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창조

가상적인 신이라도.

true2020 2012. 10. 18. 12:05

假想的인 神이라도. 

 

1. 인생 문제, 생애 문제, 생사에 대한 문제, 생의 기원, 죽음의 기원이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신에 대한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 1987.4.17(금) 본부교회. 우리 민족의 갈 길. 

162-263 죽으면 없어져요. 그게 얼마나 허무해요. 그렇기 때문에 인생 문제, 생애 문제, 생사에 대한 문제, 생의 기원, 죽음의 기원이 어떻게 되느냐 이거예요. 이걸 확실히 알아야 돼요. 그다음에는 신에 대한 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류 역사에 있어서 죽음의 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기 때문에 죽음길을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로 종교가 나오는 거예요. 사람은 일생만이 아니라 영생이다 이거예요.

 

종교는 지금까지 지구성에서 없어지지 않고 문화 배경과 풍습이 다른 모든 환경을 거쳐오면서 세계적인 판도를 확대시켜 나왔습니다. 그것은 사람은 일생이 문제가 아니라 영생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는 요 시대에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주와 더불어 생활해야 된다 이거예요.

 

일생이 100년 이내의 짧은 생애이지만 생애의 한계로써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한계선을 극복하면 超然한 권내에 들어가 가지고, 限界로 삼던 그 모든 지구촌을 넘어가 가지고 초연한 자리에서 생존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제···. 

 

그렇기 때문에 실제는 없더라도 지금까지 고통 가운데에서 신음하며 사는 인류를 同情해서 돕기 위해서는 假想的인 영생론을 주장하고 가상적인 신을 중심 삼은 이상국가 형태를 추리해 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러면 가상적으로 추리된 그런 종교 이상이 있다면 누가 만족을 느끼나요. "있다!" 하는 그 정함은 영원부터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근본부터 "그렇다" 할 수 있는 자리까지 밝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영생 문제와 더불어 종교 문제를 중심 삼고 신 문제까지 해결해야 돼요.     

 

▣ 1989.6.24(토) 한국뿌리찾기연합회의 갈 길. 한남동. 

191-016 이런 모든 것을 두고 볼 때 이 우주의 근본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있느냐 하는 문제, 이것을 설정 못하면···. 우리 회장님, 생명 어디서 왔어? (부모로부터요.) 부모의 생명은 어디에서 왔어? (할아버지요.) 항아버지. 맨 나중에 한 사람, 그 할아버지 생명은 어디에서 왔어? 주워왔어? 

 

* 그러면 수직적 근원적 조상이 누구냐? 이렇게 볼 대에 그 수직적 사랑의 주체는 신이어야 됩니다. 없어도 가상적인 술어를 세워서 논리적인 이 모든 해결 방편 기조를, 원칙을, 동기를 만들어 놔야 된다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2.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3. 평화니 행복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꿈도 꿀 수 없습니다.

 

▣  1974.6.23(일) 벨베디어 수련소. 남아지는 사람들.

072-210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님이 계시다면 설혹 하나님이 없다면 가상적인 하나님을 만들어서라도 그를 주체로 세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이 전체 사람들이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융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신이 없다면 가상적인 무엇이라도 그것을 표준화하고, 그것으로 우리의 욕망을 대신하고 그것으로 사랑을 대신하여 인간을 하나 만들 수 있는 존재를 세우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하나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신이 없다면 가상적인 신이라도 만들어 하나의 주체로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하지 않을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무슨 평화니 행복이니 이상이니 하는 것을 찾을 수 없습니다.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러니 만일 신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여러분이 큰 문화 저택을 짓고 싶어서 설계를 다 해 놓고 집을 짓는데 필요한 재료가 풍부하다면 얼마든지 골라서 좋게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꿈이 있다 해도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내용과 재료가 없어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이 아무리 가상적인 신을 만들었다 해도 거기에서는 완성이란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 세상에서 그런 꿈과 같은 하나의 가상적인 신의 존재를 찾고 있는데 만일 신이 사실로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인간이 이상으로 찾아 나오는 하나의 중심 존재를 가상적으로 세웠는데 그 신이 사실로 있다면 그 가상적인 꿈과 이것이 얼마나 맞겠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에게도 꿈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찾는 욕망을 무엇일 것인가? 우리가 암만 생각해 봐도 그건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 1961.10.28(토)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아들딸. 전주교회.

150-264 인간의 두뇌와 인간의 어떤 기반 밑에서 나온 조직적인 사회 형태를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러니 차원이 다른 세계의 종교를···. 따라서 가상적인 신의 실존을 세워 가지고 통일의 명사라도 꾸며내야 된다 이겁니다. 

 

▣ 1977.10.1(토) 사랑의 승리자. 파사데나 공관.

- 세계 지도자 회의. 

