나쁘니까 할아버지한테 "차라리 지나가는 동냥 거지가 되면 좋겠소. 여편네가 귀해요, 거지가 귀해요?" 한다구요. 여편네가 귀하냐, 거지가 귀하냐? 자손만대를 생각할 때는 여편네가 귀하다는 거라구요. 그러나 당장은 거지가 여편네보다도···.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도 그렇습니다. 할아버지로부터 그 유언, 가문의 법도 아래서 ···. 절대 세 마디 이상 듣기 전에 갖다 줘야 했던 것입니다. 안 그러는 날에는 아버지도 상을 그냥 가지고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성격이 남자 같았다구요. 거지가 왔다 간 다음에는 싸움이 벌어진다구요. 그걸 하나님이 볼 때 퍽 귀하게 본 모양이지요. 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남 때문에 부부가 싸워요. 남 도와주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도와줄 것 도와주지 않는다고, 안 도와준다고···.

 

* 아무리 밥이 없고 굶어 죽거나 굶고 살더라도 따뜻한 밥 한 끼 있게 되면 동네 사람과 나눠 먹을 줄 알아야 됩니다. 그 동네 천 사람이 살면 몇십 배 몇만 배로 나눠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된다구요. 그러면 그 동네 사람들이 복을 비는 것입니다. 내가 굶게 되면 한밤중에 쌀가마니를 말없이 누가 갖다 주는 일이 벌어집니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1983.5.5(목) 축복가정이 가야 할 본질적 사랑의 길. 중앙수련원. 

- 제13회 기성가정 총회. 

 

127-084 내가 우리 집 얘기 하나 할게요. 우리 집에 증조부가 이사 오시어서 그때부터 그곳에 살기 시작했는데 집에 가훈이 있어요. 가훈이 있다 이거예요. 그 말씀인즉 뭐냐 하면 "팔도강산을 그리워하면서 팔도강산의 귀한 손님이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오는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해라. 지나가는 손님들을 정성껏 대접해라. 그럼 팔도강산의 복이 우리 문중에 찾아든다" 이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오는 손님이 가지 손님, 전라도 사람이 거지 모양으로 왔더라도 거지 대접을 해서는 안 된다 이거예요. 그 배후에 무엇이 달렸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지극 정성으로 대접해서 보내면 후대에 복이 온다, 삼천리강토를 찾아오는 복이기 때문에 그 복은 그러한 터전 위에서 만나게 되고 그 터전을 통해서 삼천리 반도에 복이 찾아오고 그 복을 받았으니 또 삼천리 반도를 넘어서 세계에 나누어 줄 수 있는 복이 몰려온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가운이에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는 겨울에 거지 같은 양반들이 오게 되면 밥상 받다가 그냥 붙잡아 갖다 모시고 그랬어요. 거 지금도 생생하다구요. 지금도 생생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집안에서 나 같은 사람이 태어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해요. 알겠어요?

 

 

▣ 1986.1.19(일) 나의 감사. 본부교회. 

138-124 우리 조상들도 그래요. 우리 할아버지, 종조부도 옛날 왜정 때 팔도강산에서 만주로 피난 가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일본이 한국 땅을 전부 다 뽑아 가지고 인본인을 거주시키기 위해서 동양척식회사라는 착취회사를 만들어 가지고 땅을 빼앗았어요. 그래서 땅을 팔고 북만주로 이주해 가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우리 집이 국도 가까이에 있었는데 한 40리 안팎의 사람들은 말이에요, 지내가는 손님 오게 되면 그들에게 "저기 가게 되면 아무 골에 문 씨 문중이 있는데 그 집은 밤에 가더라도 쫓아내지 않고 밥도 먹여 주고, 재워 보내기 거기로 가라"고 하는 거예요. 

