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노정

성혼- 내외의 시련과 박해.

true2020 2019. 7. 22. 12:41

1. 선생님은  11시에 법정에서 얻어 맞으면서 아침 3시에 결혼식을 시작했습니다.


▣ 1988.10.31(월) 한일 국제결혼의 의의. 용인 일화연수원.

- 6500가정 일일 커플.


183-161 선생님은  11시에 법정에서 얻어 맞으면서 아침 3시에 결혼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투쟁의 한 가운데에서 기준을 만든 것은 만인의 평안과 기쁨의 행복 기대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입니다. 



2.  12사람이 전부 다 나에 대해 가지고 말이야….


▣ 1988.10.26(수) 축복의 가치를 알라. 한남동.

- 약혼 대상자.


182-297 선생님은 축복 받는  데 40년이 걸렸어. 40세에 성혼식을 하지 않았어? 너희들보다 못해서 그런 줄 알아? 해방 후 14년의 세월을 똥개 취급 받으면서 밟히고 다 그랬다구.


사탄을 개인적으로 싸워 이기고, 민족을 대신한 그 국가 주권자하고 싸워 가지고 이겼어요. 어머니 모시기 전날까지 내무부에서 조서를 꾸미면서 어머니까지 불러 들여 가지고 싸워야 했다구요.


예수는 법정에서 죽었으니 법정에서 찾아와야 돼. 탕감복귀입니다. 여러분같이 졸장부 같으면 아무것도 못해.


그때 보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통일교회 나오던 …. 무슨 서울대학 다니던 사람, 뭐 잘났다고 하는 패들 들어 왔다가 말이에요, 통일교회에 자기 욕망 가지고 들어 왔다가 예수 팔아 먹듯이 12사람이 전부 다 나에 대해 가지고 말이야….


내가 결혼하기 전전날까지 법정 투쟁하면서 다 조서를 끝내고 와 가지고 그 이튿날 결혼한 거라구. 이런 싸움을 해 나오는 겁니다. 무슨  말인 줄 알겠어요?


▣ 1994.10.9(일) 절대신앙과 절대사랑. 중앙수련원.

- 목회자 특별 집회.


264-055 성혼식하기 전날까지 치안국에 가서 조사를 받았어요. 어머니까지 불려가는 놀음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때 반대한 12사람이 통일교회 간부가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때 통일교회가 망한다고 소문이 난 것입니다.


전면적인 국가 탄압시대로 들어가기 때문에 그걸 보고 다 떨어져 나가서 국가에 협조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반대하던 것과 딱 마찬가지입니다. 이 12사람이 전부 국가와 협력해서 통일교회 문선생을 감옥에 넣어 통일교회 해산 명령을 하게끔 하려 한 것입니다.


그런 조사를 당한 것입니다. 그런 싸움판에서 헤쳐 나온 것입니다. 싸워야 됩니다. 그냥 못 넘어갑니다. 예수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와중에 결단을 지어 생사지권을 벏고 넘어서야 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되면 그 사망권에서 흘러갔을지 모르지만 산 자니 밟고 넘어가야 됩니다. 그 싸움을 중심삼고 성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성혼식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보라구요. 나이 40이 된 노총각이, 총각도 아니지요, 이혼한 자가 17살 난 처녀를 잡아다가, 고등학교 졸업도 하지 않은 여자를 잡아다가 세계의 어머니로 만든다고 하니, 그걸 알기나 해요? 그런 입장에서 결혼한다고 하니 도적놈 심보라고 다 얘기할 수 있지만, 할 수 없어요.


어머니가 될 수 있으려면 팀 에이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성진 어머니도 18세 때 약혼한 것입니다. 주먹구구로 적당히 해 가지고 넘어가는 길이 아닙니다.


▣ 1990.12.30(일) 선생님의 70년대를 보내면서, 80년대를 맞는 경계선에 있어서. 본부교회.

