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리노정

제3차 세계순회. - 1971.12.5.~1972.5.8.

true2020 2019. 4. 15. 16:39

* 3차 1971.12.5.~1972.5.8. / 15개국

-  미국 7대 도시(2.3.~3.11.), 영국 런던(3.20.~3.22.), 독일 엣센(3.28.~3.30.) 3개국 주요 도시에서 강연회 개최.

 

* 기동대 편성 1972.1.8. 워싱턴에서 뉴욕 도착, 세계 十字軍 편성. 

* 1971.12.5.~ 3차 세계 순회 15개국 출발

* 최원복 선생. 김영휘 선생이 수행.

* 일본에서 이시이 미츠하루 사장 합류.

 

1. 3차 세계 순회를 가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1) 미국에 자리잡기 위해서.

2) 경제 복귀를 위해서.

 

▣ 1971.10.9(토) 국가와 우리의 사명. 중앙수련원.

- 전국 사업소장 수련회.

 

049-166 3차 7년 노정을 갈 때는 여러분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거라구요. 이번에 3차 세계 순회를 가는 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냐? 미국에 자리를 잡기 위해서입니다. 그다음은 경제 복귀를 위해서입니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돈을 어떻게 벌 것이냐? 일본 식구들을 통해 가지고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3) 1971년 12월 18일 미국에 들어왔다.

 

* 제3차 세계 순회 노정

- 1971.12.5. 15개국.

- 1971.12.12. 캐나다 토론토 도착

- 1971.12.18. 워싱턴 도착.

- 1972.1.8. 뉴욕 도착.

- 1973.4.30. 영주권

 

▣ 1995.4.23(일) 벨베디아. 지금부터는 섭리사적 대승리 시대.

269-227 원래는 내가 1960년도에 미국에 올 수 있는 비자를 다 만들어 놓고도 안 왔다구요. 왜 그러냐 하면 이 미국이 내 말을 들으면 이북에 영향을 미쳐 가지고 이걸 넘어서는데 미국이 그때서부터 리버럴(자유주의)한 풍조를 넘어서 공산주의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래서 이런 기반을 통해 가지고 비로소 다 넘어간 것입니다. 김일성이 하는 이상의 애국심을 통일교회의 전통을 조건으로 세우고 비로소 세계무대에 나서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1971년 12월 18일 미국에 들어온 거라구요.

 

그때서부터 미국에서 본격적인 세계무대의 20년 노정을 출발한 것입니다. 20년간. 1981년까지 미국에서 싸움을 다 끝냈습니다. 

 

4) 세계적 승리 기대를 만들기 위해서.

- 기동대 편성 1972.1.8. 워싱턴에서 뉴욕 도착, 세계 십자군 편성.

 

▣ 1972.5.7(일) 참부모와 우리들. 동경교회.

- 제3차 세계 순회 때.

 

055-150 선생님이 세계적 사명을 가졌다고 한다면 여러분들은 국가적 사명까지 하면 된다. 선생님은 한 단계 앞선다. 이렇게 해서 선생님은 세계적 승리 기반을 만들고 여러분들 개인은 국가적 승리 기대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적 승리 기대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면 그 상대기대를 넓힘으로써 탕감의 승리권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지금 만들고 있다. 그것이 제3차 세계 노정이다. 제3차 세게 순회 노정이다 

 

▣ 1972.5.9(화) 금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전국 교회장, 순회사, 전도대원 조장 모임.

 

055-268 그래, 세계적인 놀음을 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되면 선생님은 한국에서 못 살게 됩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안 돼요. 왜? 내가 세계의 각 나라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비자를 받으려면 일 년 열두 달을 기다려야 된다구요. 그 놀음을 어떻게 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할 수 없이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한국에는 잠시 다니러 왔다 갔다 할 때가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여러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알겠어요? 기분 좋지요?

