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노정

해방 전후의 섭리 - 이승만 정권. 신령집단

true2020 2021. 12. 2. 17:20

▣ 1966.12.11(일) 7년 노정이 왜 필요한가. 전본부교회.

017-133 선생님이 해방 직후에 7년 노정을 출발했을 대 그 7년 노정을 중심 삼고 나라의 운명을 바라보니 심각했습니다. 잘하면이 나라에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요, 잘못하면 함께하지 않으실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 1971.2.1(월) 새로이 충효를 다짐해야 할 때. 중앙수련원.

- 참부모님 탄신일 기념예배.

 

040-204 한국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독립되고 해방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 해방의 운세를 타고 민주세계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해방이 된 갓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정한 민족과 국가를 택해서 지금까지 수천 년 동안 복귀 섭리를 해 나온 것입니다. 그 나라가 바로 우리 원리를 중심 삼고  볼 때 한국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서 독립되고 해방된 나라가 아닙니다. 세계 해방의 운세를 타고 민주세계의 혜택을 받아 가지고 해방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영적인 기독교권을 상속받을 수 있는 특권적인 은사를 입은 대표적인 국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그때 형성된 국가의 핵심적인 인물들은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자유당 때를 보면 그때의 대한민국은 기독교인들을 중심 삼은 주권 국가였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바탕이 해방 직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몇 년이라는 기간을 거치며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춘 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때에 통일교회는 국가 최고의 기준을 중심 삼고 안팎으로 갖출 수 있는 내용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하는 몇몇 사람으로 인하여 그 길이 완전히 봉쇄됨으로 말미암아 이 땅을 중심 삼고 섭리하려던 뜻이 어긋나게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통일교회는 수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부 사탄권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수난길을 가야 합니다. 수난길을 걷는 데 있어서 그 사탄권은 국가와 민족을 중심으로 한 제한된 권이 아니라 세계적 권입니다. 즉 세계적 사탄권 앞에 넘겨진 국가와 같은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다시 하늘 편으로 찾아 세우러면 개인도 세계적 사탄권과 대결해서 싸워야 됩니다.

 

그런 입장에 서지 않으면 안 되겠기 때문에 선생님은 이북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북에 가서 7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에 사위기대를 복귀해 나와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 가지고 남한에 내려와 가지고 핍박의 노정을 거쳐 지금까지 발전의 일로를 거듭하여 도달한 것이 1971년 현재의 입장입니다.  

 

▣ 1971.1.3(일) 예수를 중심한 섭리와 우리의 사명. 전본부교회.

- 예수님 탄신 경축 예배.

 

038-102 제3이스라엘 권인 한국 내에서 내적인 지도의 책임을 진 종교가 기독교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입장에 놓인 한국 기독교가 통일교회를 중심 삼아 가지고 하나되어야 했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나라가 아직 형성되지 않고 미국의 관리하에서 미국이 주권을 대신 행사에 나오던 군정시대였습니다. 그것은 에덴동산에 있어서 천사장의 모든 권한을 복귀할 수 있는 영적인 이스라엘권을 육적인 이스라엘권으로 넘겨받을 수 있는 그러한 주권 형태가 막 이루어지려고 하는 때라는 것입니다.

 

본래 주권 국가는 어디에서부터 출발되어야 되느냐 하면 아담을 중심 삼아 가지고 그 나라가 시작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천사 세계권인 미국에서부터 출발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그 나라가 세계적인 기반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님을 보내는 것이 재림사상입니다.

 

그래서 오시는 주님은 해방 직후에 기독교의 기반 위에서 이스라엘 왕권과 기독교의 제상장권을 상속받아야 할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되었더라면 거기에서 그냥 그대로 예수님의 한을 탕감할 수 있는 기반이 연결되었을 텐데 여기에 반대가 벌어졌다 이겁니다.

 

그로 말미암아 세계적 영적 이스라엘 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이요 영적으로 내적인 입장에 선 기독교를 잃어버리고, 분립된 입장에 있기는 하지만 이 대한민국도 잃어버린 입장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수난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   

 

1.  이승만 정권. 

 

1) 이 박사가 대통령 되어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한테···.

 

▣ 1990.2.15(목) 고생의 철학과 3권 복귀. 한남동.

- 향토학교 간부 및 간사.

