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 극복 가인과 아벨

아벨의 길 - 3가지.

true2020 2018. 2. 14. 11:40

1.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1) 하나님이 자기를 절대 믿도록 하려니 자기의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2) 그것이 믿음의 기대입니다. 

 

2. 실체기대가 있어야 된다.

 

1) 가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2)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의 후손을 위해 울라"

3) 여러분들이 선생님 앞에 오려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 "가인을 복귀해 가지고 와라!" 

4) 자기의 아들 사랑하는 3배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가인은 복귀되는 법이 없습니다.

5)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6)  "주여, 나를 구해 주소서" 하지 말고 "아, 가인이여, 나를 구해 줍소서" 그래야 된다구요. 그게 올바른 신앙길입니다.

 

▣ 1972.5.14(일) 아벨의 길. 전본부교회

066-112 여러분은 아벨이 되고 싶지요? 아벨이 되고 싶어요 안 되고 싶어요? 통일교회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아벨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벨이 되려면 첫째로는 하나님을 위하는 자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야 됩니다. 그 자리는 아담의 자리인데 아담의 자리에 들어가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절대 믿고 계속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리가 안 되어 가지고는 아벨의 자리에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절대 믿도록 하려니 자기의 제일 귀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합니다. 자기 몸뚱이를 자기의 생명 대신 바쳐 희생해야 됩니다. 그것이 믿음의 기대입니다. 

 

그다음에는 실체기대가 있어야 됩니다. 그러면 실체기대란 무엇이냐? 가인을 복귀하는 것입니다.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는 못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여러분은 선생님이 좋다고 해서 내가 세계 순회를 하게 될 때 금식하고 철야 기도하고 이랬는데, 그것을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자기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를 향하여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의 후손을 위해 울라"고 했던 거와 같이 딱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 들이는 것은 고맙지만 너희 후손을 위해서 정성을 들이라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선생님 앞에 오려면 무엇을 해야 되느냐? 그냥 못 오는 것입니다. "가인을 복귀해 가지고 와라!" 그러자구요. 그냥은 못 옵니다. 그냥 왔다가는 딸까닥 걸린다구요. 또 선생님도 하늘 앞에 그냥 못 가는 거라구요. 원리원칙으로 가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선생님을 위해서 정성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갈 길을 위해서, 여러분의 아들딸을 위해서, 여러분의 가인을 복귀하기 위해서 그 정성을 들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3대 십자가를 극복하지 않고는 가인은 복귀되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 사랑하는 3배 이상 사랑하지 않고는 가인은 복귀되는 법이 없습니다. 렇기 때문에 축복가정이라 하더라도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 아들딸을 낳았다면 그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도 그랬다는 것입니다. 가인을 복귀하지 않고는 선생님도 아들딸을 사랑 못 했다구요. 그렇게 살아왔지요? 가짜 선생님이 아니라구요. 여러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구요.

 

선생님이 먼저 다해 가지고 기반 닦아 놓고 하라는데 그것도 못하겠어요? 그것도 못하면 여러분은 호랑이 새끼가 아니고 고양이 새끼입니다. 땅 고양이! 고양이 새끼 될래요 호랑이 새끼 될래요? 어떤 새끼 될래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 예수 믿는 사람 같이 "주여, 나를 구해 주소서" 하지 말고 "아, 가인이여, 나를 구해 줍소서" 그래야 된다구요. 그게 올바른 신앙길입니다. 알겠어요?   

 

가인을 구하는 방법은 무엇이냐? 3대 십자가를, 3시대의 핍박을 받는 자리에 서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딸 셋을 희생시켜 가지고 한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가인을 복귀하기 위해서 세 아들을 희생시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가인 아들딸을 사랑하지 못하고는 자기의 아들딸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중심된 책임자인 아벨의 운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3. 제물의 길이다.

- 불평이 있어서는 안 된다.

 

▣ 1973.3.4(일) 벨베디아. 아벨의 길

065-310 여러분은 아벨 하게 되면 복귀 노정에 있어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중심인물이라는 것을 배워 알고 있을 것입니다. 아벨은 누구를 대신했느냐 하면 아담을 대신했습니다. 아벨의 길은 아벨 혼자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먼저 갖추어야 할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을 갖춘 조건 위에 제물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제물이라는 것은 자기의 믿음을 대신하는 동시에 자기의 인격과 생명을 대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일 귀한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귀섭리 노정에 있어서는 반드시 제물을 통해서 가야 됩니다. 그래서 제물을 앞에 놓고 가는 놀음을 해 나왔습니다.

