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정 심령 통일 용서

창조의 심정, 타락의 심정. 복귀의 심정.

true2020 2018. 5. 1. 16:29

▣ 1964,10.3(토) 하늘의 용사. 대구교회.

014-173 방금 부른 노래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하늘의 용사입니다. 하늘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나라의 충신이 되려면 군왕의 심정을 알아야 되고 부모 앞에 효자가 되려면 아버지 어머니의 심정을 알아야 되듯이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전의 심정과 창조 당시의 심정 또한 창조 이후 인간이 타락할 때의 슬픈 심정과 그 슬픈 심정을 품으시고 복귀 역사를 엮어 나오시는 복귀의 심정 그리고 복귀된 이후의 세계를 소망하시는 그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예수 믿고, 천당 간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천당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믿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저 믿는 것입니까? 나라를 저버리고 세계를 저버린 가운데서 믿을 것인가?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이겁니다. 이건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그저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요? 염불하는 것도 믿는 것입니까?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고 하면 대답 못하고 낑낑거립니다.

 

믿는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는 데는 어느 정도까지 믿어야 되느냐?  하나님의 심정 뒷골목까지, 하나님의 소원 끄트머리까지 믿어야 됩니다. 믿음이란 그저 할 수 없이 하는 놀음이 아니에요.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을 보고 "내가 네 아버지니 믿어라" 하는 것 봤습니까? 불량배에게 "내가 정녕 네 아버지이니 나를 믿어 믿어라" 한다고 해서 그 불량배가 믿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처량합니까? 자기 아들딸을 보고 "나를 믿으라"고 하시는 하나님이니 얼마나 처량해요.

 

14-175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데는 어떻게 믿어야 되느냐? 개인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고 가정을 대하는 하나님의 사정은 어떻고 종족 민족 국가 세계를 대하는 하나님의 事情은 어떻고 사탄을 대해 싸우시는 하나님의 心情은 어떤지 또 하나님의 所願은 무엇인지 알고 믿어야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누가 그걸 알았습니까?

 

예수 믿고 천국 간다고요?

 

* 그렇게 안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영계에 가 보니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지상에서 잘 믿었다는 한국 목사들을 영계에 가서 일부러 만나 보려고 했으나 어디 있는지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알아보니 먼 곳에 가 있었습니다. 천국 가 보려면 가 보라는 것입니다.

 

통일교회에 입교한 여러분들은 기성교인들이 천국 가는 길이라고 믿고 나가는 그런 길을 가려 해서는 안 됩니다. 천국은 그렇게 간단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영계를 샅샅이 뒤져봐도 그렇게 안 되어 있어요. 

 

우리는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부터 알아야 합니다. 풀 한 포기에서부 터 만물을 지으셨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겠습니까?  피조물 하나하나를 지으실 때마다 그 정성 위에 소생하는 만물을 보시고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그 심정, 창조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됩니다. 신학 서적을 찾아보십시오, 이런 내용이 있는지. 세계의 신학 서적을 전부 다 봐도 없을 것입니다. 

 

*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심정은 길고 크고 깊습니다. 창세 전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세 당시의 하나님의 심정과 창세 이후 아담 해와가 타락할 때의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가슴에 얼마나 큰 못을 박았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셨는가를 알아야 됩니다. 또 세계 복귀노정을 걸어오시면서 얼마나 애절한 심정을 갖고 찾아오시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귀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당신의 아들딸들을 처참한 죽음의 고비로 몰아 넣으시면서 참고 가라고 권고하시던 하나님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했겠는가를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최후의 하나의 중심 존재를 통하여 이 죄악 세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정적인 한을 해원해 드려야만 뜻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온종일 들어다 보십시오. 이러한 내용이 있나. 하나님의 심정이 있나 보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날에는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기도하라고 했잖아요.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심정이란 인류가 공히 바라는 소망의 심정이요, 만민이 인연 맺지 않으면 안 될 심정이요, 하나님이 지금까지 찾아오시는 심정입니다. 그 영역에 있어서는 천지를 전부 다 포괄할 수도 있고, 전체를 감싸고도 남을 수 있는 심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의 용사가 되려면 첫째로 이 심정을 통하여야 됩니다.    

 


1. 창조의 심정- 소망의 심정.

 

▣ 1960.4.3(일) 너희는 누구의 아들딸인가. 전본부교회.

009-018 그러면 여러분은 보여지는 자연을 품고 기뻐한 적이 있었습니까? 산수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인간이여, 이것을 보소서. 하늘이여, 당신의 창조의 묘미가 놀랍소이다!"라고 해 본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다 할진대 여러분은 절망권내에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써 탄식이 생겼는데 그 탄식은 인간에게서 그친 것이 아니라 천상과 지상의 온 피조만물에게 미쳤다고. 옳은 말씀입니다.

 

▣ 1960.4.10(일)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시려는 복귀역사. 전본부교회.

009-049 우리의 선조 아담 해와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서 자라났고 하나님의 지성 지대 하신 사랑의 심정 밑에서 키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라는 모습이 귀엽고 사는 환경이 자유스러웠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니지 못한 것이 있었나니 그것이 무엇이었느뇨? 허락하여 주신 만물이 없었던 것도 아니요, 심부름꾼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아담 해와가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있는 심정의 인연을 맺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한이에요. 

 

* 심정의 모든 가치를 노래하기 위하여 지으셨던 아담 해와, 그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기쁨과 소망의 심정으로 자라는 그들을 보고 즐거워하시던 하나님, "따먹지 말라"는 엄중한 계명을 세워 놓으시고 때를 바라보며 참아 나오시던 하나님의 소망의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였는가를 아담 해와는 몰랐습니다.