 

뭐, 그래 내가 순회를 떠날 때 앞으로 세계적인 활동 기반을 닦고 오겠다고 공석에서 얘기했었습니다. 그래 그 기반을 닦고 윤곽을 잡고 배수진을 치고 왔다구요. 알겠어요?

 

선생님은 한국 대해서 사명을 다 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책임을 다 했습니다. 중국 대해서도 책임을 다 했습니다. 알아들을 만큼 했다는 거예요.

 

* 3차 7년 노정이 1975년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3년 전부터 기반을 닦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 기반을 못 닦으면 세계적인 3차 7년 노정을 유효 적절한 승리권으로 거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1972년부터 3년간을 준비 기간으로 정한 것입니다. 알겠어요? 3년 동안 이 고개를 넘겨야 합니다.

 

선생님은 금년에 이 3차 노정을 통해서 대한민국을 세계와 연결시키는 책임을 해야 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닦아진 터전을 중심 삼고 미국이라든가 세계의 중요한 국가 앞에 상대적인 기반을 닦고 돌아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는 것이 3차 세계 순회 노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각 나라에서는 기동대 바람이 불 것입니다. 내년 10월이 되면 구라파 전역에 기동대가 창단될 거예요. 알겠어요? 일본도 기동대가 만들어질 거예요. 한국만은 기동대가 필요 없을는지 모르겠는데, 어때요? 한국에야 무슨 기동대가 필요하겠어요? 남들이 다 닦아 놓은 뒤에 구경하러 다니면 되지.  

 

5) 김일성이 환갑 되는 때가 문제된다.

 

▣ 1972.5.9(화) 금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전국 교회장, 순회사, 전도대원 조장 모임.

 

055-211 김일성의 연령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김일성의 연령이, 사탄 세계의 대표 존재가 60세가 되는 그때는 그 지역이 세계적인 시대로 접어 들어간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번 4월 15일이 무슨 날이었어요? 김일성이 60세 되는 날이었습니다. 중국이 쫓겨난 것이 이날서부터 6개월 이내였어요. 6개월 기간 내에 다 된 거라구요.

 

이 기간 내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우리의 때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중국이 유엔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김일성이 60세 되는 때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6수권이 사탄권이기 때문에 사탄이 7수 권내는 침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3년은 더 연장될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 아시아에 있어서 한국 일본 중국, 3개 국가를 중심 삼고 이어 나오려고 했던 것이 선생님의 작전이었다구요. 그것이 이제는 세계 시대로 넘어간다는 거예요.

 

아시아에서 방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이 세계까지 미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제2전선인 미국이 방어해야 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방어하지 못하면 제3전선은 어디냐 하면 독일입니다. 알겠어요?

 

1977년, 1976년이 뭐냐 하면 공산당이 출발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1917년을 중심 삼고 보면 60년이 되는 거예요. 2월 17일이기 때문에 1977년, 1976년 이 양 해에 걸립니다.

 

* 이번 3차 순회 노정을 끝마치고 한국 땅에 돌아와 책임하고 나서게 되면 한국의 시대는 지나가는 거라구요. 그렇잖아요? 한국에만 해 봤자 별수 있어요? 중국 일본까지 완전히 기울어지게 될 때는 다 망하는 거라구요.

 

* 그러면 결국 책임이 어디 있느냐? 미국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천사장 국가 가운데서도 미국에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 천사장도 셋입니다. 세 천사장이 이런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중국은 아시아 지역의 천사장이고 미국은 세계적인 천사장이고 독일은 사탄을 중심 삼고 최후의 결판을 내야 하는 즉 사탄을 굴복시킬 수 있는 최후의 결전지라는 거예요. 영육을 좌우하는 최후의 결전지라는 거예요. 이렇게 되어야 지상에 천국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2. 777쌍은 3차 세계 순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 1970.10.21. 777가정 합동결혼식.

 

▣ 1971.12.22(수) 하나님은 어떻게 복귀섭리를 하시는가. 워싱턴, D.C.