 

094-254 만일에 인류를 하나로 만들 수 있는 가상적 신이라도, 위대한 가상적인 신이라도 발견해 놓기 전에는 가상적 길이라도 인류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없고, 이 세계는 암흑의 세계가 되고 파괴의 세계가 되기 때문에 내 힘으로 이걸 깨뜨려 부숴야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은 참이 아니에요. 거짓된 세상이다 이거예요. 종교고 무엇이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아예 하나도 없이 깨뜨려 버리는 것이 도리어 더 좋다구요. 

 

그래서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구요. 이게 사실이라면 신이 없는 것이요, 사실 신이 있다면 내 자신이 문제다 이거예요. 신이 없더라도 내 자신이 문제이고 신이 있다 해도 내 자신을 보면 문제다 이거예요. 

 

▣ 1976.8.1(일) 전후 세대. 벨베디아. 

088-088 이렇게 보게 될 때에 변하지 않는 어떤 가상적인 절대적인 신이 있어 가지고 그분은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그분은 영원한 사랑을 지닌 그러한  가상적인 존재라도 세우지 않고는 세계를 수습할 길이 없다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구요. 

 

4. 싫든 좋든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 1990.6.24(일) 하나님과 우리는 지자였던가 우자였던가. 본부교회. 

203-142 하나님이 지금까지 인류 세계를 대해 구도의 도리를 펴 가지고 구원하기 위해서 나왔지만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누가 알아요? 하나님이 지극히 어리석은 분이었어요. "하나님이 어디 있어?" 하면서 인간들이 하나님이 없다고, 자기들이 제일이라고 주장해 나왔지만 결국 끝날에 가서 하나님의 경륜 앞에 전부 빠져 버리고 말게 돼 있습니다. 잘났다고 해 봐야 결국은 손오공이 부처임의 손바닥에서 논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시대에 있었던 인류의 모든 종말적 현상을 바라보게 될 때 이제는 싫든 좋든 하나님을 찾지 않고는 살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하나님이 없더라도 가정적인 하나님을 만들어 놓은 후에야 세계를 구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모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가설도 정론으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인류 현세의 실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까지 왔습니다. 

 

자, 그러면 기성교인들을 붙들어 놓고 "하나님 있어"" 하고 물어보면 백 명 가운데 있다고 하는 사람이 몇 사람 될 것 같아요? 

 

* 그러나 통일교회 교인 백 명을 붙들고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고 물을 때 몇 %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전부 있다고 합니다.) 이거 아침부터 거짓말하고 있어! 몇 % 있다고 해요? 어디 100%라는 사람, 손들어 봐요. 

 

* 벌써 질적으로 다릅니다. 어떻게 있다고 하느냐? 체험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고 어머니가 아니라고 하고 남편이 아니라고 하고 아내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칼을 목에 대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없다고 못 합니다. 내 오관이 살아 있는 한, 맥박이 흐르는 감정을 통해 의리를 세우려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일 때는 부정 못해요. 왜? 부정할 수 없는 체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게 통일교회의 자랑입니다. 아시겠어요? 뭐가 자랑이에요? 하나님을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1972.8.18(금) 청평수련소. 신앙과 나. 

- 제1회 교역장 수양회. 

 

060-268 만약에 인간을 초월한 자연적인 사랑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이라도 세워 가지고, 가상적인 사랑의 표어라도 세워 가지고 거기에 규합될 수 있는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인간은 끝장이 날 것입니다. 전 세계는 死亡이요 破綻이요 絶望에 부딪칠 것입니다. 소망이 없는 거예요. 그것으로 망하는 것입니다. 

 

가상적인 신을 중심 삼은 사랑, 그것을 찾기 위해 허덕이면서 없는 사랑이라도 세워 가지고 그 길을 摸索하고 거기에 새로운 이상이라든가 평화라든가 혹은 행복의 요인을 재설정하지 않는 차제에 하나님이 사실로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만일 신이 있어 가지고 그런 일을 해 왔다면 얼마나 고마운 것입니까? 그런데 그야말로 그런 신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 1974.4.28(일) 전본부교회.  

071-035 만일 신이 없다 하더라도 가성적인 신, 초월적인 신, 인격을 중심 삼은 최고의 이상적인,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목적을 제시하는 가상적인 신이라도 이것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현세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5. 진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이게 큰 문제예요.

 

 1988.6.14(화) 제26회 만물의 날과 해방. 벨베디아. 

178-306 이렇게 볼 때 이 세계 사람들이 전부 다 "신이 없다, 신이 죽었다" 해 가지고 신을 추방해 버리고 인본주의니 무슨 주의니 하고 야단하지만 지금이야말로 신이 없다면 가정적 신이라도 만들어 가지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있다고 선전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밖에 없다 이겁니다. 

 

그러면 수많은 종교인들이 신을 숭배하고 나오는데 신을 가졌다는 종교가 이 세계를 수습할 수 있느냐? 없다는 거예요. 그 말은 뭐냐 하면 가정적인 신보다 못한 신을 믿었다는 결론에 떨어졌다 이겁니다. 이렇기 때문에 진짜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이게 큰 문제예요. 그런 것이 문제되는 거예요. 