 

이래 놓으니 우리 사랑방은 얼룩덜룩한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늙은이 젊은이, 뭐 별의별 패거리들이 다 들렀다 갔어요. 조상의 유언이 뭐냐? "팔도 사람을 먹이고도 부족하다고 하면 그 이상의 축복이 머무는 것이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사람을 밥 먹이겠다고 하는 사람이라야 왕이 된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먹이고 입히겠다고 하는 그런 왕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불쌍한 사람, 배고픈 사람, 밥 먹여 줬다고 벌 받는 그런 종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 같은 양반들은 말이에요, 겨울날 아침 같은 때에 거지가 와서 "아이구 지나가는 사람인데 아침에 들렀습니다." 하게 되면 벌써 상을 떠억 잡고 있는 거예요. 뭐 마누라가 움직이지 않으면 들고나가는 거예요. 

 

138-127 나도 그런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세계 사람들 밥을 많이 먹였습니다. 

 

▣ 1987.5.1(금) 남북통일의 기수가 되자. 한남동.

- 교구장, 도지부장, 대학기관 간부.

 

163-230 대한민국 팔도강산을 자기 이웃 마을과 같이 생각하고, 큰댁과 같이 생각하는 거예요. 어디든지 지나가다가 문 씨 집에 오게 되면 밥을 대접하게 돼 있다구요. 이건 어느 누구든지, 처음 보는 사람이든 누구든 배고파하는 사람은 절대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 거예요. 이것이 선생님 가문의 전통입니다.   

 

겨울에 평안도는 추워요. 보통 영하 17도 위로는 안 올라갑니다. 영하 25도까지 내려간다구요. 그런데 거지들이 와서 있으면…. 연자 방앗간(매의 하나. 일반 맷돌보다 수십 배나 크고, 사람 대신 소나 말이 돌리게 되어 능률도 그만큼 높다.)이 있는데 싸라기 나가지 말라고 요만한 구멍 하나 내고 전부 다 막는다구요. 

 

겨울에는 숯불을 담은 조그만 거 하나 놓으면 거기는 아주 온돌방보다 더 뜨겁다구요. 그 연자 방앗간이 우리 것인데 언제나 한 두 녀석은 거기에 정주하는 거예요. 오지 말라고 해도…. 세상천지를 암만 돌아다녀봐도 이 집만큼 밥 주는 곳이 없으니 할 수 없이 온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하고 거지하고 친했다구. 그러다 한 번은 "이놈의 간나 거지, 오지 말라니까 와!" 이래 가지고 전부 쫓아낸 재미있는 일화도 있어요.

 

병신 부처가 있었는데 그중 남편은 눈이 안 보이고, 여자는 말을 잘 못하는 반 벙어리에 절름발이예요. 이 부부가 얼마나 의가 좋은지 소경 남편을 끌고 다니면서 동냥해 먹고, 부처끼리 그야말로 그렇게 재미있게 사는 거예요.

 

우리 할아버지 때에도 그랬고, 이게 3대를 거쳐 빌어먹으려고 그러거든. 그러니까 아버지 대, 2대 때까지도 그러니까 내가 가만 보니 안 되겠거든요. 그래서 왜 자꾸 여기 와서 그러느냐 하면서 쫓아냈어요. 이름이 뭐냐 하면 윤금석이에요. 이름도 안 잊어버렸다구요. 그 거지 이름이 윤금석인데, 내가 그랬다구요.

 

내가 철이 들어 가지고 지방으로 떠났다가 고향에 돌아오니까, 겨울에 말이에요, 그 거지도 저 먼 데 가서 빌어먹다가 자기가 정든 우리 집 연자 방앗간을 찾아오다가 우리 마음 한 2킬로미터 앞에서 얼어 죽었다는 거예요. 내가 그 말을 들으니까 얼마나 섬뜩한지…. 내가 학교 다니면서 매일 같이 윤금석이 죽은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그러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밥을 먹였습니다. 아버지도 거지들이 밥 달라고 하면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상을 그저 그대로 갖다 주는 거예요. 매번 그러니 어머니 싫다고 그러시면서 말이에요, 거지들에게 밥 주면서 싸움도 여러 번 하는 것을 봤다구.

 

아무리 정성껏 새로 밥 지어서 드려도 물어보지도 않고 거지에게 밥상을 들고나가서 갖다 주니 말이에요. 밖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한 5분만 있으면 밥을 갖다 줄 텐데도 이건 뭐 밥 달라는 소리가 나자마자···. 거지들을 떨게 한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뜨거운 국을 마시겠느냐" 하면서 상 채로 갖다 줬다구요. 그렇게 지낸 집안이었다구요.