052-080 작년에 한국에서 10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777쌍 합동결혼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번의 3차 세계 순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한국에서 닦여진 기반을 그러한 나라들에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고 그 기반을 다른 국가들에 횡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축복에 참가했던 사람들은 한국으로 와야 했던 것입니다.

 

* 우리는 세계를 구해야 합니다. 1974년까지 120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합니다. 이것은 꼭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서 선생님은 120개 성지를 정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2차 7년 노정 동안에 그러한 것들을 이루어야 합니다. 누가 파송되겠어요?  

 

 

- 제2차 세계 순회 노정 1969.2.2~. 21개국.

: 1968.2.22. 430가정 축복.

: 43가정 축복 (1969.2.28. 미국 13쌍. 3.28. 서독 8쌍. 5.1. 일본 22쌍.)

- 제3차 세계 순회 노정 1971.12.5.~ 15개국.

: 1970.10.21. 777가정 축복.

 

▣ 1972.6.11(일) 제10회 만물의 날. 중앙수련원.

058-223 1968년부터 시작된 제2차 7년 노정을 중심 삼아 가지고 세계가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계는 가인과 아벨이 싸우는 입장과 같이 우익과 좌익이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싸우는 세계를 수습해서 이제부터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사회를 이루고 새로운 국가를 이루고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 발전해 나가야 됩니다. 그것이 원리관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것이 통일교회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이리하여 1968년 정월 초하루를 중심 삼아 가지고 하나님의 날을 이 지상에 설정했다는 것은 통일교회로서 승리한 날입니다.

 

그때까지 무엇을 했느냐 하면 430쌍까지 축복을 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승리의 날을 횡적으로, 세계적으로 연결시켜야 되겠기에 선생님이 1969년에 세계를 순방하면서 43쌍을 축복해 줌으로써 10개국을 횡적인 무대로 연결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서 되어진 것을 세계화시켜야 된다는 겁니다. 한국에서 승리한 것을 세계적으로 닻을 달아 놓아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이 즉 말하자면 10개국을 중심 삼은 43쌍의 축복인데 430쌍 축복과 같은 것입니다. 430쌍이라는 것은 한국 역사가 4300년이기 때문에 한국의 전 백성을 중심 삼은 축복의 터전이 된 것입니다.

 

한국의 백성을 중심 삼아 가지고 내적으로 세계의 백성과 상대권을 만든 것이 1969년의 선생님의 제2차 세계 순회 노정입니다. 그리고 777가정을 중심 삼아 가지고 세계적으로, 종횡으로 갈 길을 활짝 열어 놓은 운세권을 만들어 놓고 돌아온 것이 제3차 세계 순회 노정입니다. 이렇게 된 거예요. 알겠어요?

 

3. 1965년(제1차 세계 순회)부터 1972년까지 7년을 맞추는 일을 한다.

 

▣ 1972.1.1(토) 하나님의 날에 대한 의의와 그 유래. 워싱턴교회.

- 제5회 참하나님의 날.

  

052-248 한국에서 부모된 선생님이 돌과 흙을 가지고 왔다는 것은 뜻을 중심 삼아 가지고 부모의 날, 자녀의 날, 만물의 날을 택정한 승리적 기반 그 전체를 가지고 온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라구요.

 

또 거기에 심어 주었다는 것은 그 나라에 복을 옮겨 준다는 것과 마찬가지요 거기에서 가지고 왔다는 것은 이 나라가 주고받을 수 있는 혜택권내에 들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기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052-251 여기서부터 세계의 운세는 돌아 들어오기 시작하는 입니다. 그때부터 즉 1965년부터 1972년까지 7년을 맞추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 7년째를 맞는 해에 3차 세계 순회 노정을 맞추었다는 것은 지극히 세계적인 의의를 가진 순회 노정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미국에서부터 거두어 들어가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 성지를 제일 많이 만들었다구요.

 

4. 맨 처음 한국에서 일본으로 출발할 때(1971.12.5)에 비상사태를 선언하기 바로 전날 떠났다.

