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창조

책임분담- 볼이 센터 라인을 넘어 자기편으로 오면 마음이 얼마나 초조합니까?

true2020 2014. 7. 4. 16:03

▣ 1968.6.9 (일) 전본부교회. 하늘 편에 서자.

- 방한한 일본식구 환영식 말씀.

 

020-209 자식을 낳아 길러 본 부모들은 알 것입니다. 애지중지한 그 아들딸을 통하여 복을 받고 싶고 행복도 느끼고 싶을 것입니다.

 

또한 기뻐하고 복받을 수 있는 기준이 있으면 그 아들딸에게 영원히 남겨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마음을 가지고 그 아들딸이 되기를 타락한 인간도 바라고 있습니다.

 

밤이나 낮이나 그 아들딸이 고이 자라 만국으로부터 높임을 받고 만세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아들딸이 상처를 입을까 보호하고 애달픈 심정으로 초조해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품 안에서 젖을 먹여 키우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자식이 똥을 싸고 오줌을 싸서 냄새가 나더라도 사랑으로 그 환경을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타락한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도 그러하거늘 하물며 사랑의 주체되시는 하나님께서 본연의 심정을 통하여 아담과 해와를 사랑하고 싶었던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들이 애기를 품고 키울 때에 잠자리에서도 노래를 불러 주고 혼잣말로 애기도 해 주며 잘 되기를 바라는 그 마음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못나고 부족한 자식이라도 그 자식에게 결함이 있으면 부모의 마음은 그 가슴에 몽땅 젖도록 최고의 고통을 겪는 것이요 이것이 풀어지면 그 고통에 비례한 만큼 기쁨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의 마음도 그러한데 하나님의 마음이야 어떠하시겠습니까?  

 

여러분들이 원리를 통해서 아는 바와 같이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되 온 천하가 몽땅 굴복할 수 있는 사랑, 온 전체가 그를 따를 수 있는 권위를 주시돼 온 전체가 완전히 고개 숙일 수 있는 권위, 그런 최고의 사랑과 최고의 권위를 생각하고 인간에게 책임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찌하여 인생 가운데 책임분담을 세우셨던고? 전지전능하신 분이니 그 전지전능한 창조성까지 부여하고 또 영원불변한 사랑의 주체이시니 그 사랑의 주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자리에 세우기 위해서 책임분담을 주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복의 조건이 되는 것이요 전체를 점령할 수 있는 하나의 열쇠와 같은 것이기에 이것을 안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책임분담이 문제가 되어서 타락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020-210 여러분은 제삼자의 입장에 서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과 책임분담과 나" 이런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임분담을 하기 위해 올라가던 과정에서 그 책임분담을 어기려 할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여러분은 축구경기를 많이 해 보았을 것입니다. 자기편의 볼이 센터 라인을 넘어서면 좋아서 "야!" 하고 소리치지만 볼이 센터 라인을 넘어 자기편으로 오면 마음이 얼마나 초조합니까?

 

구경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올림픽 같이 그 경기가 크면 클수록 초조감은 거기에 비례해서 커지는 것입니다.

 

* 그러나 축구에서는 그까짓 한 골 먹으면 다음에 다시 이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 해와 앞에 놓인 책임분담은 한번 잘못하면억천 만세 동안 인간에게 암이 될 수 있는 무서운 구렁텅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책임을 해야 할  입장에 있는 아담 해와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공박攻駁 (남의 잘못을 초들어 따지며 공격함)이 있을 것을 예상해서 "따먹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그걸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느냐는 것입니다.

 

* 그때 하나님의 염려하는 마음이 두 갈래 길에서 얼마나 뒤넘이쳤겠어요? 타락 직전에 가기까지 인간의 권위를 얼마나 주장하고 싶었겠어요?

 

그 권위를 가지고 사탄을 굴복시키고 싶으신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이렇게 애달픈 자리에서 인간은 타락한 것입니다.

 

이것은 천 년간의 한으로 탕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억천 만세에 수많은 億兆蒼生(수많은 백성, 온 세상 사람)이 전부 죽음의 고비에 걸릴 함정이 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셨으니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그러한 비참한 상처를 입힌 인간입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인간은 할 말이 없는 존재입니다.

 

세상에서도 환갑이 넘어 낳은 즉 晩得子인 7대 독자가 죽는다고 생각하면 절망 중에 절망일 것입니다.

 

젊으면 또 낳을 수 있지만, 晩得子로 태어난 그 7대 독자가 잘 자라지 못하고 죽는다면 7 대권을 계승하려던 조상들의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타겠어요?

 

조상들은 자기의 후손, 자기의 핏줄을 통해서 세계에 없는 만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 자식이 죽는다면 그 부모는 따라 죽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7대 독자가 아니 영원한 독자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담을 중심 삼아 가정을 이루게 하여 천지의 대업을 세우려 하셨는데, 그 아담이 죽었으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렇게 일이 틀어졌을 때 어떠했겠어요?  

 

내가 결혼하고 싶은데도 결혼 못할 때의 그 안타까움에 비교되겠어요? 부모는 천년만년 같이 살고 싶은데 7대 독자가 지금 몹쓸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다고 한다면 그 부모의 심정이 어떠하겠어요?

 

여러분의 아들딸이 지금 숨이 넘어가고 있다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부모가 소리치겠어요 안 치겠어요?

 

그 부모는 죽어 가는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체면과 위신을 다 버리고 그 방법을 쓸 것입니다.

 

어떤 원수가 있어 그의 영원한 종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아들딸을 살릴 수 있다면 부모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이해가 됩니까?

 

그 자식을 살리는 어떤 방법이 있다 할진대 부모는 위신과 체면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부모가 종이 되어도 좋다는 것입니다.

 

한날의 뜻을 세울 수 있는 그 한 실체인 아들을 찾기 위해서는 천만년의 한을 푸는 제물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타락한 부모도 그러하거늘 하나님이야 오죽하시겠습니까? 그런 아들딸이 접경을 넘어 영원히 이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비참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