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노정

1963.10.4. 재단법인 허가. -3가지.

true2020 2018. 5. 30. 15:14

▣ 1963.10.17(목) 역사적 부활실체가 되자. 부산교회.

- 1955.7.4.~ 1955.10.4.서울 중부경찰서 구속.

 

013-069 선생님은 출옥한지 12년 만에 재단 허가가 났다.

 

* 1963.7.24. 124쌍 합동 축복결혼식.

* 1963.10.4. 재단법인 허가.

* 1964.7.15. 일본 통일교회 종교법인 인증. 7.16 설립.

* 1968.1.13. 국제승공연합 창립.

 

1. 기독교와 싸워 승리한 형으로 등록 허가

 

▣ 1963.10.23(수) 세계 통일과 식구의 사명.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울대리.

013-097 우리 교회가 반대하는 기독교와 싸워 승리한 형으로 등록 허가가 난 것이다. 미국에서도 등록이 되었으니 이제는 사위기대를 중심하여 본연의 기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2. 승공 활동의 실적.

 

1968.1.1(월) 전면적인 진격을 하자. 전본부교회.

- 참하나님의 날.

 

019-141 우리는 1963년도 말기에도 문교부와 싸웠습니다. 그때 정부에 종교단체 등록을 신청했었는데 통일교회의 등록 허가 신청을 문교부에서 却下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 것을 우리는 불과 일주일 만에 뒤집어엎었습니다. 

 

그때 이미 일본에서는 종교법인 인가를 받아냈고 미국에서도 이미 등록을 마쳤고 독일에서도 이미 등록을 한 뒤였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문교부에 알려진 것입니다. 또 그때 우리는 그야말로 이 민족을 대신하여 생명을 걸어 놓고 지방에서 계몽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실적 앞에는 큰소리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승공 활동이 자리를 잡았지만 처음에는 얼마나 비웃음을 받았습니까? 반공연맹이 있는데 통일교회가 무슨 승공 활동이냐고 비웃었습니다. 세계의 절반을 삼킨 공산당이 얼마나 무서운데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벌거숭이 몸을 해 가지고 무얼 하겠느냐고 비웃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리석긴 누가 어리석은가 두고 보자고 했습니다. 결국 만 2년도 안 되어 경찰국장이 우리를 찾아오고 도지사가 공문을 보내어 우리를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 1975.12.28(일) 역사적인 시점을 사수하자. 전본부교회.

081-216 내가 사실은 지금 박정희 대통령 때문에 욕을 참 많이 먹고 있는 거예요. 뭐 KCIA 앞잡이라고. 내가 한국 중앙정보부의 앞잡이예요? 그렇지만 내가 이 나라의 국민이 됐기 때문에 그분이 그 자리에 없다면 모르지만 있는 한은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지고 나로 말미암아 그분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내가 그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나는 야당도 하는 사람이라구요. 공정한 입장에서 국운을 중심 삼고 백년대계의 運命, 역사적인 민족의 운명을 바라보는 사나이기 때문에 그러한 대국적인 경지에서 숱한 욕을 먹었다구요.

 

한국 중앙정보부의 앞잡이라고 일본의 공산당지 赤旗가 그런다구요? JCIA, KCIA의 앞잡이가 되어서 뭐 어떻고 지금까지···. 그래 가지고 요즘에는 내가 국제공산당으로 몰려 버렸어요. 반공 운동하지 않았으면 큰일날 뻔했다구요. 지금까지 그랬다구요. 

 

081-217 혁명정부가 나와 가지고 문교부의 양반이 통일교회의 등록 문제를 중심 삼고 심사하게 될 때 통일교회 문 선생은 이북에서 세뇌를 당해 가지고 재침투한, 가상적인 기독교 이론을 만들어 가지고 민주 세계에 침략을 위한 선봉에 선 간첩 1호, 국제 간첩단의 아시아 책임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부르며 할 노릇 다 해 봤다구요. 

 

보라구요. 내 레테르가 얼마나 많아요. "국제공산당, 민족반역자, 이단자, 또 뭐 발가벗고 춤추는 괴수, 음란 패, 무슨 사기꾼, 뭐가 어떻고, 뭐 참 많다구요. 그 이름만 팔아먹어도 내가 밑천을 빼고도 남을 것 같다구요.     

 

 

3. 세계 5개국이 먼저 등록. 

 

▣ 1971.1.16(토) 통일식구의 사명. 부산교회.  

040-059 대한민국에 우리 단체를 등록하려고 했으나 등록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는 이미 세계 5개국의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을 마친 때였습니다. 이렇게 세계적인 판도가 되었으니 결국 등록 허가를 내주지 않은 우리나라가 창피하게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국가를 상대로 싸워 가지고 대한민국 국가 입장에서 등록 거부라고 공고했던 것을 일주일 이내에 철회하게 하는 운동도 내가 시켰습니다.

 

▣ 1972.11.13(월) 하나님이 원하는 세계. 대구교육회관.

- 제4차 세계순회 환송기념.

 

065-055 우리는 핍박을 받으면서도 터를 닦았습니다. 당당하다 이겁니다. 문교부에서 통일교회의 등록을 취소했다가 일주일 이내에 전부 다 번복하는 일이 벌어진 것은 왜 그랬느냐? 

 

미국 정부에 등록을 하고, 각국에, 5대 강국 선진국가에 벌써 등록을 했었다구요. 이래 가지고 다른 나라에 등록을 한 복사본을 들이댄 거예요. "대한민국이 지금 이게 뭐냐, 때가 지금 어떤 때인데?" 그래 가지고 문교부하고 내무부하고 싸움이 벌어졌다구요.

 

"옛날 책상에서 보고받아 통일교회 반대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이렇게 내무부에 들이대 가지고서 싸움이 벌어진 거예요. 그것은 다 내가 생명을 걸고 명령을 한 거예요. "싸워라! 정의의 때가 왔으니 싸워라!"고 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