 

▣ 1977.10.9(일) 통일의 근핵. 벨베디아. 

094-275 이렇게 볼 때 만일 신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인간들이 바라는 선이니 무슨 이상이니 하는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입니다. 결국은 우리 모순된 자체가 모순을 극복하고 선할 수 있는 세계와 이상 세계를 실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인 존재인 우리 인간 자체가 이렇게 되었으니 그 결과적인 존재 자체가 자기를 능가할 수 있는 어떤 초연한 입장의 이상경에 도달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볼 때 불가능하다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만약 신이 없다고 한다면 뭐 이상 세계니 하나의 세계니 무슨 절대적 사랑이니 하는 그런 모든 것은 우리가 아무리 말했댔자 불가능한 거예요. 아무리 말했댔자 없으니까. 

 

*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우리 인간 자체로서 모든 것이 시작한다고 생각해 보게 되면 모순된 환경에서 어떠한 발전을 해 나간다는 이런 관 즉 헤겔의 변증법 같은 논리가 여기에서 성립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하는 것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자, 모순된 것이 서로 투쟁해 가지고 발전이 있을 수 있느냐? 그건 논리적으로 모순이라구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이상 실현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볼 때 불가능한 것이라구요.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우리가 가상적인 신이라도 발견해 가지고 해결 방안을 추구할 수 있는 한 방편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성적인 신을 통해 가지고 이상 실현이 가능할 것이냐? 어느 과정적인 현상, 과정적인 입장에서는 가능할 것 같이 보이지만 종국에 가 가지고는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거예요.

 

이렇게 볼 때 신은 절대적으로 있어야 한다구요. 신이 없어 가지고는 이것이 안 될 텐데 신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이거예요.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근거점이 된다 이거예요.  

 

▣ 1970.8.16(일) 전본부교회. 해방과 우리의 책임. 

033-224 어떤 정치가 혹은 위대한 성현 또는 위인이 인류를 수습하기 위한 새로운 사상과 주의를 제창하려 한다면 인간의 힘만 가지고는 안 될 절망의 자리에 있는 인간을 위해 가상적인 절대적인 힘의 주체라도 끌어들여야 할 시점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신이 없더라도 인류를 더 이상 절망의 환경, 구속의 환경에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인류를 그러한 환경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 어떠한 절대자의 개입이 필요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신이 없더라도 假想的인 신을 세워서 그 신을 바라보는 사람이나 나라는 천국으로 나갈 것이요 보다 나은 새로운 본연의 곳에 접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없더라도 가상적인 신이라도 주장하여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때에 신이 있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 되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그러면 그것을 책임지고 세계 앞에 있는 힘을 다하여 외쳐야 할 것이 아니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6. 우리들은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추구하고 추구해야 할 운명에 처하여 있는 것을 항시 양심의 작용을 통하여 체휼하고 있습니다. 

 

▣ 1959.8.30(일) 전본부교회.  아버지의 것은 나의 것.   

007-152 우리는 지금까지 자기의 가치가 무한한 줄 알고 있습니다. 가치의 내용은 알지 못하면서 가치를 지닌 존재로만 알고 있는 그런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의 완전한 가치를 찾아 세워 완전히 남아질 수 있는 역사적이며 우주적인 大實存 앞에 멋지고 늠름하게 자랑할 수 있는 모습이 못 되어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는 바입니다. 

 

이런 입장에 있는 우리인 연고로 그 가치의 존재들, 가치의 모습을, 가치의 인연을, 가치의 세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구나 부정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 나가야 할  모습들입니다.

 

이것을 시인하면서 만상을 바라보고 대우주를 바라보게 될 때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의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추구하고 추구해야 할 운명에 처하여 있는 것을 항시 양심 생활을 통하여, 양심의 작용을 통하여 체휼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지에서 하나님이 없다 할지라도 가상적인 절대자를 세워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 이런 처지에 놓여 있는 인간인 연고로, 이러한 불쌍한 사정에 엉클어져 있는 인간인 연고로 하늘이 있다면 여기에 어떠한 인연을 세워야 할 책임이 있을 것입니다. 하늘이 절대적인 가치의 주체요, 가치의 본체라 할진대 하늘이 가치의 인연을 찾아 세우기 위해 수고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에게는 사랑이니 무엇이니 무엇이니 하는 말이 적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논리적인 견지에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이 타락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본연의 위치를 상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린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나, 이러한 우리들은 이 전체의 세계를 바라보고서 하늘이 있다 할진대 "하늘이여" 하고 울부짖어야겠고, 절대자가 있다 할진대 "절대자여" 하고 울부짖어야 되겠고, 선의 형체를 갖춘 그 무엇이 있다 할진대 그것이 실체적인 것으로 나타나 주기를 懇求해야 되겠고, 그러한 절대자나 하늘 혹은 선한 존재를 간곡한 마음으로 그리워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