 

▣ 1972.8.17(목) 뜻을 사랑하는 아들이 되자. 청평 수련소.

- 제1회 전국 교역자 수양회.

 

060-224 우리가 맨 처음 한국에서 일본으로 출발할 때(1971.12.5)에 비상사태를 선언(1971.12.6)하기 바로 전날 떠났다구요. 가만 보니까 사태가 절박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출발하려고 하는데 주일날이라 수속을 못 한 거예요. 외무부 여권과 과장의 결재를 받아 놓아야 되는 것을 못 받아 놓았다구요. 주일날이라도 나가야 할 텐데 인증서가 없기 때문에 못 나가게 됐다구요. 큰일났거든요. 그래 가지고 그 시간까지 전부 다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30분 전에 여권과 과장을 만난 거라구요. 그것이 하늘의 역사라구요.

 

그 여권과 과장은 주일이니만큼 자기 과원들을 데리고 청평호수에 놀러 가려고 약속해 놓았어요. 그래 과장이 아침에 일어나 가려고 하니까 몸이 찌뿌등등하고 아 왜 그런지 절대 가고 싶지 않더라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자기가 "내가 이렇게 몸이 아파서 못 간다."고 전화를 해 놓고 할 수 없이 일어나 뒤적뒤적하는 판이었다나요. 그때 우리 패거리(김영휘 회장. 유종영 섭외부장)가 찾아간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나가야 할 텐데 어떡할 테요?" 주일 아침에 과장이 앉아 있을 게 뭐예요. 과장이 가고 싶지 않아 가지고 뒤척뒤척하고 있는 판인데 우리가 가서 큰일났다고 해 가지고 그 과장을 내세워 서류를 준비한 거라구요. 이래서 그 과장이 전부 다 자기가 열어 가지고 자기 도장까지도 내어 증인서를 써 줘 가지고 우리가 그것을 30분 전에 들이대 가지고 떠난 거라구요.

 

일본에 들어가는 데 있어서 말이에요, 선생님의 여권이 무엇이었느냐? 아시아의 결제인 대표회의에 참석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회의는 벌써 40일 전에 끝났다구요. 그 여권을 가지고 일본에 들어가는 거예요. 들어가는데 이것을 파고들면 큰 문제가 벌어진다구요.

 

하나님이 보호하사 믿고 모험을 하는 거라구요. 그때 출입국 관리요원들이, 외무부 요원들이 전부 다 나와서 조사하는 거라구요. 조사하는 데에 쓱 가서 가만히 보니까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 뚱뚱한 녀석한테 가고 싶더라구요. 그래서 가 보니 그 녀석이 바로 어떤 녀석이냐 하면 한국말을 참 잘하는 녀석이었어요.

 

나 한국 사람 미스터 문이라고 소개하니 이름은 안 봐요. 내가 한국말을 하니 한국에서 오셨느냐고 하는 거예요. "아, 당신이 어떻게 한국말을 할 줄 아느냐"고 물으니까 자기가 뭐 경상남도에 있었다는 거예요. 야 이거 찬스다는 거예요.

 

"어쩌면 한국 사람보다도 이야기를 잘하느냐? 당신이 어떻게 일본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지." 하면서 농담을 한 거라구요. "아, 그렇지 않다. 당신은 교포든가 당신의 아버지 아니면 어머니가 한국 사람일 것임에 틀림없다. 당신은 한국 사람이라구." 이런 농담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갔다구요.

 

그랬더니 "그 여권을 주소" 하며 그냥 꾹 찍어 주는 거예요. 그때는 그런 놀음도 해야 된다구요. 농담도 쓱쓱 하고 "당신이 말이야···" 그래 가지고 그 관문을 통과했다구요.

 

060-226 여기 미국 대사관에서 여권을 안 내주기 때문에 일본에 가서 내려고 미리 아는 사람을 통해 일본 대사관에까지도 연락해서 자신 있다고 해 가지고 떡 갔는데 안 된다는 거예요.