211-174 자, 30세가 되어서 교회를 만들고 나서 40세, 해방 후 만 14년 만에는 무엇을 하느냐? 남자로서 이 땅 위에 태어나 나라를 중심삼고 역사적 반대의 화살을 모두 극복하고 승리의 자리를 잡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남자들이 종교를 지도한 거예요. 모든 종주들은 남자예요. 여자는 없어요. 남자 종주들이 지금까지 역사를 거쳐 오면서 전부 다 승리한 기반을 중심삼고 하늘땅을 대표해서 아내를 얻지 못헀어요. 


그래서 문총재는 만 14년을 중심삼고 40세에 비로소 어머니를 모셔 왔던 것입니다. 남자로서의 핍박을 다 이겼어요. 감옥으로부터 별의별 놀음을 다 당하고, 결혼 전날까지 예수의 12제가가 반대하던 거와 마찬가지로 딱 그것과 맞아야 돼요. 


통일교회의 12사람이 반대를 하는 거예요. 건국대학의 교수 패들이 벌써 사건이 난 것을 알고는 놀라 자빠져서 한패가 되어 가지고는 12사람이 전부 다 통일교회를 없애야 된다는 투서를 했더라구요. 


그래, 어머니도 갖다 와 가지고 그런 사실…. 결혼 전날까지 그런 싸움을 해야 된다구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래 가지고 조서를 꾸미면서 결혼식을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환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우리 부모도 환영 안 한다고 했어요. 사십 난 남자가 만 열일곱 살 되는 자기 아들딸 같은 연령의 색시를 데리고 살겠다니, 그거 도둑놈이지 뭐예요. 


아, 여기 어머니 있으니 말이지만…. 그러나 어머니 되기 위해서는 이십이 넘으면 안 됩니다. 17, 16살은 넘어서야 돼요. 그거 왜 그래야 되느냐? 아담 해와가 미성년 때 타락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세워야 되는 것입니다.


어머니 될 수 있는 일족은 3대 독녀여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일족들이 새 주님을 모시는 역사를 다 지나왔다구요. 


할머니 시대부터, 김성도로부터, 허호빈으로부터, 그 축복을 받은 것이 어머니입니다. 나는 그걸 몰랐어요. 가만히 보니까, 그럴 수 있는 형태를 찾고 보고 그 모든 것이 들어맞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복잡한 환경이 되면 안 되는 거예요. 알겠어요? 


어머니 집안에 삼촌 하나밖에 없지요? 그리고 삼촌 동생이 있는데 말이에요, 동생들을 보니까 전부 다 어머니하고 사이가 좋지가 않아요. "통일교회에는 안 가겠다!" 하고 얼씬도 안 해요. 그게 복이에요. 알겠어요? 통일교회에게는 복이에요.        


▣ 1986.3.18(화) 부산교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셨네.   

143-178 그래서 14년 만에 어머니를 택할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던 그때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이 유대 나라와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유대 나라를 중시맘고 볼 때, 기독교는 유대교와 마찬가지 입장이고, 통일교회는 그때의 예수와 기독교와 마찬가지의 입장입니다. 나라와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고, 십자가를 졌으니 그와 똑같은 환경에서 싸워서 이겨야 됩니다. 탕감복귀해야 합니다.  


선생님이 1960년도 성혼식하기 바로 전날까지 법원에 가 가지고 조서를 꾸밀 때, 반대한 무리가 통일교회에 있던 사람들이에요. 그 수가 열두 사람이에요.


12제자가 반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수로 12인 반대 클럽을 중심삼은 투서에 의해 법적 調書를 꾸미고, 그런 기반을 닦은 거예요. 내적 탕감, 외적 탕감을 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3. 제1이스라엘 구약, 제2이스라엘 신약 탕감기간 14년.


▣ 1994.10.9(일) 절대신앙과 절대사랑. 중앙수련원.

- 목회자 특별 집회.


