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자녀. 2세

딸기 이야기

true2020 2010. 11. 6. 00:15

▣ 딸기 이야기 - 문형진

- 행사 때 사진 찍히는 것. 누군가로부터 심판

- 부모님을 빼앗아 간 사람들에 대한 분노. "당신들 누구야? 우리에게 숨 쉴 공간을 달라."

 

나는 성장하면서 지루한 수련회 내내 긴 원리강론을 수천 번이나 들었다. 사랑에 대해서 하나님의 심정과 고통에 등에 대해서 수없이 많이 들었으나 내 인생과 실질적으로 연관이 있다고는 한번도 느껴 보지 못했다.  어떤 이론에 불과했다. 그저 의무감으로 참석하였을 뿐이었다.  

  

비록 내 아버지였지만 정다움은 한번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1년에 1주, 2주 부모님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침 시간에 잠깐 인사드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여러 번 겁이 나기도 했고 포기하기도 했고 무시된 느낌을 받곤 했다.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있을 때에도 나는 결코 그분과 연결되지 못했었다.

 

아버님과 나 사이에 진실된 관계가 시작된 것은 아버님께서 내 이야기에 그와 같은 반응을 하신 이후부터였다.

  

옛날 옛적에 농사일에 매달려 사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일을 하다가 깜박 졸았나 싶었는데 깨어나 보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그 농부는 벌떡 일어나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컴컴한 밤중에 멀리서 부엉이 우는 소리만이 그의 걸음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그를 무섭게 만들었다. 그의 뒤에서 무엇인가가 그를 따라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고픔에 군침을 흘리며 달려오는 육중한 걸음을 들을 수 있었다. 농부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점점 숨이 차기 시작했다. 농부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전력을 다해 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절벽이 나타났다. 뒤에는  호랑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농부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뛰어내렸다. 그는 굴러 떨어지며 운 좋게 어떤 식물의 넝쿨 한 줄기를 움켜쥐어 죽음의 순간을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절벽 위를 쳐다보니 호랑이 한 마리가 "이리 올라 와! 내 너를 잡아 먹어 줄 테다."라며 으르렁거렸다. 아래를 보니 음침한 골짜기에 또 다른 호랑이 한 마리가 어슬렁 거린다. "이리 내려와라! 내 너를 잡아먹을 테니!"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농부는 바로 위에서 검은색과 흰색의 생쥐 두 마리가 그의 생명을 지탱해 주고 있는 그 넝쿨 한 줄기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명의 넝쿨을.

 

그런데 이 절박한 순간 농부는 눈 앞의 탐스럽게 피어나는 딸기 한 송이를 보았다. 그는 그 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다. 아, 이 달콤함이여!

 

- 검은색 쥐: 밤

- 흰색 쥐: 낮

 

우리는 언젠가는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그런 절박한 삶 속에서 딸기들을 인지하라는 것이다.

 

일요일 오후 공원을 산책한다. 지금 이 순간 조그마한 관심을 기울이기만 한다면 향기롭고 맛 좋은 딸기들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내가 이 이야길 아빠에게 했을 때 아빠는 내 얘기를 들으시자마자 "그래, 아들아! 그런데 그때 그 딸기를 그 쥐나 호랑이에게도 주었어야 했단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기절할 줄 알았다. 그것은 생각 후에 나온 답변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아빠의 존재 자체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인생의 딸기를 자기 목숨을 위협하고 있는 원수에게까지 주는 동정심, 사랑하는 모습은 나를 날려보냈다. 나는 기절했다. 내가 깨어났을 때는 내 머리는 빡빡 깎여 있었다. 

 

이런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경험을 한 뒤에야 나는 솔직히 내 자신을 통일교인이라 간주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아빠는 많은 것을 성취해 내신 존경하는 개인적인 아버지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후 아버님은 나의 영적인 스승이요, 안내자가 되었다.  

 

이날 이후 나는 말씀하실 때나 일상 대화 중에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훈독회에서 사용되는 책들을 읽기 시작했으며 "나뭇잎들이 자녀들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라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다. 알겠어? 그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냐."(학생의 길, UC2000)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나는 통일사상과 창시자의 광대한 가르침에 대해 학문적 관심에 더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는 딸기를 발견하여 쥐나 호랑이에게 주는 것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다시 쓰거나 미래에 대해서 쓸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대해서 쓸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숨을 쉬고 있으며 이 지상에서 사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1. 나는 우리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주는 열쇠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 열쇠는 우리 자신이다. 보물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이제 내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내게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침착하게 그리고 조금 더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분노와 원한을 느끼던  매 순간마다 내게 선택권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심하게 좌절하고 화내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으며 또 한편으로는 그런 감정들이 내게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하게 할 선택권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순간부터 세상은 좀 더 밝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는 곳엔 항상 붙어 다니며 내 머리 위를 맴돌던 먹구름이 이젠 사라졌다. 삶에 대해 보다 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이란 한번의 눈을 깜빡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주의를 기울일 때만이 우리의 인생은 의미롭게 된다.

 

소위 인생이라 불리우는 이것은 매우 귀하고 풍성하다. 그것은 영원 속의 한 순간과도 같으며, 말할 수 없이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 순간은 영원한 순간이다.

 

그것은 영원 자체보다도 훨씬 귀한 영원 전체를 함축한 순간인데, 그 이유는 당신이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무한한 감사를 드리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죽음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해 깨달음은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인생에 대해 더 큰 감사를 느끼도록 해 준다. 

 

"안녕히 가세요,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준다.

하나의 존재를 더 심오하게 느끼게 해 준다. 

 

내게 귀중한 모든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언젠가는 떠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들이 여기 있는 동안 나는 모든 노력을 동원하여 그들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나는 죽을 때가 가까워져 "나는 나의 영원을 찾아어야 했는데…., 내 인생을 분노와 원한으로 낭비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살아 있을 때 더 삶다운 삶을 살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2. 궁극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을 것이다.

우리는 죽기 위해 살고 있다. 그러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살기 위해 죽는 것이다. 한순간도 낭비하지 말라. 그저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 사라지게 하지 말라. 그 대신 찾으라.

 

어지러진 마음을 새롭게 잡아라. 평화를 만들고 행복을 느끼며, 영혼으로 하여금 영광된 사랑의 품으로 맘껏 날아가게 하라.

 

3. 우리는 선택한다.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이제 인생인 선택할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의 바람에 인생이 날아가지 않도록 주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