 

미국에 들어가려면 캐나다를 통해 들어가야 되거든요. 미국 여권을 못 냈기 때문에 캐나다에 가서 내려고 그랬어요. 일주일 전에. 그런데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 목사가 캐나다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내 가지고 미국으로 도망가서 지금 찾는 중이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절대 캐나다에 안 들여보낸다는 거예요. 떡 이렇게 되었다구요.

 

이렇게 되니 할 수 있어요? 그래, 성신대학교 이사장을 통해 보좌관이라고 해 가지고 길을 터서 다리를 놔 가지고 천신만고 끝에 대사와 우리 4사람이 면담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현찰이 없으면 큰일나겠더라구요. 얼마나 꼬치꼬치 파는지 알주일 전에 떡 그랬으니 말이에요, 한국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라는 통첩을 자기 본국으로부터 받고 있는데 한국 사람을 한 사람도 아니고 4사람씩 들여보내게 된다면 문제가 된다나요.

 

그래 얼마나 꼬치꼬치 캐묻는지 거기에서 시간을 한 시간 가량 보낸 거예요. 나중에는 현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 간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 남미 엘살바도르에 간다고 핑계를 대 가지고 미리 여권 낸 것을 들이댄 거라구요.

 

비자를 그렇게 냈기 때문에 그리로 갈 것이 틀림없으니 통과 비자를 내준 거라구요. 그래서 14일간의 통과 비자를 갖고 캐나다에 들어가서 미국으로 갈 공작을 할 작정을 했다구요.

 

이렇게 겨우 천신만고해 가지고 겨우 끼우뚱까우뚱 해 가지고 하나님이 보우하사 도장 안 찍을 것을 도장 찍게 했다구요. 이래서 캐나다에 가게 된 거라구요.

 

캐나다에 가는 데는 비행기가 직접 가지 않고 로스앤젤레스에 들려 가지고 그다음에 캐나다에 가는 거라구요. 원래 로스앤젤레스에 들려서는 비행장 호텔에서 자고 캐나다에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식구들이 나와 가지고 미리 교섭해 가지고 로스앤젤레스 통일교회에서 이분들의 신원보증을 할 테니까 내보내 달라고 미리부터 교섭해 놓았기 때문에 하룻밤을 나와서 자는 것만 승낙받고 그 이튿날 그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로 가야 된다구요. 이래 가지고 캐나다에 갔다구요.

 

캐나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들어온다는 거예요. 미국에 들어갈 수 이는 비자가 있어야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데 미국 대사관에 가서 무슨 문제가 있었느냐면 말이에요, 미국에 들어가는 비자를 내려고 신청을 해 놓으니 사흘 후에 오라는 거예요.

 

그래서 사흘 후에 쓱 가니까 그 대사가 안 된다는 통첩이 왔다는 거야. 거기서 엘로우 카드라는 것이 있다구요. 신원조회서가 있어요. 그것이 미국 대사관의 역사라구요. 그것은 절대 비밀문서라구요. 어떻게 돼서 못 들어가느냐 하는 내용은 당사자에게 절대 알려주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 패들이 극성맞게 매일같이 갔어요.

 

이래 가지고 대사들하고 농담할 정도로 다 친했다구요. 그래, 안 보내 준다는 것을 미국 대사관에 가서 들이대고 "왜 안 보내 주느냐?" 하니까 할 수 없이 "미스터 문은 1967년도에 공산당 활동을 한 내용이 있다고 해서 안 보내 준다는 보고서가 왔소." 하며 보여 준 거예요. 옳지, 됐다! "내가 언제 공산당 활동을 했어?" 하고 물어진 거예요.

 

그래 가지고 우리 단체가 넷이 있는데 네 단체가 전부 다 미국 상원의원들을 통해 가지고 미국 국무성에 진성서를 낸 거예요. "미스터 문이 1967년도에 언제 공산당 활동을 했느냐?"고 들이 항의하는 거라구요. 대사관에 대해서도 항의문을 보내 가지고 큰 문제를 일으켜 놨다구요.

