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9.10(일) 전본부교회. 효자의 길.
062-045 내가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 1956년도에 말이에요, 이화여대 사건으로 내가 형무소에 들어갔을 때 제일 잊혀지지 (잊히지) 않는 두 사건이 있어요.
그중 하나가 뭐냐 하면 옛날에 평양에서 나를 따르던 아주머니가 척 나타났어요. 나타나서 하는 말이 "지금도 정신 못 차리고 이 놀음 또 하누만." 그러는 거예요. 그게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아요.
"지금도 정신을 못 차렸어? 네가 언제 나한테 정신 차릴 수 있는 말을 했어?" 내가 가는 길은 너희들이 주장하는 것보다 몇백 승이라고 생각하는 거라구요.
그때 나를 두고 "두고 봐라. 네 새끼들, 네 사내, 네 족속, 네가 와 가지고 배밀이를 하면서 코를 땅에 맞대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을 하며 사죄하면서 용서를 구하면 구했지, 내가 네 무릎에 빌붙어 가지고 동정을 바라는 그런 사나이가 아니다. 꺼져 버려라."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일생 동안 잊히지 않는다구요. 그런 이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사라질 통일교회 문 선생이 안 된다 이거예요.
내가 이북에서 공판정에 서게 되었을 때 이북에 있는 아무개 아무개 목사들이 와 가지고 별의별 욕을 다 했습니다. 그래서 "흥, 두고 보자! 네 아들딸과 내 아들딸이 누가 훌륭하게 되나 보자. 네가 가르치는 교인들과 내가 가르치는 교인이 누가 나은가, 죽더라도 내가 나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거예요.
그러한 남이 알지 못하고 남이 느끼지 못한 衝擊을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았다구요. 자다가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거라구요. 그 자리에서 하늘 앞에 내가 효의 도리를, 충의 도리를 하겠다고 맹세한 그 맹세를 실천하느냐 이거예요. 이런 것이 얼마든지 있다구요.
그렇기 때문에 피곤하려야 피곤할 수 없다구요. 지치려야 지칠 사이가 없다구요, 바쁘다는 거라구요.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놀음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 안 하고 가만히 있다고 무골충이 아니라구요. 내 갈 길이 바쁘기 때문에 말 안 하는 거라구요.
선생님의 성격대로 하게 되면 싹싹 도리탕 (닭볶음탕)을 해서 독수리 밥을 해 먹이더라도 눈 깜짝 안 한다구요. 지독하다면 지독하고 무섭다면 무서운 사나이라구요. 옳지 못한 것을 보고는 못 견디는 사람이라구요. 내 팔이 떨어지고 모가지가 달아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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