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초량리 - 노무자 수용소, 원리원본 집필시작. 1951.5.11.

true2020 2016. 11. 11. 10:11

* 1951.5.11. 원리원본 집필 시작.  

* 1952.5.10. 원리원본 집필 완료.

"태초는 하나이며 근본이다. 그것은 하나님이다. 무한한 세계의 근본이기도 하다. 이 하나가 전체 중심, 전체 작용의 기본점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수학을 떠나서는 진리를 알 수 없듯이 진리는 수학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가는 데 있어서 하나의 존재 즉 하나님에 대한 규명을 수학적으로 풀어 볼 것이다. 그러므로 그 하나를 통해서 수가 증대하여 전체 존재의 기본을 정립할 수 있다."

 

* 1952.12.1. 이요한 목사 입교

* 1953. 복귀의 동산, 성원의 은사 작사

* 1953.12.24. 유효원 선생 입교

 

*  1957.8.15. 원리해설 출판

 

▶ 지승도 할머니 간증

11월 28일 기도 시 하늘에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만일 앞으로 선포된 원리 말씀과 너희 선생님의 존재를 인간들이 믿어 주지 않을 것 같으면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당하셨던 것과 똑같은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니 너희들은 참으로 조심해야만 되겠다. 그리고 너희들이 힘껏 노력하여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야 한다" 하고 일러 주셨다.  

 

▣ 1969.10.18(토) 체휼적인 신앙인. 대구교회. 

026-069 범일동에 있을 때에는 옷도 변변치 못하게 입고 더벅머리를 한 채 총각 둘이서 토굴 같은 집에서 지냈습니다. 남들이 볼 때에는 처량하게 보였겠지요. 원필이가 자신이 돈을 벌어 오겠다고 해서 선생님이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내가 원리원본을 쓰고 있었는데 동지가 얼마나 귀하고 따르는 사람 하나가 얼마나 귀했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사람에 대한 맛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필이가 회사에 나가게 될 때는 반드시 1킬로미터 이상 따라나가곤 했는데 그렇게 해야 마음이 편안했습니다. 또 저녁이 되어 돌아올 때가 되면 반드시 마중을 나갔는데 그 만나는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와 가지고 밤에 잠을 자는데 이불이 없어서 포대가 한 장만 덮고 자곤 했습니다. 그때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026-071 어떤 때는 무슨 신학교에 다니는 사람이 와 가지고는 "역사상에 당신보다도 훌륭한 사람이 많이 와서 통일 세계를 꿈꾸었는데도 다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당신이 통일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 내가 얘기를 하다가 가만히 생각해도 참 처량했습니다. 물이 흘러가게끔 도랑을 파고 그 위에다 집을 지었기 때문에 방구들 아래에서는 "쫄쫄쫄" 물 흐르는 소리가 나는데 그런 집에 앉아서 그런 엄청난 말을 하니 누가 믿겠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믿겠어요? 지금은 그래도 한 250명쯤 모여서 동감하는 기색이라도 보이니 괜찮지만 그때는 일대일로 마주 앉아서 얘기했습니다. 그들이 나보다 더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데 내 말을 믿을 게 뭡니까? 

 

▣ 1971.6.24(목) 그리운 고향. 전본부교회. 

045-137 유 협회장이 훌륭한 점이 이겁니다. 그는 내 말씀을 듣지 않고도 원리원본을 읽고 자기 스스로 서면으로 자기의 몸이 영원히 하늘 앞에 바쳐질 수 있는 제물이 되더라도 감사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내가 고독한 때에 그러한 사람을 만났던 거예요. 이런 것이 하나님의 역사지요. 그때의 선생님의 심정은 심각했어요. 심각하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이 역사했던 거라구요. 하나님이 몽땅 역사해 주는 것입니다.  

 

▣ 1972.8.17(목) 뜻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자. 청평.

- 제1회 전국 교역장 수양회. 

 

060-163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해 주시는 주인이십니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냐?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인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그분에게 의지하려고 그런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남을 위하여 염려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그곳에 하나님은 자기와 닮았기 때문에 상대적인 형태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오시지 말래도 오시는 것입니다. 선한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지 말래도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리원본을 보게 되면 대상의 가치니 대상이니 하는 내용까지도 전부 다 갈리 해석하고 있다는 거예요. 주고받으면 반드시 상대성이···. 주고받은 만큼 대상의 기대가 벌어져 나오는 거라구요.  

 

▣1987.1.3(화) 하늘이 함께하는 길. 미국.

- 지도자 회의. 