 

이렇게 되니 동부에서 서부에서 워싱턴에서 전부 다 캐나다 대사관에 문의가 오는 거예요. 그러니 대사관이 국방성에 문의를 한 거예요. 미스터 문은 그런 무엇이 없다는 반대 陳情書(실정이나 사정을 진술하여 적은 글. 주로 문제 해결을 위하여 관공서나 공공 기관 등에 낸다. 유의어로 소장 訴狀.)가 캐나다에 있는 대사관에까지 보내져 왔다구요.

 

이렇게 되니까 한국 대사관에 조회해 가지고 본국에 있는 카드를 조사해 보니까 결국에는 미스터 문이 그런 패가 아니라 승공 지도자라고 하는 게 판명이 된 거예요. 입을 딱 꿰매 버렸다구요.

 

이래 가지고 비비고 제기고 밀고 치고 하면서 대판 싸움을 했어요. 결국 국무성이 꼼짝달싹 못하게 모가지가 딱 걸렸으니 이제 야단났다구요. 가만 보니 우리 단체가 있으니 변호사를 불러 재판하게 된다면 국무성은 걸려 넘어가게 되어 있거든요.

 

자기들 정보망이 엉망진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큰일났으니 어서 내줘라 해 가지고 캐나다에 있는 미국 대사관에서 입국 비자를 얻은 거예요. 기적적으로 미국에 들어간 거라구요. 그것들, 사탄도 알기는 알아요. 세 고개를 넘는 거예요. 소생 장성 완성.

 

그래 가지고 12월 18일에 워싱턴에 도착한 거라구요. 그런데 워싱턴에 갈 때도 그날 워싱턴에 도착해야 하는데 비행기가 있어야지요. 그날이 리틀엔젤스의 마지막 공연 날인데 내가 참석한다고 미리부터 약속해 놓았는데 오지 않으니까 아이들이 코가 늘어져 가지고 전부 다 기다리고 앉아 있는 거예요.

 

딱 그날이 마지막 날이지 비행기는 없지. 할 수 없이 프로펠러 Propeller 비행기를 타고 간 거예요. 그런데 이놈의 비행기가 안 들리는 데가 없구만. 한 시간 반이면 갈 곳을 여섯 시간인가 일곱 시간인가 걸렸다구요. 그래 가지고 가서 참석했다구요. 이리하여 미국 땅에서 활동이 벌어진 거라구요.

 

▶ 국가비상사태 선포

* 1961.5.16 군사정변.

* 1963.12.17. 발효. 제3공화국 헌법 17조 1항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

* 1971.12.6. 국가비상사태 선포.

- 배경

1) 중공의 유엔 가입.

2) 북한의 남침 위협

3) 학생들의 교련 반대 투쟁.

4) 부정부패 척결 시위.

 

* 1972.10.17.. 유신헌법, 제7차 개헌으로 1972.12.27. 공포, 시행 제4공화국의 헌법.

* 1963.12.~1979.10.26. 제5, 6, 7, 8, 9대 대통령으로 재직.

 

5. 제3차 세계 순회 노정 중 잊을 수 없는 인상 깊은 일.

 

1) 태국.

 

▣ 1972.5.6(토) 미국에 지지 말라. 일본 狭山湖 (さやまこ)

055-128 선생님은 세계를 쭉 돌아서 방콕에 갔었다. 인도를 거쳐 방콕에 갔던 것이다. 인도는 유럽 만한 대륙이었다. 모두가 골격이 크다. 눈도 크고 키도 크다. 걷는 것도 다르다.

 

* 그러나 태국에 도착해 본 즉 몇 시간 전까지 계속된 인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이야말로 순수한 동양인이었다. 그것을 보면 실로 친근감이 들었다. 고향에 닿은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왔으니 기념이 될 만한 것을 하나 남겨 두고 가자" 그렇게 생각되었다. 인간이라는 것은 이상한 것이다. 그러한 인상에 남는 감정, 어떤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생각하며 호텔에 도착했던 것이다.

