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담보다 나아야 합니다. - 6가지.

true2020 2017. 4. 19. 14:04

1. 여러분이 쫓겨난 그 집에 돌아가려면 아담보다 더 나아야 될 게 아닙니까? 

 

▣ 1968.4.28(일) 하늘을 위로하자. 전본부교회.

020-092 아담이 타락해 가지고 쫓겨날 때 "하하, 좋구나" 하면서 쫓겨났겠습니까? 피눈물을 흘리면서 쫓겨났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쫓겨난 그 집에 돌아가려면 아담보다 더 나아야 될 게 아닙니까? 가령 동네에서 쫓겨나온 후에 다시 들어가려면 그 전보다 못해 가지고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아담보다 나아야 됩니다. 아담보다 못한 자리에서 돌아가게 되면 쫓겨날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식아!" 하며 책망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데에 있어서 아담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탄을 누구보다 미워해야 했습니다.

 

▣ 1968.9.1(일) 복귀의 가정과 세계. 전본부교회.

021-038 아담 해와는 눈이 밝아 더 높아지려는 욕망의 발로에서 타락했지만 예수님은 죽는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염려하는 3차 기도까지 하셨습니다. "아바 아바시여 아버지께서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진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라고 이렇게 기도한 것은 인간의 뜻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을 위로한 예수님의 출발이요 이것이 곧 예수님의 죽음의 길이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타락한 인류 시조 이상의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위하는 데에 있어서 아담보다 나아야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탄을 누구보다 미워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역사 과정에서 닦아 놓은 승리의 터전을 고스란히 상속받기에 부족함이 없어야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 과정에 있었던 사탄의 참소조건을 없애야 했던 것입니다.

 

3.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고소하자,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 1972.5.29(월) 우리의 갈 길. 중앙수련원.

- 제1차 기동 전도대 수련회.

 

057-128 아담보다 나아야 되니까 아담은 사탄한테 끌려갔으나 나는 사탄한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고소하자, 이래야 되는 것입니다. 다르다는 거예요. 사탄을 끌어다가 하나님 앞에 고소할 수 있어야 됩니다. 다르지요? 그러려면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4. 아담보다도 나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 1972.7.27(목) 하늘이 바라는 청소년 시대. 중앙수련회.

- 제8차 전국 성화학생총회.

 

059-271 자, 아담 해와보다 나아요? 낫다고 생각해요, 못하다고 생각해요?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 도둑놈들아, 무엇이 나아, 무엇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구요. 아무리 생각해도 못합니다. 절대 못하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메시아가 필요한 거라구요. 알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절대 메시아가 필요하다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아담보다도 나은 사람이 되지 않고는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아담보다도 하나님의 사정을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지 않고는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담보다도 더 능란해 가지고 사탄의 계교를 도리어 감아 넘길 수 있는 수완이 없어 가지고는 복귀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난문제들이 있다구요.

 

059-273 아담 해와를 중심 삼고 볼 때 아담 해와는 타락될 때 무엇 때문에 타락했느냐? 무엇 때문에? (사랑 때문예요.) 사랑은 나중이에요. 나중. 불신에서부터. 어디에서부터? (불신.) 불신을 잉태한즉 무엇을 낳았어요? 죄를 낳아 가지고는 그 실체를 낳았습니다. 불신의 실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 불신의 실체가 잉태한즉 뭘 낳았느냐? 불신의 실체는 불신의 사랑을 낳았습니다. 무엇을 낳았다구요? 사랑.

 

5. 그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 1973.3.11(일) 벨베디아. 우리의 수치.

066-025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담보다 나아야 합니다. 아담 가정에 있어서 아벨이 되고 노아 가정에 있어서 아벨이 되고 야곱 가정에 있어서도 아벨이 되고 민족이나 통일교회에서도 아벨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전통을 지키는 데도 우리가 제일이어야 됩니다. 안 그래요? 우리는 유대인보다도 전통을 더 존중해야 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생각해야 됩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전통을 세우는 것보다도 우리는 더 세워야 합니다. 그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최고가 됨으로 말미암아 수치스런 인간에서 완전히 해방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아시길 바랍니다.  

 

6. 우리들의 신앙의 목표 "아담보다 낫자"

 

▣ 1974.7.1(월) 승축일. 벨베디아.

- 승축일 제정 1주년 기념.

 

072-271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아담보다 낫자는 것입니다. 타락한 아담보다 나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상심했던 하나님을 나로 말미암아 해방시켜 드려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심정적 구속을 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이 구속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이 이것을 풀어 드려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