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사명과 책임. 1971.8.13(금) 청평.

true2020 2018. 5. 22. 14:22

▣ 1971.8.13(금) 우리의 사명과 책임. 청평.

- 제1차 교회장 수련.

 

046-130 자, 이런 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기도하는 내용이 뭐가 돼야 하느냐? 전도하는 내용이 무엇이어야 하느냐? 까놓고 얘기하면, 가인 아벨의 자리를 탕감시키기 위해서 전도 나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역사적인 노정을 탕감시키기 위한 정성을 들여 가지고, 하나님의 협조를 받는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하늘과 아벨이 하나 안 돼 가지고는 책임을 완수 못하는 것입니다. 아벨은 아벨대로 책임할 수 없는 거라구요. 다시 말하면, 아담 혼자 책임을 다했다고 해서 복귀되는 것아 아니라구요. 아벨은 아담의 입장을 대신해야 하는데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가지고 출발해야 합니다.

 

자신이 아벨이라고 하며 출발한다고 해서 아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인을 복귀하기 위해서 나섰다고 스스로 적당히 결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하나님이 동기가 되어 결정돼야 됩니다. 

 

그러면 아벨은 어떤 사람이냐? 하늘과 먼저 하나된 사람입니다. 먼저 하나된 그 기준은 어떤 것이냐? 아벨은 하나님과 하나된 자리에서 자기의 생명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가 먼저 죽을 각오를 한 사람입니다. 

 

선생님을 중심삼고 볼 때 선생님이 아벨이면 여러분은 가인이기 때문에 선생님과 여러분과의 관계는 어떤 관계냐? 아담 가정에 있어서 가인이 아벨을 쳐죽인 그 한을 탕감하기 위해서는 아벨인 선생님이 죽을 수 있는 운명에 있을 때 여러분이 대신 죽어줄 수 있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관계가 되지 않고는 탕감복귀가 안 됩니다.   

 

* 선생님은 기독교의 반대를 받았기 때문에 종족적 메시아의 터전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찾아와야 되겠기에 거리에서 난데없이 만난 행인과 마찬가지의 입장인 여러분을 선생님의 혈족보다도, 부모 처자보다도 더 사랑해 왔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의 아들딸들로 하여금 여러분의 생명을 대신해서 희생할 수 있는 자리에 나가게 하기 위해서는 친 아들딸 기르는 것보다 3배 이상 수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왜 그래야 되느냐? 한 사람의 아담이 완성되는 데는 1차 구약시대, 2차 신약시대, 3차 성약시대 이렇게 3시대의 아들을 거쳤기 때문에, 이 3 아들의 가치와 같은 수고를 거치지 않고는 복귀 완성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는 3단계의 사망권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사망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자기의 아들딸, 혈육을 위해서 겪는 수난보다도 3배 이상의 수난의 길을 거치지 않고서는 자기의 생명을 같이 할 수 있는 믿음의 아들딸을 못 만드는 것입니다. 

 

046-133 이런 점에서 본다면 여러분이 언제 믿음의 아들딸을 대해서 자기가 낳은 아들딸보다 더 사랑한 적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축복받아 가지고 낳은 아들딸도 완성 시대의 아들딸로 낳은 것이 아니라구요. 그들은 장성기 완성급이라구요. 아담 해와가 장성기 완성급에서 타락했기 때문에 축복은 타락한 그 기준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실체를 복귀하기 위해서 메시아를 위한 기대 위에서…, 원죄를 벗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원죄가 부부에 의해서 심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벗기 위해서도 부부의 기준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원죄를 벗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받은 기준에서 자식을 낳았다고 해서 그 아들딸이 전부 하나님의 아들딸이 아닙니다. 완성 단계의 7년 노정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리를 확실히 알아야 되겠어요. 

 

선생님을 중심 삼고 볼 때 여러분은 성진이 어머니와 성진이의 입장과 마찬가지 입장입니다. 선생님이 성진이와 성진이 어머니를 버리고, 부모를 버리고 새로운 원수의 세계를 향하여 7년 노정을 갔던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가야 되는 거라구요.

 

그 기준은 뜻을 이루지 못한 입장이기 때문에 자식의 손목도 못 잡아 보았습니다. 나는 성진이를 대하여 "성진아!" 하며 이마를 맞대고 다정스럽게 이야기를 못 해 보았습니다. 성진이는 아버지를 대해 가지고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기막힌 놀음입니다. 성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6년대까지 연필 한 자루 안 사주었습니다. 옷 한 벌 안 해 주었습니다. 돈이 없어 그런 게 아닙니다. 

 

그 반면에 통일교회 사람을 위해서는 내 뼈와 살을 깎아 가면서 감옥에 들어가 피를 토하는 자리에 있더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내 자식은 제물로 바치면서…. 이런 정성을 들여 나왔던 것입니다. 이것이 통일교회의 전통적 사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 선생님 앞에 가인적인 입장에서 가인 아벨 중심삼은 원리적 기준을 넘어설 수 있는 책임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냐, 이걸 묻고 싶다는 거라구요.

 

선생님이 죽을 자리에 서게 될 때 자기가 대신 목이 잘리고, 피를 토하면서라도 죽음길을 헤쳐 나갈 사람이 몇 사람이나 있어요? 어디 그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구요. 손들긴 쉽지. 내려요.

 

그러기 위해서는 피를 토하듯이 아들딸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들이 그리워서 자기 일신이 기절해서 혼미상태에 빠질 정도의 한 때를 가져야 됩니다. 그것이 아버지의 심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