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片丹心
- 한 조각의 붉은 마음. 즉 결코 변하지 않을 충성되고 참된 마음. 붉은 마음이란 참된 마음, 충성심처럼 변치 않는 마음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전 선비들은 이러한 마음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 丹心歌.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 선생의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1.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 1960.2.7(일) 새로운 날. 전본부교회.
008-284 그렇기 때문에 끝날 성도에게는 반드시 환난이 옵니다. 하나님이 찾아 나오신 고비고비의 곡절을 비롯하여 억울함과 배반과 배척과 몰림과 죽음과 역사상의 피어린 모든 흔적이 여러분을 휩쓸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대한 일편단심,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하는 이 심정을 누가 지배하겠습니까? 아버지와 나와의 심정적인 인연을 누가 끊겠습니까? 사탄의 권세요? 어림도 없습니다. 사망의 권한도 어림없습니다.
2.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 1961.3.22(수) 전본부교회. 아버지를 사랑하자.
- 제5회 협회 수련 수련생.
011-122 한번 나선 걸음이면 끝까지 가야 한다. 20년이고 30년이고 일생이라 하더라도 가야 한다.
반대하는 것이라면 친구도 물질도 가족도 다 버려야 한다. 다 갖고는 못 간다. 본래의 것이 아니다. 다 버려야 한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 맺은 일편단심의 인연을 누가 끊을 수 있나.
삼천만이 있지만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 할 수 있어야 한다.
3. 노아 아브라함 모세 예수의 일편단심.
▣ 1956.12.2(일) 하나님의 섭리와 초현실적인 모험성. 전본부교회.
001-263 이제 과거의 우리 선조들을 회고해 봅시다. 먼저 노아의 일생을 보면 평탄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120년 후에 세상을 물로 심판할 것이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게 될 때의 노아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열이틀도 아니요 십이 년도 아니요, 120년이었으니···. 아라랏산 꼭대기에 방주를 ㅈ으라는 그 말씀은 그때의 현실과는 부합될 수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을 받고 실행해 나가는 노아의 그때의 실정으로 보면 그야말로 미친 사람이요 그 시대에 도저히 부합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명령을 받은 노아는 내적으로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도 아닌 120년이란 기간을 꾸준히 한날을 바라보고 생활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노아야말로 1600년 역사 과정에 없었던, 1600년 역사를 대신하여 하늘 앞에 세워진 모험적인 선봉자였음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정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야 주관해 주시든 말든 세상 사람들이야 욕을 하든 말든 한번 내리신 명령을 변치 않는 약속의 뜻으로 믿고 나가는 노아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뜻을 위해 출발한 기준, 생명을 각오하고 생애를 포기하고 나선 그의 발걸음 앞에는 그 모든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0년이라는 오랜 기간을 통해 거듭되는 수고의 노정을 말없이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노아에게는 가정적인 비난이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적인 비난도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들이 알지 못하는 길,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 1600년 역사 과정에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그 길, 오직 천상의 길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노아의 발걸음을 어느 누구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노아는 그때의 사회 환경이 가로막고 온 세상 사람들이 자기를 밀어체친다 하더라도 그것을 당당히 물리칠 수 있는 모험적인 사람이었음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그리하여 노아는 자신의 앞길에 어떠한 시험이나 어려움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필코 헤쳐나갔고 120년이 지난 후에는 아담 가정이 잃어버린 복귀된 하나의 가정을 찾아 세웠던 것입니다. 이러한 노아의 역사적인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하나님으로부터 갈대아 우루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그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든 고향 산천을 뒤로하고 일가친척과 이웃을 다 포기한 채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 하실 때 아브라함의 심정은 참으로 막연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기가 지금까지 살던 모든 환경을 초월했습니다. 가정을 초월하여 지금까지 알뜰하게 살아온 살림을 전부 포기하고 보따리를 들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걸음은 그야말로 당시의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었는 일이었습니다. 뜻을 두고 느끼는 사람, 뜻을 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어느 누가 아브라함 편에 서서 "옳소이다. 당신이 가는 길이 지당하오니 어서 나를 인도하소서"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세상이 알아 주든 몰라 주든 뜻을 대한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영원히 갈대아 우르를 떠나는 마음으로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늘이 이끄시는 대로 발걸음을 옮길 때 어떠한 모험이 따르는 태산준령이 가로막고 죽음의 고개가 가로막을지라도 참고 그것들을 뚫고 나갔던 것입니다.
