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 "지음 받은 우리" 우리가 피조물이라면 이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있어야 할 것이니 그를 일컬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다.
-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 중에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1)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 이 땅 위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슬픈 일 중에서도 무엇이 제일 슬픈 일이냐?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다.
2) 그다음 하나님의 소망을 찾아야 한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하라.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였는데 인간이 이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 1960.5.1(일) 행복한 무리들. 전본부교회.
009-128 땅 위에서 말하는 행복한 자는 보통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자를 가리킵니다. 또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기쁨을 가진 자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하늘땅의 어떠한 존재나 피조물 앞에 자랑하고 싶은 그 무엇을 가진 자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인간들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여기에 찾아온 것도 지금 살고 있는 이상의 행복을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생활적인 행복을 넘어서 마음과 심정의 세계와 인연을 맺기 위해서 찾아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오늘보다도 내일, 내일보다도 모레, 올해보다도 내년, 한 생애를 넘어 영원히 행복하기를 고대하는 것이 이 땅에 태어나서 살다가 가는 우리 인간의 욕구입니다.
009-129 하나님이 계시다 할진대 그 하나님은 피조물이 어떠하길 바라셨을 것인고? 하나님이 계신 곳에 그 지음 받은 것들도 같이 있기를 바라시고 하나님이 기뻐하면 그 지음 받은 것도 역시 같이 행복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모든 피조물을 지었다고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인연인지 알지 못하나 이 땅 위에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우리를 종교의 명사를 빌어 말하면 "지음 받은 우리"라고 간단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피조물이라면 이를 창조하신 절대자가 있어야 할 것이니 그를 일컬어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과 그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기에 오늘날의 인간들이 이렇게 되어 있는가? 하나님이 불완전하게 우리를 지으신 것인가 아니면 지으신 하나님이 불완전하신 것인가?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곡절이 현 인간들에게 내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고 지선한 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고 지선이라는 말을 하려면 거기에 우리 생애의 이상적인 모든 요소가 다 내포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흘러나오는지 정 의의 감정을 충만히 충당시킬 수 있는 내용이 갖추어져 있어야 된다고 우리는 단정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절대적인 주체요 절대 목적의 중심으로 계실 수 있고 나아가서는 실체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인간이 지고 지선의 존재, 최고의 절대의 기준에 계신 존재와 인연 되지 못하는 어떤 조건이 개재되었는데 그 조건을 악이라고 하고, 그 조건이 생긴 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 중에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아무리 미물인 세균 하나라도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생을 영위하게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모의 혈육을 받아 태어난 그 시간부터 자신은 모른다 할지라도 나를 살려 주고 나를 가르쳐 온 대 천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재료로서 존재해 나왔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인식하여야 되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대우주의 목적을 세우시고 피조만물을 지으셨을 텐데, 지음 받은 인간이 그 목적을 달성한 뒤에도 슬픔이 다시 연속된다면 나는 그런 창조 싫습니다. 고통이 개재되는 창조목적 달성이라면 모두 싫어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 목적이 이루어진 후에 비록 슬픈 일과 고통스러운 일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슬픔과 고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기쁨을 자극할 수 있는 재료가 되고 생명을 형성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는 될 수 있을지언정 생명을 지배하고 행복한 기쁨을 유린하는 요소는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009-131 우리들은 다 잃어버렸습니다. 천지간에 자기 자신을 세울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행복을 찾아 나아가는 우리의 소망의 끝은 무엇이냐?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선 같은 것은 있으되 최고의 선은 없습니다. 사랑 같은 것은 있으되 최고의 사랑은 없습니다. 참 같은 것은 있으되 최고의 참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최고의 참을 가지고 있다면 어느 곳 어떤 환경에 머물더라도 우리를 환영하고 우리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을 보게 될 때 내가 선할 수 있는 요소는 갖고 있으되 선의 본체가 되어 있지 못하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요소는 갖고 있으되 진정으로 행복한 나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중심 삼고 볼 때 다 잃어버렸느냐? 영원한 최고의 행복을 중심 삼고 볼 때 다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보십시오. 창조주 즉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응당히 알아야 할 피조물들이 모르고 있습니다. 창조주의 지 정 의를 부여받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그 창조주와 정을 통하고 뜻을 통하고 마음을 통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무엇을 중심 삼고 인연 되어 있습니까? 이 고깃덩이? 아닙니다. 만일에 이 고깃덩이가 주체이신 하나님과 인연 되어 있다면 이 고깃덩이는 만족스러워해야 할 것인데 만족스러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도 만족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정도 만족해하지 않습니다. 다 잃어버렸습니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알맹이를 다 잃어버리고 빈 껍데기를 갖고 허덕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채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애써 온 사람들이 도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요 성현 현철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무엇을 잃어버렸느뇨? 맨 처음에 하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이 우리가 잃어버린 것 중에서 가장 큰 사건입니다. 이 천지를 찾아오신 주인이 있는데 인간이 그 주인을 잃어버렸다면 인간은 그 시간부터 그 주인 앞에 역적이 됩니다. 인간은 심정 깊은 인연이 될 수 있는 본연의 주인을 모셔야 할 텐데 그분을 잃어버렸습니다.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모시지 못하는 것은 천륜 앞에 용납받지 못한 역적이 되는 행위입니다.
