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인물

이병도李丙燾 박사

true2020 2022. 6. 6. 20:03

▣ 이병도李丙燾 박사

1896. 양 9.20(음 8.20)~1989.8.14.

경기도 용인군 이동면 천리.

충청도 수군절도사 이봉구와 그의 부인 나주 김씨 사이의 5남으로 출생.

1907년 7월 한성부로 가족이 이주.  

대한민국의 실증사학의 역사학자. 저술가. 대학교수.

본관 牛峰. 호 斗溪.

 

* 1910년 육군 참장 조성근의 장여 조남숙과 결혼.

* 1912년 3월 보성전문학교(1932년 金性洙가 인수, 4년제 대학으로 승격. 현 고려대학교) 법과 입학. 1915년 3월 졸업.

* 1916년 4월 와세다 대학 사학 및 사회학과에 입학. 1919년 9월 졸업.

* 1925년 8월~1927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 수사관보로 재직하였지만 큰 활약은 없었다고 한다.

* 1933년 4월~1943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강사. 조선유학사 강의.

* 1934년 5월 7일 한국 문화 역사 연구 목적으로 진단학회震檀學會 창립. 1943년 9월 진단학보 14호 발행으로 일제에 의해 해산되었다.

* 그는 창씨 개명을 하지 않았다.

 

* 1941년 4월~  3년간 이화여자전문학교 사학 강좌 담당 강사.

* 1945년 해방 후 국가 교본을 편찬 중등 교과용으로 사용.

* 1946년 9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임명.

* 1953년 서울대학교 부속 박물관장 임명. 1954년까지 재직.

* 1953년 10월 진단학회 사단법인 등록, 이사장 취임.

* 1954년 5월 서울대학교 대학원장. 1962년까지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

* 1950년 한국동란 국방부 전사 편찬위원장이 임명.

* 1955년~1982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역임.

 

▶ 저서

조선사. 조선총독부. 1922년~1938년. 총 35권 24409페이지.

역주 삼국사기. 박문서관. 1943년

조선대사관. 동지사. 1948년

고려시대의 연구. 특히 도참 사상을 중심으로. 을유문화사. 1948년.

새 국사 교본. 동지사. 1948년

한국사 고대 편. 김재원 공저. 진단학회 편. 을유문화사. 1959년.

한국사 중세 편. 진단학회 편. 을유문화사. 1961년

하멜 표류기. 역서. 1939년. 박문각.

국사대관 1954년

국사와 지도이념. 삼중당.

이병도 수필집

중학교 사회생활과 중등 국사

역주 삼국유사

고등학교 사회과 국사

한국대사관. 보문각. 1964년

내가 본 어제와 오늘

인문계고등학교 국사

나의 인생관

한국 고대사회와 그 문화

율곡의 생애와 사상

두실여적

수정판 역주화선 제주도 난파기

한국 고대사 연구. 박영사. 1976년.

한국의 유학사상 퇴계집. 율곡집

한국대사관 동방도서. 1983년

성기집

한국사의 이해

한국 유학사략

한국 유학사

한국상고사 입문. 최태영 공저. 고려원. 1989년

 

▶ 상훈

1954년 3월 금성충무무공훈장

1955년 3월 서울특별시 문화상

1956년 7월 대한민국 학술원상

1962년 8월 대한민국장

1977년 10월 인촌 문학상

1979년 5월 5.16 민족상

 

▣ 1980.11.17(월) 통일교회 활동과 학자들의 사명. 서울 롯데호텔.

- 교수 학자 초청 만찬회.

 

110-196 여기에 계신 이병도 박사님, 학자님이신데 이제 노장이 되어서 통일교회 문 선생을 지지하고 선전 잘한다는 소문을 내가 듣고 있지만 말이에요, 좋습니다. 통일교회의 주인을 나 대신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것이 안 되거들랑 이 박사의 아들딸이라도 주인이 되게 해 주어야지,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까.

 

110-206 그것도 좋지만 여여, 이병도 박사님은 국사학에서 권위자 되시는 분인데 싫더라도 대한민국의 국사면 국사를 중심 삼고 통일교회의 관을 가져야 됩니다. 그래야 될 때가 왔습니다.

 

▣ 1985.12.22(일) 천국을 이루려면. 본부교회.

136-146 이병도 박사는 내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이룰 수 있는 주인공이라고 찬양을 하더라구요. 내가 청소년 시대, 한 20대에, 통일교회 출발할 때 그 양반이 와서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노! 이제는 당신도 늙었고 나도 늙었다, 이러고 싶다구요. 그걸 알아야 되는 거예요.

 

▣ 1985.12.18(수) 우주는 어디로 가는 것이냐.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

-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 서울선언 2주년 기념 축하회.

 

137-061 여기에 있는 이병도 박사님도 지금은 문 선생님, 문 선생님 하면서 찬양하지만 맨 처음부터 찬양했나요? "저거 문 아무개!" 했습니다. 이항녕 박사만 해도 얼마나 꽁지를 휘젓고 다니면서 자기가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맛을 보니까 할 수 없이 걸려들었지요.

 

137-072 여러분들은 위하여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잘났어도 여기 훌륭한 이병도 박사님도 이병도 박사님의 사모님을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이걸 몰랐어요. "아이고 내가 제일인데···, 그런 관념을 혁명해야 되겠습니다.

 

▣ 1986.3.20(목) 21세기 한국의 비전과 남북통일. 서울 힐튼호텔.

- 전국 대학교수 초청 만찬회.

 

143-280 여기 이병도 박사님은 90이 넘었습니다. 박사님한테 70 난 아드님이 있을 때 박사님은 아들보고 어디 나갈 적에 "얘, 오늘 차 주의해라" 그런 말도 할 수 있다구요. 90 노년이 되도록 그렇게 매일같이 되풀이했어도 지칠 줄 몰라요. 그것은 영원히 계속해도 지치지 않아요. 그게 무엇이냐? 사랑입니다.

 

▣ 1992.8.28(금) 가정 전도시대. 한남동.

235-054 이번에 이병도 박사가 여기에 와서 입회원서를 쓰고 그랬습니다. 그 양반이 참 신사라구요. 회원서를 쓰고 척 무릎을 꿇더니 "잘 부탁합니다"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받았습니다.

 

그래, 영계에 가서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모른다구요. 이게 놀음 놀이가 아닙니다. 놀음 놀이 같으면 우리같이 똑똑한 사람이 이 놀음을 왜 해요? 일생을 걸레 짜박지로 지낸 거라구요. 미친 개도 물어뜯고 달리던 말도 발길로 차 버리던 그런 천대를 받았지만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