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극복. 1971.5.23(일) 전본부교회.

true2020 2016. 12. 1. 12:37

▣ 1971.5.23(일) 전본부교회. 인내와 극복.

 

▶ 행복을 찾아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져오고자 하는 그 행복의 크기만큼의 내적인 희생의 대가 혹은 참고 견디는 어떤 제물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044-217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행복을 찾아 나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불행한 길을 찾아 나가는 데는 어떠한 주의나 특별한 교훈이 필요 없습니다. 불행한 길은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불행을 제거하고 행복으로 가기 위해서는 가져오고자 하는 그 행복의 크기만큼의 내적인 희생의 대가 혹은 참고 견디는 어떤 제물적인 조건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행복의 길을 갈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나아지기를 바라게 될 때 자연히 나아지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어제보다도 오늘이 낫기 위해서는 어제보다도 오늘에 있어 보다 큰 노력, 보다 큰 희생, 보다 큰 십자가의 노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오늘에 있어 어제보다 나은 행복의 여건을 가져올 수 없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 있어서도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가정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어떤 가정이 불행한 자리에서 행복한 자리로 나가기 위해서는 그 가정을 책임진 아버지면 아버지 혼자 노력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아버지 한 사람이 노력하는 것보다도 어머니와 자녀까지 그 가정 전체가 일체가 되어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행복의 요건과 행복의 내용을 보다 더 빠른 시일 내에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 한 가정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한 나라도 그러합니다. 대한민국이면 대한민국이 소망의 나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국민 전체가 현재의 불행한 입장을 극복하기 위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타락된 세계를 소화하려면 사탄을 소화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044-235 타락된 개인을 소화하고 타락된 가정을 소화하고 타락된 종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민족을 소화하고 타락된 국가를 소화하고 타락된 세계를 소화해야 됩니다.

 

타락된 세계를 소화하려면 사탄을 소화해야 됩니다. 사탄을 굴복시켜야 합니다. 사탄을 해방시키지 않고는 세계가 복귀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하나님을 해방시켜야 됩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해방해야 됩니다.

 

그러니 주체가 누구냐? 하늘이 아니라 땅입니다.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라구요. 나. 내가 걸려 있지 하나님이 걸려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걸려 있기 때문에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해원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골수에서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제일 가까운 사람이 참의 길을 가는 데에 동조할 수 없는 운명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걸 알아야 돼요. 동조하면 좋겠지만 동조하면 안 됩니다.

 

* 십 년 전의 결심했던 내용이 있다면 십 년 후에는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모체로 해서 십 년 동안의 수많은 결심들을 전부 거기에 합해 가지고 환경의 내용을 제거시킬 수 있는 그런 내용으로 남겨야 됩니다. 십 년을 믿었으면 십 년 믿은 만큼 내용이 더 가중되고 탄탄해져야 됩니다. 문제가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됩니다.

 

굴복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길을 가 가지고 무엇이 남느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분풀이를 다 해 가지고 그 환경이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분풀이를 다 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을 중심 삼고 분풀이를 다 하면 그 친척이 달려드는 거라구요. 분풀이를 했다가는 더 큰 원수가 나오는 것입니다. 종족을 중심 삼고 분풀이를 했다가는 민족이 달려드는 것입니다.

 

있으면서도 없는 듯이 있게 될 때 내적으로는 크게 되는 것입니다.

 

민족을 중심 삼고 분풀이를 하면 국가가 달려드는 것입니다. 싸우게 되면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국가를 중심 삼고 싸우게 될 때는 세계가 동원됩니다. 더 큰 원수가 동원되는 것입니다.

 

"왼 뺨을 치거든 바른 뺨을 돌려 대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줘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참 지혜로운 가르침입니다. "왼 뺨을 치거든 바른 뺨을 돌려 대라,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라,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줘라." 그 작전이 참 멋진 작전입니다

 

* 원수를 굴복시키는 데는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힘으로 대결해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진 나라는 언젠가는 이긴 나라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희랍이 로마를 지배했지만 나중엔 로마가 희랍을 지배했습니다. 영국도 보게 되면 미국을 지배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그 반대적인 입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힘을 가지고는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 원수를 갚으면 또 원수 갚음을 당하는 것입니다.

 

044-237 이런 관점에서 그 내용을 잘 알고 세계를 바라보았던 예수님은 인간들을 대해 원수를 굴복시키려면 원수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인생관을 제시하고 새로운 심정관을 제시해 가지고 원수를 사랑해라, 원수를 갚을 것이 아니라 원수를 위해 주어라. 그렇게 되면 끝에 가서는 결국 원수가 굴복하는 것이다."라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그 시대의 맞지 않는 가르침 같지만 역사를 초월하여 미래의 세계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는 영원불멸의 내용을 설파한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생각해 보라구요.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 삼고 우리는 이 세계를 뚫고 가야 합니다. 뚫고 가야 하는데 여러분처럼 그렇게 가서는 뚫고 갈 수 없다 이겁니다. 이것을 넘어가려면 어떻게 넘어가야 되느냐? 원수를 굴복시킬 수 있는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가야 합니다. 