* 이 땅 위에 슬픈 일이 있다 할진대 슬픈 일 중에서도 무엇이 제일 슬픈 일이냐?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또 무엇이 제일 괴로운 일이냐?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매를 맞고 천대를 받는 것이 제일 괴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립고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그분을 마음대로 못 만나는 것이 괴로움인 것입니다. 슬픔도 그것이요 고통도 그것이요 억울함도 그것입니다. 만날 수 있는 인연 가운데 있는데 못 만나는 것 이상 더 원통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생애 노정에서 체험했을 것입니다.
이제까지 인간들이 "슬펐다, 고통을 받았다, 억울한 역사 노정을 걸어왔다"라고 하지만 그것들은 인간에게 슬픔을 주고 고통을 주고 억울함을 맛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본체를 잃어버리고 주인을 잃어버린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상속받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고통과 슬픔의 유래는 어디에 있는가? 역사적인 유래 말고 원리적인 유래는 어디 있는고?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잃어버린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어떻게 해야 되느뇨? 잃어버린 것을 찾아야 됩니다.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찾아야 됩니다.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그 자리가 있다면 여러분은 모든 것을 희생하고도 그곳을 향해 달음질쳐 가야 됩니다.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또 무엇을 잃어버렸느뇨? 하나님의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지으신 후 거기에 만물의 主宰로 아담 해와를 세워 놓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 땅에 충만하라. 이 모든 만물을 주관하라"고 축복하였는데 인간이 이 축복을 성취하는 것이 하나님의 소망이었습니다. 인간이 이 축복을 성취하는 날에는 하나님은 아담 해와의 아버지가 되고 아담 해와는 그의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딸, 이것은 架空的인 명사가 아닙니다. 이것이 가공적인 명사라면 기독교의 모든 것은 거짓말이 됩니다.
009-104 하나님께서는 어린 아담 해와를 지어 놓으시고 그들이 장성하여 온 천지만물을 주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말로 주관하기를 바라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심정을 중심한 사랑으로서 주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이 해와를 자기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며 사랑하는 심정을 가지고 해와를 대하기를 바라셨습니다.
또 해와가 아담을 오빠로만 여기는 철 모르는 누이로서 아담을 섬기는 것을 바라시지 않고 이는 신랑 중의 신랑이요 아버지를 대신한 몸 중의 몸이라고 하며 아담을 심정적으로 모시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소망의 한 때를 바라시던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그런 소망의 자리에서 "아담의 나의 영원한 남편이요 해와는 나의 영원한 신부입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임을 알았나이다" 할 수 있는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이룬 아버지 어머니로서 이 대자연을 주관하게 하기 위하여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009-136 우리는 다 잃어버린 인생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대주재이신 하나님 즉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하고 여러분을 낳아 준 아버지하고 이 두 아버지는 다릅니다.
무엇이 다르냐? 나를 지으신 아버지는 영원한 아버지요 나를 낳아 준 아버지는 생애의 아버지, 땅 위의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잃어버린 동시에 땅 위의 아버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것은 무엇이며 아버지를 잃어버린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를 다 갖고 있는데 저 사람이 무슨 아버지를 잃어버렸다고 큰소리치느냐 하겠지만 보세요.
