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영락교회 한경직

true2020 2016. 7. 15. 16:34

▶ 한경직(韓景職, 1902년 12월 29일 ~ 2000년 4월 19일)


대한민국장로교 목회자, 교육자이다.

평안남도 평원 공덕면 간리 마을에서 한도풍(韓道豊)과 청주이씨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본관은 청주(淸州)이고 호는 추양(秋陽)이다.


* 기독교 계열 학교인 정주오산학교에 진학하여 10회로 졸업하고 1919년 평양 영성소학교 교사로 재직.


* 1922년 평양 숭실대학의 이과에 입학. 숭실전문학교를 졸업.

* 1926년 미국으로 유학. 캔자스 주의 장로교 계열 학교인 엠포리아 대학교를 거쳐 1929년 프린스턴 대학교 신학원을 졸업하였다.


* 결핵으로 투병 생활하다가 1932년 귀국하여 평양 숭인상업학교 교목 겸 교사로 활동.

평양 숭실대학에서 강사로 활동.


* 1933년 신의주에서 신의주 제2교회 전도사로 부임, 의산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 생활을 하였다.


* 1939년 5월 보린원을 설립, 그 운영을 1942년부터 1945년까지 하였다.

* 태평양 전쟁으로 기독교가 탄압받으면서 교회 문을 닫아야 했다. 태평양 전쟁이 종전된 뒤에는 1945년 해방을 맞이하면서 한병직, 윤하영 목사와 함께 신의주 자치회기독교 사회민주당을 조직하였으나 신의주 지역에 소군정이 실시되면서 공산당 탄압으로 삼팔선 이남 지역으로 월남하였다.


* 월남하여 일본 천리교 경성교구본부 터를 매입하여 베다니 전도교회를 설립하였다. 1946년 베다니 전도교회를 영락교회로 개명하고 1947년 한국에서 최초로 2부제 예배를 실시.


* 일본 가마쿠라 고아원을 인수하여 영락보린원을 창설.

* 대광중고등학교를 설립하였다.


* 1949년 영락교회 석조 예배당을 신축.

* 1950년 보성여자중고등학교를 재건.

* 기독교아동복지회(CCF) 이사장을 역임.

* 이후 대한민국 장로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월남민 출신의 반공주의 목사로도 알려졌다.


한국 전쟁중인 1950년, 대전에서 기독교 구국회를 출범하여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 1953년 영락고등 공민학교를 설립. 홀트양자회(현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에 추대되고 세계 선명회(현 월드비전)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 1954년 영락모자원을 설립.

* 모교이자 평양에 있던 숭실대학을 재건.1954년부터 1958년까지 제6대 숭실대학 학장을 지냈다.


* 1958년 학교법인 영락학원 설립하여 초대 이사장 역임.  

* 1962년 서울여자대학 2대 이사장을 역임,

* 1967년숭실대학교 이사장에 올랐다.

* 195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장을 역임하였다.

* 195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는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 문제를 놓고 박형룡의 예장합동과 한경직의 예장통합으로 갈라섰다.

* 1969년 영락여자신학교 설립,

* 1970년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훈,

* 1971년 장로회신학대학 4대 이사장을 추대되었다.

* 1973년 영락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되고, 한국교회진흥원 설립하여 원장을 하고, 군복음화운동후원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그리고 아세아연합신학원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1974년 예장통합 서울노회 공로목사에 추대되고, 1976년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회장을 역임하고, 한국외항선교회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 1977년 숭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1983년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 협의회 총재에 추대되고,

* 1984년 (재)남강문화재단 이사장 및 고려청자 헌납위원회 고문에 위촉되었다.

* 1985년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모교를 빛낸 영예의 동문상"을 수상. 1988년 군복음화운동후원회 회장에 추대되었다.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CCK) 준비위원회 대표회장을 역임하고, 세계선명회(현 월드비전) 명예이사장을 역임하였다.

* 1990년 사랑의 쌀 나누기운동 명예회장을 역임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명예회장을 거쳐 고당 조만식 선생 기념사업회 명예회장을 역임하였다.

* 1992년 4월 29일 "노벨 종교상"으로 일컬어지는 템플턴상을 수상하였다.

* 1997년 (사)한국군복음화운동 명예회장을 역임,

* 1998년 대한민국 건국공로장을 수훈받았다.

* 2000년 4월 19일 영락여자신학원 내 주택에서 향년 99세로 소천하여, 이해 4월 24일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 장(葬)으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한경직 목사가 남긴 재산은 말년에 타고 다녔던 휠체어와 지팡이, 겨울 털모자, 입던 옷가지, 생필품이 전부였다고 한다.



1. 1975.6.7 구국세계대회. (여의도 광장) 반대.


▣ 1975.6.8(일) 전본부교회.

기성교인들 지금까지 대구에서 반대하고 9대 도시에서 전부 다 반대하다가 5.16광장까지…, 그 한경직 영감이 미쳤다구요. 좀 가만 있으면 좋지요. 


