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창조

참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이상 참은 사람이 없고 역사 노정에서 제아무리 고생한 사람도 하나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true2020 2010. 11. 5. 15:30

▣ 1968.10.14(월) 종묘. 서대문 형무소 출감 13주년과 흥남 출감 18주년 야외예배.

021-073 타락한 세계를 책임지고 복귀해 나오시는 하나님은 높고 귀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곳에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도 없고 형용할 수도 없는 비참하고 비통하고 참혹한 배후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그 수고로운 사정을 오늘날까지의 역사 과정에서 그 누구에게도 호소해 본 사실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렵고 슬픈 일을 무한히 당해 나오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오늘날 이 땅 위의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은 인간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신 넓고 크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는 데 있어서도 하나님 이상 참은 사람이 없고 역사 노정에서 제아무리 고생한 사람도 하나님만큼 고생한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추측도 할 수 없는 내적인 고통을 지니시고도 인간 앞에 그것을 표시하지 않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어려운 짐을 품고 신음하면서도 그것을 나타내지 않고 극복해 나오면서 자신이 계획했던 것을 포기하지 않고 그 고개를 넘고 넘어서 새로운 복귀의 섭리를 해 나오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고생하기 전에 더 큰 고생을 하시고 우리가 슬픔을 당하기 전에 더 큰 슬픔을 당하시며 오늘의 이 슬픈 세상을 다시 구해야 될 책임을 지고 계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어려운 입장에 계시는가 하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되겠습니다.

 

* 자기가 아무리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어려움을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으로 제시하고 나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그런 조건을 제시할 수 있는 입장에 계신다고 생각하면 우리 자신들은 견뎌낼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엄청난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우리의 갈 길을 마련해 주고 우리를 위하여 염려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중의 빚을 짊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이중의 책임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자인하면서 이것을 앞날의 갈 길에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는 하나의 동기로 삼아 주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