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true2020 2012. 10. 30. 12:55

◑ 마태복음 7장 비판하지 말라(눅 6:37-3841-42)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また, なぜあなたは, 兄弟の 目の 中のちりに 目をつけるが, 自分の 目の 中の 梁には 氣がつかないのですか.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兄弟に 向かって, 『あなたの 目のちりを 取らせてください. 』などとどうして 言うのですか. 見なさい, 自分の 目には 梁があるではありませんか.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僞善者たち. まず 自分の 目から 梁を 取りのけなさい. そうすれば, はっきり 見えて, 兄弟の 目からも, ちりを 取り 除くことができます.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聖なるものを 犬に 與えてはいけません. また 豚の 前に, 眞珠を 投げてはなりません. それを 足で 踏みにじり, 向き 直ってあなたがたを 引き 裂くでしょうから.

 

1. 비판하고 원망하는 조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탕감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의 아들딸에게서 탕감이 오게  된다. 

 

 1971.1.24(일) 전본부교회. 소명을 따라서

040-109 선생님은 통일교인 가운데 오래된 사람들이 병이 난다든가 혹은 다른 어떤 문제에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될 때 "저 사람은 저래서는 안 되는데"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선생님 쓱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말을 해 보면 자기가 지금까지 통일교회를 위해서 희생했는데 뭐 어떻고 어떻고 하면서 불평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이미 자기의 재산 다 팔아먹은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뒤집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판하고 원망하는 조로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직접적으로 탕감하지 못하면 반드시 그의 아들딸에게서 탕감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탕감이 없으면 아들딸들에게 개구쟁이로 태어나 가지고 자기 속을 태우는 일이 벌어집니다. 반드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타격이라든가 그다음엔 심정을 중심 삼고 남편이나 아들딸에 대한 문제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다 틀어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못 받게 될 때는 자기 몸에 대한 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복귀 역사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2,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다. 

-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

- "그대의 몸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대의 영적인 모습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 1957.6.23(일) 강하고 담대하여 잃어버린 복지를 회복하자. 전본부교회.

002-291 먼저 강하고 담대해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자신을 놓고 잘못한 점이 있으면 스스로 비판할 줄도 알아야 되겠습니다.

 

▣ 1956.4.8(일) 승리하는 하나님의 정병이 되자. 전본부교회.

001-012 우리는 이렇듯 크나큰 사명을 짊어지고 있는 자신을 놓고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질문하시더라도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섭리의 전체를 책임지고 싸울 수 있는 용기와 긍지와 신념을 갖춘 하늘의 정병이 되었는가?"라고 아버지께서 물으시더라도 "예, 옳소이다!"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할 수 있는 내가 되었는가···. 하늘은 늠름히 대답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고 계십니다.

 

▣ 1958.12.21(일) 참을 찾아서 헤매이는 인류. 전본부교회.

005-063 타락으로 말미암은 슬픔이 인류를 이런 역경 가운데로 몰아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가고 있는 역사 노정은 타락으로 기인된 행로를 그대로 걷고 있고 또 그러한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허덕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 서서 비판하여 보십시오. 그대의 몸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대의 마음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그대의 영적인 모습은 어떠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그 무엇인지 모르는 절대적인 이념의 본체요 생명의 본체요 사랑의 본체인 그 무엇을 필연적으로 찾아야 할 인간인데 내 한 자체는 지금 방황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나의 모습이 절대적인 선의 방향과 각도에 비해 어떠한 방향과 각도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은 우로 가고자 하는데 좌로 가는 것은 웬일이뇨.

 

▣ 1958.1.5(일) 하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전본부교회.

- 성화 청년회.

 

003-252 그러면 내 한 자체를 온 피조만상 가운데 세워 놓고 마음 몸을 따로따로 떼어 그들과 견주어 보면서 비판하여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역사적인 선지 성현들 앞에 또 오늘날 눈물을 머금고 슬픔과 고통의 길을  참아 나가는 참다운 목자들 앞에 비판당해 보십시오.