 

163-232 팔도강산 모든 사람에게 밥을 먹여 준 그런 문중에서 태어난 선생님은 또 세계 만국의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밥을 해 먹였어요? 임자네들도 여기 와서 밥 먹지요? 미국 이스트가든, 벨베디아 어디든 세계 사람이 오게 되면 전부 밥을 먹고 산다구요.

 

밥을 먹고는 말이에요, 인사도 안 하고 간다구요. 그랬으니 망할 줄 알았지만 망하지 않고 문 씨 성이 세계에 이름났다고. 그것도 다 하나님이 보우하사! 하나님은 반드시 그런 사람들 편에 서는 것입니다. 그럴 만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문 씨 종친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다구요. 문 씨 종장으로서 여러분 통일교회 간부들에게 지령을 내리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잘 대접해야 된다구. 찬밥밖에 없으면 그거라도 불에 데워서 뜨겁게 했다는 조건을 세워 가지고 대접하라 이거예요. 찬밥을 그냥 대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문 씨가 여러분 조상들, 친척들을 먹였다구요.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들이 전부 많이 얻어먹고 갔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름이 났다구요. 20리 안팎에는 거지가 가게 되면 "문 아무개네 집에 찾아가소" 이럴 정도로 이름난 집이었다 그거예요. 그게 선생님 고향 집이었다구요.

 

그런 놀음을 하다 보니, 가문에서 나 같은 사람이 나와 가지고 세계를 살리는 운동을 벌여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선한 일을 계속해서 하는 족속은 망하지 않습니다. 망하지 않아요. 그건 우리 가문을 통해서 전부 증명된 사실입니다.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도 그렇게 살아야 됩니다. 돈이 많고 남아서 그런 게 아녜요. 먹고 남아 가지고 한 것이 아닙니다. 먹지 않고 굶으면서 한 것입니다. 못살면서도 그렇게 한 거예요. 

 

▣ 1987.10.31(토) 한남동.

- 2세 36가정과 부모 특별집회. 

 

169-220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손님을 待接할 수 있는 準備를 해야 돼요. 부모님을 대신해서 그런 준비를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 방도 있어야 되고 언제나 부모님을 모심으로 구원을 얻는다 이거예요. 그런데 부모님이 안 오니 손님을 부모님 대신 모시겠다는 거예요. 

 

* 그러한 뜻에서 손님을 하나님 같이, 부모님 같이 모셔라 그거예요. 알겠어요? 그런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169-221 선생님 가정도 그래요. 부모로부터 우리 가정의 특별한 전통은 배고픈 사람에게 밥 먹여 주고 집 없는 사람에게 쉬어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倭政 末期에는 전라도 경상도가 참 어려웠다구요. 일본이 東洋拓殖會社라는 것을 만들어서 抵當을 잡게 해 가지고 농촌 땅을 빼앗는 놀음이 벌어졌어요.

 

그래서 만주로 많이 갔는데 그렇게 가는 사람들 중 참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을 거쳐갔다구요. 전라도 사람이 제일 많았고 그다음에 경상도 사람이 많았어요. 참 많이 거쳐갔다구요.

 

그때 우리 할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버지가 자기들이 아침을 못 먹고 저녁을 못 먹더라도 손님이 오면 먹이고 재워 보냈다구요. 거지가 왔는데 며느리나 딸들이 밥을 안 내다 주면 먹던 밥상을 그냥 그대로 갖다 주는 것입니다. 거지라고 해서 박대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사람은 같이 사랑해야 된다는 그러한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건 놀라운 거예요. 그런 전통이 있는 가문이었기 때문에 선생님 같은 사람이 태어났다고 보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팔도강산을 놓고 볼 때, 우리 가정에서 밥 먹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는 거예요.    