264‐052 이스라엘 나라에서 이루지 못해 완전히 잃어버렸기 때문에 재차 구약시대를 탕감해야 되고, 신약시대를 탕감해야 됩니다. 4천년 역사를 탕감하지 않고는 참부모도 해방권을 맞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14년 소생, 장성입니다.


제1차, 제2차 7년 노정인 1945년부터 1960년까지의 14년입니다. 그동안 이런 수난길을 거쳐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못한 것을 한국에서 청산지어야 됩니다.  미국이 제2이스라엘권이 됐으니, 제3이스라엘은 제1이스라엘, 제2이스라엘의 터전의 뿌리를 이어받아야 할 입장에 있기 때문에 한국에서 14년이라는 기간, 소생, 장성 기간을 중심삼고 주권 기반을 넘어서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피어린 투쟁입니다.



4. 그때는 반대의 最高峯이었다.


▣ 1973.7.1(일) 벨베디아. 미국에 잇어서의 3년과 오늘.

067-249 맨 처음 3년 노정에 있어서 선생님이 최고봉에서 출발하려던 것이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이것을 만 14년이라는 기간을 통해 수습해 가지고 1960년도에 비로소 성혼의 날을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비로소 이 땅 위에 하나님이 원하는 가정이 생겨났다 이거예요. 그때는 마치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한 것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나라가 하나되어 통일교회를 없애려고 하던 때였습니다. 전체가 동원되었습니다.


선생님은 결혼식장에 나가기 전날까지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면서 싸웠던 것입니다. 수많은 배반자들이 참소하는 일, 예수의 12제자가 반대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통일교회를 잘 믿던 12명이 하나되어 반대하는 일이 벌어졌던 거예요.


우리 통일교회편 되었던 사람도 반대하고, 교회도 반대하고, 나라도 반대한 거예요.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와 가롯 유다가 하나돼 가지고 예수를 죽이던 것과 마찬가지의 운명에 딱 몰린 거라구요. 그때가 바로 1960년 4월입니다.


그때는 반대의 최고봉이었어요. 한 발짝을 더 가느냐 못 가느냐, 죽느냐 사느냐, 여기서 새로이 출발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경계선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서 새로운 역사적인 일을 성사시켰습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천운을 선포할 수 있는 날이 된 거예요


예수가 말하던 거처럼 신부를 맞을 수 있는 한 날을 가진 역사적인 날이 된 것입니다. 그것이 성혼식이에요. 거기서부터 우세의 제1보를 내디딘 것입니다.


5. 전통적 반대의 조상이 된 최선길 부인 , 차라리 監獄이 避難處.


▣ 1971.10.9(토) 중앙수련원. 국가와 우리의 사명.

- 전국 사업소장 수련회.


049-154 선생님이 뜻을 알고 나서 성진이 어머니와 결혼한 것도 내 맘대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영계에서 지시가 있어서 한 거예요. 그 사람도 영계의 지시 하에서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 이름은 최선길입니다.


높은 최, 먼저 선, 길할 길 자예요. 여자로서 그런 이름은 팔자 사나운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으로 보면 세계에 없는 이름이라구요. 그렇잖아요?


그러나 이치에 하나되지 못하면 잘리는 것입니다. 성진이 어머니가 여자로서는 굉장한 여자요, 훌륭한 여자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특성을 가진 여자예요. "옳다" 할 땐 천하의 그 누가 반대를 하더라도 당당코 싸워나갔습니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자기가 성진이 데리고 혼자 살고 있을니까, 어떤 남자가 혼자 사는 과부 취급을 해 가지고 농조로 대했는데, 인권을 유린했다고 해서 재판에 걸어서 배상금을 받은 여자라구요. 알겠어요?


자기가 옳다 할 때는 이박사고 무엇이고 무서워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성격에 자기가 옳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통일교회 반대하는 데 있어서 전통적인 조상이 되었지요.