 

제물이라 하면 그건 내 신앙의 대신이요 내 생명의 대신이요 내 전체를 대신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먼저 제물을 넘어서 가야 되는 것이 아벨이 가야 할 길이라는 거예요.

 

제물을 바치는 데 있어서 제물과 나를 그냥 이렇게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는 것은 몸과 마음이 갈라져 있기 때문에 먼저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야 제물과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되지 못하고서는 아무리 큰 제물을 바쳤다 하더라도 그 제물과 하나될 수 없습니다.

 

제물이라는 것은 나를 대신하는 동시에 하늘땅을 대표하기 때문에 결국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등장하는 거라구요.

 

제물을 놓고 바른쪽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왼쪽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라구요. 여러분에게는 하나님만이 필요로 하지 사탄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또 제물도 하나님만이 가져야지 사탄이 가지면 안 됩니다.

 

그러면 제물은 무엇이냐? 만물입니다. 만물을 갖다 놓는 거예요. 그러면 왜 만물 앞에 나 즉 인간을 갖다 놓느냐? 그것은 종적으로 하나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본래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더라면 만물을 지배할 수 있었을 텐데 그것이 거꿀잡이가 됐다는 겁니다. 인간이 만물 앞에 머리를 숙이고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써 떨어졌기 때문에 거꿀잡이가 됐다는 것입니다.

 

* 사람은 만물보다 악하다고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런 놀음을 해야 되느냐? 타락하지 않았을 때의 그 원칙적인 기준에 갖다 맞추기 위해서입니다. 타락해서 어긋나게 되었으니 복귀해서 갖다가 일치시키자는 거라구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 인간이 제물을 중심 삼고 하나돼야 하는 것입니다.

 

자, 제물의 좌우에도 내 좌우에도 사탄이가 있습니다. 내 좌우에 사탄이 붙어 있는데 제물을 드릴 수 있어요? 없으니까 몸과 마음이 하나돼야 된다구요. 몸과 마음이 하나되려면···. 몸은 사탄이가 취했고 마음은 하나님이 취했기 때문에 몸은 취한 사탄을 제거시키기 위해선 마음을 중심 삼고 하나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아담 형이고 몸은 천사장 형이기 때문에 천사장이 아담한테 굴복해야 됩니다. 즉 마음 앞에 몸이 굴복한 형을 이룸으로 말미암아 본연의 형태를 갖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그러면 사탄은 떨어져 나가고 하나님이 주관하기 때문에 마음과 몸이 하나될 수 있습니다. 타락하지 않은 아담 앞에 지배받는 천사장 자리에 있기 때문에, 복귀된 자리에 있기 때문에 사탄이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065-312 가인이 없으면 실체기대를 복귀할 수 없다구요. 그 가인을 복귀하여야만 실체기대가 이루어지는 거라구요. 왜냐하면 아담이 타락할 때에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려니 제물이 필요하고, 그다음에 실체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것을 찾으려니 가인이 필요한 거라구요. 그렇게 된다는 거예요.

 

065-314 아담이 믿음을 잃어버렸고 실체를 잃어버렸으니 믿음의 기대를 찾고 실체기대를 확보한 다음에야 사랑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담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이냐 하면, 먼저는 믿음을 잃어버렸고 그다음에는 실체를 잃어버렸고 그다음에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세 가지입니다. 이것을 찾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은 메시아가 와야만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메시아로 말미암아 사랑의 길이 열리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서는 몸이나 물건이나 전부 다 투쟁하는 것입니다,

 

* 그렇기 때문에 "복귀" 하게 되면 언제나 "믿음 복귀, 실체 복귀, 사랑복귀" 라는 관념을 딱 집어 넣으라구요. 믿음을 복귀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되지 않고는 사탄을 분립시킬 수 없습니다.

 

065-314 메시아는 혼자서는 절대로 못 만납니다. 가인 아벨이 하나 돼야 만날 수 있어요. 타락했기 때문에 둘이 된 거예요. 타락하지 않은 사람에게 가인 아벨 있었어요? 아담만이라구요. 아벨만 이라구요. 그런데 가인 아벨, 둘이 됐으니까 이 둘이 하나 안 되어 가지고는 본래의 아담 자리에 못 들어가는 것은 절대적이라구요.

