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9.2.2(일) 나의 뜻과 신념. 전본부교회.
- 제2차 세계순회노정을 떠나시기 앞서.
022-129 또한 평양감옥에 들어갈 때에도 어떠 어떠한 사람을 만날 것이라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선생님에게 어떠한 이 필요한 때는 영계에서 무지몽매無知蒙昧한 강도, 절도, 살인범 등의 수많은 죄수들에게 "아무 감방에 번호가 몇 호인 사람이 있으니 그분에게 어떤 것을 갖다 드려라" 하고 시키기도 하고, 겨울이 되어 날씨는 추워지는데 선생님이 입을 옷이 없을 때에는 그들을 시켜서 옷을 갖다 주기도 했으며, 또 내가 먹지 못하여 배가 고플 때에는 난데없는 사람을 통해 선생님 이름과 번호를 가르쳐 주면서 먹을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평양감옥에 들어가면 누구 누구를 만날 것을 알았기 때문에 희망 가운데서 4월 20일까지 지냈습니다. 그때 감방의 창가를 스치던 버들잎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거기서 하늘의 뜻을 따르기로 약속하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과 만남으로 말미암아 거기 원수의 땅 제일 깊은 골짜기에서부터 하늘의 밀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늘의 병사를 모집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가정과 사회에서 몰리고 쫓겼으니 감옥에서부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통일교회가 출발을 해서 이남 땅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 1966.1.9(일) 하나님 편 사람이 돼라. 전본부교회.
- 제2회 대학생 수련회 수료식.
016-142 1948년 2월 22일 선생님이 평양 감옥으로 갈 때는 천리의 원칙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이 약속하신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도리어 소망 가운데 갔었다. 벌써 일 년 전부터 내가 올 것을 하늘이 가르쳐 주신 것을 보고 반역할 수 없는 심정이 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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