 

199-080 한국은 그때 독립국가가 아니었어요. 그때가 2차 대전 직후였어요.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 삼고 통일 천하가 된 때예요. 그런데 그것이 깨져 나간 거예요. 하나 못 되어 가지고. 선생님을 중심 삼고 전부 다 하나되어야 할 것이었는데 미국 선교사들과 이화대학 등이 중심이 되어 가지고 다 망쳐 놓은 거예요.

 

그때 이 박사가 내 말만 들었어도···. 그때 파주에 계시는 우리 할아버지가 목사였거든요. 유명한 목사였어요. 이 박사하고 친구고 최남선하고도 친구였어요.

 

이 박사가 대통령 되어 가지고 우리 할아버지한테···. 할아버지가 강원도 정선에서 목사였어요. 유명한 목사였다구요. 한학자였고 신학문도 했어요. 영어도 잘하고 말이에요. 그러니까 외교 같은 것은 우리 할아버지가 다 다니면서 했어요.

 

3.1만세 때 교회 총회장으로서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때 우리 교회 장로였던 이명룡 씨가 우리 할아버지를 대신해서 33인에 들어간 거예요. 이승훈 씨랑 전부 다 우리 할아버지가 그 주모자였어요. 원래는 우리 할아버지가 33인에 들어가야 되는 거예요.

 

만세 사건 때 제일 많이 학살된 사건이 정주 사건 아니었어요? 정주교회 교인들을 전부 불살라 죽인 거예요. 그 할아버지가 이 박사와 하나되었더라면 내가 고생 안 했지! 뒷방에 들어가서 할아버지만 녹여 놓았더라면 다 되었을 것인데···.

 

해방 직전에 지하운동을 하던 기독교 교인들이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 해방 직후에 주님이 온다는 소문이 났었어요. 그래서 내가 지하교회의 신령한 사람들은 안 만난 사람이 없이 다 만나 봤어요. 그런데 해방 직후에 군정이 나타나면서 신사 참배한 사람들···.

 

친일파들이 한국 내정을 잘 알았잖아요? 군정이 수립되어서 편히 하니까 그런 친일파들을 잡아서 쓰고 그다음에 미국에 갔다 온 패들을 썼어요. 전부 다 외형적이잖아요?

 

그때 신령한 구약적 에덴 복귀파인 박동기 파와 신약적 에덴 복귀파인 김백문 파가 있었는데 세상에서는 나를 김백문의 제자로 알고 있어요. 김백문의 제자가 될 게 뭐예요? 내가 60일 동안 거기에 가서 그 단체를 인수하려고 했는데 그들이 내 말을 안 들었다구요. 전부 다 욕심 때문이에요. 세례 요한 같은 집단을 다 준비했던 거라구요.

 

* 그것을 보게 되면 신사 참배한 패, 중간 패, 신령한 패가 있었어요. 그때는 신령한 패들을 몰랐어요. 대외적인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자연히 가인권 기독교인들과 하나되는 바람에 여기서 분립이 되어 버린 거예요. 그때 선생님을 중심 삼고 하나되었더라면 대한민국은 참···! 선생님이 40세에 세계를 주름잡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면 소련이 안 나오고 중국이 안 나왔을 거예요. 통일 천하가 되었을 거예요. 알겠어요? 결국은 한국이 책임 못함으로 말미암아 삼팔선이 생기고 양극으로 벌어졌던 거예요.

 

2)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패와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 1990.1.1(월) 내 나라 통일. 본부교회.

- 참하나님의 날 0시 집회.

 

196-158 한국에 있어서의 기독교 문화권을 중심 삼고 미국과 기독교가 한국의 독립을 조성하는 데 있어서 남북을 갈라놓아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남북이 갈라진 동기가 뭐냐? 해방 직후에는 기독교에도 3패가 있었어요. 하나는 신사참배를 하던 패 또 하나는 신사참배를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중간 패 그다음 또 하나는 적극적으로 신사참배를 반대하던 패예요.

 

그런데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을 찾아들 대에 한국이 독립이 됨으로 말미암아 외국에 가 있던 독립 쟁취를 위해 싸우던 모든 애국지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어 왔다 이겁니다. 거기에는 소련패 미국패 중국패 일본패가 있었어요. 그들을 하나 만들어야 됐습니다.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됐느냐? 신사참배를 지지하던 패하고 하나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패와 하나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감옥살이를 하고 그러던 패와 하나되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자체 내에도 가인 아벨이 있는 것입니다.

 

3) 1950년 6.25전쟁과 남북분단.

 

▣ 1971.1.8(금) 인생의 갈 길. 춘천교회.