001-265 하나님께서 우상장수 데라의 맏아들인 아브라함을 빼앗아 가지고 그런 자리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렇게 세움 받은 아브라함은 "이제 내가 가는 길에 내 사랑하는 부모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친구가 붙들어도 사랑하는 형제가 나를 붙들어도 나의 이 중심은 변할 수 없다"는 확고한 각오를 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 백 세에 만득자로 얻은 이삭까지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거기에 순종했습니다. 그 명령을 역사상에 없었던 하나의 모험적인 조건이 되는 명령이었습니다. 그것은 하늘땅을 대신하고 천상의 일이나 지상의 일 등 억천만사를 좌우하는 조건이었는데 이것을 모르면서도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그 명령을 받은 후 아들을 제단에 놓고 제사드리려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제물 삼아 칼을 들어 찌르려 했던 아브라함을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은 그야말로 초현실적 의식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어느 누가 아브라함의 그런 신앙을 인정해 줄 수 있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제시한 이 모험적인 행동은 곧 아브라함이 하늘에 속한 몸이고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늘에 속한 몸들이니 아브라함은 물론이요 그의 가족과 그의 모든 물질까지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브라함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번데드리는 과정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아들은 내가 낳았으나 당신 것이오니 당신께 드리겠나이다" 하는 마음으로 이삭을 번제하려 했고 현실적인 환경을 타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역새 선조들의 신앙의 중심을 여러분이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야곱 역시 그러했고 모세 역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세우실 때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은 출생한 후 에서로부터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싸움을 해야 했고 모세도 나면서부터 싸움의 조건에 걸려 있었습니다.
001-266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이 애급 땅 원수들의 나라에서 400년 고난을 거치던 때에 하늘이 불러 세우셨습니다. 이리하여 바로의 두려운 압정 하에서 3개월 동안 어머니의 보호를 받다가 그 후 바로의 딸에게 붙들림을 받아 궁중에 들어가 40년 생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모세의 바로 궁중에서의 생활이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뜻을 대하는 모세는 애급 궁중에 있었지만 애급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한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것이 날이 가면 갈수록 그의 가슴에 사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40평생 홀로 이스라엘의 자조를 품고 생활하던 모세가 궁중을 나왔을 때 이스라엘 사람이 애급 사람 앞에 억울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참으래야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이 폭발되어 애급 사람을 때려죽였던 것입니다.
그 후 바로 궁중을 나와 가지고 남겨진 이스라엘의 축복의 뜻을 마음에 품고 미디안 목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생활은 편안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 시대의 어떤 사람도 그토록 호화로운 바로 궁중을 버리고 목자 생활을 하는 모세를 이해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낙망하지 않고 하늘을 이한 남 모르는 제단, 이스라엘을 위한 숨은 제단을 쌓아 나갔습니다. 이런 모세였던 연고로 80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을 그를 택하셨고 민족의 원한을 풀어 줄 수 있는 주인공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 1960.12.11(일) 하나님의 일선에 선 우리들. 전본부교회.
011-025 모세는 하늘을 향한 마음이 간절해지고 복받쳐 올라 마침내는 궁중을 박차고 나섰습니다. 하늘이 허락할 때를 고대하던 모세는 세상을 헤아릴 줄 알고 전후를 가릴 수 있는 연령 40세가 되던 해에 이스라엘 민족을 향하여 궁중을 박차고 나섰던 것입니다.
그가 간 길은 어떠한 길이었는가? 삼시 호화롭게 먹고 호화찬란한 옷을 입던 그가 단벌 옷과 단벌 신발로 일편단심 목적을 향한 빛나는 충절의 마음에 사무쳐 고역에 시달리는 불쌍한 이스라엘 민족을 찾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모세의 발걸음은 비장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모세의 40평생도 원통하지만 찾아간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배반을 받은 것이 더 원통한 일입니다. 그리하여 원수의 나라 애급에도 몸을 두지 못하고 미디안 광야로 나가던 모세의 서러움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환경이 변하고 자기의 몸이 처량하고 보잘것없게 되었을망정 그의 일편단심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 1957.2.24(일) 하늘의 사랑을 세우시려는 예수. 전본부교회.
