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버님

오죽이나 안타까우면 우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고 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친 줄 알아요?

true2020 2020. 12. 18. 17:24

▣ 1986.1.3(금) 제3회 애승일. 본부교회.

- 축복 2세.

 

137-287 자, 이렇게 볼 때 여러분이 자문자답해 보라구요. "하나님의 참다운 사랑을 중심 삼고 연결된 내가 소유물을 갖고 있나" 할 때 "예"라고 답변할 수 있어요?

 

또 여러분 자신이 "나는 하나님의 사랑에 완전히 연결돼 가지고 동기로부터 과정 결과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절대 하나돼 가지고 틀림없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유적 권한을 갖고 있다."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이 있어요? "예"예요, 뭐예요? 심각한 문제예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것 안 하고 잠을 잘 수 없고 먹을 수 없어요.

 

나는 알았어요. 나는 그랬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오죽이나 안타까우면 우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고 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친 줄 알아요? 습관적 타락성이 얼마나 강한지를 내가 잘 아는 사람이라구요.

 

그 말은 쉽지만, 우주 주관 바라기 전에 자아 주관 완성하라는 말은 쉽지만 그것을 이룰 때까지 얼마나 몸부림친 줄 알아요? 그 청춘시대에 이 사악한 세상의 모든 여자들이 발가벗고 내 침대를 거쳐가더라도 나는 그거 넘어서지 못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미남자고 아무리 자유 환경에 대해서 내 마음대로 관계하더라도 여자를 유인해 가지고 타고앉겠다는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는 뭐냐 하면 사랑의 욕망이 격동하는 사탄의 권 안이에요. 먹는 것, 자는 것, 정욕, 배고픈 걸 극복해야 됩니다. 잠자는 것을 극복해야 돼요. 나는 그런 투쟁, 3대 투쟁 목표를 정했어요.

 

내가 일본에 있을 때에 내 방에 찾아 들어온 여자들이 많았어요. 그렇지만 나는 그에게 동생과 같이 권고하고 간곡히 눈물을 흘리면서 충고하던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청춘끼리 단 한번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거예요. 그런 교차로에서 몸부림친 적이 수십 번이 넘었어요.

 

귀하다면 귀한 분이에요. 역사를 들어 찬양해야 할 귀한 분입니다. 내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당신은 위대한 위인, 남자로 잘 골라잡았습니다." 했다구요.

 

학교 가게 되면 황해도의 부잣집 딸이 있었어요. 제일 갑부의 딸이었어요. 매달 테이블의 서랍을 빼게 되면 말이에요, 갑부의 딸이 나 없을 때 돈 봉투를 갖다 쌓아 놓는 거예요. 세상 남자 같으면 "얼씨구나. 복 바가지 떨어졌다." 하겠지만 쓸 것이 아니라구요.

 

한 달 두 달 석 달 쌓아 놓는 거예요. 그것이 그냥 그대로 쌓여 있는 거예요. 이걸 보고도 회수 안 하면 6개월 지난 후 내가 불어 앉히는 거예요. 불러 놓는 거예요. 정색을 하고 훈계해 줘요.

 

어머니 아버지 입장에서 "민족의 운명이 이런 자리에 있는데 너 여인으로 와 가지고 이런 행동을 할 수 있느냐? 애국의 심정을 다 바쳐도 이 나라가 소생할 수 없는 비참한 운명길에 서 있는데 너 여기 일본에 와 가지고 차별받고 비굴한 환경을 못 면한 네 자신이 이럴 수 있느냐." 그랬다구요.  

 

그러면 그 여자가 "세상에 그런 남자를 잊을 수 없다."고 오빠같이 모시겠다고 했다구요. 그런 여자를 내가 약혼까지 시켜 주려고 노력하다가 내가 졸업 때가 되어서 졸업하고 나왔지만 말이에요. 그런 역사가 많다구요.

 

137-290 자, 선생님은 그렇게 살아왔다구요. 알겠어요, 무슨 말인지?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생각한 게 뭐예요? 비교 한번 해 보라구요. 내가 이런 말해서 자랑하는 게 아니라구요. 여러분들이 존경한다는 선생이란 사람은 청춘시대를 그렇게 보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눈물이 내 눈앞에 떨어지는 것을 한번 볼 수 있으면 얼마나 기쁘겠나 했어요. 그게 소원이었어요.

  

"너 때문에 해원 성사했다. 만민 만국에 대한 한이 풀렸다."고 하며 기쁨의 눈물을 내 앞에 보여 준다면 인생으로 태어난 목적을 다 달성하는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참고 나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감옥에서도 피를 토하는 자리에서도 난 울지 않았어요. 우리 흥진군이 가서 승화식할 때까지 눈물 한 번 안 흘렸어요. 피가 튀겨 나는 아픔을 느끼면서도, 천 사람 만 사람의 아들을 바쳐 가지고 하늘의 한을 풀 수 있다면 하나님 앞에 내 자신의 무엇이라도···.

 

자식이 죽는 자리에 있어 하늘의 동정을 바라는 눈물을 나는 못 흘려요. 죽으면 죽었지 못 흘려요. 그러나 가고 난 다음에 안됐다는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지만 말이에요. 승화식이 끝나고 난 다음에 아버지로서 할 책임을 다했기 때문에 내가 이것을 몰랐다면 그가 죽기 전에 모든 사탄 편의 것을 정리하고 통일식으로부터 그런 탕감적인 조건을 안 세웠으면 흥진이는 비참한 죽음을 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