2. 金先吉 부인 충동질해서 이혼시켰다.


▣  1987.10.31(토) 한남동.

- 축복2세 36가정과 그 부모들.


선생님과 성진이 어머니와의 가정이 파탄된 것은 기성교회 때문에 그랬어요. 영락교회 때문에. 한경직 목사를 중심 삼은 영락교회 때문에.


전부 離婚하라고 성진이 어머니 사촌을 끌어 들이고 말이에요, 요사스런 사탄 악마의 교주라고 하면서 듣지도 않고 덮어놓고 반대해 가지고 말이에요.


지금까지 반대하고 잘났다고 해요. 그거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 세계 기독교가 망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 1990.5.25(금) 한남동. 참부모 선포와 종족적 메시아 사명.     

형무소 감방에 찾아와 가지고 이혼장 써내라 한 거예요. 여러분은 그런 여편네 안 가졌지요?


성진이 어머니가 나쁜 게 아니에요. 영락교회 전체가 주동이 돼 가지고 이단 잡아치워야 된다고, 평안북도 망신이라고 해서 판결된 것입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가 오산고보 나왔다나? 그거 처음 들었구만. 어디 갔나? 그거 정말이야? 한번 내가 담판을 해서 밀어대야 되겠구만.


▣ 1987.11.1(일) 본부교회.

여기 한경직 목사라든가 이런 사람들, 나를 제일 미워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 우리 성진 어머니를 충동질해 가지고 이혼시킨 왕초들입니다.


통일교회 문 선생의 가정을 破綻시킨 원수들이에요. 요즘은 그들에게 "문 선생이 어떤 사람이요?" 하고 물으면 "그 사람 훌륭해! 애국자야! 애국자지만 이단이야" 이럽니다.


죽어도 이단이라는 겁니다. "왜 반대했어?" 하면 이단이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거예요. 안 그러면 자기가 죽겠거든요. 防備의 길이 끊기면 큰일나겠으니까 그런다는 거예요.


3. 한경직, 한없이 경직해 버렸다.


▣ 1989.2.26(일) 본부교회.   

오늘날 목사들 여기 대한민국에서 제일 유명한 목사가 누군가? 누구야? 한경직. 한없이 경직해 굳어 버렸다 이거예요. 경직이니까 그렇잖아요?


硬直이라는 게 굳어졌다는 얘기지요? 자기는 잘났다고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보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은 원수 이단까지도 품고 전부 다 밥 먹여서 키우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너 어서 커서 네가 얼마나 큰 힘이 있는지 한번 시험해 보라"고 하며 키우려고 하는 하나님의 마음도 있는데, 그걸 놔 두지도 못하고 붙들지도 못하게 전부 다 이단이라고 맨 처음, 초전부터 까 버리려고 해요. 하나님의 마음 닮지 않았어요.


4. 나 장로, 박 장로, 조용기, 한경직 북한 출신패들이 문 총재는 사탄 마귀라고 했다.


▣ 1992.1.26(일) 본부교회

나 장로, 박 장로 그리고 요즘에 조용기하고 누구? 한경직, 북한 출신패들이 전부 문 총재를 사탄 마귀라고 하는데, 그래요?


내가 사탄 마귀같이 생기긴 했지요? 왜? 너무 능란하니까. 외교무대에서 누구든 나를 만나고 갈 때는 "문 총재, 다시 불러 주소." 그런다구요.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5. 영계를 모르는 사람들.


▣ 1993.10.10(일) 본부교회

예수의 사정을 누가 알아요? 목사 장로들, 한경직이 그 떼거리들이 그걸 알아요? 죽어 보라구요. 김활란이 알아요? 박마리아가 알아요? 영계에 가 보라구요. 어떻게 되어 있나.


박마리아 일가가 왜 아들한테 총맞아 죽었어요? 다 통일교회를 반대한 죄입니다. 이 정권이 왜 그렇게 되고 박 정권이 왜 그렇게 되었어요?


내가 사흘 전, 일주일 전에 다 충고해 주었습니다. '큰 벼락이 떨어진다'고 말이에요. 사람을 시켜서 충고한 즉시 사흘 만에 다 깨져 나간 것입니다. 그걸 정부에서 못 하고 있는 거예요. 잘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축복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레버런 문의 말은 흘러가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무리와 모든 역사는 흘러갔습니다. 공산당도 내 앞에서 흘러갔어요. 내 손에 망한 것입니다.


▣ 1995.1.1(일) 제28회 참하나님의 날.        

하나님편에 볼 때 문 총재가 아들딸에 가까우냐 기성교회 한경직 목사가 아들딸에 가까우냐?


한경직 목사가 죽어 보라구. 어디로 가는지. 잘났다고 폼 재고 거룩한 왕자같이 행차하지만 죽어 보라는 것입니다. 어디로 가나?


그들은 어디로 갈지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갈 곳을 알고 있어요. 누가 더 훌륭해요? 내가 훌륭해요 그들이 훌륭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