 

마침 도착한 곳이 일본인이 경영하는 호텔이었다. 선생님은 옛날 학창 시절에 서서 먹던 초밥의 맛을 알고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릴 때는 늦게 혼자 돌아와 쓸쓸한 방에 혼자 터덜터덜 들어가 먹던 밥보다는 서서 먹던 초밥의 맛은 아직도 인상에 남아 있다.

 

일본 호텔에 왔으니까 틀림없이 초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石井君、초밥 알고 있지? 어떤 것이 맛있지? 어떤 것이 비싼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비싼 것은 한 개에 40엔도 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 태국은 그때 한여름이었다. 가장 더운 때라고 했다. 밖을 보기만 해도 벌써 더운 느낌이 드는 그런 때였다. 기분이 좋아져서 영화를 보러 갔다.

 

그 나라의 풍습이 어떤가 하는 것은 알려면 영화를 보는 것이 가장 빠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초밥을 먹은 것이다. 실로 그것은 맛있었다.

 

기분이 좋아 가지고 돌아오니 약간 시장했다. 그래서 초밥을 주문해서 허리띠를 풀어놓고 먹었다. 정말 맛있었다. 겨자라든가 참치 초밥이라든가 여러 가지 초밥이 있었는데 배부르게 먹었다.

 

그처럼 기념이 될 정도로 먹었지만 애석한 것은 돈을 실로 생각지도 못할 만큼 지불했다는 것이다. 출발할 때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것이 제3차 세계 순회 노정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인상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태국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고국에 돌아온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긴장된 마음은 하나도 없어져 버렸다. 그러나 서양에 있으면 긴장이 된다. 환경이 확실히 다르다.

 

* 동양에 오면 그런 기분으로 인해 충분히 해방된다. 일본에 오면 마치 자신의 안방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된다.

 

2) 일본

- "공산당과 공개 토론하자."

 

▣ 1972.7.9(일) 섭리의 십자로. 전본부교회.

059-090 내가 이번에 3차 세계 순회하면서 일본에 들어 말한 것이 무엇이냐? 공산당과 공개 토론하자는 것입니다. "공개 토론을 하자. 우리가 공산당하고 이론 투쟁할 테니 텔레비전 방송국은 중계하라. 신문은 보도하라" 그랬어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렇게 공개 선언한 거라구요. 나와라! 이러니 꽁무니를 빼는 거라구요.

 

銀座거리는 토요일 오후부터 주일 오후 6시까지 차량 통행이 금지됩니다. 그래, 토요일 오후에 혹은 일요일에 가게 되면 사람이 꽉 찼다구요. 거기 십자로에다가 간판을 붙이고 또 신문에 "아무 날 몇 시에 긴자 아무 거리에서 공산당 책임자하고 공개 토론한다. 아무개 누구도 나올 것이다." 이런 광고를 붙이고 그 일을 대대적으로, 전국적으로 하는 거예요.

 

그들이 꽁무니 빼는 날에는 들이치는 거라구요. 지금 이 싸움을 하고 있다구요. 그러니까 공산당들이 우리에게 하는 말이 "우리는 몇십만밖에 안 되는 조그만 공산당이 아니냐. 우리를 보고 그러지만 말고 자민당한테 그래라." 지금 이러고 있습니다. 못살게 그러지 말라는 거예요.

 

 

6. 공식적인 집회와 공적인 입장에 나타날 수 있었다.

 

1) 영적으로 승리가 결정됐다. 

 

▣ 1972.5.22(월) 참된 승리. 중앙수련원.

- 제1차 기동대 발대식 개회식.

