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死 人生 愛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생명이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

true2020 2021. 8. 1. 12:06

▣ 1956.12.23(일) 만민을 위하여 오신 주를 모시는 자가 되자. 전본부교회.

001-320 예수님은 죽음의 친구이셨기 때문에 죽음을 재촉할 때에도 죽음을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있는 여유의 생애를 살았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됩니다.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하나님까지도 모른다 하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아바 아버지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셨는데 이것은 소망이 절망으로, 생애의 전부가 수포로 돌아갈 것 같기 때문에 외치신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죽음으로 인하여 아버지의 뜻을 다 이루고 가지 못하는 것을 염려하여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로서는 할바의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를 천당으로 보내시든 지옥으로 보내시든 개의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죽음의 친국가 되어야 할 입장에 있었던 예수는 죽는 것으로서 만족하는 죽는 것으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려 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주적인 사랑을 가지고 오셨으나 그것을 안 자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놀라우신 은사를 가지고 오셨지만 일단 죽음의 친구가 되기 위하여 나선 이상에는 아무런 미련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늘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오셨는데도 하늘이 소망의 존재로 대해 주시지 않으셔도 반박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예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을 찾아나가는 데에는 최후의 고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있는 정성을 대해 나가더라도 끝에 가서는 하늘이 "모른다" 할 때가 있습니다.

 

하늘이 모른다 하는 것은 세계적인 사명이 우리 앞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세계적인 사명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충성을 다하고 생활을 다 바쳐 아버지께 매달리더라도 하늘이 모른다 하는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죽어도 아버지 뜻이요 살아도 아버지 뜻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 희망을 갖는다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오직 이 하나의 희망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못 먹는 것도 못 입는 것도 기쁜 일이옵니다"라고 할 수 있는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001-322 오늘날 여러분은 천당 가기 위해서 에수를 믿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갈 것입니다.

 

잘 살기 위해여 예수를 믿는 것보다 잘 죽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다면 그것은 지극히 귀한 믿음이 될 것입니다. 잘 살기를 바라며 믿던 12 사도들은 예수가 죽을 때 다 어디로 갔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한 생명이 잘 살기 위하여 믿을 것이 아니라 여러분 한 생명을 잘 희생하기 위하여 즉 잘 죽기 위하여 믿어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