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하라 돼라

부디 지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죽지만 말고 살아남으라 - 8가지.

true2020 2017. 7. 2. 09:53

1. 부디 지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죽지만 말고 살아남으라. 이제는 죽어도 승리요, 살아도 승리다.

 

▣ 1964.6.12(일)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하라. 대구교회.

014-090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머리를 못 들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라.

 

이 민족의 갈 길을 여러분이 개척하라. 사상은 선생님의 사상으로 몸은 선생님의 몸으로써 삼천만을 위해 눈물 흘리고 길을 닦자. 그것을 이루기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고 고통의 자리에서 기쁨을 느끼는 자가 되자는 것이 우리의 이념이다.

 

책임을 못하면 다리를 뻗지 못하고 자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책임을 못하고 집에 들어서게 될 때에는 추녀 (네모지고 끝이 번쩍 들린, 처마의 네 귀에 있는 큰 서까래. 또는 그 부분의 처마.) 끝을 보기가 민망스러워 얼굴을 못 드는 사람이라야 참다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가야 할 길과 싸워야 할 책임이 있다.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고 충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식구가 보고 싶어 달려갈 수 있는 여러분이 돼라.

 

하나님을 점령하는 방법은 충성하는 도리밖에 없고 부모를 점령하는 방법은 효성하는 도리밖에 없다. 그러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충효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

 

이제는 자세를 가다듬어 활동해야 때가 왔다. 부디 지치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죽지만 말고 살아남으라. 이제는 죽어도 승리요, 살아도 승리다.

 

2. 개인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가정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종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된다.

 

▣ 1964.7.17(금) 우리의 사명은 크다. 전본부교회.

- 서울지구 합동 속회.

 

014-114 오늘날 하나님은 지상에 대해 부르짖고 있나니 우리가 가야 할 최후의 무대는 어떠한 무대냐? 하늘땅을 대신한 싸움터입니다.

 

그러면 이 싸움터에서 승리할 수 있는 精兵(날쌔고 용맹한 군사)은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이 민족, 이 국가가 문제가 아닙니다. 개인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가정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가정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종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종족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민족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민족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국가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되고 국가적인 싸움에서 지치지 않고 세계적인 싸움에 가담해야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귀노정입니다.

 

그러면 싸우는 데는 무엇이 필요한가? 군인이 필요합니다. 정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전쟁을 하려고 하시는가? 이 정병을 세워서 일시에 개인적인 승리를 결정짓고 가정 종족 민족 국가 세계적인 승리를 결정지으시려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후의 전쟁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을 결정짓는 전쟁입니다.  

 

3. 선생님이 죽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합니다.


▣ 1968.11.24(일) 하늘나라의 종손이 되자. 전본부교회.

021-271 선생님은 성격이 아주 급합니다. 내가 하겠다고 하는데 앞에서 걸리적거리는 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후닥닥 해 버립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신 차리고 따라와야 합니다. 밤을 새더라도, 먹지 않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치우고 맙니다. 

 

그렇게 해서 방해물이 떨어져 나가든가 따라올 가망성이 없을 때 발을 펴고 쉬면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 그런 정신으로 일해야 합니다.

 

021-273 지금까지 선생님이 21년 동안 참은 것만 해도 기적 같은 일입니다. 선생님 성격에 21년 동안 틀어 박혀서 콧대를 땅에 박고 굶으며 참았다는 것이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너무 잘 압니다. 선생님이 자칫 잘못해서 하늘에 피해를 입히는 날에는 수습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입을 다물고 참다가 어쩔 수 없이 잘못하게 되면 그때는 하나님께서 수습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자리에서도 참고 매를 맞고 쫓기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참으면 망하지 않습니다.   

 

* 탕감법에 의하면 반대의 경로를 통해서 올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생을 하더라도 지치지 말고 죽지 말아야 합니다. 선생님이 죽기 전에는 절대로 죽지 말아야 합니다.

 

4. 생명을 걸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목적하는 것에 미쳐서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상적 인간입니다.  

 

1988.1.3(일) 이상적 조국을 향하여. 본부교회.   

172-022 결과적으로 인간이 무엇을 그려 가다가 세계의 종말에는 비탄과 탄식과 비애와 절망에 신음하다 최후에는 자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원인적 존재 세계를 발견하게 될 때는 그가 이상하는 것이 확실히 이렇다 하는 것을 알게 될 때에는 그 과정의 어려운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뭐 핍박이든 감옥 가는 것, 죽고 사는 게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그게 위대한 것입니다.   

 

생명을 걸고 미쳐서 뛸 수 있는, 일생 동안 뛰면서 지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이 유토피아로 가는 길입니다. 간단한 내용이에요. 뭐예요? 생명을 걸고 죽을 고생을 하면서도 싫어하지 않고 목적하는 것에 미쳐서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이상적 인간입니다.  

 

5. 선생님은 지치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1966.7.31(일) 통일교회는 탕감 교회다. 전본부교회.

- 서울 제1, 2, 3 교회 합동예배.

 

016-306 지금의 때는 급박한 때입니다. 한국보다도 세계를 일시에 복귀하고 싶은 것이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복귀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많은 사람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희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려야 됩니다.