 

* 그러니 어차피 타락한 인간들은 일대에 세계를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야 할 길을 못 가는 것입니다. 출발도 역시 일대에 세계를 굴복시키기 위해 출발하는 것입니다.

 

결국은 일대에 세계의 길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돼요? 전체를 부정하고 새로은 의의 길을 제시하고 새로운 사상을 제시해 가지고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일체를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나라도 세계도 부정하라는 것입니다.

 

* 참은 언제나 주체입니다. 세계를 도피해서는 안 됩니다. 불교가 산중에서 수도할 때는 지났습니다. 세계 정면 도상에 나타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때를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바에는 아예 부정하고 출발하는 것이 낫습니다.

 

도피해서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아니면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냐 할 때 부정하고 가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참된 종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모든 것을 갖춘 종교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인내와 극복은 이 세상에서 행복의 길을 찾아가는 하나의 궤도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없이는 안 됩니다. 이것이 싫다는 사람은 못 가는 것입니다. 그 외의 길이 있겠어요? 그 길을 가는 데는 어떻게 가야 되느냐? 뚫고 가야 됩니다. 초월적인 사상을 중심 삼고 뚫고 가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행복의 요건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044-239 결론은 무엇이냐? 인내와 극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체 소모를 위한 인내와 극복이 아니라 자체 보강을 위한 인내와 극복입니다. 참고 견디는 과정을 거치고 나면 행복의 요건은 나와 더불어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 忍耐와 克服이 나를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전진적인 플러스권을 형성하게 하는 것임에 틀림없다고 할 때는 기쁨이 가득차게 될 것입니다. 하나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셋의 기쁨이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악의 세상에서 하나의 가치적인 것을 희생하면 선의 세상에서 찾아지는 가치의 것이 몇 배 이상 크다는 것을 느끼게 될 때는 오늘 이 땅의 어떤 극복하기 어려운 자리도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밥을 굶고 길가에서 잠을 자는 처지에 있더라도 그 자리는 세상의 그 누가 그려 보지 못한 행복을 노래할 수 있는 자리요 하늘땅을 대신하고 온 피조세계를 대신하여 영광을 찬양할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악한 생활권에 살고 있으되 악권과는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통일교단은 보다 높은 차원을 중심 삼고 인내와 극복의 궤도를 달려가야 됩니다.

 

044-244 악한 세상을 뒤집어 박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세상에 끌려가 가지고 뒤집어 박을 수 있어요?  위가 아래로 가고 아래가 위로 가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요? 뒤집어야 됩니다.

 

▶ 참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044-252 여러분은 극복해야 됩니다. 극복해야 되는 거라구요. 참기가 얼마나 힘드느냐? 이거 보라구요. 참을 忍 자는 칼 刀에 마음 心입니다. 그래,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칼날 같은 마음을 쓰라는 거예요 쓰지 말자는 거예요?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극복하라는 것입니다. 참으라는 것입니다.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요. 참고 견뎌야 합니다. 견뎠다 하는 것은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낫게 되었다는 거예요?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극복했다 하는 것도 참는 일이 생기기 전보다 못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확실히 낫다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 터전을 중심 삼고 제2의 인내의 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극복이 옛날보다 못해 가지고는 하늘이 제2의 인내의 도상을 가라고 명령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나를 대해서 시험을 제일 많이 하셨습니다. 문 아무개는 질기다는 거라구요. 질기고 악착같다는 거예요. 내 눈을 보라구요. 내 눈을 보면 흐릿하게 생기지 않았습니다. 악착같습니다. 내가 무엇을 한번 붙드는 날에는 손목이 빠지면 빠졌지 안 놓습니다. 절대 안 놓습니다. 후퇴하는 성격이 아닙니다. 그거 하기 전에는 밤잠을 못 자는 사람입니다.    

 

▶ 인내적인 믿음 극복적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나님을 타고앉는 자리까지입니다. 

 

044-253 여러분, 사탄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사탄이 있는 것 같지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선생님의 말을 들으면 하나님이 있는 것 같지요? 그렇게 믿어 가지고 생명을 내놓을 수 있어요? 내놓을 수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런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행동하는 사람은 지극히 미욱한 사람이 아니면 지극히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것은 왜? 만일 어떤 사람이 막연히 같은 것 같은 것을 사실로 믿고 죽는 자리까지 갔다면 그렇게 내몬 주인이 있다면 그 주인은 그 사람을 영원히 심복 부하로 삼을 것입니다. 

 

결론이 그렇잖아요? 바보 중의 바보 같다 이겁니다. 그렇지만 같은 것 같은데 사실로 믿고 했다 이겁니다. 사실로 믿고 한 그것이 그 누구도 탄복할 수 있는 일이라 할 때 주인은 그 사람은 영원히 심복 부하로 삼으려 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같은 것 같은 것을 믿어라 했는데 그것을 믿고 행동했다 할 때 그리고 그 행동한 것이 하나님보다도 멋지다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영원히 심복 부하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우러러 믿고 모시는 것입니다. 그 믿음의 한계가 어디냐? 인내적인 믿음 극복적인 믿음의 한계가 어디까지냐? 하나님을 타고앉는 자리까지입니다. 