 

여러분 스스로가 자랑하고 나설 아무것도 없을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죄의 보응을 받아 마땅한 자체인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3.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는데 그 죽고자 하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까?

 

▣ 1971.8.13(금) 우리의 사명과 책임. 청평.

- 제1차 교회장 수련회. 

 

046-172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질 수 있어요? 성경에 불평해 가지고 뜻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어요?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했는데 그 죽고자 하는 사람이 불평하게 되어 있습니까? 낮고자 하면 높아지고 높고자 하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를 중심 삼고 불평을 하는 것이니 그건 벌써 망조가 든 겁니다. 망하는 겁니다. 

 

뜻의 길을 가는 사람이 언제 불평을 하고 비판을 하면서 갈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는 못 가는 거라구요. 비판해 가지고 다 분석해 보고 그다음에 믿자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같지만 천만예요. 신앙은 다른 겁니다. 믿고 행해 가지고 결과를 분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거라구요. 신념을 가지고 나가야 됩니다.

 

여러분은 순간에 있어서 한 생명을 중심 삼고 얼마만큼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싸움을 해 봤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순간에 있어서 얼마나 땀을 흘려 보았느냐? 30분이면 30분 동안 얼마만큼 나의 정성을 들여 가지고 뼛골의 골수를 짜내듯이 정성을 들여 봤습니까?

 

얼마나 심각해 봤느냐는 거예요. 여러분이 얼마나 심각해야 되느냐 하면 숨소리에도 놀랄 수 있을 만큼 심각해야 되는 거라구요. 복귀 노정은 - 숨소리까지도 듣기 싫어할 정도로 심각할 때가 있어야 합니다. 

 

* 사람을 구해 주기 위한 간절한 마음이 얼마만큼 사무쳤느냐? 거기서 하늘의 인격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요 승리의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소유권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4. 나 불평이란 것을 모른다. 

 

1) "辭典에서 불평이란 말을 빼 버려라!"

 

▣ 1984.5.4(금) 이스트 가든. 주체사상과 경제. 세계 간부 회의.

131-229 자, 이제 불평할래요 안 할래요? 실패하는 길을 갈 때는 불평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성공하는 길을 가는데 어떻게 불평하느냐? 이거예요. 불평하는 사람은 입을 째고 눈을 빼내야 돼요. 이놈의 자식들!

 

그래서 레버런 문은 불평이라는 걸 배우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에서 불가능이란 말은 빼 버려라!" 했지만 레버런 문은 "辭典에서 불평이란 말을 빼 버려라!" 하는 거예요. 이거 말은 간단하지만 나폴레옹이 주장하던 "불가능이란 말을 빼 버리라"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이에요.

 

선생님은 쇠고랑 채워 감옥 보내도 불평 안 했다 이거예요. 쇠고랑을 역사를 걸고 하늘땅을 걸고 신호등으로 안다 이거예요. 우주를 깨우치는 전진 명령으로, 信號燈으로 생각한다 이거예요. 우주로 새로이 前進하라는 명령을 다짐하는 신호로 생각하는 거예요.

 

어때? 이놈의 자식들, 불평하겠어 안 하겠어? (안 하겠습니다.) 여러분들 옆에 있는 사람하고 마주보고 앉으라구요. 서로 마주 보고 "나 不平이라는 걸 모른다"라고 얘기하라구요. 손을 가슴에 대고 말이에요.

 

오늘 이런 장면은 인류 역사상에, 섭리사에 있어서 기록적인 일이에요. 역사적이에요. 하나님과 영계가 내려다볼 때 "아, 기분 좋다" 이러겠어요, "쉬-"이러겠어요?  (기분 좋다구요.)

 

사탄 세계는 이제부터 후회합니다. 사탄의 무대는 불평에서부터, 에덴동산에서 불평을 느낀 것이 사탄이에요. 사탄은 뭐냐 불평의 조상이에요. 알겠지요? 그러니 사탄을 쳐 부숴야 돼요. 이렇게 되면 영계와 육계가 통일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선생님이 탕감 조건 다 세웠다구요.

