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10월 대한민국 외환위기와 iMF
* 김영삼 정부 시절 (1993.2~1998. 제6공화국의 두 번째 정부)
-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부총리와 통화 이전까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한보철강으로부터 막대한 뇌물, 불법대출로 5조원의 부실채권 발생. 국가 신용도에도 영향.
* 1997.1.23 부터 한보철강(현 현대제철), 4월 진로그룹. 6월 한신공영그룹, 7월 기아자동차 주식회사, 10월 쌍방울 그룹, 태일정밀, 11월 뉴코아, 12월 고려증권, 한라그룹, 1998년 1월 나산그룹, 극동건설, 5월 거평그룹 등 부도.
그 외 부도 그룹: 삼미그룹, 대농그룹, 삼립식품, 해태그룹, 수산중공업, 고려증권, 청구그룹, 한일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고합그룹, 아남그룹, 신호그룹, 우방그룹, 새한그룹, 가원산업, 큐닉스컴퓨터, 신원그룹, 미주그룹 등 재벌 대기업들이 도산, 법정관리.
* 1997.11.16 미셜 캉드쉬 IMF총재 극비 방한
* 1997.11.18 환율 사상 처음으로 달러 당 1000원 선을 뛰어넘어 거래 중단 (1990~1996까지는 달러 당 평균 600~800원이었다). 外換 保有高 20억 달러.
* 1997.11.19 강경식 경제부총리를 경질, 통상산업부 장관 임창열을 경제부총리에 임명.
* 1997.11.21 국제통화기금에 資金 支援 申請. 임창열 부총리와 스탠리 피셔 국제통화기금 수석 부총재 면담, 200억 달러 차관 요청 .
* 1997.11.29 종합주가지수 사상 최악인 400 포인트로 추락.
* 1997.12.3 구제금융 195억 달러, IMF와 양해각서 체결. (2000.12.4 차관 전부 상환. 예정보다 3년 빨랐다.)
* 1997.12. 11 환율 달러 당 1700원까지 폭등.
*1998. 실업자 수 130만 명. 대한민국 總外債 1493억 5400만 달러.
* 1998.1 KBS 금 모으기 운동.
: 4개월 동안 225.79톤 (당시 한국은행 보유 금 10톤).
: 351만 명 참여. 평균 65그램. (17.33돈.)
: 1돈에 3만원 보상.
: 금 수출로 22억 불의 외화 확보.
* 1998.12 외환 보유액 520억 달러로 증가.
* 1999 종합주가지수 800 포인트 돌파.
* 2000.12.4 김대중 대통령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발표.
* 2001.8.23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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