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방일영. 조선일보가 이북에서 왔지요? 동창생이에요.

true2020 2017. 9. 22. 15:14

▶ 1992.12.11(금) 한남동. 원리책을 가지고 교육하라. 한국지도자.

240-078 우리 신문사가 조선일보하고 원수고, 기독교하고 원수라고 했지요? 기독교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사탄편에 서 있다구요. 그래야 되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잖아요? 죽인 그 피를 봐야만 끝나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그것을 다 넘어가야 하는 거라구요. 지금이 그래요.


* 우리 신문사(세계일보)와 조선일보가 이북에서 왔지요? 동창생이에요. 조선일보의 사장이 방일영(方一榮, 1923년 11월 26일 ~ 2003년 8월 8일, 평안북도 박천군)이에요. 방일영의 할아버지를 우리 할아버지가 상대도 안 한 패입니다. 鑛山을 해먹던 패들이라구요. 우리 할아버지는 양반이니까 상대를 안 하지요. 그래서인지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들이 괜히 나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가인입니다. 알겠어요? 내가 자기들의 뿌리까지 흔들려면 흔들 수 있다구요. 그 집의 일족을 내가 세밀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얘기도 안 해요. 알면서도 얘기를 안 한다구요.


▶ 방일영, 그 녀석 우리 고등학교 동문이야. 정주 보통학교지, 문 사장? 1989.6.17(토) 한남동. 지도자와 실천력.


방일영.

* 1923년 11월 26일 평안북도 박천군 가산변 동문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방재윤은 방응곤의 아들이었으나, 아들이 없던 삼촌 방응모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 경성제일고보(경기중학교 전신)를 거쳐 일본으로 유학 중앙대학 예과를 졸업한 뒤 1943년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1999년 이사 고문직을 사임할 때까지 55여 년 동안 조선일보에 몸담아 왔다.


* 1945년 11월 23일 조선일보가 복간된 뒤인 1950년 7월  방응모 전사장이 납북되자 같은 해 10월17일 취체역(이사)에 선임됐고 한국 전쟁 이후 피난했다가 휴전 후 귀환, 1954년 31살의 젊은 나이로 조선일보의 대표 취체역에 취임해 경영권을 잡았다.


* 방응모 사후 몰락한 조선일보를 다시 일으켰다. 한독당원에 김구의 노선을 추종한 방응모는 야당 인사로 분류되었고, 한국전쟁으로 납북되어 사망하면서 조선일보는 몰락했으나 그는 내분을 수습하고 다시 회사를 일으켜 세웠다.


* 1964년 11월15일 회장에 취임 


* 조선일보 전 사주 방응모의 손자이자, 이후 조선일보 회장을 지낸 방우영의 형이다. 첫째 아들 방상훈은 2006년 현재 조선일보 대표이사이며, 둘째 아들 방용훈코리아나 호텔 대표이사이다. 제3공화국, 4공화국 당시 밤의 대통령, 밤의 황제이라는 별칭이 있다.



'간증·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인철 "섭외, 그 외길을 돌아보며"  (0) 2017.10.17
프레이저 의원 Donald MacKay Fraser  (0) 2017.10.13
공자 B.C. 551 ~ B.C. 479  (0) 2017.09.15
엄덕문 선생 -12가지.   (0) 2017.09.14
선덕여왕  (0) 2017.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