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죽음 - 佐野 洋子

true2020 2015. 12. 16. 10:45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알겠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재규어 대리점에 들러 잉글리시 그린 컬러의 차를 고른 뒤 “일흔에 죽는 게 꿈이었는데 나는 정말 운이 좋다”던 여자.

 

일본 그림책 작가 佐野洋子(사노 요-코)의 에세이 ‘사는 게 뭐라고’의 한 대목이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 시한부 인생 (2년)을 선고받았는데도 그는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며 매일이 즐거워 견딜 수 없었다고 적었다.

죽음이 즐거울 리는 없다. 죽음을 대하는, 남은 인생을 기꺼이 즐기고자 한 그의 미덕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세상에는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인생의 무엇과도 바꾸겠다’고 여기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의식을 잃은 채 주렁주렁 매단 의료장치에 호흡을 맡긴 환자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비록 돌연 의식을 되찾아 후유증도 없이 새 삶을 사는 일은 ‘용팔이’의 김태희처럼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하지만 말이다.

 

2010년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폐암 말기 환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각기 다른 치료법을 적용했다. 한 그룹은 통상적인 암 치료를 받았고, 다른 한 그룹은 기존 치료와 더불어 완화치료 전문가 상담을 받았다. 완화치료 전문가 상담을 받은 그룹의 환자들은 화학요법 치료를 더 일찍 중단하고 호스피스 케어를 더 일찍 선택했지만 생존 기간은 25% 늘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담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 아툴 가완디는 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지에 대한 대화가 실험 의약품이었다면 FDA(미 식품의약국)는 승인했을 것이라고 했다. 누구나 죽음은 피할 수 없지만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일 것이냐는 선택에 따라 ‘죽음의 질’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그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다. 일명 ‘웰다잉법’ ‘존엄사법’으로 불린다.

 

1997년 환자 부인의 요구로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가 의사 2명이 살인방조죄로 처벌받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8년 만이다. 이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환자의 사전의향서나 환자 가족의 뜻에 따라 중단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순간까지 ‘좋은 삶’은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할 일이다.

세계일보 황정미 논설위원

 

 

佐野 洋子(さの ようこ、1938年6月28日 - 2010年11月5日

北京生まれ。7人兄弟だったが、幼少時に病弱だった兄を亡くしている。これが後の作風にも影響を与えている。4歳のときに母親と手を繋ごうとしたら、チッと舌打ちされて手を振り払われて以来、母親に対して確執を抱えた(晩年、母親が痴呆になったのち和解

 

武蔵野美術大学デザイン科卒。ベルリン造形大学でリトグラフを学ぶ

『やぎさんのひっこし』で絵本作家としてデビュー。1990年、谷川俊太郎と結婚し、1996年に離婚。代表作である『100万回生きたねこ

エッセイストとしても知られ、『神も仏もありませぬ』で2004年度の小林秀雄賞を受賞。『役にたたない日々の中でがんで余命2年であることを告白していた。2010年11月5日午前9時54分、乳がんのため東京都内の病院で死去した。72歳没.

 

 

佐野洋子が、がんに罹り自分の余命を知り、老後のために蓄えていた貯金は不要だとすべてをはたいてジャガーを買った。その滑らかな白い革張りのシートに身をあずけて彼女はしみじみ思ったそうだ。「ああ自分の生涯を通じても、このジャガーのシートのように自分を包み込んでくれる男はいなかった」と

 

余命二年と云われたら十数年私を苦しめてきたウツ病が消えた。人間は神秘だ。人生が急に充実して来た。毎日がとても楽しくて仕方ない。死ぬとわかるのは、自由の獲得と同じだと思う。 佐野洋子

 

4歳の時、手をつなごうと思って母さんの手に入れた瞬間、チッと舌打ちして私の手をふりはらった。私はその時、二度と手をつながないと決意した。その時から私と母さんのきつい関係が始まった。

 

父親の最期に

父が同僚の見舞いに行った。ガンだったのだろう。帰ってきて、「あれはみっともないな、オレの顔をみて、死にたくない死にたくないって泣いていた。あんな死に方はみっともないなあ」と母に言っているのを聞いてしまった。死に方の美学というものがあったのだろうか。そのとおりに父はアウシュビッツの囚人のように骨ばかりになって、昏睡状態に陥るまで壁をつたってトイレに行っていた。そして、静かに、何も言わずに死んだ