002-069 또 여러분은 예수께서 30여 평생 자나깨나 먹으나 굶으나 일편단심 그 한 뜻을 세우기 우해 있는 힘을 다했던 그 소망의 성품을 본받아야 하고 죽음의 길을 가야 되었던 예수님의 비참한 심정을 느껴야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땅 위의 믿지 않는 인간들을 위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시는 생활을 하셨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저나라에 가셔서까지 눈물을 흘리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4. 대모님 - 충심봉신.
▣ 1989.11.7(화) 파주 원전. 충심봉신의 생애. 대모님 입전식.
여러분은 오늘 여기서 이분의 (대모님)의 일편단심의 심정을 이어받아 가지고 이와 같이 자기 후손들 앞에, 여러분들의 가정들 앞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전통을 올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할머니는 하나님을 모시기 위해서 살았어요. 이제는 반대가 없어요. 하나님을 여러분의 가정에 모시는 데 있어서 그 이상 일편단심, 충정의 도리를 해야 돼요. 忠心奉身.
4. 참아버님.
1) 유언
▣ 1977.10.1 (토) 사랑의 승리자. 미국 파사데나 공관.
- 지도자 회의 때.
선생님은 눈물의 사람이라구요. 아직까지도 흘려야 할 눈물이 많은 것을 내가 알고 있는 거라구요. 아직까지 인류를 위해서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 있는 것을 알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눈물을 흘릴 방도를 택하자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 때문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와서 협조한다는 거예요. 틀림없이 와서 협조할 것입니다. 내가 입을 열지 않아도 하늘이 전도를 해 준다구요.
* 만약 선생님이 죽을 때 유언할 것이 있으면, 누군가 당신의 아들딸에게 무슨 유언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위해서 흘릴 눈물을 못 다 흘리고 가는 것이 애석하다"라고 할 것입니다. 내가 통일교회에 대해서 유언할 것이 그거예요. 내가 인류를 위해서 흘릴 눈물을 못 다 흘리고 가고 인류를 위해서 할 일을 못 다 하고 간다는 것입니다. 눈물과 더불어 일하는 그것밖에 없다구요.
그러니 입을 다무는 거예요. 불평을 안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변명했어요? 하나님 자신이 구원 섭리를 다 성사시켜 놓고 설명하고 나서 변명하려고 하지 그 전에는 안 할 것입니다.
2) 남은 것은 일편단심
- "그대가 울 때 내가 올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뿐입니다.
▣ 1960.4.10(일) 심정의 해원을 완성하시려는 복귀 역사. 전본부교회.
009-070 여기에 몰려온 여러분, 여기 서 있는 이 사람은 자식의 손목을 잡고 "너는 내 아들이다" 하며 한번도 심정적으로 대해 주지 못했습니다. 남의 손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아버지라고 어디 갈 때 따라가겠다고 해도 "안돼!"합니다. 삼자의 입장에서 대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내 자신이 부모의 심정을 총결산하여 하늘 앞에 공인받을 수 있기 전에는 자식이라고 심정적으로 대하면 범죄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나 처자나 형제보다도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못 된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내 말이 아닙니다. 알고 보니 진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말하는 사람이 못난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똑똑하다는 사람과도 맞설 수 있는 내용이 있다는 말입니다. 욕을 먹으면서도 가는 것은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단 말입니다. 철석같은 내용이 있기에 27억이 우는 사자와 같이 떠들어도 일신을 투신하여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 각오를 한 지 오래되었습니다.
