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김일성과 그의 가계

true2020 2018. 1. 31. 11:59

▣ 김일성의 가계.

 

부 : 김형직 金亨稷 (1894년 양력 7월 10일 ~ 1926년 양력 6월 5일)

모 : 강반석 康盤石 (1892년 음력 4월 11일 ~ 1932년 양력 7월 31일)

  • 동생 : 김철주(金哲柱, 1916년 6월 12일 ~ 1935년 6월 14일)
  • 동생 : 김영주(金英柱, 1920년 ~ ) 일본제국 육군 관동군의 통역관.


* 첫째 배우자 한성희(?~?)
* 둘째 배우자 김정숙金正淑 (1917.12.24 ~ 1949.9.22, 항일 유격대원·공산주의 운동가)

 

- 장남  김정일 金正日 (1942.2.16 ~2011.12.17) 첫째 며느리 홍일천 1966 결혼, 1968년 惠敬이라는 딸을 낳았다. 3년 후에 이혼.
둘째 며느리 성해림 (1937~2002.5 모스크바에서 죽었다.)

- 손자 : 김정남 (1971.5.10~2017.2.13)

 

셋째 며느리 김영숙  1974년 결혼.

- 손녀 김설송 金雪松(1974~)

- 손녀 김춘송 金春松

 

넷째 며느리 고용희 高容姬 (1953~2004)

- 손자 김정철(1981~)

- 손자 김정은(1984~)

- 손녀 김여정 金汝貞 (1987~)

 

다섯째 며느리 김옥 金玉 (1964~)

- 차남 김만일(1944~?)

 

- 장녀 김경희(1946.2.6~)

사위 장성택(1946.5.30~2013.12.12)

 

* 셋째 배우자 홍영숙(1923~?)

 

* 넷째 배우자 김성애(1929~2014)

 

* 다섯째 배우자 제갈 씨 (주석궁의 안마사)

 

* 여섯째 배우자 김송죽

 

 

▶ 여성 편력 의혹

* 김일성의 공식 아내는 김정숙과 김성애이다. 그 밖에 김정숙을 만나기 전 한성희(1914년생)와 사실혼 관계였고, 그 밖에 여러 여성과 관계를 가졌다. 주석궁의 안마사 출신 제갈씨 여성에게서 1971년에 서자 김현을 보기도 했다. 그러나 김현은 뒤에 김정일에 의해 처형당하고 말았다.
* 아내 김정숙이 임신 중일 때 김성애와 불륜관계에 있었고, 김정숙이 출산할 때는 현장에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김일성의 정열적인 여성편력으로 김정숙의 개인적 고민이 발생하였다.
* 특히 북조선 주둔 소련군 노마니꼬부 사령부 타자수로 있던 15년 연하인 김성애에 대한 김일성의 이성적 접근은 김일성 조강지처의 지위마저 위협할 정도였다.
* 김정숙은 홀로 다섯째 아이를 출산하다가 사망하는데, 공식 사인은 하혈과 과로 등으로 알려져 있으나 김일성의 외도에 병이 심해져 죽었다는 설과, 임신 중 풍을 맞고 죽었다는 설이 나돌기도 했다.
* 김성애의 존재는 김정숙 사후 15여 년이 지나서야 공개되었다.
* 조선중앙연감’에 실린 북한 여맹 대회기록을 보면 북조선 민주여성동맹 1차, 2차 대회는 명시가 되어 있지 않다가 3차 대회부터 조금 언급이 있기 시작한 것이 4차 대회에 이르러서는 대회 보고문까지 실릴 정도로 여성문제가 뚜렷하게 부각이 된다.
* 소녀의 치마를 들쳐올리거나 치마 속을 바라보는 행동을 반복하기도 하였다. 로리콘(로리타 콤플렉스) 기질이 있었다고도 한다.

 

 

▶ 김일성(金日成, 1912년 4월 15일 ~ 1994년 7월 8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독립운동가, 군인, 정치인. 만주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 조선혁명군, 반일 인민유격대 (그 후 조선인민 혁명군으로 개편) 등을 조직했다. 해방 후 조선공산당북조선로동당의 지도자로 활동하였고, 남북로동당 통합 이후 조선로동당의 위원장이 되었다.

* 1948년 2월 김일성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정규군인 조선인민군으로 발전시켰다.

 

* 1948년 2월 조선인민군 창설과 동시에 그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취임하였고 '김일성 장군'으로 불렸다.

 

* 1948년 2월 국기를 태극기에서 인공기로 교체하는 교체식에 참석하였다.
*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내각수상에 선출되었다. 국가 강령인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강령'을 발표한다. 이 강령의 내용은 남녀평등과 선거권 실시, 무상교육제도(북조선에서는 11년 무상교육제를 뜻한다.) 실시와 무상의료제도 실시, 친일파·지주 청산과 토지개혁 실시, 자원의 공동 생산과 공동 소유를 주장하고 있다.
* 1949년 3월 박헌영과 소련을 방문, 소련 최고 인민회의를 참관하고 돌아왔다.
* 1949년 남북 조선로동당을 합당하여 조선로동당을 결성하여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되었다. 하지만, 김일성은 공식적인 공화국 수립이 선포되기 이전에, 북조선에 이미 노동당을 통한 사실상의 일당 정권을 수립하였고, 조선 철도 경비대 등의 창건을 통해 군사적인 기반도 마련한 상태였다. 이는 이 시기까지 혼란에 휩싸였던 남한의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여러 정치적 세력과 정당의 공존을 수용하였던 남한과는 달리 소련의 강력한 지원을 기반으로 한 북반부 단독정부 수립이 사실상 남한의 정부 수립 훨씬 이전부터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 1949년 6월 30일 북남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들의 합동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선거되었다.
* 1948년 9월부터 1972년 12월까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내각 국무총리를 지냈고, 1972년 12월 15일부터 1994년 7월 8일까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제3대·4대 국가원수를 역임하였다. 한국 전쟁 중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인민군을 지휘, 한국 전쟁 휴전 후에는 정적 숙청으로 권력기반을 강화하였다.
* 1966년 10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14차 전원 회의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선출되었고 1970년에 진행된 제5차 전당대회와 1980년 10월에의 6차 전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로 또다시 재선되었다. 동시에 조선노동당 군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했다.
* 1970년에는 사회주의헌법을 채택하고 1972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수반인 주석직에 피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