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눈물. 1978.3.1(수) 미국.

true2020 2018. 9. 14. 16:42

▣1978.3.1(수) 미국.  슬픔과 눈물

097-081 오늘 아침의 말씀은 슬픔과 눈물이 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슬픔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고 눈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마는 인간 생활에 있어서나 오늘의 역시대에 있어서는 그런 일들이 많은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슬픈 날을 먼저 보기 위한 것이냐 기쁜 날을 먼저 보기 위한 것이냐, 이렇게 묻게 될 때는 그건 두말할 것 없이 "기쁜 날을 먼저 보기 위한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를 보게 된다면 첫째 날 둘째 날…, 여섯째 날까지 지은 모든 물건에 대해서 "선하라"고 명령을 한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람을 지어 놓고도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했습니다. 좋다는 말은 슬픔을 초월한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의 시작도 기쁨으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기에 창조의 결실도 기쁨으로 결실되어야 할 것이 인류 창조의 목적이 아니겠느냐.


시작에서부터 기쁨으로 시작하여 과정도 전부 다 기쁨으로 거치고 기쁜 결과를 바라면서 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 하나에 모든 것이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니 인간이 기쁨으로 완성된다면 이 역사는 창조 역사도 그렇지만 인류 역사의 모든 것은 기쁨의 연속의 날이 아닐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쁨 가운데 지어졌던 인간의 일생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에덴 동산에서 어린 아담 해와가 기쁜 하나님을 대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환경에서 자라던 아담 해와가 슬픈 날을 맞이하였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비참한 역사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보게 된다면 이 천지를 창조한 역사의 주인인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면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첫 번째 주인도 하나님인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영원한 이상을 세운 그 하나님의 기쁨은 변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게 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시대에 있어서 기쁨의 주인도 하나님이 되어 있지마는 타락 사건을 맞이한 그날부터 슬픔을 처음 느낀 분도 하나님이 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이 땅, 혹은 이 우주 가운데서 눈물을 먼저 흘린 분이 누구겠느냐? 타락한 아담 해와일 것이냐 하나님일 것이냐? 하나님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슬픔도 하나님이 먼저 느꼈고, 눈물도 하나님이 먼저 흘렸을 것이다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097-105 여러분들, 슬픔 Sadness를 좋아해요? 지금까지 슬픔이 나쁜 것인 줄 알았다구요. 그거 올바른 관념이에요 안 좋은 관념이에요?


여러분들이 슬픔 가운데서 인류를 위하고 여러분이 슬픔 가운데서 하늘을 위하는 것이 가장 좋다 이겁니다.


그거, 왜 그러냐 이거예요? 하나님을 친구 만들고 하나님을 내 아버지 만들려니 그 방법밖에 없다 이겁니다. 


미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뭐예요? 알래스카의 맨켄리이지? 아무리 높은 산이라 하더라도 안 되고 그것이 전부 다 다이아몬드라고 하더라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슬픔과 눈물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것 같아요? 


왜 하나님은 그래야 되느냐? 왜 그것으로 점령당하느냐? 슬픈 사람의 事情은 슬픈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슬픔과 눈물에 찬 하나님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이 경지를….


하나님께서는 아들딸을 잃어버린 데 있어서 최고의 슬픔을 느끼는 분이라는 걸 인정해야 됩니다. 그거 인정해요?


그렇다면 슬퍼하는 것도 하나님이 제일이고, 눈물 흘리는 것도 하나님이 제일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돼요. 


그렇게 슬픈 하나님인데 그 하나님을 위로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이상 비참을 당하고 그 이상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 내가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당신이 그럴 수 있습니까?" 해야만 그때서야 하나님의 귀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거 이해돼요? 


하나님 자신을 위해 주는 데 있어서 너무 위해 주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 정도까지…. 그런 생각 안 해요? 


아담 해와가 타락했으니 인류 역사시대에 있어서의 아담 해와 이상의 입장에 서 가지고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해 주면 그 하나님 자신이 눈물을 지으면서 감사할 수 있는 길이 아니고는 복귀가 불가능합니다


세계를 걸고 인류를 걸고 하나님이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한 장면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 인류구원을 완성하겠다는 이념은 허사입니다. 그게 진리인 것입니다.  이제 알겠지요? 


097-105 메시아는 어떤 사람이어야 되느냐? 그는 이 땅에 와 가지고 하나님보다도 인류를 위해 더 슬퍼하고 더 고통을 받고 더 눈물을 흘릴 것을 생애의 목적으로 하고 자기 일생의 갈 길로 정하여 그러한 길을 걸어 왔고 걸어 갈 것이라는 그런 것이 없다면 그는 메시아가 아닙니다. 아니다 이거예요. 


기도할 적에는 "아이고, 내 고생이 슬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고생이 슬프고 내 어려움이 슬픈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어려움이 더 슬프거늘, 나는 당신의 협조 없어도 홀로 하나님을 협조 수 있는 자가 되겠다" 하며 몸부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메시아 후보자로서 자격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구요. 


선생님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구해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구해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나 구해 주는 것 필요 없습니다. 내 힘으로 하겠습니다" 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결국에는 후보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거 레버런 문의 생각이 아니라 알아 보니 그렇더라 이거예요. 


097-107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구요. 한 집이 망하는 것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에요, 이 한 집을 위해 일생 동안 죽을 고생을 해도 십 년 이십 년이 걸려도 못 구하기가 일쑤인 것이 세상사인데 그 어떻게 복귀섭리의 실패한 역사를 일대에 한번 해 보자는 말을 하고 해 보겠다고 미친듯이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미친 녀석이지요. 그런 일일수록 불가능한 일이 많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그래, 선생님은 무슨 마음도 없는 줄 알아요? 느끼지 못하는 줄 알아요? 더 예민하다구요. 더 예민해요. 그럴 적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위로해야지….


나는 건재해 있다구요. 나를 위해서 염려하지 말라구요. 나는 하나님의 슬픔을 생각한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통일교회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영계를 통하는 사람이 레버런 문 대해서 "통일교회 레버런 문이 어떤 사람이요?" 하면 사흘 안 통곡이 벌어진다구요. 통일교회 역사나 레버런 문을 알려면 눈물 없이는 안 됩니다. 눈물을 흘린 사람만이 알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길을 내가 택하느냐? 어째서 나를 따르는 사람을 이렇게 끌고 가야 되느냐? 이것은 하늘도 기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갈 수 있는 제일 직통의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