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熱意가 없는 努力은 中斷되기 쉬운 것입니다.
2. 努力에 앞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熱意입니다.
3. 熱意가 없으면 刺戟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4. 熱意를 誘發시킬 수 있는 그 動機는 무엇이냐? 純粹해야 합니다.
5. 거기에는 그리움이 앞서야 되고 懇切함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 1970.11.22(일) 전진과 후퇴. 전본부교회.
036-097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지된 현재의 입장에 그냥 있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모습을 지니기 위해 노력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의 모습을 變貌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努力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熱意가 필요합니다. 熱意가 문제가 됩니다. 熱意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무엇보다도 熱意가 문제가 됩니다.
目的을 정해 놓고 그 누가 말하지 않더라도 가야 할 것을 아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努力에 앞서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熱意입니다. 열의에 찬 노력, 이것이야말로 현재 입장을 變貌시키는 중요한 요인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의가 있어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의는 상대적인 열의이기보다는 자주적인 열의이어야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熱意에 찬 사람이 무한한 세계를 추구하고 빛날 수 있는 인생의 가치를 추구하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登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환경을 제압할 수 있고 얼마나 현재의 고착된 입장을 파타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여러분 자신에게 사무쳐 하나님이 필요로 하는 열의로 나타나게 될 때에는 그것이 여러분이 생각하지도 못 했던 제3의 목적에 도달하는 거리를 단축시킬 수 있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러한 熱意를 가진 사람을 동경憧憬하는 것입니다. 熱意를 가지고 直行하려는 사람은 그 앞길에 冒險이 加重되어 오더라도 그것을 打破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熱意가 없는 努力은 中斷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진을 바라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내 자체가 어떻게 영속적으로 전진을 지속시킬 수 있는 열의를 보급받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熱意가 없으면 刺戟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熱意가 없는 刺戟은 필요 없는 것입니다. 강한 자극이라는 것은 강한 熱意에 의해 인연 되어진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될 때 熱意에 찬 환경, 熱意에 찬 개체, 熱意에 찬 상대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인격, 무한한 인격을 추구하는 우리 인간에게는 무한한 熱意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신앙생활을 중심 삼고 볼 때에 신앙길에는 반드시 모험이 뒤따릅니다. 그것은 환경과 더불어 이것을 해결지어야 할 싸움의 노정이 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길을 강한 신념을 갖고 간다면 그 신념에 비례되는 만큼 소모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때에 그 소모전을 극복해 내고도 남을 수 있는 열의가 없게 될 때는 그 환경에서 전진은 커녕 도리어 후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그러한 열의를 보급시킬 수 있는 힘이 자체 내에 있든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그러한 모체가 되는 하나님과 인연을 맺어 그 열의를 보급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전진할 수 없는 것입니다.
036-099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熱意를 보급받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純粹하기에 우리 자체도 순수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제3의 목적을 추구하게 될 때 그 목적은 나와 더불어 영원한 인연으로 맺어지는 것을 우리는 절감해야 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삼각관계에 있지만 내 안에 있을 수 있는 것이요 나와 더불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체 내에 있는 그 목적의식을 얼마만큼 자각할 수 있느냐 하는 그 자각의 감도가 열의로 화하여 열의의 본체되시는 하나님을 유도할 수 있는 도화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나 자신이 무력하여 열의의 도화선이 되는 길이 없게 될 때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일치화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면 熱意를 誘發시킬 수 있는 그 動機는 무엇이냐? 純粹해야 합니다. 邪된 것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다시 말하면 얼마나 사모하고 흠모하여 나 자체가 그 무한한 열의의 주체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 문제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리움이 앞서야 되고 懇切함이 앞서야 되는 것입니다. 간절함이 있는 그 이면에는 반드시 열의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6. 목적에 대한 의욕
- 그것 때문에 나는 살아야 되고 나는 먹어야 되고 나는 입어야 되고 나는 노력해야 된다.
▣ 1974.1.6(일) 복귀의 길. 벨베디아.
070-009 어떤 개인을 두고 볼 때 그 개인이 목적을 먼 곳에 확실히 정하고 그 목적을 突破하게 되면 그 사람은 개인으로서 어느 누구도 따르지 못하는 성공을 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설령 전체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더라도 가는 과정에 있어서 부분적인 목적을 이룬 그런 결과는 나타날 것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열의를 갖고 노력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의욕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먼 목적을 정하고 가려면 그 목적에 대한 의욕이 있어야 되고 그 목적에 대한 목적관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욕망이 매일같이 나를 자극해야 합니다. 욕망이 나를 끌고 가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요, 한 민족도 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070-011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두고 생각할 때 어디에 목적관을 두고 있느냐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목적관···, 그것 때문에 나는 살아야 되고 나는 먹어야 되고 나는 입어야 되고 나는 노력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目的觀과 내 모든 일체와는 떠날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確定的이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속도를 가중할 수 없습니다. 또 환경을 개척할 수 없습니다.
'正'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침묵 - 31가지. (0) | 2017.11.30 |
---|---|
일편단심 - 11가지. (0) | 2017.08.18 |
개인주의 Individualist가 무엇이냐? (0) | 2016.11.26 |
관상 - 9가지. (0) | 2016.07.28 |
노래와 춤 - 19가지. (0) | 2016.0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