왜? 하늘이 몰아치는 그 길이 가야 할 길임을 알았기에 "친구여, 가거라. 사랑하는 부모여, 가거라. 처자여, 가거라. 내 몸뚱이여 가거라. 다 가거라. 다 가거라" 하며 남은 것은 일편단심 "그대가 울 때 내가 올고 그대가 슬퍼할 때 내가 슬퍼하고 그대가 고통받을 때 내가 고통받고 그대가 몰릴 때 내가 몰리고 그대가 밟힐 때 내가 밟히겠다"는 것뿐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이런 심정에 사무쳐 "아버지!" 하고 울부짖는 아들딸이 있다면 하나님이 이들에게 심판의 불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이 천지에서 누굴 믿습니까? 부모가 영원한 부모가 아닌 것을 알았고 처자도 영원한 처자가 아닌 것을 알았고 형제도 영원한 형제가 아닌 것을 알았고 살고 있는 이 세계가 하나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영원한 세계가 아니요, 하나님께서 너희는 내 백성이고 내 아들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세계가 아닌 것을 알았으니 가야 되겠습니다.
나는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부모를 모시는 그 시간을 그리워했습니다. 본연의 형제를 모실 수 있는 그날은 통곡하겠습니다. 그날은 벅찬 날입니다. 그 벅찬 마음은 1년으로도 그칠 수 없고 10년으로도 그칠 수 없을 것입니다.
복을 주어도 손을 내밀 수 없는 인간을 바라보고 안타까워하시는 하늘의 심정을 알았기에 이런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남이 아니라 하는 길, 몰림 받는 길을 왜 걸어왔습니까? 여러분들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목적이 없는 사람이 불쌍한 자리에 처해지면 원망할 것이로되 소망이 있고 새날에 대한 목적이 뚜렷하여 생명적인 절개를 노래할 수 있고 심정적으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다 할진대 여러분은 죽어도 승리자입니다.
3) 일도 그 일이요, 노는 것도 그 일입니다. 뜻 일을 하는 것을 노는 것 以上 고맙게 생각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 1994.10.4(화) 한남동. 참부모와 양심의 가치.
- 귀국 환영 집회.
263-209 一片丹心이라는 말이 있지요? 어떠한 것이 일편단심이에요? 언제든지 하나여야 됩니다. 丹心. 붉어야 됩니다. 딴생각이 없다구요. 두 마음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뜻길도 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도 그 일이요, 노는 것도 그 일입니다. 뜻 일을 하는 것을 노는 것 以上 고맙게 생각하고 가야 되는 것입니다.
4) 오고 가는 전부, 생각하는 전부, 느끼는 감정 전부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 1966.7.31(일) 통일교회는 탕감 교회다. 전본부교회.
- 서울 제1, 2, 3교회 합동예배.
016-308 그렇다면 이제 길은 둘밖에 없습니다. 전진이냐, 후퇴냐? 여러분들은 통일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 앞으로 나갈 것이냐, 가만히 있을 것이냐? 아니면 후퇴할 것이냐?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가만히 있으면 떨어지게 됩니다. 섭리는 민족적인 시대에서 세계적인 시대로 자꾸 발전하는데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 어떠한 세계적인 탕감 복귀를 해 나가더라도 하나님을 중심 삼고 나가야 됩니다. 일편단심 하나님과 더불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길을 가더라도 길을 가는 그 기준이 하나님의 목표와 일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상대적인 입장에 서야 됩니다.
밥을 먹을 때도 그 생각을 해야 하며, 잠도 그 목적을 위해서 자야 됩니다. 오고 가는 전부, 생각하는 전부, 느끼는 감정 전부가 그 목적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5)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 1976.2.8(일) 축복. 전본부교회.
083-185 여러분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저기 아줌마들,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하늘을 향한 마음이 요동해요, 안 해요? 일편단심이라는 것이 뭐예요? 일편단심.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일편단심이라는 것이 뭐예요? 왜 일편단심인가요?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라는 뜻인데 붉은 마음이 어떤 거예요? 불이 왔다 갔다 하면서 타면 붉어져요? 한 곳에서 타야 된다구요. 바람이 불면 꺼지면 꺼졌지 옮겨질 수 없습니다.
충신의 마음은 절개가 본바탕이에요. 알겠어요? 오늘날 통일교회의 문 선생이라는 사람은 지금까지 이러한 크나큰 이 뜻을 중심 삼아 세계가 요동하고 천지가 요동하더라도 요동하지 않았다구요. 내가 쇠고랑을 차고 감옥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搖動하지 않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아마 나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내가 가는 길은 망할 것 같지만 흥하는 거예요.