선생님을 망하게 하기 위해서 형사들에게 돈을 주어 가면서, 자기가 그때까지 벌어서 샀던 집까지 팔아 가지고 형사들과 교섭을 했어요. 그 여자 덕택에 나도 많이 배웠습니다. 통일교회를 반대하기 위해서 자기 소유를 전부 희생했다구요. 그렇게 악착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어떤 생각을 했느냐? "아, 여자와 남자 간의 사연을 중심삼고, 그 사랑을 중심삼고 지금까지 엮어진 비운의 역사가 얼마인가? 또 그 인연을 따라 태어난 한을 가진 민족과 국가와 족속들이 얼마인가? 그것 때문에 아랍권이니 공산권이니 무슨 민주세계권이니 하는 것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냐?" 이런 생각을 했다구요.


역사과정에서 여자가 반대하는 날에는 비참해집니다. 남자가 비참해지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야 됩니다. 비참해진다구요.


남자는 여자한테 넉타이로 목을 졸려봐야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얼굴도 긁혀봐야 됩니다. 여자가 남자를 밤에도 때려 죽이고 싶고, 아침에도 때려 죽이고 싶고, 낮에도 때려 죽이고 싶고, 저녁에도 때려 죽이고 싶고, 칼로 가슴을 찌르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갖게끔 되어야 돼요. 그것이 사탄입니다.


그래 가지고 세계적으로 탕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 이상 내모는 거라구요.


여자의 신발은 재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군인이 출동하는 행로에 여자가 지나가게 되면 총살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성진이 어머니가 그 신발을 거꾸로 들고 때리는데, 왼편 뺨을 맞고, 바른쪽 뺨을 맞으면서도…. 이 길을 가려면 그런 길을 거치는 거라구요. 그러면서 오늘의 통일사상의 기반을 닦아 나온 것입니다. 그런 전통을 닦아 나온 거라구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선생님을 따라고 있는 남자면 남자, 여자면 여자, 할머니면 할머니들이 어떻게 되었느냐? 똥바가지를 뒤집어 쓰기도 했습니다. 똥바가지를 가져다가 아가리를 벌리라고 해 가지고, 입에다 똥을 쳐 넣는 거예요. 


여러분이 모르는 그런 비참한 행로를 거쳐 나온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 처음 듣지요? 


"이 원수!" 하면서 머리채를 잡아 쥐고 흔드는 일을 처녀들도 당하고, 할머니들도 당하고, 아주머니도 당하고, 소녀들도 당해야 했습니다. 남자로 말하면, 영감도 당해야 했고, 장년도 당해야 했고, 청년도 당해야 했고, 소년도 당해야 했습니다. 장난이 아니라 그랬던 거라구요.   


탕감복귀가 나를 통해서 되어야 되기 때문에 그런 기운이 통일교회를 찾아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차라리 감옥이 피난처라는 거예요. 그런 놀음을 해 가지고, 천신만고의 수난길을 거쳐 가지고 1960년도에 성혼식이 있게 되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성진 어머니가 반대했기 때문에 그 터전을 중간에서 누가 이어받은 것이냐? 그가 희진 엄마입니다. 그 사람은 국경을 넘나들어야 했습니다.




4.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모든 교회로부터 그리고 우리 식구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 1971.12.22(수) 하나님은 어떻게 복귀섭리를 하시는가. 워싱턴 D.C.

052-068 복귀섭리에 있어서 최고점, 정점은 1960년에 있었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국가와 국민으로부터, 모든 교회로부터 그리고 우리 식구들로부터 박해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던 것입니다.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불려 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선생님은 36쌍을 축복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선생님은 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였습니다. 그때는 통일교회가 살아 남느냐 망하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가면서 성혼식을 거행했습니다. 


그 시점에서 새 역사가 출발하였습니다. 그때는 歷史의 轉換點이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이 1960년은 역사의 전환점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7년 노정 이후에는 확고한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