 

자신들을 대해 얼마나 고대하시고 얼마나 쓰다듬어 주고 싶어 하시는지를 이들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움직이는 그 모습을 귀여워해 주고 쓰다듬어 주고 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셨지만 하나님은 세우신 법도의 한 기준을 완성할 때까지는 기간을 두고 "따먹지 말라"는 조건을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아담 해와가 이러한 하나님의 심정을 알았던들 타락의 인연을 맺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유린하고 천사장과 관계를 맺어 버림으로써 하늘 세계 앞에 용서받지 못하고 추방당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타락한 조상, 타락한 부모인 아담 해와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담 해와를 바라볼 적마다 소망의 心情이 불타올랐고 그들을  볼 적마다 그들이 자아 완성하여 행복한 생활을 할 것을 생각하시며 행복의 感情이 불타올랐고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그들 자신이 지은 것처럼 주관하고 즐거워하며 쓰다듬어 줄 것을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의 심정은 아담 해와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다 끊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선조가 저끄러 놓은 죄상 중에 용납받지 못할 죄상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2. 타락의 심정

 

▣ 1960.5.22(일) 찾아오시는 아버지. 전본부교회.

009-203 하나님은 왜 아담 해와를 이토록 귀한 존재로 지으셨겠습니까? 심부름시키기 위하여? 아닙니다. 심부름시키기 위해서는 천사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위하여 지으셨겠습니까? 아들딸 만들기 위하여 지으셨습니다. "나는 아버지요, 너희들은 내 아들딸이니 너희가 슬프면 내가 슬프고 너희가 기쁘면 나도 기쁘다" 할 수 있는 관계로 지으신 것입니다.

 

* 아버지 된 입장에 계시는 하나님이 아버지 노릇 해 봤습니까? 못해 봤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담아! 내 사랑하는 해와야! 너는 내 아들이고 너는 내 딸이로구나! 천지가 변할지언정 내가 너를 사랑하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누가 부정할쏘냐" 할 수 있는 자리를 바라고, 고대하였는데, 그때를 맞지 못한 채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다시 복귀하자는 것입니다. 다시 찾자는 것입니다.

 

▣  1959.10. 11(일) 사랑하는 자녀를 내세우려는 하나님의 수고. 전본부교회.  

007-292 여러분들은 아담 해와가 타락했다는 것을 그저 막연히 듣고 있습니다. 내용이 희미하고, 들은 것이 희미합니다. 거기에 대한 아무런 심정의 반응도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아담 해와가 타락하는 그 순간, 하나님의 심정은 터질 듯, 찢어질 듯, 미칠 듯하였습니다. 자기의 처신을 잊어버릴 만큼 혼돈된 아버님의 모습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생각해 보았습니까? 

 

땅 위의 타락한 인간들도. 사랑하는 자식이 죽어 가는 것을 바라보게 될 때는 뼛골이 녹아짐을 느끼며 자기가 대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식을 살리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거늘 타락의 길을 밟아 사망선으로 넘어가는 아담 해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했겠느냐? 그 마음을 알지 않으면 인간은 도저히 하나님의 아들딸이 될 수 없습니다.

 

* 인간이 타락된 후에 하나님 속에 맺혀진 怨恨의 心情, 그 심정을 해원하기 위해서 6천 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오늘 이 시간까지도 하나님은 쉬임 없이 허덕이고 계시는 것입니다.

 

* 허덕이다あえぐ、苦しむ.もがく

 

 ▣ 1969.10.14(화) 여지없이 투신하는 여러분이 돼라. 야외 종묘.

- 이북 출감 19주년과 서대문형무소 출감 14주년 합동 기념예배.

 

026-010 하나님에게 있어서 역사과정에서 제일 슬펐던 일은 아담 해와의 타락이었습니다. 그다음 슬펐던 일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3. 복귀의 심정- 탕감의 심정. 부활의 심정.

 

▣ 1971.5.6(목) 우리가 가야 할 길. 중앙수련원. 축복가정부인 전도대원 수련회.

044-142 누가 여러분을 죽게 하더라도 마음은 요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식이 죽더라도 세상 사람들같이 울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 그 법도를 세워야 됩니다. 알겠어요? 세상과 같아서는 안 됩니다. 달라야 됩니다. 최후에 가서는 나를 이겨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지금까지 "우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는 표어를 걸고 나왔습니다. 나를 이기는 것이 힘들다는 것입니다. 먼저는 내 몸뚱이를 이기기가 힘들고 그다음에는 자기의 사랑의 대상, 사랑하는 사람을 중심 삼고 이기기가 힘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중심 삼고 볼 때 어떤 자리에 계시느냐? 영광의 자리에 계셔야 할 하나님이 고통의 자리에 계시는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죽어도 못 할 일입니다. 그렇잖아요? 영광의 하나님이 무슨 하나님이 됐습니까? 고통의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누구 때문에? 우리들 때문에.

 

고통의 인간이 영광의 인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탕감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야야, 이젠 그만둬라" 하면서 우리를 말려줄 수 있는 그런 자리까지 나가야 효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인연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감복귀의 심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귀의 심정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통일교회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 1960.4.10(일)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시려는 복귀 역사. 전본부교회.

009-049 그러나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왜? 본래 인간을 지으실 때, 永遠의 基準인 원리적인 법도에 의하여 지으신 연고로 그 기준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아담 해와를 저버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였으나 그들을 저버리게 되면 6일간 지으신 전 피조세계의 원칙을 저버리는 동시에 영원의 기준까지 저버리지 않으면 안 될 입장이 되고 영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의 실존까지 침해당할 수밖에 없는 입장에 서기 때문에 이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담 해와를 다시 한번 구원하는 섭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