왜? 그건 문 선생이 요술을 부려서 그런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보우하사···. 누가 보우하사? 하나님이 보우하사 흥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좋아해요. 모가지가 떨어지더라도 실천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 자, 요동하는 사람 손들어 봐요. 여러분, 통일교회 교인들은 알아야 된다구요. 간신奸臣이 어디서 나오느냐? 요동하는 자리에서 나오는 거예요.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람은 간신이요. 천사장이 되는 거예요. 즉 사탄이 되는 거예요. 간신이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 하나의 충신이 어디에 있느냐? 아무리 태풍이 불어와도 움직이지 않는 곳에 충신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천리 원칙입니다.
5. 일편단심의 동기가 되는 것은 심정입니다. 일편단심, 그것은 결과입니다.
▣ 1960.2.14(일) 하늘은 심정으로 모시는 자의 것. 전본부교회.
008-305 심정이 앞 놓아 가는 곳에는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는 조화의 법도가 있는 것입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심정은 거리와 공간을 초월하여 자식의 처지가 어떻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현상인데 초자연적으로 일어나요. 심정에 사무치면 그렇게 돼요. 그러한 심정은 우주를 포괄하고도 남습니다. 그러한 심정으로는 예수도 끌어올 수 있어요.
* 일편단심의 동기가 되는 것은 심정입니다. 일편단심, 그것은 결과입니다. 일편단심이라는 명사를 세우기 전에 심정, 이 심정을 지닌 자라 할진대 그는 하늘과 떨어진 지상에 있을망정 천국에 있는 것입니다. 불행한 자리에 처하여 있을망정 행복한 자리에 있는 것임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 1959.7.12(일) 아버지와 나. 전본부교회.
007-052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주님을 신랑이라 부르고 있고, 자신들은 그 앞에 당당히 나타날 수 있는 신부라고 자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사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일편단심의 심정을 자녀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심정은 자기 자신의 심정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6천 년 동안 섭리해 나오시던 그 역사적인 심정과 이 현실을 거쳐 미래까지 거쳐 나갈 수 있는 심정이어야 합니다.
이런 심정을 지닌 신부가 되어 하늘을 위하여 움직이고 주체의 가치를 인정하면서 "오, 신랑 되신 주여!" 하여야만 거기에 하늘이 응해 주시리라 봅니다.
007-061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가식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죽어 사라지는 것 보다도 인류가 영원한 죽음에 빠지는 것을 염려하며 눈물짓는 사람을 참소하다면 사탄은 그 본체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주관 못합니다. 오로지 하나님만이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권내는 사탄이 얼마든지 참소할 수 있으되 심정을 통할 수 있는 일편단심의 간곡한 마음권내는 사탄이 손톱만큼도 점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탄의 모든 인연을 넘어선 세계가 천국이기 때문에 천국은 사탄과 인연이 없는 세계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 1960.5.22(일) 찾아오시는 아버지. 전본부교회.
009-214 심정이 두텁다면 그 심정의 터로 해서 이 어려운 환경을 참고 넘어 이 자리를 찾아오시는 아버지를 위안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천상에 갔을 때에 제일 영광된 자리에서 아버지를 제일 가까이 모실 수 있는 자격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낙심 마십시오.
세상이야 뒤끓든 사회야 변하든 천심을 향한 일편단심만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비록 내 몸이 찢기고 쓰러지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를 모시겠다는 그 약속만은 결코 변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6. 우리의 마음에 있는 일편단심의 소원이 무엇이냐?
- 조국광복이라는 것입니다.
▣ 1965.10.30(토) 대구교회. 조국.
- 제1차 세계 순회 후, 전국 순회.
015-215 우리의 마음에 있는 일편단심의 소원이 무엇이냐? 조국광복이라는 것입니다.
015-280 조국은 최후의 소망이다. 조국 안에는 민족도 종족도 가정도 개인도 다 포함된다. 이 삼천리가 조국이 되었느냐?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우리 모두가 일편단심 수고해야 한다.
▣ 1972.5.18(목) 대구 대원예식장. 선악이 가는 길.