 

096-143 우리가 부산에서 피난 생활할 때 원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와쿠니 뭣이니 줄까지 내가 쳐 주었다구요. 내 의견이 많이 들어갔다구요. 얼굴에 코만 그리면 옷 같은 건 내가 다 칠했다구요 밤을 같이 새워 가면서 그런 거예요. 12시부터 시작해서 하루 저녁에 초상화 40매까지 그렸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그거 전부 다 그리려면 선을 잡아 가지고 줄을 딱 쳐야 되는 거예요. 40매씩 가져오면 줄을 쳐서 줄을 따라서 본떠 가지고 그리는 거예요. 전부 다 줄을 쳐 주는 거예요. 한 장에 얼마냐? 3불씩이었어요. 한 장에 3불. 귀국하는 미군들의 막사에 가 가지고···, 귀국할 때 색시한테 선물 줄게 있나? 자기 색시의 肖像畵를 주는 게 제일 좋은 선물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 아이디어를 내 가지고 그 놀음을 한 거예요.

 

거, 지금 같으면 30불 40불 아니 300불 받을 거라구요. 여기 미국 같으면 말입니다. 그러니까 혼자 평균 20점 이상을 하루 저녁에 그려야 됐다 그 말이에요. 거, 그릴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래 할 수 없이 내가 전부 다 했다는 거예요. 밤을 같이 새운 것입니다. 그리고 회사 갔다가 저녁 늦게 돌아오게 되면 길 절반까지 나와서 기다려 가지고 데리고 들어온 거라구요. 내가 그때 원리원본 초고를 쓸 때라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그때 그 인상을 지금도 잊지 않아요. 

 

* 그때 미스터 김은 회사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는 것이 자기 연인을 찾아오는 것보다도 더 재미있어 했다구요. 그렇게 되어야 된다구요. "너 좀 집에서 쉬고 있으라" 해도 "아, 저 싫습니다" 하고 선생님만 따라다녔다구요. 변소에 가서 30분만 앉아 있으면 변소 문을 두드린다구요. 변소에 가서 졸 때가 많았어요. 그만큼 심정적으로 가까워져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피난 나올 때도 자기 어머니와 집을 다 버리고 나왔다구요. 거기에 있으라고 해도 다 집어던지고 선생님을 따라나선 거라구요.

 

 

1974.7.29(월) 벨베디아. 세상 슬픔을 몰아내자. 

- 미국 100일 수련 폐회식. 

 

073-064 그래, 통일교회 와서 주인이 되겠느냐, 통일교회 와서 종이 되겠느냐? 생각해 보라구요. 종은 무책임한 것입니다. 돈만, 돈만. 종은 일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賃金에만 관심이 있는 거예요.

 

오늘 여기 통일교회에 들어온 것은 여러 가지 사정이 있어서 들어왔을 것입니다. 친구 때문에 들어왔고 혹은 친척 등 여러 가지 관계 때문에 왔을는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들은 까딱 잘못하면 전부 다 종이 되기 쉽습니다.

 

여러분 동네에 원리 책을 갖고 갈 때에는 지나치리 만큼 소중히 하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이 책이 한 권밖에 없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그러니 선생님이 이 책의 원고를 초 잡을 때 그 원고의 관리를 얼마나 심각하게 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만일 그게 없어지고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세계가 왔다 갔다 한다구요. 세계가.

 

여러분 그런 걸 생각해 봤어요. 이 원리 책 한 권으로 一族이 흥하고 망하고 일국이 흥하고 망하고 이 세계가 흥하고 망하고 하늘땅이 흥하고 망하고 영원한 생명들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느냐구요.

 

 

1981.5.1(금) 협회 창립 27주년. 본부교회. 

113-127 남한이 반대하니 할 수 없이 선생님이 이북으로 간 거예요. 그것은 원리가 그렇다구요. 끌려가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감옥살이를 한 거예요. 감옥살이를 통해서 이북에 들어간 거예요. 싸워 가지고 남한이 잘못한 것을 탕감복귀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12제자를 잃었던 것 이상의 것을 탕감해야 하니까, 감옥생활을 해 가지고 거기서 몇몇 식구를 중심 삼고 死線을 넘어 남한 땅에 1951년에 내려와 가지고 原理原本을 만든 것입니다. 그다음부터 이남 땅에 내려와 통일교회를 재편성한 거예요.

 

 

1992.7.20(월) 본부교회. 뜻으로 본 역사적 역로와 순로. 

233-021 선생님이 원리원본을 전부 영적으로 쓴 것입니다. 그건 해설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유 협회장이 이렇게 이렇게 썼으면 좋겠다고 해서 한번 써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써 가지고 왔는데 내가 물었지요. 이건 어떻게 되어서 이렇게 되느냐고.···, 그랬더니 한 줄도 못 가서 손을 들었습니다. "아이구, 잘못했습니다" 하더라구요. 원리강론을 쓰는 것도 유 협회장이 썼어요? 내가 코치해서 썼다구요. 타락한 역사를 내가 쓰긴 했지만 참부모가 그거 쓰게 되어 있어요? 

 

1998.11.18(수) 자르딘 세계평화이상가정교육본부. 복귀 완료. 

- 남미 40일 수련.  

