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2.2(일) 제2차 세계 노정을 떠나시기에 앞서. 전본부교회.
이화여대 사건 때 김활란과 박마리아가 주동이 되어 경무대에 가서 거짓증거해 가지고 4개 부처 장관을 움직여서 통일교회를 없애버리고 나를 완전히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안 죽습니다. 안 죽어요! 세상의 어떠한 일이 부닥쳐 오더라도 안 망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1955년도에 있었던 7.4사건 알지요? 내가 원숭이 띠라서 감옥살이를 많이 하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그 서대문 형무소 소장이 기성교인이었는데 대뜸 "임자가 문 아무갠가? 한 달은 구류받아, 이 자식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에게 농담 삼아 한마디 했습니다. "이 자식이 뭐야? 당신은 이런 것을 해 먹었군." 하니까 가슴이 찔렸는지 깜짝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식아, 가만히 있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돼먹지 못한 사람이 선생님의 가슴에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지나서, 그렇게 못되게 굴던 형무관들은 선생님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다 듣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물을 갖다 달라" 하면 떠 올 정도였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때려서 그렇게 만들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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