056-288 우리의 일편단심 소원은 무엇이냐? 그것은 하나님이 6천 년 동안 소망으로 찾아 나오고 하나님이 직접 주관하고 만천하의 사탄 주권을 여지없이 억누를 수 있는 권위의 선한 국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관할 수 있는 주권국가 형성, 새로운 민족 편성, 새로운 국토 복귀를 위한 싸움을 전개해 나가자 하는 것이 통일교회가 가는 길인 것을 알아야 되겠다구요. 알겠어요?
밥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어도 내가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이 아니에요. 나라의 광복을 위해서···.
* 이렇게 저렇게 수난의 길을 가려 가면서, 죽지 않고 참아 나오는 것은 일편단심 일념의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소원의 기준이 무엇이냐? 하나님께서 역사 시대를 통하여서 찾아 나오시는 하나의 나라, 하나님이 보장할 수 있는 그 나라, 수많은 종교가 희망하는 그 나라, 오늘날 악당 공산세계 앞에 위협당하고 몰리고 휘말리고 있는 자유세계에 있어서 단 하나의 소망의 방패가 될 수 있는 그 나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위해 불렸고 그런 의용군의 대열에 섰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7. 일편단심 충성하게 되면.
1) 그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 1961.1.1(일) 우리는 아버지의 대신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11-066 우리는 남이 못 가는 길을 가야 되겠습니다. 전부가 가기 싫어하는 자리에서 일편단심 충성하게 되면 그에게 복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년 대환란은 세계적인 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선발대입니다. 뒷사람은 우리들로 인하여 평탄한 길을 갈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그 일을 위하여 준비하고 그날을 단축시키기 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은 틀림없이 역사해 주신다.
▣ 1969.6.8(일) 생애에서 가장 귀한 것. 전본부교회.
- 주일예배 후 말씀.
023-321 선생님의 말씀을 잘 알아 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아들딸이 없으면 안 됩니다. 이것은 공식이기 때문에 36가정도 전부 다 믿음의 아들딸을 세우지 않으면 지파 편성하는 데 들어가지 못합니다. 2차 7년 노정이 끝나게 되면 12지파를 편성할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지파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은 가정이라야만 됩니다. 가정이라도 그때 가서 이러한 원리적 구조의 탕감 조건을 세우지 못한 가정은 제외당하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런가, 안 그런가는 그때에 가 보면 압니다. 그때 가서 사정하지 마십시오. 선생님 입장이 곤란해집니다.
그때가 반드시 올 것이니 여러분은 최소한 아담 가정을 복귀하는 그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면목도 못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니 때가 가기 전에 빨리빨리 준비해야 됩니다.
이 활동은 가정을 중심 삼고 해야 됩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을 시키고 가정을 중심 삼고 집회도 하고 활동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선생님이 이 길을 출발할 때에 해 주셨던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도 새로운 역사를 해 주시는 것입니다. 일편단심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중심 삼고 일치된 마음, 한마음만 갖게 되면 하나님은 틀림없이 역사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실제로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늘이 협조한다.
▣ 1987.6.14(일) 남북통일의 지름길. 한남동.
167-038 여러분들이 암만 가더라도 여러분들의 견해를 가지고 가는 데는 하늘이 협조 안 해요. 오직 일편단심 일념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연결시킬 수 있는 접촉점이 틀어져서는 안 돼요. 일직선에 서 가지고 접촉해야 됩니다. 그래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에 접촉될 수 있는 일편단심을, 일념만을 고이 간직할 수 있는 여러분 자체로서 비쳐져야 된다구요. 그러니까 자기 자체를 폭파시켜야 되는 겁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창조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8. 7년 대환란
- 모든 것이 동요되더라도 하늘 대한 일편단심만은 동요되지 마십시오.
▣ 1961.2.12(일) 모시고 싶은 아버지. 전본부교회.
011-097 하나님은 인류 앞에 끝날이 되면 7년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이 환란 시기는 6천 년 역사 노정에 있어서 하늘의 슬픈 곡절이 성도들에게 부딪치는 때입니다.
인간들의 인연이 다 깨져 나가고 믿을 수 없는 환경에 부딪치는 때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양심적으로 올바로 산다 해도 그 양심으로 자기의 생애를 주장할 수 없는 때입니다. 신앙이니 어떠한 주의니 하는 것으로도 자기의 생애를 주장할 수 없는 때입니다. 뜻을 품고 생각이 있는 자일수록 바라보는 곳곳마다 고통을 느끼는 때입니다.
