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3.14(토) 구리 수택리. 아버지의 목전에서.
- 제2회 협회 간부수련.
029-338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본질은 무엇이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을 때에 그것이 하나님과 내가 타락한 인연을 넘어 하나의 인연으로 맺어질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좋은 입장에 처해야만 감사해야 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좋은 때만 우리를 위해 수고해 나오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수고하실 것을 다짐하고 나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 자신들도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기 위해서는 나 대신 일하시며 싸워 나오신 하나님을 좋은 자리에서 감사하는 것보다도 어려운 자리에서 더욱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 기쁨과 슬픔의 눈물이 엇갈려 남아질 수 있는 자리는 놀고 뛰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비참하게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말할 수 없이 처참한 모습으로 상봉할 수 있는 자리, 눈물이 교차되는 자리에서도 감사할 때 하나님과 인연이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혁명의 봉화도 새로운 혁신 운동도 그런 자리에서 역사를 중심 삼고 엮어져 나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아 나가게 될 때 우리가 지금 생활하는 이상의 자리에서 감사하는 것보다도 그 이하의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나를 구원하는 입장에 계시기 때문에 나보다도 더 불쌍한 분입니다. 나보다도 하나님이 더 불쌍한 입장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죽어 간다면 물론 자식도 불쌍하지만 그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가 더 불쌍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식이 죽어 가는 자리에서도 부모를 위로하고 부모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효를 다한다면 부모의 서러움, 부모의 고통, 부모의 비참함을 메울 수 있는 것입니다.
* 언제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사할 날이 있을 것이냐?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날을 갖지 못하고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무리 감사를 드린다 하더라도 그 감사는 나에게서만 끝나는 감사이지 하나님과 하나의 목적을 중심 삼은 감사로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나보다도 하나님께서 감사할 수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그것은 효하는 자리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효라는 것은 어떤 것이냐? 부모가 슬퍼하는 일에 대해서 자식이 먼저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모는 그 자식을 무한한 소망의 실체, 자기의 모든 생명을 대신한 가치의 존재로 세우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감사하는 것입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부모는 필요 이상의 감사를 느낄 것입니다.
029-341 우리는 오관을 통하여 느껴지는 모든 감각과 마음으로 느껴지는 직관까지 합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태어났으니 아버지를 모시고 살다가 아버지 앞에 가겠다고 해야 합니다. 이런한 문제를 중심 삼고 언제나 아버지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에겐가 묶인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어려운 고비에 처하게 되더라도 거기에서 결코 사탄에게 묶임을 당하지 말고 하나님에게 묶임을 당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苦痛당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준 것으로 알고 기쁨으로 맞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고통을 피하려 하지 말고 正面으로 對決하라는 것입니다. 이 受難의 길은 아버지가 나에게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준 禮物로 알고 감사히 받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내 생활에서 더이상 어려운 일이 오기 전에 내가 완전히 하나님 앞에 묶여진 자가 되어 새로운 세계로 출발할 수 있는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고통을 넘게 되면 하나님은 더 큰 승리적 터전을 부여하려고 합니다. 그 승리적인 터전을 자기와 관계 맺게 하려면 탕감조건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관계 맺으려면 거기에 해당되는 슬프고 어려운 환경을 또다시 뚫고 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더 넓은 환경을 나에게 상속해 주기 위한 하나님의 작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고통이라도 기쁨으로 맞아들일 수 있는 생활을 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자리가 내게 다가올수록 아버지와 내가 하나되기 위해서 이런 시련이 오는 것이라는 信念을 갖고 헤쳐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무서운 사람이 있다면 이 이상 무서운 사람이 없습니다.
'生活 감사 불평 시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원수에게 복을 빌었던가? 인간이 원수를 사랑한다는 마음만 있으면 사탄들은 근본적으로 파멸되어 버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대해 오히려 복을 빌어 주었던 .. (0) | 2019.01.22 |
---|---|
차게 되면 어디로 가야 돼요? 차게 되면 내려가야 됩니다. (0) | 2019.01.22 |
감사 - 감사의 생활은 지옥 가서도 감사해야 되고 천상세계에 가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마음이 하나예요. (0) | 2018.11.04 |
감사 - 감사는 어느 때 해야 되느냐? 쉽고 좋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힘들 때 해야 되는 것이다. (0) | 2018.11.04 |
감사 - 감사 외에는 남기고 갈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0) | 2018.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