038-332 만일에 통일교회가 해방 직후에 기성교회를 중심 삼고 출발했더라면 기성교회와 더불어 대한민국은 일시에 통일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다면 공산당들은 모두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기성교회가 통일교회를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에 슬픈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2차 대전 당시에 하나님이 보우하사 폭탄 하나 떨어지지 않던 이 나라가 왜 분단국이 되었느냐? 그것은 기성교회가 전부 다 통일교회의 가는 길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북이 갈린 거예요.

 

4) 이대 연대의 2세들.

 

▣ 1983.5.7(토) 원리연구회 지도자의 사명. 신문로 공관.

127-142 해방 직후에 이대 연대가 선생님하고 손잡고 학생들이 하나됐더라면 2세들이 선생님과 관계를 맺었더라면 기독교 2세들이 선생님을 대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무슨 교회에서 출발한 것이 아닙니다. 연대하고 이대를 기반으로 해서 출발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돼 가지고 이 정권과 투쟁하는 가운데 통일교회는 악명 높은 통일교회가 되어 버렸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정권의 범죄가 크다는 겁니다. 이기붕 박마리아, 그 일족이 저렇게 패망해 죽었지요? 통일교회 반대한 사람은 다 비참한 거예요.

 

2. 신령 집단

 

1) 신령한 사람들, 옥에 갔던 사람들과 지하에 있던 사람들을 수습하기 위한 놀음을 했어요. 

 

▣ 1987.6.14(일) 남북 통일의 지름길. 한남동.

167-052 문: 해방 직후에 한국의 독립투사들, 김구 선생이라든가 미국과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투사들이 들어왔을 때 선생님께서는 그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셨는지요?

 

답: 관계는 맺지 않았어요. 그들이 싸움을 했기 때문에 관계는 맺지 않았다구요. 기독교를 수습하려고 했어요. 신령한 사람들, 옥에 갔던 사람들과 지하에 있던 사람들을 수습하기 위한 놀음을 했어요. 정객들은 선생님을 대할 사람들이 아니에요. 난 그것을 먼저 해 놓고, 기독교를 중심 삼고 가인 아벨권을 하나 만들어 놓고 그다음에 대할 것이 그들이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 1960.1.6(수) 재림기에 있어서 세례 요한적 사명의 생활과 우리의 각오. 전본부교회.

008-224 남자는 동쪽이고 부인은 서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쪽인 철산에서는 부인들이 신령 역사를 했고 동쪽인 원산을 중심 삼고 남자들의 신령의 역사가 벌어졌어요. 거기서 황국주 이용도 백남주 등이 신령 역사를 했어요. 이때 이러한 외적인 형태를 기반으로 한 신령 역사를 책임을 지고 나온 분이 이용도 목사입니다. 그는 한국 교계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다가 이단으로 몰려 서른세 살 때에 죽었습니다.

 

008-226 그러면 선생님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그분을 만나야 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해방 직후에 신령한 사람을 ㅁ나나려고 했던 것입니다. 제일 믿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겁니다. 어떠한 사람을 만나야 하느냐? 자기가 주님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나는 주인의 일등 신부"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되고 더 나아가서는 "나는 여호와의 부인"이라고 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선생님은 그런 신령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한국의 교계를 들춰봤으나 없었어요.

 

그런데 구원선이라고 하는 신앙단체에 김예근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이는 타락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원칙적인 것은 모르지만 실과를 따먹은 것이 타락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아요. 그 외에는 몰라고 그래서 그분을 만났어요. 천적인 사명을 인계받은 그 남자는 세례 요한적 사명을 띤 사람이었습니다.  

 

2)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들.

 

ㄱ. 해방 직후에 주님이 온다는 것을 받았다.

- 구름 타고 온다고 믿고 있었다. 신령한 몇 집단의 대표들만이 사람으로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1985.1.4(금) 섭리의 길을 개척해 온 통일교회. 벨베디아.

134-076 보라구요. 그들이 믿는 신앙은 오는 주님은 구름 타고 오지 사람으로는 안 온다는 거예요. 왜 그렇게 되었느냐 하면 감옥에 들어간 목사들은 전부 다 주님이 사람으로 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전부 다 구름 타고 온다고 믿고 있어요.

 

사람으로 오는 것을 여기 신령한 집단 가운데 몇 개 집단 대표들이나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니까 이 사름들이 나와 가지고 전부 다 여기에 휩쓸렸기 때문에 전부 다 과거에 생각하던 신앙 관념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기는 해방 직후에 주님이 온다는 것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온다는 걸 구체적으로 몰라도 온다는 걸 받기는 받았다구요.