 

하나님을 모시는 것보다도 하나님의 상투 끝에 올라가 춤을 추더라도 하나님이 좋아하며 어서 춤추어라 할 수 있는 자리까지입니다. 그 자리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내용만 뒷받침된다면 믿지 못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탄을 잡기 위해서는 사탄 이상의 수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이 사탄을 잡으려면 사탄 이상의 수법을 써야 합니다. 

 

사탄이 하자고 하면 하나님은 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작전이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아이구 나 손들었어" 해야지 "내가 현재 하나님보다 낫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내 일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 죽기까지 해 보라는 거라구요. 죽어 보자 이겁니다. 죽는 데는 잘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잘 죽어 보자는 것입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죽는 것은 내 일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만일에 하나님께서 살리겠다고 하신 약속을 깨뜨리면 하나님이 배반자가 되는 것입니다. 약속 불이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죽었는데 하나님이 그 약속을 불이행했다면 하나님이 나를 그냥 그대로 처박아 둘 것이냐? 아닙니다. 몇백 배 이상의 다른 것으로 갚아 줘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식입니다. 

 

▶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위대합니다.

 

*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위대합니다. 못 믿을 것을 믿고 행하기 위해 생명을 걸고 나선 사나이가 있다면 그는 위대한 사나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장 죽게 되었는데도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했습니다. 

 

044-256 하나님은 절대적인 하나님이요 창조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탄의 말이라도 하나님의 말로서 말을 믿으면 그것은 사탄을 유인하는 거예요. 끌어올리는 거예요. 

 

사탄은 끝까지 올라가 더 이상 갈 데가 없으면 다시 내려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려오는 길은 해방의 길이기 때문에 하늘의 길을 따라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창조의 하나님은 그것까지 이루어 주는 책임을 지겠다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입니다. 오늘 통일교회가 그런 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출발했다는 것을 여러분도 알아야 합니다. 극복도 타당한 극복이어야 합니다. 

 

*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여러분이 참는 한계가 어딜 것이냐? 극복의 한계가 어디냐? 한계는 끝까지라구요. 죽는 데까지입니다. 목을 내놓는 데까지입니다.   

 

 

044-259 절대복종하면 빨리 가는 것입니다. 가지가 뿌리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느냐? 뿌리가 끄는데 가지가 "아이고, 난 뿌리를 따라가지 않겠다"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가지가 떨어져 나가지 별수 있어요? 이러구저러구 하다가는 떨어져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유 협회장이 훌륭했습니다.

 

▶ 내가 극복해야 할 5%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극복해야 할 5%의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아담 해와도 타락하기 전에 "하나님, 천사장이 이렇게 따 먹으라고 하는데 이것 따먹어도 됩니까?" 하고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은 못 하더라도 "이놈!"하고 화라도 내셨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물어보았나요? 이런 원칙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물어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꿍꿍이 속으로 자기 혼자 하다가 누더기 보따리 쓰고 "아이고, 나 죽는다" 한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다고 하면 누가 공언을 해 주나요? "잘 죽으라지" 자기 갈 길도 바쁘다는 것입니다. 전체의 갈 길이 바쁘다는 거라구요.

 

 

044-262 여러분이 이런 것을 알고 참고 견뎌야 합니다. 참고 견디는 데 있어서 견디는 자리가 참을 일이 생긴 자리보다 낮아져서는 하늘 앞에 서지 못합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끝나고 났을 때 "야, 너 훌륭하구나. 그가 훌륭하구나" 하고 하늘의 동정의 여운이 같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이 그를 세워서 또 다른 새로운 출발과 또 다른 발전의 동기를 가져다주고자 하신다는 것입니다. 알겠어요?

 

여러분이 알아야 될 것은 꺾이게 될 때는 어느 때든지 한 시대밖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 선생님이 남아진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 마이너스되는 극복은 안 했습니다.

- 불평불만을 안 해야 하는 갓입니다.

 

* 통일교회를 중심 삼고 문 선생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 수난의 길을, 생명이 엇갈리는 길을 거쳐왔지만 선생님이 남아진 것은 무엇 때문이냐?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극복을 하는 데도 마이너스되는 극복은 안 했습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불평불만을 안 해야 하는 갓입니다. 불평불만은 사탄의 요소입니다. 아무리 사지에 가더라도, 쇠고랑을 차고 영어의 몸이 되어 옥살이하는 한이 있더라도 불평불만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하면 절대 남아 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까지 선생님이 신앙길을 개척해 나오면서 가졌던 본질적인 생각입니다. 

 

▶ 극복하는 데는 누구를 중심 삼고 하느냐?

-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해야 합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극복하는 데는 누구를 중심 삼고 하느냐? 자기를 중심 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 삼고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