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6.4(일) 전본부교회. 탕감이 가는 길
018-140 蕩減復歸라는 것은 작은 條件을 통하여 큰 것을 蕩減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00사람을 용서해 주기 위해서 한 사람이 그 100사람을 대신하여 사탄에게 맞는 자리에 있어도 불평불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마음으로 천국을 소유하고 그 자리를 감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선한 한 사람이 맞은 대가로 백 사람의 죄가 탕감된다는 것입니다.
* 탕감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추위가 몰아치는 가운데에서도 천국을 그리워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죽어도 하늘이요, 살아도 하늘이요, 태어난 것도 하늘 때문이요, 사는 것도 하늘 때문이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로부터 출발하여 하늘의 과정을 거쳐서 하늘로 종착점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그런 자리를 감당해 넘어감으로 말미암아 백 사람의 죄가 용서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백 사람 대신 맞아 백 사람이 맞을 것을 용서받아 가지고 악한 자리에서 선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을 탕감복귀라고 하는 것입니다.
* 인간들은 어떤 중요한 일이나 중대한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그것을 앞에 놓고 정성을 들입니다.
또 자기가 어떤 목적을 정해 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도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백일 기도니 무슨 기도니 하며 정성을 들리는 것입니다.
더우기 종교를 믿는 신앙자들은 열심히 정성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精誠은 왜 들이느냐? 그것은 蕩減하기 위해서입니다.
018-142 여러분이 앞으로 해야 할 중대사가 사탄에게 침범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혹은 택함받은 사람이 버림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모든 罪惡의 要素를 除去하기 위한 蕩減을 달게 받겠다는 입장에서 모든 악의 요소를 탕감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 精誠을 들이는 데 있어서는 먹고 자고 입는 것을 제대로 하면서는 드릴 수가 없습니다. 정성이란 먹을 것 다 먹고 잠잘 것 다 자고 입을 것 다 입는 그런 자리에서는 절대로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중대사를 앞에 놓고는 반드시 하나님과 자신과 담판짓는 싸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리 맞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때리지 않거든 내가 솔선해서라도 미리 맞는 것입니다.
맞고 나면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상대가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해 오신 복귀섭리의 법칙입니다.
* 더군다나 외국 식구들은 우리 나라에 대해서 크나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 본구교회 식구들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까지 생각하느냐 하면 선생님은 層階를 구름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선생님은 법을 먹을 때도 숟가락으로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면 화장실도 안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뜻을 알고 나서는 최고의 기준으로 한국과 선생님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그들을 보면 낯이 간지럽고 마음이 간지럽다는 것입니다. 어디 세상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은 그들 이상으로 정성 들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들은 헌금이나 예물을 드릴 때에도 몇십 번씩 기도하고 드린다는 것입니다.
* 우리 식구들은 반드시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성들인 헌금이나 예물을 대할 때, 그 가치를 모르고 대하다가는 그 정성들인 예물에게 심판당한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군왕도 자기 처신을 잘못했다가는 즉 정성들인 사람을 함부로 대하다가는 망하게 됩니다. 또 그 군왕을 따르던 동료들도 그 사람을 반대하다가는 하늘의 역적으로 몰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그렇게 정성 들이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기간에 있어서 틈틈이 성지를 돌려고 합니다.
018-144 선생님이 지금 제일 염려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의 심정이 일본 식구들의 간절한 심정보다 뒤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 우리가 그들보다 못한 자리에 있는 것을 바라보실 때의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시겠습니까?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 하늘이 바라 볼 때 심정을 다하여 정성 들이는 데에 있어서 한국 식구들이 일본 식구들에게 져서야 되겠어요? 또 "가만히 앉아서 지지 않겠다. 나는 천국을 이루겠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니 꼭 해낼 수 있다"고 말만 해서 됩니까? 안 됩니다. 절대로 안 됩니다.
* 우리 통일교회에서는 탕감복귀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인간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본연의 길을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지음받았으니 하나님을 찾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그 길을 가는 데는 반드시 조건을 세워 놓고 가야 합니다. 탕감길을 가기 위해서는 조건이라는 다리를 세워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018-146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간의 소망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기 전의 本然의 世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든지 바라는 소망인 것입니다.
또한 본연의 창조이상세계를 부여해 주시기 위해 인간을 지으셨던 하나님의 소망도 역시 인간과 상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과 하나님이 상봉하는 자리가 영원한 본연의 세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야 하는 것이요,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서 내려와야 되고 인간은 하나님을 찾아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올라가는 데는 그냥 올라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契約條件이 성립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기 위해서도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가기 위해서도 여기에는 반드시 계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 인간은 반드시 복귀되어야 합니다. 타락으로 인하여 본연의 세계로부터 떨어졌으니 탕감복귀하여 본연의 세계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데는 자기 마음대로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마음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데에는 반드시 탕감조건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蕩減條件이 무엇이냐? 契約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 그러면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높이로 말하면 하나님이 보좌에서부터 지옥의 맨 밑창에까지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과정을 다시 복귀해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귀의 길이 얼마나 멀고 복귀의 고개가 얼마나 험하냐 하면 그것은 오늘날 인간 세상에서는 곤욕스럽기 그지없는 험산준령과 같습니다.
