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기독교

카놋사의 굴욕 Road to Canossa, Walk to Canossa. 1077.1.28

true2020 2022. 8. 25. 08:45

▣  카놋사의 굴욕 Gang nach Canossar 1077.1.28

* 신성로마제국 하인리히 4세 Heinrich IV (1050.11.11~1106.8.7. 신성로마제국 황제 1084~1105. 강제로 퇴위당함 )가 교황 그레고리오 7세 Papa Gregorio VII(제157대 교황, 재위 1073.4.22~ 1085.5.25)을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 북부 카놋사 성으로 가서 용서를 구한 사건

 

* 교회의 성직자 임명권, 서임권을 군주가 가지고 있었던 것을 다시 교회로 가져오려고 시도. 로마 황제가 이에 반발하자 교황은 그를 파문하고 독일 왕 하인리히 4세를 도와주는 귀족이나 사제도 파문하겠다고 경고하였다.

 

하인리히 4세는 계속 대적하고자 했으나 이미 많은 독일 귀족들은 그에게서 등을 돌렸고 새로운 황제를 추대할 움직임이 있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게 돌아가자 하인리히 4세는 어쩔 수 없이 교황에게 용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

 

* 수도사들이 입는 거친 옷과 신발을 신지 않은 맨발로 1077.1.25일 교황이 머물고 있던 카놋사 성문 앞에 도착. 하인리히는 계속 성문 앞에서 고해복을 입고 금식을 하며 교황의 허가를 기다렸다. 1월 28일 3일 후 황제를 성 안으로 들어오게 허락, 하인리히에 대한 교황의 파문은 종결되었다. 

 

* 카노사의 굴욕으로 하인리히는 교황의 사면을 받았지만 독일의 제후들은 라인펠트의 루돌프를 황제로 추대했고 하인리히는 루돌프를 상대로 내전에 돌입했다.

 

교황 그레고리오는 양측의 중재자로 자임했으나 양쪽에서 모두 비난을 받았다. 교황은 1080년 하인리히를 다시 한번 파문하고 폐위를 선언했다. 그러나 내전에서 승리한 하인리히 7세는 교황을 로마에서 쫓아내고 클레멘스 3세를 새 교황으로 세웠다.

 

* 교황은 시칠리아로 도망. 최후에는 1085년 이탈리아 캄파니아 주 Regione Campania 살레르노 Salerno에서 병사했다.

 

 

▶ 서임권

가톨릭의 주교, 수도원장 따위의 성직을 임명하는 권한. 본래 봉건 군주가 가지고 있었으나 1122 보름스 협약에 의하여 성직자의 세속적인 지위와 종교적인 측면을 엄격하게 구분하게 되어 교황이 가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