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33 선생님이 수십 星霜(별은 일 년에 한 바퀴를 돌고 서리는 매해 추우면 내린다는 뜻으로, 한 해 동안의 세월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의 복귀노정을 걸어오기 전부터 하나님께서 먼저 그러한 역사적 노정을 걸어왔기 때문에 선생님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었고 형제자매를 사랑할 수 없었으며 처자를 사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 성진이가 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23살이 되도록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였습니다. 그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의 이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선생님이 누구만큼 못나고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천적 인연이 더 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3년 전 그 어린 핏덩이와 어머니를 남겨 놓고 북한으로 가기 위해서 문을 닫고 나설 때, 그 어머니에게 어디 간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집을 떠나야 하는 심정은 하나님만이 아실 것이라고 믿고 떠났던 것을 그는 몰랐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기성교회가 환영하였더라면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는 슬픈 아버지 어머니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성교회가 받들었더라면 오늘날 통일교회의 운명이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이며, 한국의 운명도 이렇게 비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중심삼고 기독교가 우리와 하나되었더라면 새로운 기독교 문화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세계의 사조가 한국에 상륙하여 맞부딪치는 정세 하에서 피폐한 이 민족으로부터 비판받는 기독교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그런데 이러한 시대를 놓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세계에 가서 다시 찾아 나와야 했습니다. 그러는 데 21년 걸렸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과 나라를 배후에 두고 원수의 땅을 먼저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민족과 유대교가 반대함으로 말미암아 원수의 나라인 애급 땅을 찾아갔던 것과 같이 그러한 비운의 발걸음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022-135 자기 민족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원수를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랑할 수 없다는 탕감의 원칙이 있기 때문에 이북 땅을 거쳐서 남한 땅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처음에 기독교에게 배척받아 이북 땅으로 간 것도 원통한데 남한 땅에 와서 남한 백성 앞에 또다시 짓밟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천 년 동안 기반을 닦아 온 기독교 역사는 다 무너졌고, 수천 년 배달민족으로서 쌓아온 공적도 다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슬픈 사연을 품고서 통일교회는 새로운 이념을 중심삼고 하늘 앞에 충성하여 나왔습니다. 피폐한 황무지, 삼천리 반도에 통곡의 제단을 쌓아 나왔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뿌리자고 맹세하며 나섰던 통일교회인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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