 

천국은 누가 보내 주느냐? 아벨이 보내 주느냐, 가인이 보내 주느냐? 가인은 아벨이 들어가기 전에는 못 갑니다. 그 말은 뭐냐? 천국은 누가 보내 주느냐? 사탄이 놓아 주지 않으면 못 간다구요. 사탄이 놔 주어야 갈 수 있느니 사탄이 보내 주는 것이라구요.

 

065-322 불평하려면 선생님 이상 알아 가지고 불평해라. 그러면 통한다는 거예요. 선생님 이상 공을 세워서 선생님 앞에 설 수 있는 실력을 가졌다면 불평하라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불평하지 말고 따라오라구요. 갈 길이 바빠요. 따라가기도 바쁘다구요.

 

* 세계적인 복귀 노정을 가는데 타락은 불평의 인연을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에 불평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게 되는 거라구요. 알겠어요? 아벨이 가는 길, 아벨을 따라가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여러분이 가야 되겠습니다.

 

불평하게 되면 가인이 아벨을 만날 수 없는 것이고 또 가인이 아벨을 죽이면 하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불평해서는 안 되는 거라구요.

 

065-325 선생님은 지금까지 불평이라는 것을 배우지 않았다구요. 불평하려면 죽어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불평하기 전에 죽자 이거예요. 죽을 길을 통해서 뜻길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불평할 때가 있게 되면 죽어 버린다고 생각한 거예요. 불평하게 되면 하늘의 배반자가 되기 때문에 꿈에도 생각지 않았다구요.

 

제물의 길은 불평을 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런 불평을 소지할 때는 역사에 없는 후회를 하는 거라구요. 그래서 그러한 그림자도 남기고 싶지 않은 자리에서 지금까지 생활을 해 나온 거라구요. 선생님이 그런데 여러분들은?

 

* 기동대원들 가운데 불평하는 사람은 전도해도 안 된다구요. 하늘이 협조를 안 해요. 그것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고립되는 거예요. 맨 처음에는 암만 기반을 닦았더라도 쏙닥쏙닥하게 되면 나중에는 고립되어 가지고 사라져 간다는 겁니다.

 

065-327 아벨이 가는 길은 불평이 없습니다. 불만이 없습니다. 알겠어요?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진리의 말씀이라구요. 내가 그렇게 살다 보니 틀림없더라구요. 여러분에게 나라를 상속해 주려니 거기에 조그만 조건이라도 세우게 하려고 이 놀음하는 거라구요.

 

2차 대전 이후 미국을 두고 보면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은 전승 장병이라고 해서 그 나라가 추앙하고 있습니다. 일선에 나가기 위해 집을 떠나 전선에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고 떠나자마자 전쟁이 끝났으면 그 군인도 전승 장병으로 추앙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다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러분한테 참전의 가치를 부여하려고 하는 거라구요

 

* 선생님은 어떠한 사람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구요. 선생님은 성격이 굉장히 급한 사람입니다. 한마디 욕을 먹더라도 참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누구한테 한 대 맞게 되면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또 누구한테도 지기 싫어하는 사람이라구요. 내가 극단적인 특성은 다 가진 사람입니다. 내가 그런 기질을 갖고 있고 그런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 없어요. 무슨 운동을 해도 내가 이기고 만다는 그런 성격을 갖고 있다구요. 내가 머리도 나쁘지 않다구요.

 

그런 내게 비참한 경지, 내 성격으로는 "이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그런 경지가 몇십 번 몇백 번 몇만 번 있었겠는가 생각해 보라구요. 창피하다면 그 이상 창피할 수 없는 경지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구요. 그러나 이것을 다 극복해 나온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선생님과 같이 불같은 성격이 있을 터인데 성격대로 한번 하게 되면 세계를 전부 다 쓸어 버릴 수 있는 입장에 있어도 하나님은 그것을 꿋꿋히 참으셨기 때문에 세상이 남아진 게 아니냐. 사탄 대해 복수하려고 해도 그 이상 하나님이 참으신 것을 알고 회개하고 나왔기 때문에 오늘의 통일교회가 있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된다구요.

 

그러한 어려움과 그러한 억욱함과 분함을 참으면서 나오신 하나님의 뜻을, 이 복귀의 뜻을 내가 어찌 더럽힐 수 있으며 어찌 흠을 낼 수 있겠느냐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이 놀음을 하고 있는 거라구요.

 

그런 자리에서 참고 그런 자리에서 극복하고 그런 자리에서 용서해 주고 그런 자리에서 사랑하자 할 수 있는 길을 오늘날 우리 통일교회가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