 

자, 이제 불평하지 말라구요. 그러면 희망이 여러분 앞에 찾아올 것이다 이거예요. 여기서부터, 지상세계에서 영계를 부르면 영계에서는 "예스" 하고 여기서 심각하면 영계도 심각하게 태세를 갖춘다는 사실을···. 흥진 군이 갈 때 그런 자리에서 기도를 했기 때문에 영계가 통일된다 이거예요. 알겠어요?   

 

2) 그들은 다 선생님을 대신한 사람들이에요.

 

▣ 1964.4.7(화) 춘천교회. 복귀 섭리의 원칙.     

154-108 여기 지역장들은 선생님 대신 지구장을 받들어 가지고 일심단결 또 지구장을 중심 삼은 구역장들은 일심단결, 구역장을 중심 삼은 전도사들은 일심단결, 전도사를 중심 삼은 식구들이 一心團結해야 돼요. 그들은 다 선생님을 대신한 사람들이에요. 그러니만큼 그릇된 것이 있으면 그걸 덮어 주고 키워야 된다구요. 자기 집안의 흠이니까요.

 

자기 아버지에게 흠이 있으면 "야, 우리 아버지가 어저께 남의 집에 가서 도둑질했다" 하고 자식이 공포하겠어요?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말이에요. 흠이 있다 할 때 자식이라면 식구라면 보호해 줄 수 있어야 돼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을 좋은 면으로 뻗게 해 주어야 된다구요. 여러분들이 서로서로 키워 줄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여러분들이 자라난다구요. 

 

* 교회에 돌아가게 되면 절대 "우리 지역장은 뭐 어떻고" 하고 불평하지 말아요.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되겠어요. 그런 사람은 뭐야? 원수의 族屬이에요 가인이요 사탄이에요 불평하는 사람들을 우리 식구들은 대하지 말라구요. 그 사람을 대하면 損害가 난다구요. 不平이 있더라도 자기 혼자 눈물을 흘리고 祈禱하는 사람의 편이 돼서 나가야만 됩니다. 알겠어요?

 

 

▣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 순회 떠나시기 앞서.

 

022-173 하나님과의 내재적 관계에 의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 교회는 말로만 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나와 직접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입장에 있는 교회가 되라는 것입니다. 교인들도 그래야 합니다.

 

그런 내재적 입장에서 일치된 그 형제를 하나님의 몸 같이 사랑하고 하나님의 지체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교회가 되고 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기 위주로, 자기에게 편안한 것을 위주로 한 교회와 요인이 되면 안 됩니다.

 

자기가 좋은 자리에 있으면 형제들이 어떻게 되든 상관 안겠다는 사람은 벌 받습니다. 하나님과 내가 어떤 관계가 맺어져 있는가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에는 식구가 식구를 보게 될 때에 얼굴만 보고도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자기 형제가 수치스러운 일로 집안을 망신시키게 될 때 집안 식구는 그것으로 말할 수 없이 가슴 아파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형제의 수치를 내가 가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실감하고 책임지겠다고 하는 형제의 감정을 가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없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한 서로가 하나되어야 합니다. 통일교회는 좋은데 누구는 보기 싫다고 하면 벌 받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형제의 관계에서 있어서 가인적 존재입니다. 동생이 사랑받는 것을 시기하던 가인의 혈통을 이어받은 가인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흠이 있으면 서로서로 덮어 가면서 일해야 합니다. 형의 입장에서 동생을 권고하고 동생은 형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으로 일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본이 되는 식구입니다. 선생님이 없을 때 여러분끼리 서로 흠을 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 다음에는 자기에 대한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웃을 사랑하기를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했지만 그 사랑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사랑해야 하는데 그 반대로 됐습니다.  

 

3)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 1970.12.27(일) 전본부교회. 뜻과 나.