 

 1908년에 일본 한국 경제를 獨占ㆍ搾取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책 회사. 주로 토지 강점, 강매하여 높은 비율의 小作料(다른 사람의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은 대가로 지주에게 치르는 사용료)를 徵收하고 많은 糧穀 일본으로 반출하다가, 1917년부터 본점 일본 도쿄 옮기고 동양 각지 사업 확대하였으나, 일본 제2 세계 대전 패전하면서  닫았다.

 

※ 척식 拓殖: 국외의 영토나 미개지를 개척하여 자국민의 이주와 정착을 정책적으로 촉진함.

 

▣ 1991.10.28(월) 이상가정을 향한 건전결혼. 창원교회.

222-073 그렇기 때문에 희생한 사람 뒤에는 비석이 찾아오고, 열녀문이 찾아오고, 효자 효녀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뒤에는 충신 열녀가 찾아오고, 세계를 위해 희생한 뒤에는 성인이 찾아오고, 하늘땅을 위해 희생한 뒤에는 성자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222-076 문 총재는 그걸 알았기 때문에 세계를 위해서 희생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내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수십만의 사람에게 밥을 먹여 주고, 물을 먹여 주었습니다. 우리 집에 들어오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밥 먹고 지냈습니다. 그게 우리 집안의 가훈입니다.

 

선생님의 증조할아버지가 훈시하기를 "팔도강산의 배고픈 사람을 먹여 주면 먹여 준 만큼 팔도강산의 복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나왔지요.

 

그렇지만 내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한테는 버선 한 짝 안 사다 줬습니다. 그게 불효자예요, 효자예요? 불효자지요. 그러나 불효의 잘못을 전부 다 부모가 용서하여 충신이 됐다 할 때는 어떨까? 옛날에 불효한 것을 다 탕감, 청산하고 내가 충신의 자리에 갔다 할 때는 어떨까?

 

▣ 1999.3.2(화) 제주국제연수원. 전국지도자 특별수련회.

300-134 또 우리 집 가훈이 그래요.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주인인 어머니 아버지가 못 먹더라도 그 밥상을 갖다가 먹이는 것이 우리 집안의 가훈이에요. 그런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 내가 세계 사람들, 많은 사람들을 밥을 먹이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지나가던 사람들이 집에 들어와서 밥 먹는다고 해도 묻지 않아요. 거지도 들어와서 옷을 갈아입고 얼마든지 밥을 먹을 수 있게끔 문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서도 그렇고, 남미에 가서도 그래요. 일생 동안 그렇게 산 것입니다. 

 

경상도 전라도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요? 일본이 동척(동양척식주식회사)를 통해 가지고 일본 사람을 이전시키기 위해 정책적으로 전라도 땅, 경상도 땅을 빼앗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그 땅의 사람들은 전부 다 만주로 보내는 거예요. 그곳이 제일 가까우니까. 가는 데 차비가 있어요? 걸어가야 됩니다. 남부여대男負女戴(남자는 지고 여자는 인다는 뜻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곳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님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 해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집이 국도에서 한 2리밖에 안 돼요. 그래, 국도를 찾는 사람이 "첫날 자는 곳은 아무개 집이다" 하고 소문이 났어요. 10리 안팎으로 해서 거지든 누구든 지나가는 사람은 우리 집에 다 들어와요. 그래서 사랑방에서는 언제나 열 명 이상이 밥을 먹고 갔어요. 게다가 여비도 없다고 하면 불쌍하다고 여비까지 주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후덕한 사람입니다. 남자 같은 양반이고 말이에요. 아주 무서운 성격인데 며느리 노릇은 잘했지요. 시아버지가 명령해서 밥을 새벽부터 해 주고, 아침에 떠나겠다고 하면 거기에 맞춰 가지고 새벽밥을 해 준 거예요. 일생 동안 그렇게 살았어요. 불평도 하지 못하고 말입니다. 

 

내가 어머니의 본을 많이 받았어요. 그렇게 했는데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거예요. 갈 때는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하고 편지를 하겠다고 하고, 소식을 전하겠다고 했지만, 편지는 하나도 안 와요. 그런 것을 보고는  "세상에 돕는 일만 하는 것도 좋지 않은 거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다 비판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