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識·雜學

1997년 10월 대한민국 외환위기와 IMF

true2020 2018. 12. 13. 14:55

▣ 1997년 10월 대한민국 외환위기와 iMF


* 김영삼 정부 시절 (1993.2~1998. 제6공화국의 두 번째 정부)

-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부총리와 통화 이전까지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 김영삼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이 한보철강으로부터 막대한 뇌물, 불법대출로 5조원의 부실채권 발생. 국가 신용도에도 영향.  


* 1997.1.23 부터 한보철강(현 현대제철), 4월 진로그룹. 6월 한신공영그룹, 7월 기아자동차 주식회사, 10월 쌍방울 그룹, 태일정밀, 11월 뉴코아, 12월 고려증권, 한라그룹, 1998년 1월 나산그룹, 극동건설, 5월 거평그룹  등 부도.


그 외 부도 그룹: 삼미그룹, 대농그룹, 삼립식품, 해태그룹, 수산중공업, 고려증권, 청구그룹, 한일그룹, 쌍용그룹, 동아그룹, 고합그룹, 아남그룹, 신호그룹, 우방그룹, 새한그룹, 가원산업, 큐닉스컴퓨터, 신원그룹, 미주그룹 등 재벌 대기업들이 도산, 법정관리.


* 1997.11.16 미셜 캉드쉬 IMF총재 극비 방한


* 1997.11.18 환율 사상 처음으로 달러 당 1000원 선을 뛰어넘어 거래 중단 (1990~1996까지는 달러 당 평균 600~800원이었다). 外換 保有高 20억 달러.


* 1997.11.19 강경식 경제부총리를 경질, 통상산업부 장관 임창열을 경제부총리에 임명.


* 1997.11.21  국제통화기금에 資金 支援 申請. 임창열 부총리와 스탠리 피셔 국제통화기금 수석 부총재 면담, 200억 달러 차관 요청 .


* 1997.11.29 종합주가지수 사상 최악인 400 포인트로 추락.


* 1997.12.3  구제금융 195억 달러, IMF와 양해각서 체결. (2000.12.4 차관 전부 상환. 예정보다 3년 빨랐다.)


* 1997.12. 11 환율 달러 당 1700원까지 폭등.


 *1998. 실업자 수 130만 명. 대한민국 總外債 1493억 5400만 달러.


* 1998.1 KBS 금 모으기 운동.

: 4개월 동안 225.79톤 (당시 한국은행 보유 금 10톤).

: 351만 명 참여. 평균 65그램. (17.33돈.)

: 1돈에 3만원 보상.

: 금 수출로 22억 불의 외화 확보.


* 1998.12 외환 보유액 520억 달러로 증가.


* 1999 종합주가지수 800 포인트 돌파.


* 2000.12.4 김대중 대통령 "우리나라가 IMF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고 공식발표.


* 2001.8.23 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종료.

'常識·雜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휘는 진짜 이름  (0) 2019.03.05
자동차 Battery 방전  (0) 2019.01.25
채근담 採根談  (0) 2018.12.13
프랑스의 인권선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 1789.8.26  (0) 2018.11.30
날짜 변경선 International Date Line  (0) 2018.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