 

296-313 유효원도 영계에서 걸렸어요. 선생님이 말씀한 것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즈음 훈독회하는 것이 말이에요, 그때 얘기들입니다. 자기가 이론적으로 더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리원본을 내가 詩的으로 써 놨는데 그것을 이렇게 써야 된다고 散文(글자의 수나 운율 땅 위에 구애됨이 없이 자유롭게 쓴 보통의 문장. 소설, 수필 따위)形態로써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말 들어보라. 한 페이지를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 봐라" 한 거예요. "잘못했습니다" 하더라구요. 원리 책도 내가 다 鑑定했습니다. 거기에 몇 곳 고쳐야 될 것을 남겨 놓았습니다. 그건 누구도 몰라요. 

 

 

▣ 1986.3.18(화) 부산교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셨네.    

143-171 1951년도 그때 내가 여기 도착한 것이 1월 27일이었습니다. 초량역에 내린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여 년, 35년이 지났나? 35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선생님이 몇 살 때인가, 35년 전이니까, 서른몇 살인가? 서른하나지. 그러면 상당히 젊었을 때이지요? 지금보다도 더 미남이었을 거라. 

 

내가 피난을 내려와 가지고 여기 초량 부산진 4부두에 일하러 다니고 그다음에···. 응? 안 들려요? 누가 뒤에 앉으랬어요? 내가 목이 쉬었기 때문에 크게 얘기 못 하겠다구요. 오늘 저녁때에도 얘기해야 되기 때문에 살살 얘기하는 거예요. 못 들었으면 절반 이상 이 앞에 있는 사람들한테 다시 들으라구요. 내가 그거 책임 못 져요. 

 

팥죽 팔아먹는 아줌마들, 그다음에 시루떡 파는 아줌마들, 그때 생각이 나요. 또 초량에 勞務者 收容所가 있어 가지고 그 조그만 방에서 내가 원리원본을 쓰던 것이 생각난다구요. 요만한 방에서 바로는 못 누워요. 그렇기 때문에 X로 누워야 하는데 X로 누웠댔자 발이 닿습니다. 그런 방에서 지내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빠르다구요.

 

* 자, 이렇게 생각해 볼 때 제가 이 범일동에서 기거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그때만 하더라도 6.25사변이 계속될 때예요. 1953년에 휴정협정이 됐으니까. 그때 미국에서 들어오는 군수물자 선단들이 줄지어 이 항구에 꽉 들어왔어요. 매일 아침 일어나면 선생님은 그것을 헤아리는 것을 취미로 삼았다구요. 하나 둘 셋 넷···.

 

그럴 때 전시상황이 어떻게 되겠느냐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군수물자를 보급하는 배의 수가 많아진 것을 볼 때 "아, 이  전쟁이 치열해지겠구나" 이렇게 생각했고 배들이 적어지면 "아, 이제는 전쟁이 그저 이럭저럭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러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때에 통일교회를 믿던 식구들이 몇몇 있었어요. 영계를 통해 인연이 돼 가지고 만났던 식구들이 전부 다 총총걸음으로 그때 범일동에 혼자 살고 있던 선생님을 찾아오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런 식구들 가운데 이미 영계에 간 사람도 여러 명 있습니다. 

 

그때에 통일교회에는 나 혼자였습니다. 통일교회 하게 되면 나 혼자밖에 없었다구요. 혼자서 시작해 갖고 몇몇 식구들을 모아 움직이면서 전국에 제일 신령한 사람들을 방문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그중에 대구에 전도를 보냈던 강현실 전도사라고 있었다구요. 범일동 천막교회 전도사로 책임지고 있던 그 아줌마가 지금 저 산골짜기 그때 범일동 산골짜기 하게 되면 그 위에 절간밖에 없었는데 맨 마지막 집에 이상한 청년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전도하겠다고 찾아왔댔지요.

 

찾아와 가지고 방문할 때의 내 모습은···. 위에는 곤색으로 물들인 미군 잠바를 입고 아래는 한국 바지에 물든인 퍼렁바지를 입고 또 신은 고무신을 신고 그러니까 이렇게 삼층 옷을 입고 있을 때 찾아오던 것이 엊그제 같다구요. 그래서 그때 말씀했는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매일매일 찾아오게 된 거예요. 그러다가 그 교회를 버리고 통일교회 믿을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구에 전도를 보낸 거예요.  

 

 1998.4.27(월) 이스트 가든. 일심 일신 일체 이상 세계.

- 미국 지도자 회의.

 

292-318 유효원에게 원리의 전폭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게끔 가르쳐 준 것도 그렇습니다. "원리원본"이 있는데 그것은 전부 다 詩的으로 쓴 거예요. 상당히 飛躍하고 壓縮해서 쓴 건데 그 책을 보고 痛哭을 한 거예요. 그런 내용의 사실에 감동받은, 아마 역사적으로도 통일교회의 원리를 접한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