타락하지 않은 아담 해와는 누구뇨? 인류의 참조상입니다. 참아버지 참어머니입니다. 몸을 쓴 인류의 참부모입니다. 그런데 그 아담 해와가 타락했기 때문에 인류가 사탄의 자손이 된 것입니다.
만일 아담 해와가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가 하나님이 임재할 수 있는 집이 되었다면 오늘날 인간들은 아버지를 가진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009-138 부활이 무엇이뇨? 다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었기 때문에 다시 살아야 하는 거예요. 중생은 무엇이뇨?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는 인류의 아버지요 신랑이며, 성신은 인류의 어머니요 신부입니다.
인간들이 신부의 인연을 받아 가지고 신랑 되신 예수님을 사모하여 예수님 없이는 못 살고 성신 없이는 못 산다고 하게 될 때 예수와 성신이 영적인 면에서 상봉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의 씨가 다시 인간에게 주입되게 되면 중생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통하지 않고 아들딸 낳는 법이 천지의 이치 가운데 있습니까? 없습니다.
009-143 천지간에 제일 귀한 분이 하나님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뇨? 아까 말한 바와 같이 제일 귀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면 이 천지간에 제일 귀한 것은 무엇이뇨? 모든 존재물 전부가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귀한 것을 여러분은 가져 보았습니까? 여러분, 금은보화가 귀해요?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요? 아닙니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이 자기의 생명을 주고라도 갖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니 그분이 바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가치의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아들딸 되는 것은 문제없습니다.
천상천하에 어떤 귀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 지음 받은 상대적인 존재로되 하나님만은 주체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내 것 삼을 수 있다는 이 한 사실,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하나님이 내 것이야, 내 것.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분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아들이 되고 딸이 되고 형제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대하여 독생자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이 땅 위에 수많은 인간이 왔다 갔지만 너만은 내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놓고 볼 때 예수는 최대의 성공자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독생자라는 아들이라는 명분을 받았습니다.
심정을 헤치고 들어가면 그는 참다운 효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과거부터 어떻게 나오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고, 오늘의 자기를 대하여 어떠한 심정을 갖고 계신 아버지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 아버지가 자기를 세워 어떠한 축복을 해 주시고자 하는가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구주이십니다. 무슨 구주?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 주는 구주, 참부모를 찾아 주는 구주, 참부부를 찾아 주는 구주, 참자녀를 찾아 주는 구주입니다.
009-147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천국은 굶고 앉아 있어도 좋고 뺨을 맞아도 좋은 곳입니다. "너와 나와의 인연은 누구도 끊을 수 없어. 네가 가면 나도 가고, 내가 오면 네가 오는 곳" 그런 인연에서 서로가 같이 있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 형제를 여러분, 가져 봤어요?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그런 내용과 재료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영계에 가 보니까 그래요.
한번 주님을 따라가 보면 여러분들도 "나 땅에 안 가겠습니다. 아이고, 지긋지긋해요" 라고 할 것입니다. 부모고 무엇이고 다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009-148 제일 귀한 것이 무엇이뇨? 만우주의 대주재이시며 주인공이신 하나님의 심정적인 아들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있겠어요? 그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은 아들이 있다 할진대 이 천지가 그의 것이 됩니다.
3) 천운의 방향과 일치되어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 1979.10.28(일) 천운과 운명. 본부교회.
105-302 여러분은 전부 다 행복하고 싶지요? 또 대한민국이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지요? 그 대한민국이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행복하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대한민국 자체가 그래야 돼요. 천운에 일치된 사상적 방향을 가지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행복하게 만들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하느냐? 물론 여기에 있어서 산업 부흥이라든가 여러 가지 분야의 발전을 도모하게끔 정책적인 방향도 세워야 되겠지만 우선 천운의 방향과 일치돼 가지고 이 세계의 운세에 순응해야 됩니다.
4) 평범한 입장에서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노정을 가야 된다.
▣ 1992.2.10(월) 복귀 이상권의 완성. 국제연수원.
- 참부모님 탄신일 축하 일본 회원. 일본어.
227-033 인간이 행복해지려면 가장 평범한 입장에서 본 궤도를 따라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노정을 가야 행복한 남자, 행복한 여자가 되는 거예요. 그 이외의 길은 없습니다.
2. 뚜렷한 목적.