그런 때가 끝날 7년 대환란의 때입니다. 그때는 소망이 흔들리는 때요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의 중심이 흔들리는 때요 믿고 따라 나가던 지도자가 흔들리는 때입니다. 주의는 물론 종교 양심 부모의 심정까지도 전부가 다 흔들리는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그런 세상을 만들어 놓으셔야 되느냐? 그것은 참다운 하나님, 역사적으로 수고한 하나님과 동참했다고 하는 가치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6천 년 동안 수많은 참상을 보아 왔고 수많은 곡절을 당하셨기에 끝날에 있어서는 양심이니 주의니 신앙이니 하는 것을 가지고 ㅈ중심을 세울 수 없는 환경에 부딪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환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그런 어려운 자리에서도 하나님과 더불어 산다는 참다운 아들딸을 찾기 위하여 그런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교회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어떠한 주의가 동요되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어떠한 주권자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슬퍼하지 말고 자기의 부모가 변한다고 슬퍼하지 말고 자기의 형제가 변해 떨어진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의지하고 믿고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동요되더라도 여러분의 마음은 태연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동요되지 않고 이 시간도 나를 찾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당신의 귀한 한날 당신이 거쳐온 고통의 인연을 우리에게 맺어 주기 위한 크나큰 약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리에서 하늘을 붙안고 "같이 갑시다. 같이 싸웁시다. 같이 행동합시다"라고 부르짖고 나서는 사람을 찾기 위하여 그런 세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나아가는 길이 막혔다고 낙망하지 마십시오. 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 세계가 아무리 뒤끓는다고 하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죽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찾아오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동요되더라도 하늘 대한 일편단심만은 동요되지 마십시오. 하늘을 의지하고 바라보는 소망의 마음만은 변하지 마십시오.
그 마음을 변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은 어떠한 고통의 자리에 처넣는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간곡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떠한 자리에 떨어지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늘의 심정의 줄을 붙들고 올라가기를 애써야 합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는 한이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와 함께 동참하는 자리에 서서 아버지의 고통을 내가 알아주고 그 아버지는 나의 고통을 알아줄 것을 믿고 그런 자리라도 가겠다는 책임과 의무를 느끼고 나간다 할진대 여러분들은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9.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 1963.8.11(일)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전본부교회.
012-314 지금까지 통일교회 교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여러분들, 역사적인 어떤 종교나 주의 앞에 휩쓸리지 않고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신이 있습니까? 어떤 어려운 폭풍우가 부딪쳐 오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신이 있습니까? 목이 잘려도 자신이 있습니까?
항복문서를 쓰고 후퇴하는 패들은 망해 쓰러집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겠다는 신념과 결의와 목적 밑에서 나온 것이 통일교회입니다. 이러한 기반을 닦기 위해 싸워 나온 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의 투쟁 역사입니다. 나는 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
10. 승리를 가져오기까지 일편단심으로 싸우기 바란다.
▣ 1967.1.1(일) 일편단심으로 최후의 고개를 넘어 승리적 주관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17-219 원칙적으로 이 7년 노정은 단 한 번뿐이다. 복귀섭리역사에 있어서 두 번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편단심으로 최후의 고개를 넘어 승리적 주관자가 되어야 한다. 이 승리적 주관자가 되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017-223 승리자가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 보라. 여러분은 승리를 가져오기까지 일편단심으로 싸우기 바란다.
* 싸우는 데는 모름지기 정의에 입각하여 싸워야 한다. 사탄은 근성적으로 높아지기를 원하나 우리는 그와 반대로 낮아져서 내 몸과 사랑으로 싸워 나가야 된다.
11.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
▣ 1990.12.1(토) 참사랑의 실천자. 본부교회.
210-048 뜻길이라는 것이 뭐예요? 여러분들에게 뜻길이 필요해요? 뜻길이라는 것은 여러분의 뜻이 아닙니다. 선생님의 뜻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본래 창조 이상으로 세웠던 그 뜻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거기에는 두 마음의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일편단심입니다. 일편단심, 마음이 언제나 붉은 붉게 타오르는 마음이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끊겨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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