 

선생님이 성진이 어머니한테도 복귀 역사의 전부를 가르쳐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전부 다 가르쳐 줬으면 다 믿지요. 여기서 전부 다 받아들였으면 다 가르쳐 주고 말고요.    

 

ㄴ. 일본인들이 언제 패배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ㄷ. 또한 많은 사람들이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세계의 역사가 한국을 중심 삼고 전개될 것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 1971.12.27(월) 워싱턴, D.C. 통일교 회사 1.

052-139 전쟁의 끝이 가까이 오고 있을 때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더욱 심각해졌고 그들은 결정적인 심판 또는 결정적인 판결을 한국에 내려 주기를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해서 또는 영계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인도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은 일본 경찰들이 자기들을 붙잡으려고 할 때 피하거나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일본인들이 언제 패배할 것인가를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세계의 역사가 한국을 중심 삼고 전개될 것이라는 계시를 하늘로부터 받았습니다.

 

또한 선생님도 그러한 몇몇 단체들과 연결되었습니다. 그러나 비록 선생님이 그런 집단들과 연결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때 선생님은 여러분이 지금 배우고 있는 원리의 어떤 것도 결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말씀도 있었거니와 선생님이 한국의 해방 직후에 이 일을 시작하기로 하나님께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때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한 사람만에 의해서 성취될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2차 세계 대전 후에 모든 기독교회가 분열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기성교회와 더불어 일하지 말라는 계시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3) 만일에 기독교가 반대하게 되면 하늘은 그들을 중심 삼고 2차 작전의 승리적 터전을 만드는 놀음을 하려고 했다.

 

▣ 1972.6.5(월) 섭리적 현시점.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서울 경기 충청 식구 집회.

 

057-329 선생님을 중심 삼고 선생님이 아벨이면 영계는 가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영계와 하늘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단체를 구성해 가지고 준비한 단체가 참 많았습니다. 여러분, 그거 알아요? 시온파라든가 새주님파라든가 복중교라든가 하는 것들이 전부 그런 준비를 했던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만일에 기독교가 반대하게 되면 하늘은 그들을 중심 삼고 2차 작전의 승리적 터전을 만드는 놀음을 하려고 했는데 자기들 욕심 때문에 전부 다 깨져 나갔다는 것입니다.  

 

4) 이성봉 목사와 박재봉 목사 시대. -> 박 장로 나 장로 등의 장로 시대. -> 집사 시대. -> 성도 시대.

 

▣ 1965.12.26(일) 인류 역사는 복귀섭리역사다. 전본부교회.

016-056 그렇지만 하나님은 책임을 짊어진 사람들이 책임을 못하면 반드시 후계자를 세워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가게 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집단과 단체가 나와서 이런 사명을 하지만 시일이 지남에 따라 하나의 귀결점을 향해서 신령한 역사가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해방 직후에 목사 장로를 중심으로 대대적인 부흥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성봉 목사 박재봉 목사가 특별한 역사를 했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과 일치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자 파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목사 시대가 지나고 장로 시대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박 장로 나 장로 등 장로들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도 하나님이 섭리하시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가지 못하였기 때문에 집사 시대, 성도 시대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뜻을 받들고 특별한 섭리를 대하는 사람들은 교회에 참석할 수 없는 입장으로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5) 재건교회, 최선길 씨와 기독교의 반대.

 

▣ 1982.1.2(토) 탕감복귀역사와 가정교회. 세계선교본부.

- 세계 지도자 회의

 

116-273 자, 해방 직전의 한국 나라라는 것은 군정시대예요. 군정하에 있었다는 거예요. 기독교 문화권인 그때에 한국 선교사들은 미국 선교사들이 지배하고 있었던 거예요. 한 나라와 마찬가지였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서 선생님이 해방 직후에 처음 이 운동을 하게 될 때에는 집을 나가 가지고 예수님이 실패했던 종족적 기반을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예요. 탕감 복귀 안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국가 기준을 거치고 미국을 통해서 외적 기독교와 연결시켜 가지고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다 끝나는 거예요. 그게 7년간이라구요. 7년간.

 

거기서 전체가 하나되었으면 지금 어머니는 어머니가 아니라구요. 성진이 어머니가 어머니 되는 거예요. 그거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기독교가 반대하고 한국이 반대하고 전체가 반대했는데 누구를 내세워서 반대했느냐 하면 성진이 어머니입니다. 해와를 세워서 반대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