037-248 지금까지 예수만 믿고 구원받아 천당 가겠다고 하는 도둑놈의 심보를 가진 사람이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선생님은 생명을 다하며 별의별 수난 길을 걸어왔습니다. 지금까지의 길이 지옥 같았지만 "내가 아직 생명을 다하지 않고 목숨이 남아 있는데 무슨 불평을 하겠느냐" 하며 나왔습니다. 아직까지 내 가슴에 붉은 총탄이 들어가지 않았고 시퍼런 창끝에 찔리지 않았는데 무슨 불평입니까?

 

제1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네 생명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명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고 우주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16:26) 라는 말씀은 천하보다 귀하고 유일하며 절대적인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절대적이며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절대자는 그 생명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은 절대자에게 봉헌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조 가운데 제1조입니다. 알겠어요?

 

▣ 1963.8.11(일) 주인이 없는 아버지의 뜻. 전본부교회.  

012-335 선생님은 한번 약속하면 요동이 없습니다. 내 가정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믿고 약속한 것은 어기지 않습니다.

 

* 선생님은 일생 동안 선생님이 가는 길이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도 못 가겠다는 생각은 안 해요. 이제 앞으로 세계를 한번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큰일을 하기 위해 감옥까지도 갈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이 철창에 들어가 10년, 20년 있더라도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습니다. 監獄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통일교회는 부흥되게 돼 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선생님이 감옥에서 囹圄의 몸이 되어 처량한 신세가 되었지만 파리가 제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 신세가 왜 이렇게 되었나. 하나님도 무심해라. 약속은 그렇게 하시고 큰 소망을 주시더니 감옥이 다 뭐야?" 하고 한탄恨歎하지 않았습니다. 탄식하고 絶望하자면 한이 없는 것입니다.

 

죽을 때에도 約束과 더불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망한다고 해서 자기 전체를 팔아 버리는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망하더라도 약속했으면 고이 망하라 이겁니다. 그렇게 되면 영혼은 저나라에 가서 귀한 자리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꿈에라도 "아, 아버지 이제는 못 가겠습니다" 하고 기도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당하면 당하는 대로 처리해 나왔습니다. 얼마든지 복귀해 나왔습니다.

 

"하나님도 무심하시구나" 하고 원망해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죽는 한이 있어도 내 입술이 내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하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각오하고 나서 걸어가는 것입니다. 

 

   

4) 축복받기를 바란다면 지옥 밑창으로 떨어져라.

 

▣  1994.8.21(일) 코디악. 축복가정 2세가 가야 할 길.

- 2세 해양수련 

 

263-105 앞으로 축복받기를 바란다면 어디로 가야 된다구요, 어디로 가야 된다구요? 여러분이 바라는 최고의 자리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地獄 밑창으로 떨어져라 이겁니다. 세계의 거름더미에 가서 이걸 전부 청소해라 이거예요.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은 일생 동안 불평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비판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효자의 길이, 충신의 길이 不平이 아니에요. 批判이 있을 수 없습니다. 완전한 주체 앞에 사랑 관계를 맺은 한 불평 비평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남편이 잘못하면 전부 다 자기 것입니다. 내 잘못이에요. 아내가 잘못해도 내 잘못으로 알아야 됩니다. "나 당신 싫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63-145 여러분, 도깨비불 봤다고 그러지요? 선생님의 역사에, 선생님이 철든 후에 이 길을 출발하기 전까지 별의별 일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불에서 불꽃이 이 창구로 빠져나가 가지고 불을 놓는 것입니다. 그것이 막연한 것이 아니에요. 사실입니다. 그런 일이 벌어져요. 사탄이 최대의 발악을 해 가지고 파탄시키려고 그 과정을 거쳐 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함부로 하지를 못해요. 따지기를 하려면 반드시 탕감이 오는 것입니다. 아니 가려야 안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탄이 동정할 수 있는 길을 가야 돼요. 탕감길을 가야 됩니다. 하나님이 동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탄이 동정해서 넘어야 이것을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평을 할 줄 몰라요. 선생님의 원수가 많아요. 칼침 놓을 수 있는 원수를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 이름을 빨리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마음속에 원수의 마음을 기억하신다면 복귀 섭리를 시작 못합니다.