 

058-148 예수님을 중심 삼은 12지파 가운데에서도 축복의 기반을 못 닦았다구요. 그런데 통일교회는 세계 10개 국가 앞에 이미 축복의 기반을 닦아 왔다는 것입니다. 12수와 10수는 맞먹는 수입니다. 10 나라는 12 나라, 세계 앞에 이미 묶어 놓았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이런 기반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통일교회는 세계적인 운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민족뿐만이 아니라 나라가 움직이지 않을 때는 세계에 들어가서 간접적인 공격을 해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는 망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 왜 선생님이 3차 세계 순회 노정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공식적인 집회를 갖고 공적인 입장에 나타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을 알겠어요? 예수님이 출발할 것은 국가 기반에서부터 세계로 가는 것입니다. 세계로 출발하는 것입니다. 횡적으로 세계로 출발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는 거예요. 알겠어요?

 

* 우리 통일교회는 예수님을 쫓아내던 유대교와는 다르다는 거예요. 영적인 기준에 있어서 영적인 기독교 세계 형이 용족 주체 국가로서 그 기준이 높게 되었으니 이는 사탄 세계의 개인보다 높은 자리에 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로소 공세를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선생님이 3차 세계 순회 노정을 다녀온 것입니다. 알겠어요. 영적으로는 승리가 다 결정됐다는 것입니다. 승리적 결정을 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이 비로소 공석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될 것이 아녜요?  

 

7. 제3차 세계 순회 노정을 중에 느낀 것이 무엇이냐?

 

1) 공산당의 세계적 발전.

 

▣ 1972.8.6(일) 아버님의 슬픔. 전본부교회.

060-065 금번에 내가 3차 세계 순회 노정에 올라 전 세계를 돌아보면서 느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야, 공산당이 빨리도 발전해 가는구나! 빨리도 세계를 쑤셔 대고 있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여실히 느꼈어요.

 

"이놈의 자식들, 나에게 이제 얼마만의 기간을 다오. 너희들과 정면충돌할 때가 올 것이다!" 그러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통일 십자군이란 것을 편성 편성해 가지고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고 있다구요.    

 

8.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1)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후 첫 설교

-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자."

 

▣ 1972.5.8(월) 불신의 씨를 빼어 버리고 신의의 씨를 심자. 중앙수련원.

- 제3차 세계 순회 귀국 환영 집회.

 

055-174 사랑하는 아버님, 오늘은 1972년 5월 8일 당신이 보호하시어서 멀고 먼 3차 세계 순회 노정을 마치고 이제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055-181 예수님을 중심 삼고 보더라도 죽고자 하는 자는 살고 살고자 하는 자는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불신의 생명을 포기할 수 있는 각오가 결정되어 있어야 하고 스스로가 불신의 씨를 완전히 제거시킬 수 있는 탕감된 제물의 입장이 되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신의의 씨를 심을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다시 한번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통일교회 식구 여러분, 그간 3차 세계 순회 노정을 위하여 정성 들인 것도 고맙습니다만 이제 여러분과 나 사이에 있어서 혹은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어서, 여러분과 하나님 사이에 있어서 삼각관계를 중심 삼고 신의로만 맺어질 수 있는 새로운 결정이 오늘부터 시작된다면 수많은 불신의 역사도 방어할 수 있으며 민족적인 불신의 모든 수난도 방어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통일교회 교인 불쌍하다.

 

▣ 1972.10.1(일) 우리의 목적. 전본부교회.

063-040 이번에 내가 3차 세계 순회 노정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느낀 것이 뭐냐 하면 통일교회 교인 불쌍하다 ···. 그래서 내가 세계로 돌아다니면서 원조해 해 주고 다 그랬지만 불쌍하다는 거예요. 철 모르거든 지금 ···. 겨울이 올 때가 되었는데 베적삼을 입고 지금 뭐 뛴다고 야단하고 있다구요. 지금은 그렇게 해도 통하지만 가울이 오고 겨울이 오게 되면 솜바지 저고리를 입어야 할 텐데 야단났거든요. 그렇지만 솜바지를 못 입고 베적삼을 입었더라도 그 겨울을 달리기만 하면 산다 이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