 

그러면 누구를 통해서 할 것이냐? 여러분의 조상을 통해서 할 것이냐, 후손을 통해서 할 것이냐? 바로 여기에 있는 여러분을 통해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5, 6년쯤 걸어와 보고는 다 지쳐 자빠졌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지치지 않았습니다.  

 

지치는 법을 선생님은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누가 가르쳐 주었느냐?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지치는 방법을 스스로 유도해 왔고 또한 사탄의 공략전에 걸려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냥 사정없이 고생의 자리로 내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6. 여러분들이 부르는 아버지와 내가 부르는 아버지와는 심정적인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 1966.10.14(금) 남양주군 광릉.  뜻을 이루기 위한 책임을 다하자.

- 서울 제1, 2, 3교회 식구들. 16주년 기념 이북 출감일.

 

016-343 선생님은 20년이나 이 길을 걸어왔으나 지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분들이 부르는 아버지와 내가 부르는 아버지와는 심정적인 인연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분하고 원통한 자리, 감옥까지 수고의 길을 더듬어 찾아오신 아버지와의 인연이 맺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 환경을 피하지 말고 그 환경을 소화해야 합니다.

 

7. 우리는 죽어서는 안 된다.

 

▣ 1970.2.11(수) 전본부교회. 우리들에게 맡겨진 사명.

- 참부모님탄신일 기념예배

 

028-290 그러면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위하여 죽은 것을 몇 번이나 결심해 보았습니까? 여러분이 뜻길 앞에 이 세계를 위한 제물이 되겠다고 얼마나 결의해 보았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세워 자랑할 수 있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어떠한 기반을 닦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높은 명망을 남겼다고 해도 그것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못 됩니다. 단지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원한의 터전 위에서 어느 정도의 대가를 치르어 그 원한의 분량을 감소시켰느냐 하는 그 양이 하나님이 자랑할 수 있는 동기요 재료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절대적인 자랑의 조건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아 있는 민족해방을 위하여 승리적 충의 전선을 결정해야 합니다. 1970년도의 연두에 이 날을 맞아 우리들이 모여 마음을 아버지 앞에 향하고 하나님 앞에 자세를 갖추고 옷깃을 여미면서 내 자신은 아버지 앞에 바쳐진 몸인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하고 결의해야 되겠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바쳐진 것이 아니라 불행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한을 감소시키기 위한 탕감의 제물로서 바쳐진 몸인 것을 여러분은 명심해야 되겠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스승이 걸어온 길이 그러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아직까지 원한의 근거로 남아 있는 세계적인 한입니다. 그것을 유업으로 주어야 할 입장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축하하는 이 날을 맞이하여 나는 무한한 서글픔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서러움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딸이 되는 우리들로서는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길인 것을 알고 감수할 줄 아는 아들딸이 되어야만 되겠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민족의 한을 책임질 수 있는 하나의 상대를 추구해 나왔습니다. 하나의 친구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제자를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의 아들딸을 찾아 나왔습니다.

 

이 아침을 맞이하면서 심정의 절대적인 자리에 있는 그 하나를 찾지 못한 것을 생각하게 될 때 내 서러움보다도 6천 년 동안 수고하시며 그럴 수 있는 아들을 찾아 나오신 하나님 앞에 나도 미급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는 서러움이 더욱 큽니다.

 

여러분,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죽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는 가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고 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들은 살아야 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을 남기면서 살아서는 안 되겠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가든지 하나님의 한을 취하면서 죽고 살고 가는 무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이것이 이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하시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임을 여러분의 마음속에 명심하면서 여기에 서 있는 스승을 생각하는 것이 이 날을 축하하는 자로서의 가치를 자각하고 그 가치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알아야만 되겠습니다.

 

8. 끝에서라도 따라오라.

 

▣ 1971.1.10(일) 강릉교회. 근본 복귀.

039-129 나에게는 선생님도 없습니다. 나 외에는 선생님이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내가 선생님이 된 것도 나 자신이 연구해서 된 것입니다. 누구에게 배워서 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요?

 

이 모든 것을 하나님이 가르쳐 주어서 할 수 있었다면 벌써 6천 년 전에 다 했다는 것입니다. 오늘 통일교회 문 선생을 내세워 가지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다 들춰 가지고 "이렇지요? " 하니까, 하나님도 대답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살림살이도 내가 마련해 주는 것입니다.

 

* 선생님은 알고 보면, 20세기의 수수께끼의 사나이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무리 연구해도 모릅니다.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선생님이 그런 뭐를 갖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알아요, 몰라요? (압니다.) 알기는 뭘 알아요? 모두들 새까맣게 모르고 있습니다. 기가 막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라리 말을 하지 않고 이렇게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선생님이 알려 줄 때가 불원한 장래에 오게 되니까 여러분은 낙오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치지 말고 죽지 말고 남아져야 되겠습니다. 끝에서라도 따라오라는 것입니다.

 

신세를 지우거나 복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恨만 지우지 말고 그저 구경 삼아서라도 부지런히 따라만 오라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이제는 자유로운 우리의 세계가 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