 

아까 말한 4천 년 전에야 섭리의 착지를 했다는 건 뭐냐? 하나님은 내적 심정으로 볼 때 원수의 자식을 자기 직계의 자식보다 더 사랑해야 된다는 그 기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 원칙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90%가 올라가도 또 하루에 타락한 생각을 하면 그냥 영점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수천만 년 오르락내리락했다는 것입니다.

 

5) 아벨이 가는 길.

 

▣ 1973.3.4(일) 아벨의 길. 벨베디아.

065-327 아벨이 가는 길은 불평이 없습니다. 불만이 없습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진리의 말씀이라구요. 내가 그렇게 살아 보니 틀림없더라구요. 여러분에게 나라를 상속해 주려니 거기에 조그만 조건이라도 세우게 하려고 이 놀음하는 거라구요.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두고 보면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전승 장병이라고 해서 그 나라가 추앙하고 있습니다. 일선에 나가기 위해 집을 떠나 전선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고 떠나자마자 전쟁이 끝났으면 그 군인도 전승 장병으로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한테 參戰의 價値를 부여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 미국이 못하고 세계가 못하는 놀음을 선생님이 혼자 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 얼마나 어리석고 세상에서는 "제가 뭐라고" 하면서 비웃겠지만 심정의 세계에서는 비웃음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것을 보다 가치 있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그 뜻이 이루어질 때가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놀음하는 거라구요. 여러분은 선생님 옆에 있어도 선생님이 무슨 기도를 하는지 모를 거예요. 선생님은 여러분 앞에 빚을 지지 않는다구요.

 

그러면 선생님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선생님은 어떠한 사람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은 성격이 굉장히 급한 사람입니다. 한마디 욕을 먹더라도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누구한테 한 대 맞게 되면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또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내가 극단적인 특성은 다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그런 기질을 갖고 있고 그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어요. 무슨 운동을 해도 내가 이기고 만다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구요. 내가 머리도 나쁘지 않다구요. 그런 내게 비참한 경지, 내 성격으로는 이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그런 경지가 몇십 번 몇백 번 몇만 번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창피하다면 그 이상 창피할 수 없는 경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그러나 이것을 다 극복해 나온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선생님과 같이 불 같은 성격이 있을 터인데 성격대로 한번 하게 되면 세계를 전부 다 쓸어 버릴 수 있는 입장에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꿋꿋이 참으셨기 때문에 세상이 남아진 게 아니냐.

 

사탄 대해 복수하려고 해도 그 이상 하나님이 참으신 것을 알고 회개하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한 어려움과 그러한 억울함과 분함을 참으면서 나오신 하나님의 뜻을, 이 복귀의 뜻을 내가 어찌 더럽힐 수 있으며 어찌 흠을 낼 수 있겠느냐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서 참고 그런 자리에서 극복하고 그런 자리에서 용서해 주고 그런 자리에서 사랑하자 할 수 있는 길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 내가 불평하려면 누구보다 불평할 수 있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의 책임을 갖고 온 사람이라구요. 그런데 지금 부모의 책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벨의 책임을 하고 있다구요. 지금 여러분들은 선생님한테 면목없는 자리에 서 있단 것을 깨달아야 됩니다.  

 

▣ 1971.4.25(일) 전본부교회. 신앙자의 자세.

043-125 자기를 높여 달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절대 아벨이 될 수 없습니다. 아벨이 못 됩니다. 자기를 알아 달라는 사람은 전부 다 가인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돼요.

 

불평을 하면 불가피하게 가인이 되는 거예요. 가인이 되지 아벨은 절대 못 됩니다. 아벨이 될 수 있다 없다? 불평하게 되면 아들딸이 될 수 있다 없다? 없다. 그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역사 노정을 홀로 걸어 나오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