높기로 말한다면 히말라야의 산이 문제가 아니고 깊이로 말한다면 태평양의 해저가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분수령이 있고 한없이 깊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타락으로 인하여 그 누가 감히 넘을 수 없고 파고 들어갈 수도 없을 만큼의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 그 기간이 얼마나 걸렸느냐? 지금까지 성경상에 나타난 역사를 두고 볼 때에 6천 년이나 되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을 복귀시키기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깊이 떨어진 인간입니까?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6천 년이나 걸려서 찾아오셨지만 아직까지 그 한 사람을 찾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찾기 못하셨느냐?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탕감조건이라는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 조건을 사탄으로부터도 公認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公認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사람도 타락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公認을 받지 않고는 이 조건을 넘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018-148 인간이 타락으로 인하여 어느 정도까지 떨어졌느냐? 하나님의 종도 못 되는 자리까지 떨어졌습니다. 본래 인간은 무엇으로 태어났습니까? 하나님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본래는 애기로 태어나서 성장과정을 거쳐서 장성하게 되면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실체를 쓴 하나님의 몸이 되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18-150 내려가는 것은 쉽고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즉 타락하기는 쉽다는 말입니다. 타락은 교육을 받지 않아도 잘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수천 년 동안 수많은 성현들을 동원해서 교육을 시켜 왔어도 그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여러분들도 타락하려고만 하면 墮落의 急行列車 일등석을 탈 수 있는 素質이 濃厚합니다. 왜냐? 타락의 대왕인 사탄의 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18-154 사람은 죽어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고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역사과정에 있어서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왔다 갔지만 탕감조건을 세우는 데에 있어서는 죽어서 세운 사람도 있고 살아서 세운 사람도 있습니다.
충성이 천상에까지 사무치게 하고 반대하던 사탄까지도 눈물 흘리게 만들면 사탄이 못 친다는 것입니다.
사탄도 본래는 천성의 인연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한 일을 뉘우칠 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자기도 모르게 눈물 흘리는 감정을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살아서 탕감조건을 세우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살아 생전에 사탄으로 하여금 스스로 悔改하는 感情을 불러일으켜 주지 못하는 사람은 탕감복귀노정에서 중심인물로 등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018-163 오늘날 통일교회가 복이 있어서 그런지 화가 있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과 기독교로부터 시련과 핍박을 받고 있고 환난 고통을 당하면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 그러나 만일에 기성교회가 통일교회와 하나 되고 대한민국이 통일교회와 하나되었더라면 한국의 현실이 이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공산당 문제는 벌써 선생님이 해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민족이 배반하는 자리에 섰고 기성교회가 배반하는 자리에 섰습니다. 핍박하는 자리에 섰다는 것입니다. 갖은 모략을 다해서 통일교회를 핍박하고 선생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거기에 걸려들지 않았습니다. 千辛萬苦 끝에 찾아나오시는 하늘 뜻 앞에 선생님이 그냥 놀고 싶은 마음을 가졌다면그들한테 걸려들었겠지만 천 번 만 번이라도 죽음을 각오하고 탕감노정을 걸어갔기에 그들에게 걸려들지 않은 것입니다.
* 오직 한 가지 해야 했던 일이 뭣이냐? 그것은 전통을 세우는 길을 따라가는 데 있어서, 어떻게 해야 그들이 참소하는 조건에 걸리지 않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어떻게 해서 蕩減의 고비를 넘어갈 것이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선생님의 생활을 알아야 합니다.
* 선생님의 생활 가운데에는 나그네와 같은 행로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둠을 재촉하는 석양빛을 받으며 길을 가는 나그네와 같은 길도 많이 걸어왔습니다.
배낭을 짊어지고 "사랑하는 처자를 남겨 두고 저는 가야 합니다. 안 갈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하던 때를 선생님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하면 충성의 길이요, 잘못하면 원수가 될 수밖에 없는 岐路에서 "하나님을 맞이할 때까지 나는 처자를 사랑하지 않겠다"고 기도했습니다. "7년 대환난의 고개를 넘을 때까지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하는 각오로 떠났습니다.
눈앞이 깜깜해 지고 어떤 장벽이 앞길을 가로막더라도 민족을 찾아나가는 길은 "이 以上의 길이 없다"는 각오로 나왔던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이런 피맺힌 노정을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 각오가 없으면 참의 세계를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자리에서도 자기 처자, 자기 집안을 붙들고 눈물 흘리지 말고 찾아야 할 미래의 크나큰 세계를 붙들고 눈물 흘려야 됩니다.
* 배낭을 하난 짊어지고 길을 가는 나그네 행로에는 지름길이 없고 고른 길이 없습니다. 피땀을 흘리며 찾아가야 할 곤고한 길인 것입니다.