-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보람 있어야 된다.
- 자기의 생활이 가치 있는 생활이어야 됩니다.
- "나는 이렇게 간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목적한 바가 뚜렷해야 한다.
- 미래도 보증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가야 한다.
▣1971.2.18(목) 우리의 갈 길. 동대문교회.
- 서울 9개 지구 야간 순회.
041-318 사람은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가 확실해야 됩니다. 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보람 있어야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의 생활이 가치 있는 생활이어야 됩니다.
아무리 가치 있는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생활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원치 않는 생활인 것입니다. 지내 놓고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그것이 나에게 자랑이 되고 그렇게 살아온 나 자신을 스스로 장하게 생각하면서 내일도 보람 있는 생활이 되기를 추구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 것입니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오늘 살고 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 행복한 자리는 과거가 입증해 줄 수 있어야 됩니다.
* 누구나 소망하는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간다,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하면서 목적한 바가 뚜렷하고 그 목적에 대한 관념이 철두철미해 가지고 오늘의 생활이 내일을 향하여 가는 길에 있어서 보람 있는 터전이 되고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그것이 더욱더 자기에게 행복을 확대시키는 자극적인 것이 된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우리 인간은 혼자 살지 않기 때문에 나의 행복은 곧 나라의 행복과 연결되어야 하고 나의 행복은 오늘날 사회와 연결되어야 함과 동시에 과거도 이 행복에 대해 보증할 수 있고 미래도 보증할 수 있는 행복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순간에 머무는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을 추구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는 자신이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일의 행복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일 때에는 오히려 불행한 사람보다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반면 현재의 내가 아무리 행복하다 하더라도 갈 곳을 모르고 머물 곳을 모르는 자리에서 행복하다고 한다면 그 행복은 나와 아무 상관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그런 행복은 나와 더불어 같이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분리되어 흘러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3. 전체가 자기를 위해 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 자기를 중심 삼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맞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
▣ 1971.2.14(일) 전후방. 전본부교회.
041-115 우리가 행복한 사람을 말하게 될 때 혼자만 구원받겠다고 하고 나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사람, 그 사람을 우리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가정 전체가 자기를 위해 줄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가지고 그 위에서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자기를 중심 삼고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을 맞고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 1959.6.14(일) 풀어놓고 풀어놓아야 할 하나님의 뜻. 전본부교회.
006-305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신을 인정하고 신의 움직임에 따라 양심을 움직이고 이 양심을 기반으로 주의와 사상을 제창해야 합니다.
평화와 행복, 사랑을 앞세워 무조건 봉사하고 무조건 희생하는 본질적인 요소를 지닌 이러한 주의와 사상을 갖지 않고는, 양심을 통해 선을 자동적으로 감촉하고 자동적으로 체휼하지 않고는 우리 인간 세계에서 행복의 조건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아는 바입니다.
4. 행복한 사람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 1961.10.14() 부모의 심정으로 끝까지 주라. 한국.
- 흥남 감옥 출옥 기념일에 하신 말씀.
011-234 세계 인류는 모두가 불행하다. 인간처럼 불쌍한 존재는 없다. 악과 싸워 승리하지 않으면 행복은 있을 수 없다. 혹 행복이 오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공의를 위해 싸우고 하나님 대신 주어야 한다. 도의 길은 주는 길이다.
가정부터 세계 하늘 끝까지 주어 가지고 돌아와야 한다. 도인들은 남을 위해 자기 자식들을 원수의 종살이를 시키기도 한다. 심정을 걸고 창조물 전체에게 주어서 그들과 인연 맺어야 한다.
열을 주고 백을 거두려는 사람은 망한다. 그런 사람은 심정을 중심한 세계에 못 들어간다. 하늘 세계는 주는 세계이다.
물질이 문제가 아니다. 적선은 곧 주는 것이다. 줄 때에는 내 마음에 물질을 플러스해서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주는 것은 누구도 빼앗지 못한다.
* 우리는 주시려 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몰라서는 안 된다. 주기 위하여 6천 년간 싸워 오신 하나님의 심정을 알아야 한다.
행복한 사람은 주고 싶을 때 줄 수 있고 받고 싶을 때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불행한 사람은 줄래야 줄 수 없고 받으래야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하나님은 불행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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