나그네의 행로를 걷는 하늘길을 찾아나가는 청년의 모습은 몰리고 쫓기는 한 마리의 양과 마찬가지입니다. 찾아가는 그 길에서 흘리는 눈물은 나의 눈물이 아니라 나를 통해서 흘리는 하나님의 눈물인 것입니다.
018-165 선생님은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머리를 깎이울 때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내가 원해서 머리를 깎는 것이 아니라 원수의 손에 끌려와 강제로 머리를 깎이는 것이라고…"..
그때 선생님의 눈빛이 얼마나 빛났는지 모릅니다. 떨어져 내리는 머리카락을 보면서 내가 원하던 행복을 버리면서 더우기 원수 앞에서 머리를 깎이는 것이 서러웠습니다.
복귀의 사연을 엮어가는 노정에서는 그 모든 역경이 한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지낼 때는 한스러웠지만 지내고 보니 그것이 다 하나님이 나를 기억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을 이길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 며칠 동안 고문을 당하고 매를 맞고 쓰러지는 그 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매를 맞는 것은 나를 위해 맞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위하여 맞는 것이요, 내가 흘리는 눈물은 이 민족의 아픔을 대신한 탕감의 눈물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모든 행로에 있어서 하나님을 붙잡고 몸부림치면서 하나님의 동정을 받을 때까지 이 탕감노정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나홀로 이 길을 넘어 왔던 것입니다.
* 예수님도 그랬습니다. 민족을 대신하여 탕감복귀의 길을 나선 그 발걸음 앞에 떨어지는 눈물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길을 염려하여 흘리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민족의 죽음길을 염려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배반하여 천상에서 받아야 할 최후의 심판을 염려한 눈물이었습니다.
* 선생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보니까 예수님이 골고다 산정까지 올라가던 도중에 쓰러졌다는 곳에 팻말이 박아져 있었습니다. 12번이나 넘어졌따는 그곳을 바라보며 "이런 탕감길을 거쳐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18-173 여러분은 스스로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야 합니다. 선생님의 등을 타고 가라, 내가 심천에 놓인 다리가 되어 줄테니 타고 가라는 것입니다. 어께를 밟고 머리까지 밟고 가라는 것입니다.
사탄의 참소條件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닦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싫습니까? 그것조차 싫다고 하면 망해야 합니다. 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6천 년 역사의 종적인 한을 횡적인 기준에서 탕감할 수 있는 복된 시대를 맞이하고도 그 시대를 모두 놓쳐 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018-175 복귀의 길은 찾아가는 것이요, 원리의 길은 밟아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이 이 탕감복귀의 길을 나올 때 선생님의 일생은 찾아나오는 노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생님이 이미 찾아 놓은 이 길을 따라서 나오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못 하겠어요? 따라오지도 못 하겠어요? 탕감조건은 하나님과 사탄과 타락권을 벗어난 기준을 세운 사람이 아니면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018-176 그러면 여러분 자신들이 하나님과 사탄 앞에 탕감조건을 세울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되느냐? 선생님을 依支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해방을 맞이할 수 있는 조건을 세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하나는 올라가고, 하나는 내려가는 …, 즉 사탄세상은 내려가고, 하늘세계는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거꿀잡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내려가야 됩니다.
그래서 내려가려고 하면 할수록 올라오는 운세를 타고 올라오게 됩니다. 蕩減은 便安한 자리, 높은 자리, 자기가 願하는 자리에서는 되어지지 않습니다. 알겠지요?
* 그러면 천국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느냐? 이는 예수님이 태어났던 말구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갔던 그 골고다 산정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에서 생사를 판결짓는 자리, 사망과 부활이 생명과 사망이 엇갈리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탕감은 그런 자리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탕감을 하느냐? 사랑을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 통일교회 식구들에게는 선생님이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더라도 선생님께 服從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사랑을 통해서 우리의 탕감조건을 이끌고 나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땅이 공인하고 사탄이 공인할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기뻐서 눈물 짓고 사탄은 슬퍼서 눈물 흘리며 여러분은 기뻐서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야만 거기에서 탕감조건이 세워지고 승리권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가인은 아벨을 따라가야 됩니다. 아벨이 지시하는 길을 순종하면 따라가야 합니다. 아벨이 죽으면 죽고 아벨이 살면 살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선생님을 아벨적인 기준으로 모시고 아벨을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선생님을 따라나와야 됩니다. 이 길이 최후의 길이기 때문에 사망선까지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 심정의 소원이 풀려야 비로소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것이요, 사탄이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추방되는 것이요, 우리들 자신도 안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끝날에 이와 같은 조건을 세울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곳밖에 없으니 그곳이 바로 통일교회라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018-178 선생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강조한 것이 무엇이냐? 선생님은 여러분이 돈을 모으고 잘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傳統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무슨 傳統이냐? 蕩減路程에 있어서 蕩減條件을 세우는 傳統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뜻 앞에 있어서 그러한 전통을 세워야 합니다. 그것을 세워 놓지 않으면, 여러분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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